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76 話

“모두 저의 죄입니다!”
“허니!”
“그들을 살려주십시오!”
운은, 그가 기절하고 난 후의 일들을,
미처 알지 못하였기에!
한의, 의미심장한 말만 듣고서!
아버지, 정도 겸을 비롯해,
정도 家의 식솔들과 사병들이!
모두, 한의 수중에 잡혀있다 생각해,
읍소를 하려는 중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자신이 궁에 들지 않았더라면?
운현궁의 이들이,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고!
만일, 계획대로, 죽음으로 위장해,
궁 밖으로 나오는 일에 성공하였다면?
이렇듯, 무력으로 대치해, 반역이라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하여, 그가 생각하기로!
운, 그 자신이, 성급하게 달려든 결과가,
결국, 가문의 멸문지화였다.
‘뚝!’
운은,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죽도록 후회되는, 회한의 눈물이었다.
차라리!
진작에, 자신이 여인이 아니라 밝히고,
가문을 선처 해달라, 용서를 구했었다면?
어쩌면, 한은,
그리해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종국에! 갈 데까지 간, 이 상황 끝에서,
마주한 한은, 너무나 두려웠다.
한이 그를 보는 눈빛에, 경악이 들을까 두려워!
한이 그를 보는 눈빛에, 경멸이 들을까 두려워!
운, 그가!
그 스스로 겪을 상처가 무서워,
회피하다, 이 지경이 된 것이었다.
“저의 죄입니다!”
“모든 것이, 저 때문이니!”
“제발! 제 아버님과 정도 家의 모두를!”
“그들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전하!”
자신이 아니었다면,
반역을 할 이유가 없는, 무고한!
그들 또한, 전하의 백성들이옵니다!
운의 절절한 읍소에,
한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단지! 운 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은, 어려서부터,
여인의 눈물을 보면, 짜증이 났었다.
그건, 여인들에게 당해왔던,
지난한 세월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던 사정들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욕심만을 위함이었고!
가증스럽게도, 진심에서 나는 것이 아닌,
가짜 눈물인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순식간에, 눈 안에 안개처럼 차오르는,
운의 먹먹한 눈물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였었다.
그의 눈물은, 가슴에서 흘려보내는,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듯!
매 순간, 남을 위해 사정을 하고,
남을 위해, 고고한 자존심을 굽혔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보통, ‘나부터 살고 보자!’가,
생명을 달고 있는 모든 이의 본능이 아니던가!
한은, 불현듯! 운이 애처로웠다.
저런 고운 심성을 가지고,
매사, 행복을 누리며 살아도 모자랄 판국에!
어째서 흉포한 자신의 눈에 들어,
허구한 날 눈물 바람인 것인지!
자신이 억지로 후궁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아마 온 얼굴에, 그 예쁜 미소를 올리고,
좋아하는 향적을 아름답게 불며!
토끼 같은 자식들과 청정하게 살고 있겠지?
이런 피바람 부는 살얼음판에서!
가문에 닥친 위협에,
조마조마! 마음 애태우는 대신에 말이다.
하지만, 순간!
한은, 그 스스로!
그의 심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운의 행복한 나날을 연상하는 와중에도!
토끼 같은 자식들은 상상이 되었어도,
정빈의 남자는, 상상 속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재빨리 결론을 집었다.
운의 전생과 현생,
그리고, 상상 속의 생에서도!
그의 곁에 있을 이는,
오직 한, 그뿐이라고!
그 누가, 감히!
내 사람을!!
‘어쩌지?!’
그대의 그 슬픈 눈물을 보면서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면서도!
‘난 그대를 놓아주지 못하겠소!’
그러면서, 한은,
운이 자신을 떠나던, 그 발걸음을 떠올렸다.
만일, 그가 정말,
인질 잡혀 끌려갔었더라면?
한은, 목숨 걸고 지켰을 것이었다.
그럴 능력은 충분히 되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가길 자처하였기에,
칼을 놓아버렸었던 것이었다.
그때, 뼈저리게 알아버렸다.
자신은, 이제!
저 사람 없이는, 안 될 것 같다고!
하여, 한은,
운을 곁에 두겠다, 결심하였다.
‘욕심낼 것이오!’
‘내, 그대를!’
설령! 그대가 내 곁에서, 눈물짓더라도!
평생! 그대가 내 곁에서, 원망하더라도!
허니! 사시오!
다시는, 그대 스스로,
그대를 해하지 못하도록 지킬 것이니!
“그들을 살릴 방도는 있소!”
그대가 내 곁에서, 숨을 쉬고!
그대가 내 곁에서, 밥을 먹고!
“그대가 내 곁에서, 살아 있는 한?!”
“그들의 목숨은 붙어 있을 것이오!”
“허나?!”
“자칫?!”
한은, 겁먹은 운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잇기를 주저하였다.
생각만 해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운이 비녀를 목에 찌르고,
스스로를 해하던 밤의 충격과!
약사발 조각으로 위협하다,
손에서 새어 나오던 붉은 피와!
배 위에서, 그 목에 밧줄을 걸고,
뛰어내리던 순간의!
그 일련의 참혹했던 모든 일들이!
하여! 종국에는!
핏기없는 모습으로,
힘없이 떨어지던, 그의 목과 손이!
그렇게!
운이 죽음을 맞이하려던 매 순간이,
기억 속에서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한은,
운을 겁박하는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살아있으라고!
“아시겠소?”
“그대는, 이제부터 나의 인질이오!”
정도 家의, 모든 이들을 살릴 인질!
물론, 그의 수중에,
정도 家의 사람들은 잡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리될 것이기에!
허튼 말은 아니었다.
비류가 회복되고,
어쩔 수 없는 전쟁에 임하게 된다면?
정도 겸이, 그리고 그의 가문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건!?
필시,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질 것이라는,
확신에서 한 말이었다.
하여, 운은,
정도 家, 모두를 대신해 잡힌 인질이었다.
다만, 그들을 잡을 미끼가 아니라,
그들의 목숨을 끊지 않을 이유였다.
***
‘드르륵!’
서늘은, 물 사발을 들고,
적현을 묶어 놓은 선실로 들어왔다.
“아~!”
서늘이, 물을 먹이려 가까이 다가가자!
‘퍽!’
적현이 발을 들어, 서늘을 냅다 차버렸다.
“오~오~오!!”
하여, 서늘은 문밖에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들어왔다.
‘이 인간, 대체 뭐야?!’
적현은, 비류나 적염 만큼은 아니어도,
내공이 하찮지는 않은 몸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백 할을 쏟아부은 발길질에,
저리 태연하게 툭툭 털고 일어나다니!
게다가, 웃기까지 하며!?
“오호!? 고 째깐한 발재간이 제법이네?”
물론, 보통의 사내들이라면,
드센 여인에, 치를 떨 법도 하겠건만!
오히려, 서늘은 그런 적현이 귀여웠다.
다년간 무예를 연마한,
그녀의 공력이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짐승과 같은 괴력을 지닌 서늘에게는!
그저, 새끼 곰이 발길질 한번, 대차게 했다?!
뭐, 그 정도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사실, 그 어떠한, 타격도 없었다.
거기다, 서늘의 취향은, 늘!
픽픽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하여, 아름답고, 야들야들한 여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적현은 딱! 보기 드물게도!
서늘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었다.
적현으로서는,
억세게! 운도 없는 경우였지만 말이다.
‘사삭! 사삭!’
서늘은, 잠시 사부작대더니,
뒤 춤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가 아껴두었던, 독한 화주를 담은 것이었다.
그는, 주섬주섬 뚜껑을 열고는!
순식간에, 적현의 뒤 목을 잡아 꺾어서는,
화주를 한 모금, 목으로 넘기게 하였다.
마치, 약 안 먹는 병아리, 약 먹이듯,
그리 수월하게 말이다.
그리곤!
‘켁! 켁!’
술을 넘기고는, 사례가 걸려 기침하는,
적현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어째!?”
“좋게 말로 할 때, 안 마시니!”
“으이익!!”
적현은, 서늘의 뜻대로 된 것이,
분하다는 듯,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그러자, 서늘은,
눈을 반달로 접더니, 빙그레 웃어 보이며!
“이름이 뭐야?!”
무척이나,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
‘우엑!!’
열린 문틈으로,
이 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간담과 진가가!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헛구역질을 해 대었다.
“아, 쏠려!”
“쏠린다, 쏠려!”
“저거, 왜 저러냐!?”
“대체, 뭘 잘못 주워 먹은 것이야?!”
이제껏, 함께 살아온 세월 동안!
서늘은, 그저!
고운 여인들만 보면,
향분 냄새나, 킁킁거리며 맡아대기나 했지!
실제로, 여인에게 저리 살갑게 대하는 것을,
난생처음 보는지라!
지금 이러는 그가, 몹시도 낯설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무언가 모를?
위기의식마저 드는 것이!
“저거, 저러다?”
“정말 혼례라도 치르는 것 아냐?”
간담이 몹시도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하니,
진가 또한 생각이 깊어졌다.
“설마, 정말 그려 러고?!”
“아, 저 여인은 무슨 죄고?!”
둘의 소곤대며 하는,
마음에 안 드는 말소리가!
귀 밝은 서늘에게 닿자!
거슬렸던 서늘은,
허공에 대고, 손을 뻗었다.
‘휙!’
‘탁!’
하여! 순식간에, 문이 닫히자,
적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공을 하는 자인가?’
그저, 힘만 드럽게 쎈!
모자라고 어설픈 놈이라고,
업신여기고 보았던 자가!
자신이 익히기 위해,
몇 년간을 죽을 듯이 연습하였던!
하물며, 이제껏 완성도 채 하지 못한,
‘장풍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니!?
“뭐요?!”
“무공을 하는 자였소?”
적현이, 서늘에게 말을 붙이자,
그게 또 좋았던지!
서늘은, 한껏 목을 높이 쳐들었다.
“왜?!”
“서방님이 무공을 하면 좋겠어?”
“색시가 하라면?!”
“그럼, 하고! 훗!”
서늘이, 눈을 반짝이며,
적현의 머리칼을 쓸어주자!
“으익!!”
느끼하게!
‘서방님?! 이라니!’
몸서리를 치며!
적현 또한, 토가 쏠릴 뻔하였다.
그녀 인생에, 나라와 주군은 있어도,
서방은 없다, 다짐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왕의 칼로 살며,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삶에!
혼인이라니!
꿈에도, 생각에도 없던 그녀였다!
“그래서?! 이름이 뭐냐고?”
“안 그럼, 맘대로 부른다!”
그러곤!
서늘은, 적현을 물끄러미 훑어보고는!
“삐쩍이!”
“아아?!”
분하게도! 서늘의 말에,
적현이 무심코 반응해 버렸다.
무슨, 새 새끼도 아니고!
‘삐쩍이’가 뭐냔 말이다!
하지만, 어떡하랴!?
무예로 단련된, 완벽한 근육질의 마른 몸이,
서늘의 눈에는 그저!
삐쩍 골아, 골골대는,
맥아리 없는 삐아가리처럼 보이는 것을!
“아!?”
하여, 서늘은, 뭐라도 먹이고 싶어,
그가 제일 아끼는 육포를 꺼내 들었다.
“먹여줘?”
“먹을래?”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당했던 지라,
적현은, 또 당할세라, 순순히 입을 벌렸다.
안 그러면,
아예 입으로 씹어 넘겨줄 태세라!
이! 보통이 넘는, 어마어마한 살수인 자신을,
무슨 햇병아리 다루듯 하는 솜씨를 보아하니!
자신은 감히!
적수 따위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하고도, 빠른 판단에서였다.
“옳지!”
적현이 육포를, 새가 모이 먹듯, 받아먹자,
신난 서늘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말 잘 들어,
기특하다, 쓰다듬을 받는 강아지처럼!
‘아! 젠장!’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
하여,
적현의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지던, 그때!
선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뚱한 표정의 갱아였다!
“거기!”
“통감 마님께서, 보자 시오!”
서늘이 해맑게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자,
갱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디, 너 따위가!?’
하는, 위력의 눈빛과 함께!
그리곤, 적현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그래, 바로 너!’
‘왕의 그림자 호위! 적염단!’
그러자, 서늘이 그 시선을 방해하며 일어섰다.
마치, 닳는다는 듯이, 못마땅해하면서!
“내 색시는, 왜!?”
“그 좁쌀 같은, 영감탱이가!”
“조, 좁쌀?!”
“영, 영감탱이라니!”
감히, 조아국에서, 통솔대감 정도 겸을,
그리, 대역무도하게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왕이더라도, 적현의 대장 비류더라도,
단 한 번도! 말이다!
그런데?!
저, 하찮고도, 모자란 짐승 새끼가!
감히!! 겁도 없이!?
그러한!?
갱아의 경멸을 담은 눈빛과는 반대로!
적현의 눈빛에선, 대혼란이 일어났다.
서늘이, 뭔가?
이유는, 정말 모르겠는데!
대단하고, 대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이 새끼, 정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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