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호 (2)

<인천 O여행사.>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몇몇의 고객과 상담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네. 고객님 여기로 모실게요”
빈 창구에서 나를 불렀다.
“여객선 예약 가능할까요?”
“네. 며칠 예약을 원하세요?”
“4월15일입니다.”
“인원은 몇분이시죠?”
“배를 통째로 빌리고 싶습니다만..”
“네?”
상담직원은 놀란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통째로 배를 빌리고 싶다는 말이 더 놀라웠던 것 같다.
“저기. 고객님. 잠시만요”
“네”
상담직원이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상급자와 얘기를 하러 창구를 비우는 직원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
<4월1일>
“형님들. 제주도 한번 가시죠?”
“뭐?”
술자리에서 내가 SSU 전우회 형님들에게 제안을 했다.
“뜬금없이? 제주도?”
“제주도가 스킨스쿠버 하기 좋다고 들었는데, 저도 이제 한 번 나가봐야죠?”
“하하.”
“너 맥주병인거 세상이 다 아는데 무슨. 아서라. 다친다.”
“아, 실은 제가 여객선 하나를 빌렸는데요, 자리가 너무 남아요. 형님들 그냥 같이 여행 가는 셈치고 제주도 가시죠? 제가 풀코스로 대접하겠습니다.”
“뭐? 여객선을 빌려?”
“네. 800명정도 수용 가능하다던데, 그거 통째로 빌렸거든요. 같이 가시죠?”
“와, 돈 많다는 소문이 거짓말이 아니 었구만. 나 살다가 800명 여객선을 혼자 빌린 사람 처음 보네.”
“형님들 같이 가시면 혼자 빌린 게 아니죠. 하하. 20명은 되겠네요.”
***
“박기자님, 지금 헬기하나 띄우셔야 겠습니다.”
나는 박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 헬기요?
“네. 긴급입니다. 빨리 오셔야 할겁니다. 지금 오시면 박기자님이 최초보도입니다.”
- 아니, 무슨 상황인데 그래요?
“저 믿으신다고 하셨죠?”
- 네.
“무조건 오세요. 지금 장도에서 배가 기울어졌습니다.”
- 네?
***
우리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들 놀랐다.
“선장님.”
밖에 나와서 나와 같이 사고현장을 보고 있는 선장에게 얘기했다.
“네?”
“저 인원들 구조해서 태울수 있나요? 추가비용이 있다면 제가 지불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선장의 눈동자를 보았다. 별다른 고민은 없어보였다.
“당연히 사람을 먼저 구해야지요. 마침 800명 탑승인원중에 21명만 타셨으니 자리는 넉넉하네요. 빨리 사람부터 구합시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한편으로는 나의 일행들인 SSU전우회 형님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그들은 지금 상황을 적잖아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상황판단도 빨랐다.
“야, 빨리 구하자.”
“형님, 제가 애들한테 최대한 연락 중입니다. 나오라고.”
“뭐? 너 쟤들하고 연락이 되?”
“아, 네. 몇몇은 연락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나오고 있잖아요”
“어. 계속 연락해봐. 우리는 쟤들 구하러 간다.”
한명 두명씩 준비한 뒤에 마치 군사작전하듯이 SSU 전우회는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객실에서 나와 용기있게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하나 하나씩 구조하고 있었다.
***
배는 점점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신기해 하던 아이들도 이제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영덕,진영,현지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고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슬슬 물이 잠기기 시작했다.
“엄마.”
“영덕아. 너 왜그래? 울어?”
“배가 이상해 엄마.”
“뭐?”
출근해서 일을 하던 영덕 엄마는 뭔가 문제가 생긴걸 알게 되었다.
“엄마··· 아침에 투정부린거 미안해.”
“영덕아. 너 지금 어디야? 왜 그래?”
영덕엄마는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 아빠. 아침에 화낸 거 미안해. 엄마없이 키워준거 늘 고맙게 생각했어. 사랑해. 아빠.
현지도 이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을 알고 아빠에게 혹시 모를 문자를 보냈다.
***
<제주VTS>
“지금 어떤 상황이야?”
제주도로 오던 월산호가 장도 근처에서 침몰중입니다.
“아니, 빨리 그럼 구조대를 보내라고!”
<해양경찰>
“출동,출동”
해양경찰도 출동을 시작했다.
<9시30분>
박기자가 헬기를 타고 도착했다. 최초 보도가 나가는 순간이었다. 박기자는 지금 상황을 하늘에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배가 기울고 있었다.
“네, 속보입니다. 배가 심하게 기울었어요. 빨리 속보 내 주세요.”
***
<YVN 뉴스속보>
수학여행을 가는 연송고 학생들과 일반승객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월산호가 침몰 중입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아직 구조대는 출동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전직 SSU대원들을 태우고 가던 지나가던 선박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순서대로 구조되고 있으며 아직 배안에 승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뉴스속보는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졌다. 집으로 가던 우석엄마는 결국 차안에서 오열을 했다.
“우석아!”
상황은 영덕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영덕에게 전화를 받자 마자 불길함을 느꼈는데 속보를 보자마자 상황이 파악되었다. 영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현지아빠는 한참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와서 쉬고 있던 중에 누군가가 속보 얘기를 꺼냈다.
“어허. 큰일이네. 지금 애들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데?”
“뭐?”
현지아빠는 평소에 일을 할때는 폰을 사무실에 둔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몰랐다. 속보를 보자마자 사무실에 가서 폰을 확인한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딸의 메세지가 와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일하다 말고 어디가?”
주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지아빠는 급하게 차를 몰고 장도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9시39분>
해양경찰과 구조대가 도착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이제 구조되고 있었다. 전직SSU 대원들은 스쿠버 복장으로 갈아입고 침수되고 있는 배를 향해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10시10분>
배에 물이 많이 차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구조되었다. 영덕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구조물에 다리가 묶여버렸다. 통증이 상당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갇힌 공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덕아”
진영과 현지가 그를 걱정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영덕은 그들을 위해 몸을 웅크리고 발판이 되어 주었다.
“얘들이 나를 밟아. 그러면 머리라도 물에 안 잠기잖아. 어서”
“안되 어떻게 그렇게.”
“야. 빨리 시간없어! 너네 내 몫까지 잘 살아야되!”
그리고는 영덕은 의식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직 SSU 대원들이 들어왔다. 능숙한 몸놀림으로 그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
소식을 들은 여러 언론사들이 그제 서야 도착하기 시작했다. 구조 헬기와 방송 헬기가 장도해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승객들은 구조되어, 강건우가 탄 배에서 긴박했던 시간을 지워내고 있었다.
“전원 구조되었습니다.”
해경은 상황을 파악하고 윗선에 모두 보고를 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보도가 나왔다.
<속보> 장도부근 해상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전원 구출.
***
나는 살아남은 아이들을 본다. 전원이 살아 남았다! 너무 다행이었다. 전생을 떠올려 보면 이 아이들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채로 추위에 떨며 세상과 이별했을 아이들이었다.
미래는 바뀌었다. 지혜의 미래를 바꾸었고, 이 아이들의 미래도 바꿨다. 이것이 내가 돌아온 이유 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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