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91 話

“연아!!”
일단,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정도 겸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윤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딸을,
진중하게 불러보았다.
하여, 갱아와 뒤엉켜 울던 아연이,
오랜만에 마주한 아버지, 겸에게,
예를 갖추어 섰다.
“아버님!!”
“무탈하니, 되었다!”
“무탈하니, 되었어!!”
“흐윽!!”
아연이, 눈물을 훔치며, 겸의 품에 안기자!
그는, 아연의 어깨너머에 서 있는,
범표를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약속을, 지켜주었군!”
범표는, 말없이 목례를 하였다.
맹목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엔?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행한 행동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였다.
차라리, 넙죽! 죄송하다고!?
무릎이라도, 먼저 꿇을까?!
만일, 죽여달라고? 하소연을 한다면?
어쩌면, 정말, 죽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응! 그 말만은 삼가도록 하자!’
의연한 그의 표정과는 달리,
범표의 속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장차, 장인 될 이를 마주한 사위들의,
흔한 마음가짐이었으리라!
또한!
이미, 저지른 일에도 불구하고,
만일, 아연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로선,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범표와 마찬가지로!
온갖 잡생각들로,
이미 머리가 폭발할 것 같던 진가는!
혼자 마음의 죄를 짓고!
혼자 단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여!
정말, 생뚱맞게도!
“미안하다, 야살아!!”
“나,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고 말았다!”
아연의 앞에, ‘털썩!’
터무니없게도, 무릎을 꿇고 말았다.
“헉!!”
이에, 간담은 화들짝 놀라고,
서늘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어어! 마음이?”
“결국! 그리 간 게로군!!”
“암! 육정은, 못 이기지! 흠!”
마치, 여유 있는 어르신의 시선으로,
슬쩍 갱아를 스치고는!
자칭! 그의 색싯감,
적현에게로 눈을 돌렸다.
“난, 절대! 난봉 따윈 하지 않아!”
“너밖에 없다!”
서늘이, 칭찬을 바라는 마음으로,
슬며시 머리를 들이밀자!
“미친놈!!”
적현은, 도를 통달한 모양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웬만해야 대꾸를 하든지 하지!
이 미친놈은, 기어이!
나중에, 극악하게 독살하고 마리라!
그러한, 악독한 생각으로 말이다.
“어?! 감축? 드립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아연은, 보아하니,
자신에게 한 말인 듯하여!
낯설게 느껴지는 진가를 향해 되물었다.
좋아하는 여인을 찾았다니,
물론, 축복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그걸, 왜 처음 보는 자신에게 고백하면서,
무릎까지 꿇고, 죄인처럼 고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야살?!”
“네?!”
마치, 낯선 이를 보는 듯한 아연의 시선에,
진가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훗!”
그리고, 그 진위를 알고 있는 범표가,
작게 코웃음을 시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진가 또한 아는 얼굴이었다.
“엇?! 너는?!”
“아씨께서, 기억을 되찾으시긴 하셨는데!”
“흠! 그 잃었던 당시의 기억은?!”
“다시, 새까맣게 잃으셨다지!”
“뭐라?!”
“나와의 기억을 잃었다고?!”
“우리와의 기억을 잃었다고?”
“산채에서의?! 그 좋았던?!”
범표의 말에,
간담과 서늘 또한 울컥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마치, 배신자 보듯,
아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여! 그 어색한 순간을, 어쩌지 못하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아연이 범표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기억을 잃었었느냐!?”
“그리하여, 연락이 두절 되었었구나!”
“고생하였다!”
“고생하였어!”
정도 겸의 안타까움이 배가 된,
애달픈 목소리로 인하여!
산채의 이들은,
더 이상, 그 어떠한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간절했던 혈육의 재회인 듯하여!
차마, 어쭙잖게 낄 분위기가 아님을,
눈치로 파악한 것이었다.
“이 섬엔, 공기 중에 맹독이 퍼져있으니!”
“회포는, 배에 오른 뒤, 차차 하시지요!”
범표는, 정도 겸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며, 할 말을 하였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에!
아연은, 새삼,
범표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오?! 이런 면도 있었어?!’
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 둘만 있을 때는!?
그녀가 손안에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큼,
다소, 귀엽고 허약한 모습만을 보였었기에!
그때와는 딴판으로,
반듯해 보이는, 지금의 목소리와 태도가!
아연을 살짝 설레게 한 것이었다.
제법, 믿음직한 사내의 형색을,
갖추지 않았는가 말이다.
‘먹음직스럽게 시리!’
하여, 아연은 어서, 물고 빨아,
저 멀쩡한 얼굴에서, 귀를 돋게 만들고 싶었다.
대체, 무슨 심보인지,
그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 윤설이!
맑고 깨끗했었던 겸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못된 심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던 모양이었다.
“출항하라!”
모두가, 범표의 말에 따라!
서둘러 섬을 빠져나가, 배 위에 올랐다.
이제, 그들의 목적지는, 쉼 없이!
북방, 얼음궁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있었으니!
설기대의 호위를 받으며,
육로로 이동 중이던, 범설과 운이었다.
***
범설은, 한참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더니,
이제야 겨우, 시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침을 놓았었던 놈이,
보통 극악한 놈은 아니었던가 보다.
그를 이토록, 오래도록!
잔인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제, 좀 괜찮소?”
운반하기 좋도록,
범설은 운을 기절시켰었으나!
때가 되어, 일찍 눈이 떠진 운이!
괴로워하던 범설을, 곁에서 줄곧,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여, 범설은, 그제야,
운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할 수 있었는데!
“흠! 제법, 곱상하구나!”
그는, 물론!
운이 여인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보았었다.
하여, 남색을 터부시하는 남방의 궁에,
어찌, 후궁으로 들어가 있는지, 의아하였지만!
자질구레한 것들은 묻지 않았다.
이제, 흑치의 피를 손안에 넣은 이상,
북방의 왕좌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
그의 꿈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기분이 한창, 고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을, 할 셈이오?”
운은, 겸에게서 대략 들은 상황으로 유추하여,
말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왕의 옥새가 필요한, 병권을 장악하기 위해,
흑치의 피가 간절한 것이었고!
자신을 보위에 올려,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후,
아마도, 그 위에서 군림할 속셈일 터!
하여! 운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었는데!
“뭐? 왜?”
“남방의 왕은 살려, 네 앞에 데려다주랴?”
범설이 비웃듯 웃으며,
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죽고 못 살겠다 하면?”
“내, 그건 해 줄 수 있지!”
“내 일에, 협조만 잘한다면 말이다!”
운은, 대답 없이,
잠시, 마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일, 남방을 치기 위하여,
자신의 피가 필요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다시금, 잔혹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운은, 이상하게도,
선천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대략, 삶에 대한 집착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하여, 그의 목숨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다면?
매번, 주저 없이, 내놓으려 하였던 것이었다.
다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생긴,
단 하나의 집착으로는, 바로 한이었다.
그가 살아는 있는지!
살아, 자신을 향해 보내던,
그 달콤하고, 따사로운 눈빛을!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그의 집착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있어서도, 아니 되고!
운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순간의 한은,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으며!
아마도, 북방의 침입이 있게 된다면,
그의 안위는 불투명할 것이 자명하였기에!
하여! 운은, 기회를 보아,
세상을 등질 생각을 하였다.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흑표인이, 당분간은!
흑치의 피로 왕위를 찬탈하여,
군대를 휘두르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내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묻겠소!”
“전쟁을, 아니 하면, 아니 되겠소?”
운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범설은 어림짐작하며, 점잖게 위협하였다.
“네가, 네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넌, 생불사가 되는 거다!”
“훗! 그렇게 되면?!”
“음! 남방의 왕은,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게 되나?!”
범설은, 운을 향해, 섬뜩한 비소를 올리고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
그리곤, 마차의 밖으로 나가,
말 위에 올랐다.
이제, 시력도 회복을 했으니,
신나게 말을 타고 달릴 일만 남은 것이었다.
‘생불사라?!’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의식 없이, 숨만 쉬는 인간!
자신이 의식이 있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편이 나은가?
아니면,
의식을 잃은 채, 조종당하며!?
평생을 허수아비로,
숨만 붙어 있는 편이 나은가?
물론, 후자는, 너무도 비참할 것이다.
‘어쩌나?!’
운은, 끊을 수도 없는, 이 질긴 생명이,
그저, 저주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 애썼던!
지극했던 한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
“으으!”
근 사흘 만에, 한이 눈을 떴다.
“어의!!”
하여, 그 곁을 줄곧 지키던 비류가,
기쁜 마음으로, 졸고 있던 어의를 깨웠다.
“전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마치,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듯!
어의는, 한의 눈이며, 맥을 살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으윽!!”
한은, 대답 대신,
극심한 고통으로, 인상을 일그러뜨렸고!
비류는, 그보다 더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어의를 노려보았다.
한이 아프지 않도록, 뭘 좀 하라고!
하여! 탕약보다는,
시침이 더욱 우월한 효능이 있기에!
어의는, 홍 의관을 불러오라 청하였다.
“마취의 시침은, 홍 의관이 전문인지라!”
언제, 전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왕을 살려냈기에!
홍 의관은, 나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부른 것은,
그 이유가 다가 아니었다.
물론, 대다수의 어의가,
마취가 되는 혈 자리를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사람의 사지를 못 쓰게 하는 것이라,
다소, 사특한 의술이라 여겨지던 때라!
하물며!
왕에게 시술하기에는, 뭔가 꺼려졌었기에!
어의는 자신의 손을, 굳이 더럽히는 대신!
이미, 마음대로 시침한바 있는 홍 의관에게,
그 책임을 지우기로 한 모양이었다.
“잠시, 시침하겠나이다!”
홍 의관이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들어오자,
비류는 그 너머의 적염을 살폈다.
뭔가, 몹시 불편한 표정이었기에!
그녀가 그저,
몸이 아파 그런 것으로만 여기고 말았으나!
정작, 적염은,
저 의관 놈을, 당장 죽여버릴까? 말까로!
다소, 흉흉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정말, 속된 말로,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병약한 놈 주제에!
하찮은 바늘 하나 믿고,
감히, 자신을 희롱하다니!!
단칼에 그 목을 ‘쭈욱~!’ 그어!
목과 몸을 분리해 버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여!
적염은, 정말!
당장에라도 베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하께서, 눈을 뜨셨다!”
비류가, 골몰한 적염을 향해 말을 붙였다.
“예!”
그러자, 잠시 살의를 접고!
그녀 또한 침상 가까이로 다가와,
기쁜 마음으로, 한을 바라보았다.
“전하!!”
적염의 사나웠던 눈매가, 순간, 유순해지자!
“시침하겠나이다!”
“잠시, 고통을 멎게 해 줄 것이옵니다!”
홍 의관은, 적염의 시선을 가로채,
재빨리 한에게 마취의 침을 놓았다.
자신의 것으로 점찍은 여인이,
다른 남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못내, 신경이 쓰였던 탓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그 찰나의 순간에!
그간 왜인지 모르게, 찜찜하였었던,
홍 의관의 눈빛에 담긴 숨은 저의를!
기어이!
비류가, 읽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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