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재단의 일

장학재단의 주 업무는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이다. 수마장학재단은 출연금이 빵빵하기 때문에 별다른 수익사업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수마장학재단은 정기적으로 장학생을 선정하기 위한 회의 진행이 제일 중요했다.
“제가 뉴튜브에서 봤는데요,”
직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내가 말을 건넸다.
“이번 장학생은 연송고등학교를 추가로 선정하고 싶습니다.”
“연송고등학교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이사장님?”
경기도 연송시에 위치한 연송고등학교.
“뉴튜브에 보니까 신생고등학교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에는 가정형편보다는 반장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싶어요. 미래의 리더육성차원에서.”
이사장의 말이다. 직원들은 내 말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안다.
“기존에 하는 장학사업에 이번에는 추가로 특별히 진행 부탁드립니다.”
다들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장학재단을 하면서 처음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안건이었다. 직원들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기존 장학생에 추가로 진행되는 거니 문제도 없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장학생 명단 추려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회의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수마허가 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연송고등학교는 무슨 일이야?”
“하하. 선생님. 아까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뉴튜브에서 애들이 너무 해맑기에 장학금을 주고 싶어서요.”
“음. 알겠어.”
수마허 스타일은 여전하다. 상대를 잘 파악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물어보지 않는다. 쿨한 수마허 선생.
***
장학금 수여를 위해 연송고등학교에 직원들과 함께 떠났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교장입니다.”
“교장선생님. 반갑습니다. 강건우입니다.”
“훌륭하신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유, 별 말씀을요.”
“저희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약소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전교생에게 다 주고 싶지만, 저희 재단 상황이 하하.”
“하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죄송한데, 제가 장학금 받는 아이들하고 대화하는 시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수업에 방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
교육현장에서 떠난 지 14년이 넘었다. 이제 아이들 보는 것이 낯설다. 세월의 힘이란 것인가.
“공부하기 힘들지?”
“괜찮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맴돈다. 이럴 땐 선물이 최고지. 나는 같이 온 직원에게 눈빛으로 지시를 내린다.
“네. 이사장님”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사장이라는 직함이 뭔가 나를 권위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래서 재단 일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내 안체 나쁜 마음들이 불쑥 나타나서 돈과 권위로 아랫사람들을 함부로 부리지는 않을까 늘 고민했다.
“나눠주세요”
“네”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패드 하나 씩 나눠준다. 애플은 아이폰의 성공의 여세를 몰아서 태블릿 피씨에도 진출했다. 물론 그것도 대박을 쳤다.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는 비싼 기계다.
“와!”
하얀박스에 담긴 아이패드를 보면서 이제야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었다.
“저, 뜯어봐도 돼요?”
“물론!”
“와!”
한 명 두 명씩 허겁지겁 박스를 뜯어본다. 영롱한 태블릿 피씨의 자태에 다들 미소를 짓는다. 물론 비닐포장까지 아껴서 안 뜯어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물공세 성공!’
아이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사진도 함께 찍었다. 그리고 요새 뜨고 있는 파이스북 아이디도 서로 교환을 하면서 팔로우를 맺었다.
***
- 아이패드 선물 받음. 이사장님 짱!
아이패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파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나는 엄지 버튼을 눌렀다.
“뭘 보면서 그렇게 씨익 웃고 있어?”
침대에서 폰을 보고 있는 나에게 난영이 물어봤다.
“어? 아냐.”
“아니, 이 사람이 요새 자꾸 비밀이 많아져? 뭔데? 뭐야!”
내 폰을 옆에서 살짝 보더니 한마디 한다.
“파이스북? 오빠 이런 거 질색하더니. 시간의 낭비라고 뭐라더니 그걸 하고 있는 거야?”
“음. 가끔은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때도 있는 거지.”
“뭐래! 근데 뭐야? 애들한테 아이패드를 줬어?”
“음. 재단차원에서..”
“와, 와이프는 지금 몇 년째 노트북 하나로 쓰고 있는데, 키보드 자판이 닳도록 변론서를 쓰고 있는데, 뭐야!”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준비했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난영에게 아이패드와 신형 노트북을 바쳤다.
“어머!”
나도 눈치가 늘었다. 이미 난영의 공격에는 대비할 수 있다.
***
세기의 대결.
델타고 VS 이두선
고글의 인공지능 사업파트에서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이두선9단과 고글의 인공지능 델타고와의 바둑 대국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최민혁도 고글 직원 신분으로 오랜만에 고향땅을 밟았다.
이두선9단 앞에 선 사람은 델타고 대신 바둑돌을 놓아주는 역할을 했다. 전세계의 방송이 이 대국을 중계했다.
세기의 대결은 세간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두선9단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5국중 연달아 3번을 패했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은 바둑의 신묘한 영역을 넘길 수 없다는 전망이 있었으나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인류의 좌절감은 깊어져 갔다.
“아! 이제서야 이두선 9단이 웃음을 보이네요.”
이두선 9단은 4국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델타고도 돌을 거둘줄 아네요.”
대국을 중계하던 진행자도 그동안의 긴장을 털어버리며 웃으며 해설을 이어나갔다.
“이두선 첫승!”
그 기쁨도 잠시 다음 5국에서는 무력하게 패했다. 최종 결과는 이두선의 1승4패. 델타고의 승리였다.
*
“캬하. 최민혁이~ 아니 미국이름 제이슨 최라고 했던가? 암튼 화면 잘 봤다. 화면 잘 받더라 너. 크크”
경수는 오랜만에 만난 최민혁을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웁스. 헤이 브로. 그런말 하지마. 화면 완전 엉망으로 나왔는데.”
“이놈아. 넌 내앞에서 짧은 영어 쓰지 말라고 했지! 넌 어째 미국간지 7년이 됬는데도 영어가 안느냐!”
“오. 마이. 갓. 노 프라블럼! 내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데.”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투닥대는 모습도 정겹다.
“헤이. 브라더~ 잘 지냈습니까?”
하. 이놈 요새 완전 위아래가 없다.
“그래 이놈아. 잘 지냈다. 너도 하우아유 했냐?”
“크크크”
“헤이 브라더즈! 알지? 내 여친 엄청 이쁜 거? 크크”
“야. 됐고, 술이나 마셔!”
“형 근데 말예요. 조금 더 미래에는 인공지능 학습으로 이제 고인도 영상으로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돌아가신 가수들을 다시 화면에 띄워서 신곡을 발표한다거나 그런 일들.”
2020년대에는 고인이 된 가수들을 인공지능 학습으로 공연도 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게 된다.
‘하. 최민혁 이놈 뭐지.’
민혁이는 며칠을 한국에 체류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
- 여보세요?
“황기자님?”
- 건우씨! 어유 오랜만이시네
“네. 잘 지내시죠?”
- 덕분에. 무슨 일 이시죠?
황기자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장평을 떠나면서 가끔 통화를 하다가 나의 칩거생활이 길어지면서 전화통화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직도 우리의 제보 관계는 유효한가요?”
- 무슨 좋은 제보 있나요?
“네”
- 대략 큰 줄기만 설명해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직접 보기에는 스케쥴이 빡빡해서.
예전 같았으면 바로 집중했을 황기자였다. 지금은 내용을 들어보고 자기가 알아서 판단 하겠다는 말투다. 지나간 세월이 말 해 주듯이 우리의 관계도 멀어진 것을 느꼈다.
“네. 무슨 건이냐면요 <중략> ”
- 그건 좀 난처할 것 같습니다. 그건 안되는 기사예요. 기자가 형사도 아니고 권한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수능 부정행위를 잡아낼 때의 황기자가 아니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 그럼 이만.
이렇게 황기자와의 제보 관계는 끝이 났음을 느꼈다. 그리고 황기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황기자는 평기자가 아니라 부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부장이면 이제 본인이 직접 취재하기 보다는 데스크에 올릴 기사를 통제하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황기지도 이제 악당을 잡는 일에 흥미를 잃은 것 같다.
***
“난영아.”
저녁을 같이 먹고, 차 한잔을 하면서 거실에서 난영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너 아는 방송국 젊은 기자 없을까? 정의감이 투철한”
“응. 있을거야. 무료변론하면서 가끔 방송국에서 인터뷰 하거든.”
“잘 생겼어?”
갑자기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난영을 보다가 질투심이 생겼다.
“뭐? 아니! 뭐래는 거야!”
퍽퍽퍽!
난영이 등짝 스매싱을 한다.
“아파!아파!”
“이 사람 이렇게 와이프를 못 믿어서 어떻게 사나!”
“하하. 암튼 한 명만 소개시켜줘봐.”
“왜?”
“얼마나 잘생겼나 보게. 나보다 잘생겼으면 이제 인터뷰 하지마.”
“뭐래!”
퍽퍽퍽!
맞을 짓을 하고 있구나.
“농담이야. 기자가 필요해.”
“무슨 짓을 꾸미고 다니는 거야? 백수 아저씨?”
“응. 다 끝나면 얘기해 줄게.”
난영의 눈빛은 월드컵 때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눈빛이었다.
***
“YVN 박장혁입니다. 반갑습니다.”
젊고 깔끔하게 생긴 기자와 만나고 있었다.
‘잘생겼는데? 이런.’
“반갑습니다. 박기자님. 강건우라고 합니다.”
“영광입니다. 강이사장님.”
“저를 아십니까?”
“아! 제가 이사장님 만나기 전에 조사를 좀 했습니다. 20대 시절 업적이 화려하시더군요. 그리고 장학재단도 하시고. 영광입니다. 이사장님 만나기 힘든 분이시던데요?”
“제가 장학재단 일 아니면 거의 집에만 있어서요. 하하”
“기자가 필요하시다고요?”
“네. 저를 좀 믿어주셔야 하는데, 안 그리면 이게 진행이 힘들어서요.”
“믿음이라. 우선 얘기를 들어보죠.”
그렇게 박기자와 한참을 애기를 나눴다.
***
180이 넘는 키에 손바닥만한 작은 머리에 하얀 얼굴,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의 남자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아이들의 교실에는 웃음 꽃이 피고있다.
“너희들말야, 이런 걸 왜 못풀지? 진짜야? 이해가 안되?”
“네~”
“어이쿠, 감자를 앞에 두고 수업하는게 더 빠르겠어!”
“꺄르르르르”
악의없는 농담에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한진우.
다른 수학강사와는 다르게 미국의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대학교 수학교육과가 주름잡던 학원 수학계에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한일대학교 출신보다 더 좋은 학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버드 예일 같은 명문대 출신들은 학원 강사를 하지 않았으니까.
한진우는 그런 고정관념을 깬 첫번째 였다. 물론, 미국 명문대의 학벌로 도전장을 내민 강사들도 몇몇은 있었지만, 그들은 강의력이 떨어지거나 잠깐 아르바이트 였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진우는 달랐다. 애초 시작부터 부드럽고 자상한 말투의 입담과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서의 수학문제 풀이의 번뜩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진우는 마치 강건우를 보는 것 같았다. 젊은 나이와 강의력 문제풀이능력. 강건우가 처음 등장했을때의 느낌을 한진우가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한진우는 대치동에서 조금 떨어진 학원에서 이미 유명세를 떨치면서 그 일대를 평정하고 있었다. 양철영이 한 지역을 평정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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