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예측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과외를 마치고 나오면서 늘 듣는 말이다.
“네. 안녕히 계세요~. 정식이 너 다음 시간까지 숙제 꼭 해놔! 안녕!”
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첩을 보았다.
“다음 과외가 몇 시더라···”
대입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과외를 시작했다. 회귀한 직후 노트에 꼭꼭 적어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시기가 되었다.
한일대학교 합격자 간판으로 제일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과외만 한 게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알음알음 과외 부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외라는 것이 첫 거래처 뚫기가 어렵지 한 명만 잘 가르치기 시작하면 소개를 받아 가면서 계속 이어진다.
입학하기 전까지 몸이 허용하는 한 과외를 할 예정이었다. 아니, 1999년까지는 계속 돈을 벌 생각이다.
이제, 다가온다. 내 인생 첫 배팅의 시간이. 그때까지 난 돈을 모아야 했다. 최대한 많이···.
노트에 적어 놓긴 했지만 혹시 놓칠까봐, 그 종목에 관한 기사가 없나 계속 찾아보는 것이 매일의 루틴중 하나였다.
***
1997년 겨울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혹독한 겨울이었다. 1997년 말 갑자기 발표된 IMF. 그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학 입학의 기쁨보다는 캠퍼스에는 취직 못 한 졸업자와 졸업예정자에게 그늘이 늘 드리워져 있었다.
회귀소설에 보면 재벌 집 아들로 회귀해서 거액의 용돈을 받는다. 그리고 IMF 전에 달러를 모아놓고 대박을 터트린다.
그건 재벌의 이야기고···.
난 쥐뿔이 가진 게 없다. 현재로서는. 종잣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그 종잣돈은 1999년 말 새로움전자통신이 크게 불려줄 것이다.
전생에 주식으로 깡통을 차기 시작하면서, 주식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다. 크게 상승했던 종목차트를 보며 왜 난 저기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한탄하면서. 그래서 역대 최단기간 최대상승이었다는 새로움전자통신은 주식시장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회귀로 인해 바뀐 것이 없다면 내 첫 번째 배팅은 새로움전자통신이 될 것이다. 다행히 난 새로움전자통신이 얼마까지 올라갈 것을 알고 있다. 뼛속까지 발라 먹을 것이다.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한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방에 문을 열고 신입생의 활기로 인사를 했다. 나이 50에 20살 신입생 노릇을 하려니 웃긴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몇 달을 19살의 몸으로 살았더니 그럭저럭 적응된 상태였다.
“어. 신입생?”
안경을 쓴 죄다 똑같은 남자 선배 두 명이 모니터를 보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수학교육과 98학번 강건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
건성건성 대답하고는 그들은 다시 모니터에 얼굴을 묻었다.
한일대학교 컴퓨터동아리. 1세대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호령하던 프로그래머를 제일 많이 배출한 곳이다. 수학교육과인 내가 컴퓨터동아리에 가입한 이유.
다가오는 미래는 온라인의 시대다. 온라인의 힘이 필요하다. 한일대학교의 인맥. 한일대학교 컴퓨터동아리의 인재. 그들이 필요할 때가 올지 모른다.
“하. 힘들다.”
컴퓨터동아리 선배들과 술자리에 갔다. 대학 근처 ‘청춘어람!’이라는 소주방이었다.
“정태 형. 왜요? 형 이번에 창업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저도 취업 좀···”
92학번으로 나와는 학번 차이가 조금 나는 졸업한 컴공 선배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연히 동아리 후배들의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정태 형. 내 기억으로는 정태 형은 악마의 게임이라 불리던 RPG 게임을 개발해서 부와 명성을 얻고 대한민국 재벌로 부상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투자자 모집이 힘들어. 이제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아. 회귀소설에 나오는 재벌이었다면 이쯤에서 내가 딱 투자금을 투척하고, 정태 형은 눈은 뒤집히고, 그러면 난
“형 그를 대신해 저에게 지분을 주시죠.”
이런 그림이 정상이다. 하지만 난 돈이 없다. 머지않은 투자를 위해 계속 돈을 모으고 있을 뿐이었다.
“아, 집까지 팔고 회사를 차리긴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네. 생각보다 힘들어.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이게 뭐 하는가 싶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고···”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선배님. 잘되실 겁니다.”
구석에 박혀있던 알지 못하던 후배인 내가 불쑥 말을 건네자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넌 누구냐?”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선배님. 98학번 강건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생이구나.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전생에서 정태 형은 대한민국의 온라인 RPG 게임의 대부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2000년대 초반 정태 형이 개발한 게임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극악의 확률형 아이템 현금구매로 욕도 많이 먹은 대한민국 게임계의 거물이었다.
그에게도 저렇게 돈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니. 언젠가 친근한 정태 형이라는 주제로 CF에 나와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네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 잘될 거라니. 마치 너 미래에 다녀온 표정이다?”
‘그래요. 제가 미래에서 왔다고요. 믿어는 주시겠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아, 선배님 제가 큰글 문서작성 프로그램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거 선배님이 개발하신 거잖아요?”
“...”
“아. 암튼 잘되실 거예요. 제가 감이 좋은데, 선배님 사업은 대박 나실 거예요.”
주의하여 듣지 않았을 걸 안다. 하지만 어쨌든 난 미래 IT계의 거물 중 한 명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
“야! 12시!”
“12시라니까!”
본격적으로 피씨방의 시대가 열렸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 직장인까지 일과가 끝나면 피씨방에 몰려가서 플래닛 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피시방의 좌석마다 12시 11시 9시 외쳐댔다.
가리키는 시계방향으로 모여서 공격하자는 신호였다.
내 기억으로는 1997년쯤부터가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되는 시작점이었다. 특이한 점은 피시방 인기 게임이 꽤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를 주도했던 플래닛 크래프트라는 게임은 후에 국민게임의 반열에 오르며 엄청난 인기를 오랫동안 누리게 된다.
동아리 동기들과 나도 청춘을 누리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플래닛 크래프트는 제법 해 보았기에 금방 손가락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
회귀 후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 성공?
그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앞으로 주식시장에 펼쳐질 많은 사건을 알고 있다. 그것만 이용하면 이번 생에는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전생에서 간절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이 이번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회귀소설처럼 내가 재벌 집 자식으로 돌아왔다면 벌써 큰돈을 벌었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난 회귀했지만 다만 평범한 가정의 19살 소년으로 다시 돌아온 것뿐이다.
그래서 대학합격 후부터 과외만 했다. 입학 후에도 학과 수업을 빼먹고 과외를 했다.
종잣돈이 필요했다. 투자하려고 해도 내게 주어진 돈은 아예 없었으니까.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이 시대에 19살 소년이 경제적 성공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많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것일지도 몰라도···
경제적 성공은 확신한다. 미래가 바뀌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여전히 난 지혜의 자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그 아이에게 빼앗았던 20 이후의 생을 마치 내가 뺏어서 살고 있는 듯한 죄책감도 느낀다.
이번 생은 달라야 했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는 지혜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막고 싶었다.
그러기에 확인할 것이 하나 있는데 말이지...
그게 가능할까? 처음에는 가끔씩 떠오르는 형상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점점 그 형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기출문제’
신기하게도 내 머리 속에는 역대 수능및 각종 사관학교 기출문제, 심지어 검정고시 문제까지 모든 문제가 정리되어있었다. 너무나 정확하게 스캔된 상태로..
*
“선생님, 이번 달이 마지막이죠?”
“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군대 갑니다. 하하.”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경수가 선생님하고 수업하면서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늘 감사했어요.”
“네. 그동안 믿고 맡겨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문을 나섰다. 일 년 넘게 과외로 천5백만 원을 모았다. 이제 새로움정보기술에 투자할 때가 되었다.
새로움정보기술에 전액 투자하고 군대에 가서 묻혀놓을 생각이다.
새로움정보기술은 전생에서 1999년 8월에 코스닥에 상장하지만, 회귀 후에 시기가 바뀐 거 같았다. 이미 코스닥 상장을 했고, 다행히 난 상장할 때 천5백만 원 전부를 매수할 수 있었다.
새로움정보기술 사례를 보면서 조금은 불안해지기도 했다. 미래가 바뀐 건가.
그렇다면 내 수능 기출문제도 바뀔 수 있는 건가.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우선은 내가 아는 미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1999학년도 수능 기출문제를 몇 번이고 머리속에서 떠보고 계속 풀어보았다. 출제자의 의도를 최대한 분석하려 노력 했다.
충분한 자신감이 붙은 후에 유사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똑같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 풀이 논리의 유사성이 짙은 문제를 만들었다. 15년 넘게 했던 문제 편집의 내공이 있었기에 이 정도는 너무 쉬웠다.
그렇게 몇 회분의 모의고사를 만든 후에 인터넷 카페에 로그인했다. 수능 관련한 카페 몇 개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내가 만든 문제를 뿌릴 예정이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한 회분씩 시리즈로 올릴 예정이었다.
그들은 그때 모를 것이다. 내가 만든 문제의 질을···. 내가 만든 문제를 확실히 풀어낸 사람은 수리 영역 만점은 확실할 것이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1999학년도 수능은 너무나 쉬웠다는 것이다. 엄청난 수리 영역 만점자 수를 배출해 낸 수능이었기 때문에 내 자료가 빛을 발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대에 가기 전에 맛보기로 이 정도만 하기로 했다.
수능 전 며칠 간격으로 내 자료를 수능 카페에 올려놓고, 입대했다.
수리 영역 (예상) 모의고사. 글쓴이. 미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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