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75 話

비류는!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나른한 몸 상태에,
불쾌감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해짐을 맞았다.
“흐~윽!!”
그! 놓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짓에,
한이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말을 둘렀다.
“정도 겸은, 이미 배를 타고 떠났겠다!”
“정빈은, 내 손아귀에 있겠다!”
“뭐가, 걱정이야?!”
한은, 그 자신이 정신을 차리고 있을 터이니,
마음을 놓으라고!
그리, 비류를 몇 번이고 안심시키며,
치료에 전념토록 일렀다.
수 분 후!
드디어, 비류의 눈 깜빡임이,
비정상적으로 느려졌다.
“아잇~!!”
“이놈의, 어의 영감탱이들!! 윽!!”
그가 마침내,
정신을 놓고, 실신의 상태에 돌입한 것이었다!
‘후우~’
그제야, 어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류의 등으로 달려들었다.
맹수를 잠재운 후에야,
치료를 할 수 있는 사육사들처럼!
***
“거, 너 똘똘이 간수 제대로 안 할래?!”
“처자, 미안하오!”
간담은, 다짜고짜!
적현에게 사과를 하고 나섰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진, 꽤 평온한 삶이었을 텐데!
딱 봐도, 어리디어린 나이로,
하룻밤에 봉변을 당하여, 심히 괴로울 테니!
“쯧쯧쯧! 내 그럴 줄 알았다!”
평소, 노출증 심한 놈이,
여인을 놀라게 하였겠거니, 한 것이었다.
하여, 미안한 마음에,
밧줄을 풀어주려 다가갔더니!
‘흠칫!’
서늘에게 놀란 가슴에,
반사신경만 예민해진 적현이!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간담을 발로 차 날려버린 것이었다.
“흐~으억!”
허리가 삐끗한 간담이,
억울한 눈빛으로 적현을 바라보았다.
무방비상태에서 당하였으니,
그 위력이 상당하였을 터!
“헉! 저 여인!?”
“저 여인, 저거 뭐냐?!”
간담이, 욱신한 허리를 움켜잡고,
한발 물러나 섰다.
“건들지 마!! 물지도 몰라!!”
서늘 또한, 당했다는 듯,
등이며, 다리 등의 시커먼 멍을 걷어 보였다.
하긴!
조아국 최고 살수 집단인, 적염단의 정예를,
그리 녹록히 잡을 수가 있었겠으랴!
“그? 그 목엔?!”
그제야, 간담의 눈에,
서늘의 목에 선명하게 찍힌 이빨 자국이 보였다.
“응!”
“물드라구! 쯧!”
서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스레 대답하며, 물린 목을 긁적였다.
“쳇! 하!”
잠잠해, 혼이 나간 줄로만 알았던 진가 또한,
말을 섞어 들어왔다.
“요즘엔, 왜 그렇게들!!”
“사람을 무는 여인들이 많은 것인지!! 허!!”
갱아에게 물려,
빨갛게 부어오른 귀를 어루만지며!
억울함과 분노에 찬 진가가 목소리를 드높였다.
“도대체, 집구석에서들!? 허!”
“아녀자들에게, 무슨 가르침들을 하는 것인지!”
아니! 집안에서 뭘!?
제대로 가르치고 있기나 한 것이냔 말이다!
“세상에!”
“어찌 이리 사나운 여인들이 판을 치는 것인가!”
“여인들한테, 몹쓸 짓 하는 놈들이 많아서겠죠!”
간담이, 쓸데없이 속내를 뱉어, 거들어서는,
안 맞아도 될 매를 벌었다.
‘퍽!’
“아~!”
하여, 진가에게 엉덩이를 차인 간담은,
입을 삐죽이며, 바른말을 즐겼다.
“거, 참! 좌우당간!”
“엉덩이 때리는 거 좋아해~에?!”
“너~잇!!”
간담이 스리슬쩍 몸을 피해,
진가의 팔다리 반경에서 멀어지며, 웃었다.
“왜! 좋잖아! 짜릿하고!!”
“흐흐흐!”
둘이 앞에서, 만담을 하든, 몸싸움을 하든!
서늘은, 그에게 별안간 생긴, 새색시 생각으로,
온 마음이 들떠있었다.
아마도?!
그는, 여자한테 맞는 게, 좋았던 모양이었다.
“거기!!”
진가가 간담을 쫓으려는 찰나!
갱아가 뾰족한 얼굴로,
진가를 흘겨보듯 보며, 섰다.
“허~허헉!”
하여, 진가는 무슨 처녀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라 하며, 행여 또 맞을까 싶어,
자연스레, 양 볼을 손으로 감싸 감추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를 이토록, 가슴 뛰도록,
긴장시켰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건만!
지은 죄가 막대하여, 죄책감이 커서였는지,
진가는, 갱아를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통감 마님께서, 찾으시오!”
살기가 흠뻑 묻어나는 낮은 음색에,
진가는 말까지 더듬었다.
“나?! 나를?!”
“흥!!”
갱아는, 저 호색한을 더 보고 있으면,
손부터 올라갈 것 같아!
고개를 획 돌리며,
정도 겸이 있는 선실로 먼저 걸었다.
***
“그래~!”
“목적지가 어디인가?”
정도 겸은, 진가와의 약속대로!
그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가의 입에선,
이렇다 할 대답이, 선뜻 나오지 못했다.
“어찌?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게야?”
당장, 배를 출항시키라! 칼을 들이밀고!
오늘 밤, 꼭 가야 할 곳이 있다며,
배를 강탈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게!”
한참을 고민하던 진가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 자신도 어디로 가야 할지,
실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을 이를, 찾는 것이라!”
잃은 이를, 찾는다?!
행방을 모르고 있는, 아연 생각에!
소중한 이를 찾고자 하는,
진가의 애타는 심정을 십분 헤아리며!
정도 겸은, 항해도를 꺼내 펼쳤다.
“침몰한 지점은?”
“예?!”
사람을 살리려는 일이기에!
정도 겸은,
그의 지식을 아낌없이 발휘할 요량이었다.
“멀뚱! 멀뚱!”
“아까부터 그렇게 장승처럼 서 있지만 말고!”
“사람 구실을 하게!”
“헛!?”
괜히 서 있어, 욕만 먹었다.
대체, 진가 그에게,
이밤! 다들 왜 그러는 것인지들!
“이리 와, 살펴보게!”
“대략 어느 지점인지!”
정도 겸은,
지금 그들이 있는 위치를 표시하고는!
진가에게 붓을 내밀었다.
‘엇?!’
손이 교차 되며, 스치는 순간!
그들은, 서로 묘한 피의 끌림을 느꼈다.
***
비류의 상태는, 보기보다 더욱 심각했다.
어의 넷이 달려들어,
번갈아, 등에 박힌 화살촉을 빼내었고!
탕약으로 마취해, 기절을 시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의 비명을 들을 뻔도 하였다.
한이 보기에도,
절대, 생으로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음에!
그가 그럴진대!
오매불망, 비류 바라기인 적염은 오죽할까!
온 얼굴을 구기고,
그 대신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으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비류의 곁을 지키는 적염에게, 한은!
별안간의, 기절을 선사하였다.
“윽!”
적염이 넋 놓고 있는 틈을 타,
비류에게서 전수 받은, 혈자리를 누른 것이었다.
“어의!”
그리곤, 젊은 어의 한 명을 불러,
기절한 그녀를 전담시켰다.
그녀 또한 성한 몸이 아니었기에!
몸을 누이는 시간이,
필시, 필요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기나긴 시간이 소모되었다.
“전하!”
이윽고, 어의가, 한 앞에 다가섰다.
한은, 비류의 침상 앞에, 의자를 대고 앉아서,
고단함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터였다.
“어찌 되었는가?”
“예! 필요한 수습은 마쳤으나!”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을!”
“담으려 각을 재는 것인가?”
어의들의 말들은, 언제나 뻔했다.
병환이 중한 이들을 앞에 두고서는,
십중팔구, 생사는 하늘에 달렸다!
그리, 의술에서 척을 지는 말을 하며,
발을 한 뼘 뒤로 빼, 책임을 덜곤 했으니!
“그!”
“소신이 할 수 있는!”
“됐소!”
한은, 어의의 뻔한 다음 말이 듣기 싫어,
냉큼 잘라버렸다.
“비류, 저자는!”
“쉬이, 하늘에 명을 내줄 이가 아니오!”
“허니, 수고들 했소!”
“숨 붙여 놓느라!”
한이, 뜻밖에!
날을 세우지 않고, 어의들의 노고를 치하하자!
어의들은, 그저 감읍할 따름이었다.
왜, 깨어나지 않느냐고!
왜, 금방 낫지 않느냐고!
멱살 잡혀,
공중에 발이 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기에!
그들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노고를 알아주셔서!
“허면, 한 가지!?”
“윤허를 구할 일이 있사온데!”
“무엇인가?!”
***
한은, 비류가 깨어나면?
얌전히 침상에 누워있을 위인이 아니란 것에,
어의들과 의견을 동일시하고는!
그들이 비류에게 ‘안신(安身)’ 탕약을 먹여,
그를 계속 재우는 것에 동의하였다.
상처가 아물, 단 며칠만이라도!
그 성치 않은 몸을,
편히 쉴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피로한 어의들의 심신 안정을 위하여!
서슬 퍼런 감시의 눈으로, 지키고 섰던 한은,
쫓겨나다시피, 그의 막사로 돌아왔다.
하여! 어느덧 깨어나!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맞는,
운과 시선이 맞닿았다.
얼핏, 흠칫한 이는, 한이었다.
죄는, 다른 이가 지었는데도 말이다.
한은, 말없이 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침상으로 가 쓰러지다시피 누웠다.
몸도, 마음도 너무 곤하였다.
또한, 자신을 배신한 이에게,
그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지!
아득하고, 막막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해는 서둘러 넘어가!
달빛이 드리워졌다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하여, 하늘 아래 세상은,
온통, 캄캄한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스륵!’
한은, 침상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묶여서도 고고한 자세로 앉아있는,
운을 노려보았다.
그는 지금껏, 눈을 붙이기는커녕!
뜬 눈으로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그런데도!
운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있었다.
한은, 그것이 화가 났다.
변명을 하지 않는 죄인!
그러면!?
변명조차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그댈!!
살려 줄 수 있을까?
한은, 증오가 가득 찬 눈으로,
운을 응시하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풀썩!
스스럼없이 내려앉아!
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무기력한 그의 턱을 손으로 잡아 올렸다.
“말!”
“하시오!!”
‘변명을!!’
아버지 정도 겸이, 강제로 그랬다!
그대는, 날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리! 말! 하시오!!
한은, 필사적으로 운을 면죄하려,
가슴속으로 애달프게 외쳤다.
한의 그 소리 없는 외침을 들은 것일까?
운의 동공이 한을 보는 듯하더니,
이내, 허공을 향했다.
마치,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듯!
아니, 한, 그에게 미련이 없다는 듯!
‘어째서, 난 여직 살아있는가!’
정신이 들어, 눈을 뜬 운이,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어째서, 그는 죽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먹먹한 심정, 금할 길이 없어!
이쯤 되면, 마치 그가,
‘불사신(不死身)’쯤 되는 것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다만, 스스로 살아남은, 대단한 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필사적으로 구하여 살려낸, 귀한 이!
차라리, 죽었으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차라리, 죽었으면,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이젠, 꼼짝없이 해야 하고, 받아야 했다.
“그대는, 정녕!”
“날!? 능멸한 것이오?”
미동 없던 운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인정도, 반박도 아닌!
그저, 감정을 없앤, 무심한 몸짓이었다.
“나 하나, 능멸하자고!”
“그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하다니!”
한은 부러! 운을 자극하는 말을 꺼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무고한 이들의 안부를 전해주는 수밖에!
과연! 운이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눈빛으로 물어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지만, 한은,
고약하게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눈빛이 아니라,
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
또!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눈에 담을 뿐이었다.
“훗! 대단하시오! 정빈!”
역시나!
한의 고집은, 운에 비할 데가 아니었다.
마음 답답한 한이!
그가 마음대로 시작한 그만의 내기에서,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을 내뱉었으니!
“대체! 왜 그런 것이오?”
“대체! 왜!?”
‘나를 떠난 것이오?’
하지만, 속내를 차마 입에 올리진 못하였다.
아무리, 그가,
운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는 하나!
짓밟힌 존엄과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은, 그가 화가 났을 때,
입을 닫는 버릇이 있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지금,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기에!
그리고, 한을 볼, 면목이 없었기에!
그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여, 한은, 절절한 심중의 말을,
모진 말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흠! 이렇게 나오신다!?”
‘허면, 그대 또한, 나처럼!’
‘애만 잔뜩 태워보시던가!’
한은, 운이 입을 열게 할,
비장의 무기를 꺼내, 입에 올렸다.
“정도 家는, 이제 역적이오!”
“하여, 그들은?!”
거기까지 말을 하고, 한이 운을 바라보자!
그의 예상대로!
운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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