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88 話

운이, 범설의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비류가 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깐!!”
그러자, 범설이, 기가 찬 듯,
성질을 슬슬 내비쳤다.
“하!!”
“내가 지금, 니들!”
“못 죽여서, 이러고 있는 것 같아?”
결국, 인내심에, 바닥이 드러난 범설이,
성질을 피우려 하자!
비류가 숲 언저리를 ‘슥’ 훑으며 말했다.
“짐승들은, 치우지!?”
“먼저?!”
“하!! 죽일 거였으면, 진즉 했지!”
“쯧!”
범설이, 마뜩잖게 비류를 노려보며,
손짓을 하니!
‘휘~익~ 휘익~’
어느새, 소리 소문도 없이,
숲에 숨어 들어있던 설기대원들이!
그길로 몸을 날려,
숲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물론, 비호단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미세하게, 몸을 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이 누워있는 이곳에서,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여간!”
“남방 것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네! 쯧!”
상황이 정리된 듯 보이자,
비류가 범설을 향해 일갈하였다.
“아직! 안 갚았다!”
“은혜든, 원수든!!”
“허니! 허튼짓은, 하지 마라!”
비류는, 범설에게!
운에게, 그 어떠한 해도 끼치지 말라!
그리!
강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곱게 보내주지만!”
“다음엔, 뭘로 갚든, 되갚아 줄 테니까!”
“하! 그러시던지! 쯧!!”
“하지만,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진 마라!”
“말했다시피!”
“못 죽여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니까!”
범설 또한, 마지막 경고를 날리자!
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범설에게로 다가섰다.
자신과 이 흑표인이 빨리 사라져야,
한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정빈!!”
적염이 참지 못하고, 운을 잡으려 하자!
“적염!!”
비류가, 고개를 저었다.
한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지금의 운의 희생은,
그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쯧!!”
범설이, 마지막 관용으로,
혀를 차, 종용하자!
그를 더 이상, 자극해서는,
모두가 죽는 일밖에 남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운은, 심장을 끊어내는 심정으로,
한을 등졌다.
‘무탈 하십시오!! 전하!!’
‘휘~익!!’
운이 손안에 잡히자마자,
범설은 날 듯이, 빠르게 하늘로 솟구쳤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공력을 끌어올려!
결국, 몸의 혈류가 뒤틀려버려,
더는, 온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또다시, 조금씩 시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금,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젠장!!’
하지만, 설기대도 와 있는 마당에!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어쩌면?
이곳을 초토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어쩐 일인지!
평화롭게 자리를 떠나는 것을 택하였다.
자살하겠다는,
운의 협박이 두려워서도 아니고!
눈이 안 보여서도 아니었다.
그저, 한과 운의 애절한 마음을 보는 것이,
간질간질해서였다.
그는, 어쩐 일인지, 순간적으로!
생사를 다투는, 둘의 애틋함을 보며,
아연의 얼굴을 떠올려 버렸다.
죽어가던 그녀를 품에 안고,
살리려고 애썼던 그때의!
그 자신이 몸소 느꼈었던,
뭔지 모를, 아깝고, 안쓰러웠던 마음을!
‘하?! 어째서!?’
***
흑표섬에 다다르자, 닻이 내려졌다.
언뜻, 인적 없어 보이는 이 섬에,
야살이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진가와 간담 그리고,
서늘이 적현의 밧줄을 잡은 채!
먼저 배에서 내려, 섬에 발을 내디뎠다.
“사람 냄새가?!”
서늘이 비릿한 바닷바람을 들이켜며,
입을 떼자!
“나?!”
간담이 서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스읏?!”
“아, 어째?!”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킁킁대던 서늘은!
“물고기?!”
“웅?!”
“누가, 생선 굽나?!”
사람의 냄새보다,
생선구이 냄새를 먼저 맡아버렸다.
***
“자!”
먹음직스럽게, 다 익은 고기를,
아연에게 쥐여주며!
범표는, 아연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 위, 흑표범의 귀가 자랐던 부분을,
눈동자까지 반짝여가며!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연이,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기에!
그녀가, 또다시 덮쳐온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응당! 응해야 할 것이기에!
모자란 자제력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먹고 있어!!”
“웅?!”
“왜? 또 어디 가게?”
범표는, 그녀가 요기를 하는 동안,
연안에 다다른 배를 탐색할 요량이었다.
그저 그런 상인의 배라면, 별일 없겠지만,
해적선과 같이, 흉흉한 무리의 배라면?
아연이 모르는 동안,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어!”
“잠깐! 땔감 좀 구하러?!”
“흐음!!”
아연은, 고양이처럼,
생선의 두툼한 배 부분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다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날렸다.
“너, 설마?!”
“응?!”
“아니야!”
“다녀와!”
“어!!”
“먹고 있어!!”
범표의 약간은 수상스러운 낌새에,
아연은 순간, 의심 구름이 피어났다.
설마, 저는 물고기를 주고!
그는 몰래 혼자!
육고기를 먹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식탐에서 비롯된, 의심이 말이다.
그녀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던 범표는!
잡아 온 물고기를 모두 구워,
아낌없이 그녀에게 주었건만!
먹을 것에, 항상 진심이었던 아연은,
뭔갈, 먹었으니, 안 먹는 것일 거라는!
고작, 그런!
얕은 생각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호라! 그것은, 육고기?!
만일, 한 입 거리의 새라도 한 마리 잡았다면?
분명, 그녀 본인은,
어떻게서든, 혼자 몰래 먹었을 테니!
하여, 아연은, 먹던 물고기를 입에 물고,
범표의 뒤를, 몰래 따랐다.
***
범표는, 섬의 해안가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진가 일행을 바라보며!
나무에, 살짝 몸을 숨기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는 얼굴들이군!’
일전, 산채에서 본 적 있는,
아연을 각별히 생각하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이들이었으나!
다분! 아연을 찾으러 온 것인 만큼,
우려하였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팔짱 낀 사이에, 검을 낀 채,
늠름한 자태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엇?! 사람이다!!”
진가의 뒤로 걸어오던, 갱아가 소리쳤다.
“통감 마님 말씀이 맞았네!”
“이 섬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더니!”
진가는, 갱아가 곁을 스치기만 해도,
‘꼴깍!’ 침이 절로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 극도로 긴장해,
목소리마저,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위, 위험해!”
“뭐요?”
딴에는, 갱아를 보호한답시고,
그 앞을, 손을 뻗어 가로막았더니!
“아익!!”
이제는, 진가의 손톱만 봐도,
자연스레 몸을 사리게 되는 갱아가!
몸을 움츠린 채,
놀란 눈으로, 진가를 올려다보았다.
“어어!!”
“위, 위험하다고!!”
“나, 난, 그냥!!”
몹시도 당황하는 진가를 보자,
갱아 역시, 과잉 반응을 한 것이 미안했던지!
‘툭!’
진가의 손을 말없이 치며,
그 자리에 서서, 다소곳이 시선을 내렸다.
“아, 놀랐잖아요!”
“갑자기, 손을 내미니까!”
“어, 어! 미, 미안하오!”
“어르신이, 함부로 가까이 가지 말라 하여!”
진가는 갱아를 보자마자, 얼굴이 붉어졌고,
갱아 또한, 서서히 귀가 붉어지고 있었다.
이 어쭙잖게 수줍은,
둘의 새로운 서사는!
진가가 갱아에게,
진정 어린 사과를 한 연후부터 시작되었다.
죽은 군수와 생사 모를 아연과 운 생각에,
밤새도록 통곡하는 갱아의 곁을!
진가는 묵묵히 지켜주었었다.
그렇게! 어느덧, 날이 새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웅장한 태양을 함께 바라보자니!
새삼, 치열했던 세상만사가 하릴없어 보이고,
무언가, 가슴 벅찬 기운에!
갱아는, 그간 자신이 엄한 상대에게,
분을 표출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또, 후련히 울고 난 후라,
오히려, 감정이 산뜻이 정리되었기에!
갱아는,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었다.
“고마웠소!”
진가가, 느닷없는 갱아의 온순한 태도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니!
“내, 그간 엄한 이를 잡았소!”
“인정하오!”
“날 구해준, 생명의 은인을!”
“속상한 김에,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었소!”
“미안하오!”
얼굴을 붉히며, 창피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갱아의 다소곳한 모습에!
진가의 심장이, 제대로 요동질 쳤다.
‘이 여인, 제법 예뻤었구나!’
그날!
그렇게 아침 해가 뜨면서부터!
진가와 갱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미, 손안에, 갱아의 감촉이,
지문처럼 새겨진 진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진가가, 거친 듯 보여도,
섬세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내라 느낀,
갱아 또한!
그에게, 알게 모르게,
마음이 기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가가 갱아를 안았던, 그 모든 순간이,
오직,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따지고 보면, 그의 품이,
그다지 불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두어 번의 나쁜 손이 있었다지만,
자신을 남자로 오인해 생긴 일이었기에!
난봉꾼 성품이라, 단정하기는 일렀다.
아마도, 그녀가 여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그럴 리 없었을, 사내였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좋게 생각하다 보니!
진가라는 이 사내,
꽤나 듬직한 면이 있었기에!
갱아 또한,
극혐오에서 극 호감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어어?!”
“뭐지?”
“저 짝 분위기가, 왜 저리 어색하고 뻘쭘하고!”
“어째서, 보는 내가, 속이 미식거리는 거지?!”
간담이, 팔짱을 끼고,
원인 모르게 올라오는 울렁증에, 옆을 보자니!
서늘은, 적현의 머리를,
귀여운 강아지 다루듯 곱게 쓰다듬으며!
눈꼴이 시리도록,
두 눈을 반달로 접고는,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우욱! 욱!!”
하여, 간담은, 괜스레 헛구역질 소리를 냈다.
여기, 저기!
뭔가, 홀로 된 그로서는,
적응 안 되는 묘한 기류들이 피어나고 있어!
속이 뒤집힌 것이었다.
“근데?!”
“저놈은 또 뭐야?!”
만사가 불만인, 지금의 간담의 시야 안에,
멀찍이 수상쩍은 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해안가가 바라다보이는,
낮은 구릉 위에 서 있던 범표의 뒤로!
무언가 꿍꿍이 있는 자태로,
아연이 몸을 한층 낮춘 채!
몰래 기어와 그의 뒤에 선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
정도 겸은 모두에게!
이 섬에는, 흑표인이라 불리는,
대단한 인간이 살지도 모르니!
만일, 인간의 모습이 보이거든,
섣불리, 가까이 가지 말라 일렀기에!
그들은, 그렇게!
범표의 모습이 보이자, 다가가지 않고!
정도 겸의 다음 행보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하다는 인간치곤?
몹시, 허접해 보이는 것은!
물론, 아연 탓이겠지?!
“하~악!!”
아연은, 다짜고짜 범표의 등에 올라타서는,
그의 귀와 머리를 마구 물어뜯고 있었다.
물론, 아연이 뒤따르던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범표는 그냥 두었었다.
말린다고, 들을 이가 아니었기에!
그런데, 이리 따라와서까지,
이렇듯 괴롭힐 줄이야!!
“아~아!!”
범표는 고개를 누르면, 누르는 대로,
이쪽! 저쪽! 재치면, 재치는 대로!
무력하게 반응하며,
그저, 아연이 하는 대로 두었다.
그러니!
멀리 떨어져 지켜보던 이들의 눈엔,
허접스러울 수밖에!
“대체? 누가? 뭐가?”
“대단한 인간이라는 거지?”
간담이 유심히 보며, 지껄인 말에,
서늘이 한쪽 눈으로 슥 보며, 말을 보탰다.
“딱 봐도!”
“저 쬐깐한 이가, 그 흑표인인 갑네!”
“저보다 더 큰 덩치를 그냥 막!”
“떡 주무르듯이! 물고, 치고!”
“하! 힘이 마냥 장사인 갑네!?”
“그치? 색시?!”
서늘이 적현의 귀를 간지럽히자!
적현이 참다 참다,
서늘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적당히 해라!”
“뒈지고 싶지 않으면?!”
“오!! 귀여워!!”
적현에게 험한 말을 들을 때마다,
서늘은, 그녀를 더욱 귀여워하였다.
마치, 겁 없이 물고 덤비는,
새끼 강아지일수록!
이빨 자국이 살에 찍히는 재미로,
더 격렬하게 데리고 놀고 싶은 마음처럼!
서늘은, 유독 그러했다.
사나운 동물 길들이는 것을,
그렇게 재미있어했다.
“어?! 둘이네?!”
갱아도, 진가의 뒤에서 목을 내밀고,
새로이 출현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남장한 저 자태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였다.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뚜렷이 잘 보이지 않았어도!
십수 년을 바로 곁에서 보아왔으니,
육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어찌 없으랴!
혹시?!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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