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된 역사(2)

"으아아악! 몰려온다!"
에즈라는 전과 같이 호들갑을 떨고는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마물들을 베어넘겼다.
워낙 방정맞았지만 잘 처리하기는 해서 나는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거지?
"에즈라. 목걸이를."
그 때, 갑자기 기사가 나타나 에즈라에게 손을 뻗었다.
"네! 으윽... 잠깐만요..."
그는 목 주위를 더듬거리며 손을 밖으로 뻗어내었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목걸이가 드러났다.
"이거 너무 무거워..."
그는 겨우 힘을 써 네 홈 중 하나가 보석으로 채워진 목걸이를 빼내었다.
"여기요."
그는 여태까지 펴져 있었던 기사의 손에 그 목걸이를 올려놓고 제 스승을 쳐다보았다.
"그래. 기다리고 있어라. 이제는 조금밖에 걸리지 않을테니."
기사는 그 목걸이를 움켜진 뒤 자신의 목에 그 목걸이를 걸었다.
그러자 그의 온 몸에서 검은 증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의 잉크에서 보았던 모습처럼.
그리고 그의 주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꿈틀하며 피어나기 시작했다.
"별이여. 깨트려지거라."
그 후에 그 아지랑이는 사방으로 뻗어나가 마물들을 찌르고 다녔다.
그러나 무슨 다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 듯 마물들은 그 아지랑이를 가소롭게 여기고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상황이 일어날 줄은.
"끼에에엑!"
마물이 동물이었을 적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여러 검은 육편들로 나뉘며 땅에 떨어졌다.
포탈이 잘 못 연결된 탓인지 원래 가려던 곳이 검은 통로를 거쳐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땅이 모두 검어서 그 땅에 떨어진 육편들이 땅과 하나가 되며 사라지는 듯 했다.
머지않아 다른 마물들의 도축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물들이 다 사라지자 기사는 에즈라에게 말을걸었다.
"에즈라, 목걸이를 받아라."
"네. 어? 이번엔 가벼워졌네?"
에즈라는 그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러자 전과 같이 목걸이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의 귀 오른쪽에서 보랏빛이 살짝 빛났다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대여.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정하라. 만약 그대가 떠난다고 하여 굳이 막을 생각은 없으니."
그런 뒤 내게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언가 가슴이 옥죄이는 느낌을 받았다.
"스승님? 앤드리아?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 때, 갑자기 에즈라가 촐싹이며 나와 기사의 눈 앞을 돌아다녔다.
그 행동이 얼마나 방정맞았는지 기사는 그의 몸에 자신의 오러를 넣어 가만히 있게 했다.
"아! 스승님! 왜..."
그는 말을 하려다가 내 표정을 보았다.
내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운 것 같기는 한 것 같았다.
갑자기 에즈라의 표정이 안쓰러워지는 것을 보면.
나는 그런 에즈라의 시선을 뒤로하고 기사의 질문을 생각했다.
'지금 크호페프라이로 가야 할까 아니면 에즈라와 같이 가야하는 걸까.'
나는 그런 두 갈림길에서 자꾸 갈팡질팡하며 발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난 크호페프라이로 가야했다. 비록 멸망했더라도 우리 민족의 땅이였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시체들을 묻어주기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크호페프라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도 문제가 되니까.
성난 말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절대 옳지 않았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든. 그러니까 크호페프라이, 아니 마역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가기가 싫었다.
울고불고하는 신파극을 찍고 싶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게 제안하고 있었다.
"어차피 사람은 죽어. 그리고 그런 말을 한 게 뭐가 잘못인데.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그렇게 연이 끈끈했던 건 아니잖아? 너, 중앙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잖아. 그럼 이번에 한번 나가 봐. 아무도 막지 않잖아."
이런 말을 하며 나를 줄곧 꼬드기는 마음을 보니 나를 둘로 나누고 싶었다.
하나는 마역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에즈라와 같이 다니도록.
그러면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잘 살 수 있을텐데. 내 맘대로 평화롭게 살면서.
그런데 나는 하나고 다 나 때문이라네.
진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크아아악!
"오!"
갑자기 비명소리와 탄성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선을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렸고 그러자 땅이 하얀 대리석으로 변모하며 구름의 궁전을 드러냈다.
")_(*&^%*()_"
또한 그 궁전의 최상층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펴졌고 곧이어 그 주체가 나타났다.
"어? 그 늑대다."
에즈라는 그 늑대를 알아보고 눈을 번뜩였다. 그런 뒤 다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앤드리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살짝 어지러워서."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난 나를 걱정하는 에즈라에게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물론 속은 엉망진창이였지만.
그러자 그는 내게 평소와는 다른 미약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에즈라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기사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하이얀 궁전으로 뛰어갔다.
"에즈라! 버티고 있어라!"
"네? 스승님?"
그는 제 스승의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물었지만 곧 알아챘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앤드리아. 싸울 수 있겠죠?"
"그래요."
"그러면 싸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와 등을 마주 붙였다. 그런 뒤 아까 전처럼 다가오는 마물들을 마주했다. 그런데 손이 떨렸다.
* * *
"종말을 맞이하리라!"
"모두 죽어야만 한다!"
이런 유의 말들이 마물들에게서 튀어나왔다.
물론 다른 사람들, 그러니 기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말을 정체불명으로 받아들일 터였다.
대충 ()*%^#%*&() 이런 식으로.
기사는 그 말을 듣고 어느새 생겨난 검의 자루를 더 꽉 쥐었다.
'쯧. 그 말이 저 것들에게서 나오다니.'
그리고 그는 흰 구름빛 대리석 궁전에서 계단을 찾았다.
"저기 있군."
"우리를 위로 끌어올려라!"
"끌어올려라!"
그러나 마물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사에게 다가왔고 그 앞에 있는 것을 베어넘겼을 때에는 이미 그의 사방에 마물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인 뒤였다.
"쯧. 과거의 망령들이면 과거에서 가만히 있어야지. 왜 제가 노력 못해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나."
탓. 타닥.
그는 제자리에서 뛰어 앞으로 뛰어나가 마물의 등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흰 계단을 밟으려 발을 뻗었다.
그러나 마물들이 계단 앞을 에워쌌다.
"쯧. 들어갈 자격도 안 되는 것들이."
그는 오른손으로 쥔 검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내뻗었다.
동방식 변형 제국검 제 1식 1형
일점천괴(一点穿怪).
내뻗는 도중의 검신 위로 검은 육체가 끌려온다.
그런 뒤 그 위를 형형색색의 마나가 덮어 하나가 되고 이윽고 검이 핏빛 황혼으로 변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부순다. 그것이 자신보다 크고 굳셀지라도.
쾅!!
"쯧. 잔챙이들이."
그러한데도 대리석들은 무너지지 않고 자신들의 웅장한 태세를 드러냈다. 그게 뭐 상관할 거리라도 된다는 듯이.
그 뒤에 기사는 대리석 계단으로 다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발을 계단에 올려서야 마물들은 여러 갈래로 산개해 우윳빛 궁전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는 그 무리들을 보고 에즈라가 고생하겠거니 생각한 뒤 이어 계단을 올랐다.
하나, 둘, 셋.
점점 올라가는 계단의 수가 많아질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벽이 무너져 갔다. 또한 점점 계단도 스러져 가 더 이상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된 그 곳에서 그는 마지막 발을 옮겼다.
아우우우~.
그러자 녹음이 드리우며 돌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늑대가 기사를 쳐다보았다.
"기사가 신수(神獸)를 맞이하나이다."
기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복종을 나타냈다.
그런 뒤 풀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머리 위로 늑대의 발이 올라갔다.
"■■■■■"
"예?"
그는 그 늑대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신호는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래 기사여." 라고 들렸다. 그런데 왜 그 말이 아닌 것이지?'
"기사여. 오랜만이구나."
"예. 신수시여."
"따라오라. 할 이야기가 많다."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굽혀져 있지 않은 무릎을 짚고 일어나 늑대를 보았다. 제 주인과 다를 것 없이 생긴.
흰 털들은 그의 머릿칼과 같았고 검은 발톱은 결심한 그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리고 가장 신기하게도 그것이 같았다.
처연하면서도 때로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수시로 드러나는 검으면서도 자수정같은 그 눈빛이.
그러한 신수는 앞으로 걸어가 아까 전 자신이 앉았던 돌 위에 앉아 부르짖었다. 그러자 녹음의 홍수가 갈라졌다. 마치 순리가 차례대로 진행되는 듯이.
기사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신수를 따라갔다.
"히히히. 기사다!"
"최후의 기사단!"
"신격을 얻은 자도!"
"그의 동물도!"
그 말이 옆 수풀들에서 울려퍼지자 기사는 손가락을 허공에 대었다.
"오랜만이야!"
"나도!"
"나도!"
그러자 나비 세 마리가 그의 손가락에 다리를 내렸다.
"신수이시여. 어째서 이곳에 요정(fairy)이?"
"그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이리로 오렴."
신수는 그의 손에 머물러 있던 나비들을 제 등에 태웠다. 그 후에 제 털에 볼을 비비는 것을 허락했다.
"푹신해!"
"보드라워!"
"자고 싶어!"
요정들은 그 말을 하고서는 그대로 누워 자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둘에게 빛이 내리 비추었다. 분명 천장이 존재했음에도.
기사가 그 빛을 쳐다보자 한 제단이 있었다. 그 제단에는 한 늑대가 올려져 있는데, 그 늑대는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저 제단은 허(虛)의 제단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 겁니까? 신수시여."
"원래는 허의 의식을 하면 이곳으로 망자나 금수들이 왔다. 그러니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허의 세상으로 연결되게 하여 되려 음(陰)과 허의 세상을 중첩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인, 이제는 쓸모없는 것이다."
그 말을 한 뒤에 신수는 자신의 발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빛을 발하던 제단이 스스로 내려와 기사의 앞에 도달했다.
"이 늑대가 보이는가?"
"예. 보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주위에 요정들이 잔뜩..."
기사는 그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뒤에 늑대의 주위에 있는 요정들의 시체를 걷어내었다. 그러나 산천초목의 푸름을 자랑하던 날개들이 다 찢어져 버려 나비보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인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 날개들을 찢어발긴 것은 이 짐승이 한 짓입니까?"
그는 분개하며 신수에게 물었다. 앞에 있는 것을 부술 정도로 자루를 세게 쥐어 잘못하면 누구라도 죽일만큼 분노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어라. 넌 어차피 끝내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확신하지 마라. 그러면 넌 바로 심판대에서 올라온 악(惡)에게서 죽을 뿐이니."
"예... 알겠습니다..."
그는 겨우 분을 삭히고 다시 요정을 보았다. 자신의 죽은 아내와 같았던.
그런 다음 그는 그들을 땅에 잘 묻어주고 다시 신수를 보았다.
"기사여. 정신 똑바로 차려라. 언제까지 상념에 갇혀 있을 테냐."
"알겠습니다."
"기사여. 퇴출자의 요즘 행방은?"
"파성의 사제를 잠시 키우다가 그녀를 안식처에 보내고 잠적했습니다. 일단 예상되는 바로는 실험실에 간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 그럼 그녀의 정확한 상태는?"
"반쯤 걸쳐 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신성마법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크르르르.
갑자기 늑대의 털이 검게 변하더니 신수를 물려 아가리를 벌렸다.
쾅!
그러나 신수의 힘에 짓눌려 바로 쓰러졌다.
"쯧. 더 할 얘기가 있었으나 에즈라가 다 물리쳤나 보군. 기사여. 일단 신성마법까지 열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그 말을 하고 얀에게로 떠났고 늑대는 몸을 돌려 다시 바위로 향했다.
"오랜만에 변화가 이루어지는구나."
그리고 바위에 이르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푸른 것은 없었다. 단지 거무죽죽하고 붉디 붉은 것만이 가득해 생의 종식을 알렸을 뿐.
"이제 스러지겠군. 시간의 되돌림 속에서 버티고 있던 것이 드디어 무너질 시간이 오는 게구나."
신수는 그 곳을 떠나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뒷다리는 인간의 다리가 되고 앞다리는 팔이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그는 텅 빈 궁전의 홀을 바라보았다.
"외롭고 그립구나. 그렇지 않느냐? 밖이여?"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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