길드(1)

"그래! 안한다고 안 해!!"
길드의 문을 박차고 나온 매우 작달막한 소녀는 열린 문 앞에 있는 게네레브의 모습을 보았다. 키가 자신보다 월등히 큰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는 듯 했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고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는 열린 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길드와 주점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지 한 쪽에선 술에 취한 자들의 고성이 들렸고 다른 한 쪽에서는 용병들이 의뢰를 고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카운터로 다가가자 한 길드원이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용병패를 발급받으러 왔습니다."
"전에 용병패를 발급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2층으로 올라가세요."
그가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자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거구의 사내가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내는 게네레브를 보더니 허공에 몇 번 검을 휘두른 뒤 그에게 검을 찌르러 다가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왼쪽 허리춤에 묶여져 있는 검을 겁집 채로 들어올렸다. 검을 묶었던 끈이 끊어지며 떨어졌고, 그 동시에 검집의 한 면이 일격을 받아내었다.
캉!
겁짐을 든 그의 손 너머로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왔다. 그는 반대쪽 손으로 잡고 있던 손을 지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손목의 뼈가 부러졌다.
'한 반나절 뒤에나 낫겠네.'
그 사내는 아까 찔렀던 검을 거두고 몇 보 뒤로 가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에 그도 검을 뽑고 검집을 바닥에 놓은 뒤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캉! 캉! 캉! 캉!
그의 날카로운 검과 사내의 육중한 검이 부딪혔다.
그는 근육이 울룩불룩한 사내에 비해서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힘 겨루기로 시간을 끌지 않고 뒤로 몇 보 물러난 뒤 빠른 속도로 사내의 뒤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호를 그린 그의 검이 사내의 검을 베려는 순간, 어느새 뒤로 돌은 그 사내가 둔기를 휘두르듯이 검을 아래로 내려쳤다.
그러자 검을 들고 있던 오른손이 부러지며 뼈가 살짝 튀어나왔다. 그런 그를 보며 사내는 검을 그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어쩔 수 없이 써야겠네.'
그는 오러를 끌어올렸다. 오러는 기본적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힘이지만 근육을 계속 찢고 그 회복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하여 강하게 하기 때문에 그가 이 이후에 고통스러워할 것은 분명했다.
부러졌던 양쪽의 손목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몸 곳곳에 오러가 모여들며 그는 아까와는 너무나 다른 속도로 그 사내의 뒤로 향해 검을 베었다.
그의 검이 밤하늘의 빛이 나는 그믐달처럼 궤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궤적밖에 되지 않았다. 전과 같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사내가 다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그 사내는 오른 발로 그의 복부를 찼다.
그는 벽으로 날아가려는 몸을 다잡고 바닥에 검을 박아 몸을 멈추고 그 사내를 노려본 뒤 목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그 사내는 대검으로 게네레브의 검을 날리며 웃었다.
"하하하!! 이거 진짜 인재네!"
그는 안심했다. 드디어 용병 등급 시험이 끝난 것이었다.
용병 등급 시험. 그것은 용병의 등급을 정하는 시험이었다. 그가 본 시험은 동, 은, 금, 백금의 시험 중 동이었다. 그러나 엔워의 수도인 마니(mani)의 길드 부단장은 워낙 싸움을 좋아하기에 용병패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게네레브는 예전에 한울에게 용병패 얻기 쉽다고 알려준 아카데미의 후배에게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날 리 없을 터였다.
"벨!"
"예. 부단장님."
아까 그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벨이라 불린 여자가 올라왔다.
"얘 좋은데 한방에 은패 주는 거 어때?"
"싸움만 하시더니 미치신 겁니까?"
"아니 내가 왜 미쳐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벨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짚었다.
"진짜 미치셨군요."
"아니.. 하.. 이번엔 진짜라니까? 진짜로 가능성이 보였어!"
"저번에도 그러셨죠. 그런데 그들이 지금 어떻습니까? 아직 금도 못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건 잘못 본 거고 이번엔 진짜로 잘 봤다니깐!"
"그래도 이분은 전과 달리 확실하게 일어서 있긴 하네요. 그래도 은은 안 됩니다. 동패 시험인데 은을 주다니요.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알겠어. 그럼 동패의 II라도..."
"안됩니다. 그리고 오러 중화제 주세요"
"왜?"
"게네레브 씨 안 보이십니까?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면 당연히 대가는 내놓으셔야죠?"
"알겠어."
부단장은 구석에 있는 서랍에서 손바닥 크기만한 주머니를 꺼내서 그 안에 있는 푸르렇고 동그란 구슬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게네레브 씨?"
"예?"
그는 오러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몸을 이끌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과 검집을 주운 뒤 그녀의 앞으로 갔다.
"용병이 되신 기념으로 여관을 잡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시면 바로 오러 중화제를 사용하세요. 좋아지실겁니다. 그리고 용병패는 내일 발급될겁니다."
벨은 사무적으로 웃으며 종이 두 장과 마필(魔筆)을 꺼내 글을 각가 적고 그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그는 첫번째 종이에 적혀 있는 여관에 찾아가 그 종이를 보이고 2층에 있는 어느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런 뒤에 두번째 종이를 보았다.
[오러중화제]
몸에 날뛰고 있는 오러를 상당량 줄여 고통을 줄입니다.
사용법
1. 오러 중화제를 먹으십시오.
2. 자십시오.
*주의*
오러중화제를 먹고 자는 중에 치료마법을 받거나 어떠한 다른 약재를 먹었을 시에 부작용 유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오러가 몸에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다면 오러 중화제가 몸에 잘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종이에 적혀 있는 대로 그 푸르런 구슬을 먹었다. 그 맛은 고산에서 바람을 맞는 듯이 시원하며 여름 때 처음으로 발을 바닷물에 담글 때 느끼는 것 같이 청량한 맛이었다. 그는 오러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며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 그는 깨어나 온몸에서 오러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본디 오러는 피와 같아서 몸을 순환하고 다니는데 그는 둑을 세워 물을 막는 것처럼 오러를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그의 오러는 둑을 무너뜨리는 물같이 몸을 순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프다는 말이었다.
그러하여도 오러중화제 덕인지 거동이 불가능하지는 않게 되었다.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보니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진짜 내가 봤다니깐! 그 위엄하고도 장웅한 태세에 그 날카로운 이빨이란!"
"허풍 떨지 말게. 애초에 그런 괴물이나 마물이 나타났으면 맥, 당신은 이곳에 없었겠지."
"아니, 그것이 말했다니깐! '드디어 방랑자의 예언이 시작될 것이니 모두 그의 제(製)와 제(除)를 예비하라. 그리하면 이 부화장에서 나가 다시 새로운 삶을 얻으리니.' 이 말을 하면서! 내가 다른 건 기억 안 나도 이건 똑똑히 기억난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생겼다고?"
"눈동자는 용의 것, 날개는 마치 천사와 같이 6장이며 그 몸체는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섞은 것처럼 생겼지. 그래 어떤가?"
"맥, 소설 잘 쓰겠군."
그 말을 듣던 맥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자신이 맞다며 노발대발 소리지르다가 같이 이야기하던 사내에 의해 방에 들어갔다. 그 말을 듣던 게네레브는 구석에서 배를 채울 요깃거리를 먹은 뒤 길드로 향했다.
길드에 도착하고 카운터에 가자 용병패를 받았다.
[동패 ― I]
그렇게 적혀 있는 직사각형의 패는 손바닥 크기만하고 짧은 변의 중심쪽에 구멍이 뚫려있어 끈을 이용해 묶기 좋게 되어있었다. 그는 그것을 받은 즉시 품에서 작은 끈을 꺼내 구멍에 넣은 뒤 검 옆에 묶어놓았다. 이 패는 마법으로 보존되어 부서지지 않으니 검 옆에 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단, 분실만 조심하면 될 뿐이다.
그는 그것을 받은 뒤 초(初)동패필수의뢰에 대해서 들었다.
마물 1마리 죽이기.
바킬리렌르의 왕 엘로이가 즉위할 때부터 포탈이 열리며 나온 생물, 마물. 그 중 하나를 죽이는 것이 그의 첫번째 의뢰였다.
* * *
그의 첫 의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다. 초보한테 의뢰를 혼자 맡기면 다 죽어버려서 숙련자들과 함께 의뢰를 하여 경혐을 쌓게 해준다는것이 그 이유였다.
마니와 가장 가까운 포탈에 모인 사람은 그를 포함해 넷이었는데 각각 맥, 존, 칼이었다.
"겐이라고 했나? 나를 믿고 가면 다 수월할거다! 이 영물을 만난 맥을 따라라!"
"맥, 진짜 소설가로 직업을 바꾸는 건 어떻겠나? 이정도의 허풍이면 솔직히 마니에서도 제일 잘 팔리는 책을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진짜 봤다고!! 존!"
"그래. 봤겠지."
"칼! 너도! 진짜 봤다니깐!"
맥은 그를 향해 돌아보더니 말했다.
"겐,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아마도 환각이겠죠? 영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 대체 왜 내 말을 안 믿어주는 거야!! 나는야... 늑대형 마물 전방에 10마리."
방정맞았던 맥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쌀쌀해지며 마물의 수를 알렸다. 그런 뒤에 앞으로 튀어가며 검을 꺼내 마물 한 마리의 발목들을 끊고 제압한 뒤에 뒤로 돌아 아직 살아있는 마물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새, 뒤에서 마물 몇마리가 맥에게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존과 칼이 그것들의 입에 검을 끼운 뒤에 반으로 갈랐다.
"맥, 초짜한테 제대로 가르쳐줘. 나중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니까."
"알겠어. 하던 대로 하자고."
맥은 한손으로 검을 검집에 넣고 다른 손으로는 그 마물의 뒷덜미를 잡고 땅에 짓눌렀다.
캬아아악!!
그 늑대같은 검고 검은 마물이 그에게 아가리를 벌리고 울부짖었다. 그는 아가리 속에 숨어있었던 긴 이빨과 그것의 수납을 위한 파여있는 잇몸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맥에 의해 제압되었다.
"겐, 마물의 정의라는 건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마물은 그게 아니야. 그냥 인간을 먹고 싶어하는 것들이다. 동물을 모방해 인간을 사냥하지."
제압되어있는 늑대 같은 것의 입 사이로 검은 물방울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마물은 게네레브에게 그것들을 뱉으려고 했으나 다시 맥에 의해 제압되며 땅에 그것들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들이 닿은 땅은 검게 변색되어 황폐화되었다.
"그리고 이 검은 것. 우리는 이걸 흑적(黑滴)이라고 한다. 이것에 닿으면 저 땅처럼 되니 주의하고. 그리고 마물은 오직 심장을 없애야지만 죽는다."
콰직.
맥은 검을 꺼낸 뒤 그것의 머리를 찔렀다. 그러나 평범한 짐승같이 죽는것이 아니고 되려 더 발광했다.
"자, 이제 네 검으로 찔러봐라."
게네레브는 자신의 검집에서 검을 꺼낸 뒤 검 끝을 그 마물의 심장쪽으로 맞춘 뒤 내려 찍었다. 그러자 그 마물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검은 가루로 화(化)해 하늘 속을 떠다녔다.
"자 이렇게 죽이면 된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게네레브는 그 말에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마물을 죽였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존이 맥에게 소리쳤다.
"맥, 네가 봤다는 영물이 이거냐?"
"뭔데?"
맥이 시선을 돌린 곳에, 즉 높은 산에 고고하게 서 있는 한 마리의 흰 늑대가 있었다. 그 흰털은 아무리 더럽게하려 해도 더럽게 되지 않을 것 같으며 용병들을 바라보고 있는 회색의 눈은 그들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야말로 영물이라 불리기에 딱 어울리는 생물체였다.
"야!! 흰 늑대잖아!! 여기를 바로 빠져나간다!!"
맥이 그 말을 외치자마자 존과 칼이 뒤로 돌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튀어나온지 모르는 동물이 섞인듯한 마물 두마리가 그들을 물어 검은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맥과 게네레브 쪽으로 달려와 위로 높게 뛰어 그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