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70 話

“어쩌죠?”
정도 家의 사병들은,
들어올 땐, 쥐새끼처럼 몰래 들어오더니!
나갈 땐, 개선장군처럼,
아예, 당당하게 말을 달려 나가고 있었고!
못난이 삼놈이들은!
여전히, 나무 위에 어정쩡하게 묶여,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왕이 능멸당하고, 후궁이 납치되는 상황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적염으로서는!
분노를 떠나서, 창피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깟, 줄 하나를 못 풀어서!
이깟, 나뭇가지 하나를 못 꺾어서!
이러한, 참담한 지경에 이르다니!
그녀 자신의 무능력함에,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비류도 비류였다.
나무 위에 올라가, 두 발로 버티고 설 정도의,
길이로 묶어 두었더라면?
아마도, 셋이 힘을 합쳐!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매달려서도! 나무 위에 올라서도!
정말, 애매한 길이의 밧줄로 묶어놓아!
그녀들로서는,
뭘 할 수가 없는 자세였다.
안간힘을 쓰고, 나뭇가지에 오른 그녀들은,
손은 고정되고, 발은 일어설 수 없어!
딱! 개구리와 같은 자세들을 하고,
셋이 쪼그리고, 하찮게들 앉아있던 참이었으니!
“개구리냐?!”
“못난 것들!”
바로, 그때!
싸늘한 공기를 타고,
날 선, 비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속으로, 욕을 하도 해서 그런지,
환청인지 환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탓에!
한동안 멍해 있는 그녀들의 앞으로,
‘휙!’ 세찬 바람이 지나갔다.
‘휘~이익!’
이어, 휘파람 소리에 반응하는,
비류와 한의 말들이 달려 나오자!
비류는 자신의 말을 잡아타고,
한이 있는, 오두막 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쿵!!’
어느 순간,
적염과 못난이 둘이, 땅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딛고 있던 거대한 나뭇가지와 함께!
비류가, 일격에, 베고 스쳐 간 것이었다.
***
“전하!!”
망연자실!
마치, 넋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앉아있는 한을 바라보자!
비류는, 가슴이 미어질 듯, 아려왔다.
이제껏, 명림 한이!
저리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하~아!’
비류의 단단한 심장에서부터,
비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죽을 고비에서도, 항상 당당함을 유지하였던,
천상! 고고하던 왕좌의 인물이!
어찌, 흙바닥에 앉아,
저러고, 정신을 놔 버릴 수가 있는 것인가!
“전하?!”
불러도 대답 없는 한을 위해,
비류는, 말에서 내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자신의 탓이었다.
그가, 한의 곁을 떠나 있었기에!
그가, 적염을 묶어두었기에!
한나라의 귀한 임금을,
저리, 나락에서 뒹굴게 한 것이었다.
비류는 힘주어, 한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아니, 일어나기 싫은 듯,
온몸에 힘을 빼고, 버티는 듯 보였다.
급기야! 비류가 한을 얽어매듯 하여,
겨우, 두 발로 서도록 하였으나!
이내! 다시, ‘스르륵!’
비류의 부축을 마다하고, 주저앉다시피 하였다.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한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진 비류가,
분노를 눌러 일침을 가하였다.
“일어나! 명림 한!!”
물론, 그 분노는,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한을 지켜주지 못한, 그에게 내는!
“어디 갔었어?”
한이 초점 없는 눈으로 힘없이 물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원망과 분노 같은,
감정의 부스럼들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치!
그냥, 궁금해서 묻는다는 식의,
성의 없는 인사치레와 같은 것이었다.
평소의 한이었다면?
누군가!!
제 눈앞에서, 그가 아끼는 것을 앗아갔다면?
그리고, 감히,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면?
분노로 점철되어,
종국에는, 살생으로 마무리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는,
그! 명림 한이 없었다.
혹시? 다친 것인가?!
어디가, 많이 아파서?!
비류는 대답 대신,
한의 몸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다친 곳은, 없는지! 상한 곳은 없는지!
하지만, 다행히도, 피는 흐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에 난, 여러 줄의 칼끝의 흔적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옥체에, 상흔을!!
“미쳤네? 이것들이!”
비류가 속상한 듯, 나직이 툴툴거리자!
한은!
금방이라도 새어 나올 듯, 눈물이 담겨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비류를 바라보았다.
“비류야!!”
“정빈이! 정빈이 갔다!”
한이, 얼마나 정빈을 아끼는지!
정빈이 죽으려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살리려 애썼는지!
그 모든 것을 함께 한, 그로서는!
지금 한이 겪고 있을 마음의 통증이,
얼마나 아픈지, 가늠이 되었다.
‘슬프구나! 명림 한!’
“비통한! 비통한 표정을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나를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비통!?”
“정빈도, 가기 싫었던 거 아냐?!”
정도 겸, 그 늙은이가,
멋대로 꾸민 일일지 모른다고!
비류는 애써,
한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애썼으나!
한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운의 떠나는, 그 발걸음을 떠올렸다.
“스스로 걸었다!”
“끌려간 것이 아니라!”
“못쓰겠네! 정빈!”
비류는, 한을 다시금 부축해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비류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하여, 속이 상한 비류가 언성을 높였다.
“똑바로 서!”
묵묵부답인 한을 향해!
비류는, 마지막 경고와도 같은 음색으로,
다시 한번 읊조렸다.
“명림 한! 똑바로 서라고!”
‘툭!’
마침내, 고개까지 떨구는 한의 무기력한 모습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러지 마! 나 그럼, 안 참아!’
비류는 한을 잡았던 손을 놓고,
‘휙!’ 그를 등지고, 빠르게 말에 올랐다.
“비류?!”
한은, 그저 이름만 불렀을 뿐이었지만,
비류는, 그가 하지 않은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어디가?’
“정빈, 치러!!”
“이럇!!”
비류는, 살기등등한 말을 남기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을 달렸다.
‘찾아와야지!’
‘너, 정빈 없으면, 못 살 거잖아!’
비류는, 한이 저렇듯,
무력하게 앉아있는 꼴을 보느니!
죽이든, 살리든,
정빈을 데려다줘야겠다 생각했다.
비류,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것을 잃으면, 참지 못하는,
한의 고약한 성미를 알기에!
두고두고, 후회할,
비참한 날들이 눈앞에 그려지기에!
‘명림 한! 네가 못 가질 것은 없어!’
‘이 세상에, 내가 있는 한!’
비류는, 빠르게 말을 달리며!
기필코, 정빈을,
한의 앞에 데려다 놓겠다 결심하였다.
왕의 곁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이었다.
“이럇!!”
***
비류가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 나가자,
한은, 그제야,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정빈, 치러?’
그리고, 굳은 얼굴의 비류가 내뱉은,
짧고 강한 어감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정빈?!’
설마!
정빈을 죽이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이제껏, 한과 비류의 방식은 그러했다.
배신자는, 결코! 살려 두지 않는다!
또한, 회유가 먹히지 않으면,
단칼에 목을 베어 버린다!
내 것이 안 될 바에야,
죽여 없애는 편이 낫다!
왕좌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
반역을 새새틈틈 생각하는 이들!
그 모두에게, 둘은 그렇게 자비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한은, 정신이 번쩍 들어, 말 위에 올랐다.
“이럇!!”
그리곤, 빠르게, 비류의 뒤를 쫓았다.
자신이 싫다, 스스로 떠난 이를,
강제로 붙들어, 곁에 두고자 함은 아니었다.
그저!
정빈의 목이, 비류에게 잘린다고 생각하니!
그처럼, 공포스러운 일이 없었기에,
말고삐를 잡은 것이었다.
‘설마, 비류가?!’
‘정빈의 목에 칼을 들이대지는 않겠지?’
‘아니, 베고도 남을 놈이다!’
한은, 지금, 역적을 쫓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역적을 베러 가는,
자신의 호위를 말리러 가는 것인지!
복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
한편, 사병 모두를 이끌고,
공합촌 마을 입구까지 갔을 무렵!
정도 겸은, 지세를 보고, 계략을 세워,
우달에게 전달하고는, 곧장 배로 돌아왔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정도 겸은, 배의 후미에 서서,
조용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타탕~탕!’
거사가 성공했을 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 성공하였구나!’
‘헌데, 이렇게 빨리?’
겸은, 기쁨의 얼굴은 잠시!
순식간에 수심이 깃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진척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과 그의 호위들!
그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자가 없건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늘에 쏘아 올려진 신호탄을 보면,
배의 출항 준비를 하는 수순이었다.
하여, 닻을 올리려, 나와 선 사병들이,
겸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하여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순간!
“통감 마~ 윽!!”
겸을 부르던 사병이,
단말마 비명을 내지르고,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후로!
‘퍽! 퍽퍽!’
‘윽! 억억!’
매타작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배 위에 남겨져 있던 사병들을,
진가, 서늘 그리고 간담이 해치우는 소리였다.
“영감님!”
진가가 어둠 속에서,
생각에 잠긴 겸을 불렀다.
그가 서서히 뒤를 돌아보자,
진가 또한 어둠에서 나와, 모습을 보였다.
“배, 움직이셔야겠는데요?! 지금?!”
진가는, 좀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하여, 겸이 그쪽으로 시선을 두자!
서늘과 간담이, 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병 하나의 목에, 칼끝을 들이대고 있었다.
“흐~음!”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뿜더니!
정도 겸은, 말없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 어?!”
“뭐야? 죽든 말든!?”
“부하들,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거 아냐?”
“분명, 아까는, 살아남아라, 어째라!?”
“응?! 그러지 않았어?”
칼로 위협하고 있는, 제 모습이 무안해!
서늘은 멋쩍게 칼을 내리고,
사병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간담도, 듣기와는 달리, 냉정한 통감이다!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기고 섰다.
생각했던 것과는 몹시 다른, 통감의 행태에,
다소, 황당한 표정을 한 진가가!
“어디 가십니까?!”
마치,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듯, 빠르게 걸어가는 겸의,
가는 뒤에 대고, 묻자!
“배, 움직이러!!”
겸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선,
세 명의 장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 해치웠나?”
“배 위의 사람들?!”
진가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자!
그 또한,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함께 가세들!”
“?! 어디로?”
“닻을 올려야 할 이들을, 모조리 그리했으니!”
“이 배를 움직이려면?”
“손이 필요하지 않겠나!”
일단, 하늘에 신호탄이 쏘아졌다.
무탈하게 성공하였다면 다행이지만,
행여나, 어떤 계략이 숨겨져 있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의 닻을 올려!
그들이 오는 즉시,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것만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기에!
정도 겸은, 바삐!
설치해 두었던 기관들을 해체하였다.
‘드륵! 드륵! 드르륵!’
하여, 여러 개의 관을 재빨리 맞춘 뒤,
진가에게 손잡이를 내주었다.
“잡게!”
“예?! 아!!”
고분고분!
진가는, 겸이 하는 말을, 잘도 들었다.
“이제, 올리게!”
“그리도, 올리고 싶어 하던, 닻을!”
“아!!?”
자연스럽게, 진가에게 일을 지시한 뒤!
겸은, 아직은 조용한 포구 일대를,
긴장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제발! 제발! 무사히 오너라!’
***
“아버님은?”
승마를 배운 적 없는 운을 위해,
갱아가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포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니!”
“출항 준비를 하고 계실 것이옵니다!”
“음!”
운은, 뒤를 돌아보았다.
한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가 도망치려, 말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주저앉아, 비통하게,
자신을 응시하던 그 모습이 떠올라!
심장에서 피를 토하는 듯, 신물이 올라왔다.
‘우욱!’
“괜찮으시옵니까?!”
“이제, 금방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갱아는, 말고삐를 더욱 말아쥐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다치지 않았으면, 된 거지!’
운은, 한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심하였다.
뒤에서, 그를 쫓아!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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