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80 話

운은 세상이 말하는 이치를 따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운의 그 덤덤한 말에,
따갑게 베이는 것은, 한이었다.
베여서! 아파서!
한의 상처 입은 마음은 욱신거렸다.
마치, 그의 강산을 마구 짓밟는,
북방의 야만인들처럼!
운의 말은,
그를 격렬히 분노케 하였다.
“아니! 인연이었다!”
하여, 그는 강하게 반박하였다.
이에, 질세라!
운은 또다시, 한에게 비수를 꽂고 말았다.
“전하는!”
“잘못된 이를, 마음에 품은 것이옵니다!”
“저는, 결코!”
“전하를 마음에 담아서는 아니 될 몸이고!”
하지만, 이는,
마치, 그의 고해와도 같은 말이었다.
깊고 어두운 그의 마음속에,
미처, 꺼내지 못하고 숨겨두었던 비밀과 같은!
“아니!!”
“필연인 거지!”
하지만, 또다시 한이,
언성을 높이며, 운의 말을 부정해 왔다.
이번엔, 감히 자신의 마음이 잘못됐다,
비난하는 것 같아, 화가 났기에!
한의 목소리에, 주눅도 들지 않고,
운은 또다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얼마나!
한을 깊이 생각하는지!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이다.
“전, 후회합니다! 전하를 만나게 된 것을!”
“하여, 전하와 연이 닿은 것을!”
‘아니! 후회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전하를 만나,
짧은 순간, 행복감으로 마음이 충만했으니!
전하와 연이 닿아,
비로소, 사람 사이의 연정을 알게 되었으니!
“후회?!”
한은, 운이 입 밖으로 쏟아내는 비수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후회한다고?’
‘날, 만난 것을?!’
하여,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로!
떨구었던 두 손을 올려,
운의 양 뺨을 강하게 감싸 쥐었다.
“그래! 후회할 거다!”
“지금, 내게!”
“그 오만방자한 말을 한 것을!”
한은, 자신을 환멸 하듯, 비수를 쏟아내는,
운의 미운 입술을 응징하려 하였다.
하지만, 운은 굳게 다문 입술로,
한을 철저하게 밀어내었다.
싫어서라 아니라!
두려워서!
곧, 자신을 눈에 담으면서 보낼,
한의 환멸에 찬 눈빛이 두려워서!
하지만, 한 또한!
이 응징을 멈추려 들지 않았다.
원치 않은 신체의 접촉을,
그 누구보다 싫어했던, 그는 잘 안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것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하여, 한은,
그간, 운에게 극도로 조심해 왔었다.
아름다울 수 있는 서로의 교감을,
순간의 욕정으로,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이젠 틀려버렸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의 감정은,
배신이라는, 상처로 베이고 찢겨!
갈가리 훼손된 채,
분노로 변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탁!’
한은, 거칠게 운의 뒷덜미를 잡았다.
더 이상,
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따윈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또한, 분노에 휩싸인, 한의 싸늘한 눈빛은!
한순간 비수가 되어,
운의 심장을 찌르는 듯하였다.
그! 숨을 내쉴 수도 없는 위압감에,
운은 가까스로 숨을 토해냈다.
‘흐읏!!’
하여!
한은, 일말의 틈을 주지 않고, 일순간!
자비 없이 운을 강하게 끌어당겨,
그의 품 안에 가둔 채!
거칠게!
어쩌면, 탐욕스럽게!
운에게, 애욕에 가득 찬,
입맞춤을 선사하였다.
‘흣!!’
운에게서, 숨에 겨워 가쁜 숨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간,
한, 그가 아끼고 아껴왔던 일이었다.
행여나, 자신을 밀어낼까,
기다리고 기다려주었던 인고의 나날들이었다.
결코! 일국의 왕이,
일개 후궁에게 할 전전긍긍은 아니었으나!
조아국의 왕, 명림 한은!
‘정빈’이라 불리는 그의 후궁에게,
이제껏, 선뜻 그리하여주었었던 것이었다.
헌데, 정빈은, 결국!
왕의 그 고결한 마음을 배신하고,
궁을 떠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 자신은, 결코!
왕을 마음에 담아서는 아니 될 몸이라는,
야속한 말을 입에 담으며!
하여! 왕은, 버릇없는 후궁에게,
똑똑히 일러주려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담으라 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를, 마음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감히, 구구절절이,
거절을 해대는 것이 아니라!
하여! 한은 기어이!
힘이 없어,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운을 바닥에 눕혔다.
‘우지직!’
그리곤!
그 옷고름에, 거칠게 손을 대고야 말았다.
자신을 떠나려는 후궁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벌이었고!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거부하지 못할, 어명이었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가!’
차마, 그 힘을 당해낼 수 없는 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흘렀다.
이렇게, 이렇게는!
둘 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을 입게 될 것이 자명한데!
운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는 그때!
‘휘~이~익!’
왕의 등을 향해,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이었고!
매우 다급한, 그 순간에!
운은, 그도 모르게, 있는 힘껏!
필사적으로 한을 밀쳐냈다.
하여,
이제는 운의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콰직!’
한이, 손을 뻗어, 가까스로 잡아냈다.
“하!!”
운의 심장이 아니라!
그의 손안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무서운 기세로 운을 위협하던 한의 눈빛은!
어느새, 걱정이 가득 들어찬,
고운 눈빛으로 되돌아와!
괜찮냐고 묻듯,
살갑게, 눈으로 운을 살폈다.
왕을 능멸하여,
능지처참을 당해도 시원찮을 자신을 위해!
입으론, 밉다, 밉다! 말하면서도,
아끼지 않고, 몸을 날린 한을 보며!
운의 눈은, 또 금세,
맑은 눈물로 가득 차 버렸다.
이젠, 정말!
속내를 들켜, 숨길 수조차 없게 된,
이 상황을 원망하며!
또한! 한에게 닿아있는 마음을,
되돌릴 수 없는 그, 자신을 원망하며!
운의 눈빛을 꿰뚫어 보던 한은,
그제야, 무언가 미심쩍음을 발견하였다.
운이 지금까지,
정말, 싫어서 하는 말이었다면!
미움 가득한 얼굴로, 가시 돋친 혀로,
통쾌한 듯 쏟아내었을 것이었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의 마음을 그리 당당히 짓밟으며,
입을 떼던, 매 순간!
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었다.
숨기려 하였으나,
결코, 숨기지 못하였던, 진심!
“무얼?!”
“내게, 무얼 숨기고 있는 거요?”
“말을, 하시오!”
“제발, 말을 해 주시오!”
“뭐든! 내 뭐든!”
한은, 운이 무어라 말을 하든,
용서할 준비를 하였다.
“그게, 무엇이든!”
‘휘~이~익!’
“내, 용서~!?”
“전하!”
한이, 운에게 모든 죄를 사하겠다는,
면죄부를 내리던, 그 순간!
속을 간파당한 운이,
진심을 말하려, 입을 떼려던, 바로, 그 순간!
또 하나의 화살이,
자비 없이 날아와, 한의 등에 깊이 박혔다.
“윽!!”
감히, 허락도 없이,
지엄한 왕의 천막을 걷은 이는, 범설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엔, 또다시,
한의 심장을 향해, 장전된 활이 들려있었다.
“안 돼!!”
***
‘나의 주군이, 위험할 것이라니!’
‘흥!!’
적현은, 정도 겸이,
무슨 근거로, 아니,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리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선뜻,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겐, 비류와 적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대장과 부장이 왕의 곁에 있는 한,
그 어떤 위험도 도사리지 못할 것이라는!
“이것을!”
정도 겸은, 적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묵묵히 글을 적어 주었다.
“전하께, 전하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
“빨리!!”
“내려놔라!!”
배의 후미, 갑판 위에서는!
여전히 허리를 잡힌 채,
진가에게 들려있는 갱아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잠깐만!!”
“이대로!”
“내 말, 얌전히 들은 후에, 내려준다!”
진가는, 사나운 여인들이 판을 치는 시국이니,
마치, 맹수를 대하듯, 침착하게 응대하였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빨리, 안 내려놔?!”
말을 하려면, 빨리나 하던가!
갱아는, 선실에서부터,
자신을 짐짝처럼 옆구리에 끼고 걸어와서는!
말을 한다, 한다!
이리, 날이 새기 직전까지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진가가, 답답해 소리쳤다.
“그, 죽은 이가, 정혼자였더냐?”
진가는,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정도 家의 식솔들에게,
군수의 이야기를 얼핏 훔쳐 들었다.
비류의 검에 베여 죽은, 군수라는 이가,
이 사나운 여인을 무척 좋아했다는 말을!
그리고, 혼자 남은 갱아는,
이제 어떡하냐는, 걱정의 소리도!
“정혼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내 오라비 같은 자였소!”
군수를 생각하며, 성질이 한풀 꺾인,
갱아의 모습을 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에,
진가가 슬며시, 갱아를 내려놓았다.
‘툭! 툭!’
갱아는 괜한 마음에,
말없이 옷을 털고 섰다.
“오라비?!”
그러고 보니, 자신을 오라비 따르듯 따르던,
아연 생각에, 잠시 그리움이 스쳤다.
“살아는, 있을는지!”
진가의 사연 깊어 보이는, 작은 읊조림에,
갱아가 성질을 죽이고, 물었다.
“뭐?! 누가?!”
“잃어버린 피붙이라도 있는 거요?”
“미안하오!”
갱아가 선심 쓰듯 물은 물음에,
대답은 아니 하고!
진가는 느닷,
앞뒤 잘라먹은, 사과부터 하고 섰다.
“내, 사죄하리다!”
“응?!”
“그간!”
“별안간 당한, 내 몹쓸 짓을 용서하시오!”
얻어맞고, 말로 맞아,
죗값은 충분히 치른 듯하였으나!
진가는, 아연을 떠올리며,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었어도,
만일, 아연이, 사내에게 그런 일을 당하였다면?
설령, 그녀가 가볍게 넘긴다 해도,
자신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 자명했다.
남의 일에, 나의 일을 대입해 보니!
유식한 말로,
‘역지사지’라는 말의 뜻을 되새겨 보니!
갱아의 못된 분풀이가,
곧 이해가 되어, 하는!
그의 진심을 담은 사과의 말이었다.
“아마도?!”
“그, 오라비 같았던 자가 살아있었다면?”
“대신해 주었을 것이오!”
“그 분풀이!”
진가를 빤히 노려보던 갱아의 눈 안으로,
뿌연 눈물이 빠르게 들어찼다.
“흑! 흐흐흑!”
“아~아앙~~!!”
참고! 참고 있었는데!
군수의 죽음도,
운과 아연을 잃은 슬픔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며,
이제껏, 참고, 참고 있었는데!
진가가,
갱아의 눈물샘을 제대로 건드려버린 것이었다.
하여, 갱아는!
그간 숨죽이며, 참아왔었던 눈물까지,
모두 쏟아내는 중이었다.
“허어억! 흐으윽!!”
그 서러운 울음소리가,
고요하고 황량한, 바다 메아리 되어!
쓸쓸하고도, 처량한 듯,
깊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니! 왜 또!!”
“남의 집, 사나운 처자는 울리고 쌌어요?!”
“하여간, 틈만 생겼다 하면?!”
“으이그, 쯧쯧쯧쯧!”
뭘 해도!
뭘 안 했어도!
진가, 그가 욕을 먹는 것은,
매일반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간담과 서늘은!
이미, 전과가 있어,
경계 대상인 진가의 손을 물끄러미 보며!
쌍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다.
“으이익!!”
“이번엔, 이번엔, 아니다!”
“건, 건들지도 않았다!!”
진가가, 하지도 않은 일에, 지레 찔려,
자신의 두 손을 ‘화들짝’ 등 뒤로 숨겼다.
‘젠장!’
또, 같잖은 오해를 받게 생겼다.
목 놓아 우는, 갱아 덕분에!
“쯧쯧쯧! 이래서 나이 차면, 장가를 들여야 해!”
“그래야, 엄한 처자한테 허튼짓을 안 하지!”
“엣헴~!”
느닷없이 서늘이,
영감같이, 윗사람 흉내를 내며, 뒷짐을 졌다.
“너 이 자식!! 너, 뭔데?!”
“넌, 뭐, 돼?!”
“흠! 나는 색시가 있는 몸이지요!”
“들어나 봤나? 너그러운 지아비!!”
“아!! 아흑!!”
“꼴사나워! 밸 꼴려!”
“저리 안 가!!”
진가는,
더욱 목놓아 우는 갱아를, 어쩌지 못한 채!
서늘을 향해, 허공으로 발길질을 해댔다.
“아흑!! 도대체!!”
“나한테! 왜들 그러는 거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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