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epry(1)

에즈라가 구겔르스트에서 역병에 대해 들었을 무렵, 옛 크호페프라이의 땅에서 한 여인이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역..."
그녀는 제 땅의 새로운 이름을 말하고 옛 수도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신고 있는 신을 바라보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으나 더 이상 가지는 않았다. 더 앞으로 간다면 마물들이 몰려올 것이 뻔하니.
그녀는 몸을 돌려 발을 재촉했다. 그녀의 발이 처음에는 빨랐으나 점점 느려져 1분에 한뼘도 가지 못했다.
"하..."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잠시 가린 뒤 생각했다. 아예 마물이 발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그러나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변방이자 수복된 나라,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느리웠던 검을 검집에 넣고 마을이 있는 엔워로 향했다. 그녀의 등에는 공포가 모기가 되어 위축이라는 이름으로 피를 빨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온다면 그 모기를 잡아 날개를 찢어발기고 내장을 파내 파리에게 먹일 수 있으리라.
* * *
"앤드리아!"
"아. 에버렛."
앤드리아는 자신을 부른 에버렛을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러자 에버렛이 그녀에게 다가와 뭔 일이 있었나며 계속 물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
"그래. 저리 가. 나 영감 만나야 돼."
"누구? 크홉?"
"응."
"또? 저번에도 그랬다가 네 엉덩이가 뻥~ 하고 차였잖아. 이번에도 그럴건... 아니지?"
그녀―어찌하여 여자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는 앤드리아를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앤드리아는 그녀를 쉽사리 무시하고 지나갔다.
"진짜로 안할거지?"
"..."
"에휴.. 그래 또 하겠지. 그럼 이번엔 영감 제대로 불러야 된다! 크나 킇으로 말하면 안돼! 구시대사람이라서 살짝 그 기가 있으니까."
"..."
"내가 말해서 뭐하니."
에버렛은 한숨을 쉬며 앤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전처럼 앤드리아는 그녀를 무시했고 그녀는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앤드리아는 그 뒤에 마을 중에서 가장 초라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어 찾기 쉬웠다.
"크호페프라이."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한 60세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그 문을 열고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그래. 앤드리아. 이번에도 같은 일이니?"
"네."
"그럼 앉으렴."
그는 탁자 쪽을 가리킨 뒤 의자 1개를 가져와 두었다. 그런 뒤에 그 둘은 먼저 놓여 있던 의자와 그가 가져온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보았다.
"앤드리아, 말할 것은 저번과 같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맞니?"
"네. 그러니까 아시죠. 제가 뭔 말을 할지."
"그래. 중앙으로 나가자는 것이지 않느냐."
그러고서 1111대 크호페프라이는 양 손을 교차해 코와 입을 가렸다. 언뜻 보면 기도를 하는 듯 보이는 자세였으나 그녀는 그가 그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데 가능하더냐?"
"당연히―
"불가능하지."
"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거지? 우리에게는 예언 능력―
"그래. 예언 능력."
"어떻게 제 생각을?"
"이게 예언 능력이란다. 세상 모든 이의 생각과 행동을 알아도 그 행동 속에 내포된 의미를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예언이지."
"..."
"많이 놀란 듯 싶구나. 그러나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크호페프라이로서의 직분을 행사하는 일이니."
"마지막 크호페프라이라는 뜻은.."
"그 이야기는 일단 뒤로 밀어두자꾸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단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창문 밖을 살폈다. 그러니 하늘에서 해가 자신을 바라보며 빼꼼거리고 있었다.
"과거, 그러니 사학자들이 선사라고 부르기 좋아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있었지. 그 때에 우리는 제국의 개국공신 중 하나였으며 또한 그 직계는 다른 개국공신인 귀족과 왕족의 자손의 보좌관이었단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대행자를 보좌해 미래를 보고 기록해 예언서를 적는 자들이었단다.
그런 날들이 수천년 쯤 되었을까, 그 분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고, 서방과 동방이 나뉘고 바킬리렌르에서 엔워가 나오고 엔워에서 구겔르스트가 나온 뒤, 마역이 생겼지.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예언만하고 예언서만 적고 있었단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 이렇게 물어봤단다.
'왜 이렇게 우리는 예언만 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러자 그분께서는 아주 특별한 답을 내놓으셨지.
'너희들이 세상의 끝에서까지 실재함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우리는 그 대답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아갔단다.
우리의 첫 예언께서는 그것이 우리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살아갈 것이라 하셨고, 천번째 예언께서는 우리가 멸망을 초래한다고 하셨지.
그러나 이제는 알겠구나.
둘 다 아니었던거였어.
이러니 그분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손수 사과하셨지."
그는 무엇을 깨달은 듯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말했다.
"앤드리아. 우리는 그저 예언에만 끌려다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거라. 우리는 기록만 할 뿐이지. 바꾸진 못한단다. 그러니 스스로 펜을 들고 있는 자를 찾아 역사를 바꾸거라."
"제국? 신의 대행자? 뭔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이해를 좀..."
"그렇다고 네가 역사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말거라. 그러면 우리는 그저 오딘과 라그나로크처럼 되어 이미 적힌 역사를 실행시킬 뿐이니."
"오딘하고 라그나로크는 또 뭐에..."
그녀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그가 벌떡 일어나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것은 너가 신탁을 받을 존재이며 또한 핏방울로 적힌 미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위한 안수(按手)이니, 피의 잉크 속에 기록된 역사여 스스로 깨어나라."
【prophecy→chopepry】
"크호페프라이?"
그녀는 궁금증을 가지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잉크와 문서 다발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크호페프라이?"
그녀는 무언가 무서워지는 기분이 들어 그를 다시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어디다 두었는지 그녀의 숨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린 후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다.
'동방에선 그런 말이 있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라고. 여기서 얼타고만 있다간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지금 이렇게만 있으면 중앙에 나갈 때 어떻게 되겠어? 망하겠지, 뭐. 그러니까 이게 마법이든 뭐든 일단 맞닥트려보자고.'
끼익―.
평소와 다르게 경첩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리를 신경쓰지 않고 평소와 매우 다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평소와 다른 하늘은 제 아가리를 벌려 그녀를 맞이했다. 뭔 하늘이 입이 있겠냐마는, 저 하늘은 진짜로 있었다. 잉크의 대해(大海)로 이루어진 입이.
그런 다음, 그 하늘은 제 아가리를 이상하게 구부려 글씨를 만들어내었다. 그야말로 잉크로 쓴 필기체였다.
「예언족」 「마지막」 「왕의 사랑」
"저건 뭐야?"
그녀는 혼잣말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이를 듣고 하늘의 아가리가 좌우로 길게 벌어지더니 하늘은 의사표현을 했다. 아주 짜증나도록.
「예언」
하늘이 그 말을 하자 갑자기 그녀의 귀와 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머리를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끄아아악!!"
「히힛. 예언! 예언! 예언!」
그에 더해 그녀의 코와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끄윽.. 끄아악.. 이런 제기랄."
「미안~ 미안~ 어쩔수가 없었다고. 역대 예언족의 수장을 놀리는게 내 특권인데 당연히 놀려야지. 아! 그리고 이제부터 넌 역사를 맛볼거니깐 그 때까진 날 못볼거야. 그래도 다 끝나면 나랑 놀자! 예언!」
"끄아아아악!! 이런 씨―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하늘에게 욕을 지르려는 찰나, 그녀의 눈에서 커튼이 내려쳐졌다.
* * *
"예언족이 불멸의 왕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크호페프라이입니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 뒤 그의 얼굴을 보았다.
"Chopepry, 예언이라. 그럼 그대는 그대의 이름대로 예언을 할 수 있는가?"
"예. 그렇습니다. 못 믿을 수 있으실 것도 같아 예언을 하나 해보자면, 사망의 왕께선 황제의 좌(座)를 얻으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인 뒤 그의 얼굴을 다시 마주봤다.
"그리고 얼굴이 이리 아름다우시니 백성들도 훨씬 좋아할 것입니다. 선행을 베풀고 몸이 빛나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세간의 말도 있을 정도니깐요."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게. 그런 이야기는 그녀에게까지만 들어도 괜찮았을 뿐이니."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대는 예언을 함이 증명되었으니 내 땅에서 사는 것을 허락하겠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나라의 안전이나, 혹은 마물에 관련된 예언뿐일세. 만약 다른 예언을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은 안 하겠네."
.
.
.
"어째서 그리 어리석은 생각을 실현했나!"
그가 그녀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매우 감정적이어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조력자가 아니라 피식자라는 것을.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당연하다고 해도 그대의 아이를 제물로 바쳐서까지 해야되는 일이었나?"
"예!"
"그럼 그대는 이제 미래를 알기만 하겠군. 바꾸지는 못하겠어."
"예?"
"그대는 지금 기억을 후손으로 넘긴다는 의미를 모른다는겐가?"
"..."
"하... 정말 미치겠군. 그대가 우리를 직접 라그나로크로 이끈다는 말이네! 전에 내가 오딘과 라그나로크에 대해 한번 말한 적이 있었지. 그때 오딘이 어떠했는가? 라그나로크를 피하려다 되려 라그나로크에 의해 죽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법 전송은 완벽한 마법입니다!"
"아직도 이해 못했는가? 그대가 갓 익은 사과를 따다 제 아이에게 주든, 주머니에 며칠동안 있던 사과를 주든 그 사과는 더 이상 새 사과가 아니듯이, 그대가 예언마법을 전해주면 그것은 더 이상 예언 마법이 아니네! 손때 탄 예언마법의 열화판일뿐이지!"
"..."
"생각해 보게. 사과는 새롭다라는 것이 사라졌네. 그러면 마법은 무엇이 사라질 것 같나?"
그 말을 듣자 그녀의 눈이 바람에 나뭇잎이 휘날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대는 알겠지. 사과가 새 사과가 아니라고 해서 새로운 것이 아니지 사과라는 것은 분명하네. 그러니 이제 예언마법이라는 것도 예언만 할 수 있을 뿐 더이상 미래를 바꿀 수는 없는게지!"
"아... 아니..."
"그러니 이제 그대가 '우리는 마물에 의해 죽는다.' 라고 예언하면 우리는 다 죽는다는 이야기네!"
그녀는 처음에 그와 만났을 때에 가졌던 자신감을 모두 잃고 절망감을 가지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 대체 왜?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었는데 왜 이런거지?'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게! 그렇게 해서야 우리에게 도움될게 하나도 없어! 이제 우리는 그대를 버리고 행동할것이네. 그대가 살아서 우리가 죽을것이라고 예언을 하든, 마물에게 죽든, 자살하든 아무 상관하지 않겠네. 그러니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나."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이성을 잃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어서!"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란 그녀는 황급히 그의 앞을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녀는 마물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 * *
"어? 크호페프라이?"
앤드리아는 앞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과 달리 매우 수척해보여 죽기 직전의 사람같았다.
"그래. 앤드리아. 어떠니?"
"이게 뭔..."
"그래. 나도 처음에는 그랬단다. 전대 크호페프라이한테 이게 무엇이냐고 재촉하며 물어보았지. 그리고 답을 얻었단다. 그전에 딱 하나만 물어보마. 잉크로 얼굴이 뒤덮여진 사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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