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신화(1)

'근데 왜 '소설'에서 본것만 같지? 이 상황을?'
나는 잠깐 생각했다.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아! 그래! 로레니네스 작가분의 소설! 거기서 나왔어! ―용사물 작품을 쓰신 위대하고 위대하신 분이다. 무려 판타지의 기초를 잡으신 분! 근데 거기서 나오는 조무래기 파트를 다른 사람들이 표절해서 계속 낸다고! 그걸 클리셰라니 뭐라니 변명하는데 그거 표절이잖아!―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산적이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눈이 호박색(琥珀色)으로 변하며 마석을 들었다.
"기사단 소집."
어? 산적이 왜 마석을 들고 있어?
"단장, 드디어 온거야?"
"아... 그냥 놀고 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왜? 단장."
그렇게 말한 둘은 산적 옆에 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서는 단장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붙을 건 누구야?"
"단장, 제발 나는... 나는 쉬게 해줄 거지?"
"아니. 나가서 한번 시험해봐. 이번에도 아니면 그냥 쉬는 거고, 맞으면 돌아가야지."
단장은 그를 보냈다. 그는 매우 귀찮아하며 생각했다.
'제발... 제발... 아니어라. 제발..'
그리고 검을 뽑았다. 그런 뒤에 그는 우악스럽게 검집을 땅에 던지고는 자신의 흰색 옷을 휘날리며 내게 다가왔다.
―에즈라. 검을 들어라. 너를 위한 안배이니 달든 쓰든 한번 먹어 보아라. 효과는 있을 터이니.
'아니.. 뭔 ..스승..'
깡!
갑자기 검이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애써 검을 꺼내 막았다.
그 다음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검을 찔렀다.
"크윽.."
나는 몸을 옆으로 튼 뒤 검끝이 바닥을 향하게 해 그 검을 흘려냈다. 그리고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손목을 내려―
깡! 까드드득!
치려다가 어느새 뒤로 다가온 그를 막기 위해 오러로 몸을 가속해 그의 검을 횡으로 쳤다. 그러나 그는 밀리지 않았고 이내 열 십(十) 자 모양이었던 검들이 엑스(X) 자가 되며 나와 그의 몸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 상태에서 나와 그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다라고 말할 수 없을만큼 팽팽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 말이다.
나는 이 때에 쓸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기억을 뒤져보았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났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이 떠올랐다.
―에즈라. 너가 검을 든 상대와, 그것도 너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에는 상대를 계속 바라봐라. 네가 파악할 수 있는 만큼의 약점을 파악해서 비꼬는 것이다.
"예. 예. 그러면 "얼굴 왜 그렇게 생겼냐?" 하고 말하면 되는 거죠?"
난 그 때 설렁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살짝 귀찮게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스승님의 훈계..가 다가왔다.
―아니 이런 무뢰한(無賴漢)같은 자가 있나! 아아. 신이시여. 대체 왜 이런 자가.. 그리고 그 말을 해야 할 땐 경어가 더 어울리는 법이다. 평어를 쓰면 저 한낱 무뢰배와 같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로 인해 그 상대가 분노에 휩싸였다면 그 힘을 이용해 역으로 그를 쓰러뜨려라.
"예. 예. 그럴게요."
―이런 막되먹은! 요즘 자식들은...
그 말을 따라하기 위해 어느 한 사람을 떠올렸다. 마이클이라는 앤데 워낙 비아냥거리는 조로 말을 걸어서 거기에다가 요 자만 붙이면 될 듯 싶었다. 그리고 스승님 말투도 살짝.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사람을 관찰했다.
"으윽."
점점 밀리는데. 빨리 생각해내야겠다.
아까 산적이라고 나타난 사람을 단장이라고 불렀고 검을 잘 쓰니까 기사나 사병쯤 되려나?
난 번뜩 생각이 일어났다.
'수녀님들은 괜찮으실려나?'
수녀님들을 바라보자 어느새 흰 의복으로 갈아입은 산적과 아까 싸우고 싶어하던 기사, 그리고 수녀님들이 웃으며 대화하고 계셨다. 그 도중에 수녀님은 자신의 몸 안에서 성호(聖號)―미간을 짚은 뒤 심장 부근의 가슴 부위를 짚어 선을 긋는 동작, 주로 신자들이 많이 한다.―를 그은 뒤에 그들의 몸에도 성호를 그으셨다.
"크윽."
이제 거의 다 밀렸어.
검이 내 눈앞으로 다가와 미간을 벨 것만 같았다. 근데 내 머리야 제발 제발 종합해줘. 빨리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을 내뱉어줘.
그렇게 염원하자 내 멍청한 머리가 답을 도출해냈다.
"당신은 기사가 아니라 지옥에 갈 죄인이군요."
"뭐? 감히 바킬리렌르 놈이? 지옥을 논해? 내가 죄인?"
그 기사의 노기(怒氣)가 눈으로부터 전해져왔다.
움찔!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말을 해야 했다.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리고 난 지금 죽기 싫거든. 용사가 돼서 이름을 널리 퍼뜨려야 하니까.
"그래요. 전 바킬리렌르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도 국교인데 당연히 지옥을 논할 자격이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죄악의 성기사?"
그 성기사는 '죄악의 성기사'라는 말에 발끈해서는 검을 더 내게로 밀어붙였다.
"오냐. 네가 감히 신께서 판단하시는 타락을 판단하였다? 이단이구나. 이제부터 널 죽이겠다."
"왜 이리 타락에 민감하십니까. 타락이 무엇입니까? 선에서 악으로 변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처음부터 선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악이었습니다!"
"그게 뭔 불경한 말이더냐! 이 이단아!"
"당연히 악이지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웃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부모를 위한 거짓말이지요! 그리고 성서에 기록된 바! 본디 인간은 진노의 자식이니 악이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이 원래부터 선했다는 그런 불경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이 불경하더냐! 불경한 것은 너다 이 이단아!"
나는 팔에 오러를 흘려넣었다. 그랬는데도 검이 밀려 내 오른쪽 어깨에 닿아 선혈을 흘리게 했다. 그 밝은 색의 피가 옷을 적셔 적포도주처럼 흘러내렸다.
"크윽..."
옷의 소매를 타고 뚝뚝소리를 내며 땅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근데 뭔가 겁이 났다. 내 포도주가 빠져나온 곳에 저 몸에서 흘러나오는 화가 들어올까봐. 그런데도 난 말을 계속했다.
"성서에서 이단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지 아니 하셨습니까? 그리고 성서에 기록된 바! 다른 종교나 이단들을 박해하지 마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신이 되어줄 것이나니 너희들은 그저 그들을 아끼고 보살펴 주어라. 즉, 당신의 이런 막무가내식 행동은 옳지 않지요!"
"뭐라? 지금 성서를 왜곡하고 날조하니 너는 실로 살아있으면 안 되겠구나!"
그 성기사는 양손검을 철퇴를 들듯이 내려치려 머리 위로 들었다. 그리고 힘을 매우 많이 주어 내려쳤다. 그렇기에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됐다!'
난 그의 방심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며 그의 뒤로 돌아서 그의 아킬레스건을 갈랐다. 그러자 그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볼품없게 쓰러졌다.
"이 이단이!"
그는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며 에즈라를 얕보았기에 쓰지 않았던 오러를 뒷발꿈치 쪽에 집중했다.
"끄아아악!!"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기절했다. 내가 왜 그런지 환부를 살펴보니 그 이유가 드러났다.
환부가 계속 벌어졌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것이었다.
"음... 잠깐만 그럼 나도?"
난 내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내 검이 내 몸에게서 피를 앗아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기로 오러가 지나간다면... 음! 당분간은 오른팔쪽에 오러 안 불어넣어야겠네! 근데 나 진짜로 똑똑한 걸지도! 나 저 사람을 이겼다고!
턱.
"윽!"
갑자기 내 오른쪽 어깨에 압력이 느껴졌고 그 뒤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네. 괜찮은가?"
나는 뒤를 돌아보며 그 말을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흰 의복을 입으니 꽤 깔끔해 보이는 산적이였다.
"네. 치유력으로 치유해 주셨으니까요. 근데 산적씨 정신 괜찮으세요? 아까랑 너무 달라보여서요."
"그래. 조금 달라보이긴 하지. 그리고 미친 건 아니야. 원래 셋이 같이 하는 건데 나만 한 거거든."
'미친 것 같은데.'
"아, 그리고 저 아이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그걸 생각해서 이걸."
그는 아까 싸웠던 그 사람을 가리킨 다음 어떤 패를 내밀었다. 가로는 손가락 네마디쯤에 세로는 아홉마디쯤인 그 패에는 교(敎) 자가 적혀 있었다.
"이... 이건!"
나는 안 된다고 손사래치며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 그 싸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 패를 주면 어떡하는데!! 진짜 이 사람 미쳤어. 이거 팔면 평생 마실 술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는 가친데.
"아? 근데 그 녀석이 성기사인 건 어떻게 알아챘나? 걔가 딱히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말이네."
"그... 일단 수녀님하고 산적씨가―자신의 이름이 안드레스라며 이제부터는 안드레스라고 부르라 했다.― 대화했을 때 수녀님이 성호를 긋는 걸 봤어요. 그러면 안드레스, 당신은 넷중 하나죠, 신도, 성기사, 개종자, 아니면 입문자."
"오호라."
"근데 이런 외진 곳은 개종자나 입문자들은 없어요. 그리고 신도들은 있어도 사람이 많은 곳을 가서 성서의 내용을 나눌 생각을 하고요. 그러니까 억지로 이곳에 온거죠."
"그렇게 추측했다?"
"네. 그래서 성기사로 추측했어요. 거의 도박이라서 성공할지는 몰랐지만요."
"음.. 어리바리해 보였는데.."
안드레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에즈라요."
"그래. 에즈라. 그럼 다음에 만나지. 나중에 성기사단에 올 일 있으면 내 이름 대. 나는 동방에선 폐관수련(閉關修鍊)이라는 수련법이 있길래, 얘한테 한번 시켜볼라고. 우리 식으로 하면 개관수련(開關修鍊)―그가 말하기를 다구리하고 잡초구슬 먹이기.―이겠지만. 그럼 다음에 만나도록 하지."
그는 마나석으로 둘과 함께 신전 소관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와 수녀님들은 몇몇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한 섬뜩한 소리도 들었는데..
―확실히 너는 죽을 위험에 닥쳤을 때 상황판단을 잘하는군. 그러면 그런 상황들을 준비해주어야겠군.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는 초대 신전에 도착했다.
* * *
구겔르스트.
그 이름과 같이 투쟁의 역사 위에 세워진 국가다.
처음에 이 국가는 엔워에서 탈선한 무인들과 용병들의 국가였다.
그렇기에 주변 국가들. 특히 엔워와 유독 많이, 오래 전쟁하곤 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어느 한 건물로부터 바뀌었다.
그 건물의 이름은 신전으로 예전에 어느 이름 난 용병이 왕이 되어 종교를 받아들이며 생긴 건물이였다.
그 신전이 세워지자 구겔르스트의 사람들은 종교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고 곧이어 그들의 이름 앞에 교국(敎國)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이른다.
「역사」―위대한 왕실의 역사가 엘리
제 1장 나라 中.
* * *
"아, 저희는 이제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네요. 여기요."
수녀님은 내게 한 꾸러미를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동화더미가..
"이거는 안 주셔도..."
"괜찮아요. 저희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거니까요."
"아니... 그래도.."
"아니! 꼭 받아야 해! 우리를 안전하게 보내준 보상이야!"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곤 내 손에 그 꾸러미를 꽉 쥐여주었다.
"네. 그럼 잘 받을게요. 그럼 다음에 만날 수 있길 빌게요."
"그럼 저희도 다음에 만나길 빌겠습니다."
수녀님이 그렇게 말하시며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마석을 찾으러 다닐 때.
―에즈라.
'네? 스승님?'
―신전 안으로 들어가라.
'왜요?'
―쯧. 요즘 애들은 시간만 나면 왜요 왜요.
'그래서 꼭 가야만 해요?'
―그래. 가지 아니하면 네가 왜 여기로 오게 되었겠느냐.
"예. 예."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초대 신전 앞에 서서 들어갔다. 그러자 내 앞에 수녀님이 나오셨고 나는 개인 방을 잡겠다고 한 뒤 그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녀님들에게 받았던 동화들 중 일부를 방에 있는 헌금함에 넣은 뒤 의자에 앉았다.
―자! 의자는 저리 치워서 무릎을 꿇어라.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신 분이시다.
나는 스승님의 말대로 무릎을 꿇었다.
―머리도 숙여라!
그리고 머리도 숙였다.
그러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나를 감싸는 둥지 같은 목소리였다.
【에즈라. 잘 왔구나. 나는 방랑자. 이 세상의 선조이니라.】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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