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96 話

진가는, 순식간에 그에게 쏟아진 관심들에,
우물쭈물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조금 전, 갑자기 뇌리를 스치던,
자화 자칭! 본인 ‘난봉꾼’설을 떠올리며!
이러한, 서툰 감정에 대응할 길이 만무해,
갱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급격히 떨려왔다.
자신이 만일, 또?!
엄한 여인에게 멋대로 마음을 품었다가,
금세 배신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본인에 대한 신뢰가 서지 않자!
그는, 정도 겸의 물음에, 선뜻 남자답게,
호기로운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망설이는 진가 대신,
갱아가 무릎을 꿇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닙니다, 통감 마님!”
“당치도 않사옵니다!”
“아?!”
진가의 눈빛이,
혼란에서 충격으로 변하였다.
아무리, 자신이 대답을 머뭇거렸다고는 하나,
저리, 칼같이 대뜸 끊어낼 줄이야!
어느 의미로는,
상처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정녕?!”
“그러하냐?!”
정도 겸이, 갱아를 안쓰럽다는 듯 보며,
재차 물었다.
“예! 정녕!”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갱아의 필사적인 대답을 들은 정도 겸은!
‘하~아!’
‘그래, 내가 성급하였구나!’
갱아의 지금 심정도 이해가 가는 바였기에!
그는, 마치 ‘못난 놈!’이라 말하는 눈빛으로,
진가를 스쳤다가, 갱아를 일으켰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흠!”
하고는! 뒷짐을 지고 가려다 말고,
진가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예?!”
여전히, 얼떨떨해 서 있던 진가가,
송구한 눈빛으로, 정도 겸을 힐끗거렸다.
“윗마을 갑돌이와 아랫마을 갑순이를 아나?”
“예?!”
갑자기?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둘은, 서로 깊이 연모하였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지!”
“왜 그런 줄 아나?!”
“예?!”
대뜸 하는!
전혀 느닷없는 정도 겸의 이야기에!
진가는 당황한 채,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안 그런 척했기 때문이라네!”
“헛~흠!!”
정도 겸이,
불편한 기색으로 선실 안으로 사라지자!
또 만담꾼처럼, 둘이 쏙 붙어,
간담과 서늘은 속닥거리기 시작하였다.
“근데, 아랫마을이면? 조롱이 마을?!”
“거기, 갑순이라는 처자가 있었어?”
“예쁠까?”
“아무렴!”
“저 지체 높으신 통감 영감까지 알 정도면?”
“보통 반반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
“음!! 내 역시!”
“진작, 음흉한 줄 알았다니까!!”
아연이 기가 찬 듯한 얼굴로,
그런 서늘과 간담을 바라보자!
모지리 같은 둘의 대화에,
어느덧 익숙한 갱아가!
진가의 시선을 피한 채,
아연을 밀며, 자리를 파하였다.
“아씨, 저리로 가서!”
“저랑 말씀 좀 해요!”
“어?! 응!!”
그리고, 그 자리에 선 진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은 채,
갱아의 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도통,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였다.
“쯧쯧쯧!”
“산채 망신일세!!”
이 틈을 놓칠세라, 간담과 서늘은,
마치 진가가,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듯!
손가락질까지 서슴없이 하며,
마구 힐난하고 나섰다.
“아니!! 입이 붙었어?!”
“저 여인을 연모한다!”
“아, 왜 말을 못 해요!! 어?!”
“사내가 되어가지고!! 에이그!”
“내가 다 답답허네~!!”
‘스스슥!’
서늘은, 그와 좀 떨어진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적현을 잡아당겼다.
“안 그래? 색시?!”
“퉤!!”
적현은, 말도 아까워,
그냥, 서늘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다.
“아, 또! 보는 이들도 많은데!”
“거, 애정 표현이 너무 과한 거 아녀!?”
“흐흐흐!”
눈이 반달처럼 접혀,
뇌가 없는 짐승처럼, 웃어버리는 서늘을 향해!
“퉤!!”
간담 또한, 재수 없다는 감정을 소복이 담아,
침을 뱉으며,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떴다.
“아, 뭔, 낙타들이여!?”
“얼굴에 침 뱉으면, 그렇게들 좋아해?! 허!!”
이제, 둘의 서슬 퍼런 살 떨리는,
애정행각이 벌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탁! 탁! 탁!’
‘퍽! 퍽! 퍽!’
서늘과 적현은,
주로, 무공으로 치고 박고 싸우며!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보통은, 아무래도!?
맞아도 별 타격이 없는,
서늘의 승리로 끝이 나긴 하였지만!
적현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손이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만 아니었다면?
진즉, 헤엄을 쳐서라도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흐윽!!”
분하였다!
이번에도, 서늘의 팔에, 목이 감긴 채,
승부가 났기 때문이었다.
“색시!”
“설마?! 저 음흉한 영감 같은?”
서늘은, 적현의 귀를 간지럽히며 물었다.
“내가 혼인을 허락받아야 할?”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서늘의 물음에,
가슴이 먹먹해진 적현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비류와 적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로 치자면, 형제나 자매쯤 될 테지만,
부모, 일가친척 하나 없는 그녀에게!
그들은, 부모 이상으로,
그녀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였다.
하여, 그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있어!”
***
궁 안, 왕의 침전 앞에는!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굵직굵직한 자리를 맡고 있는 대신들로!
어느덧, 북적이고 있었다.
한이 어느 정도 차도가 있자,
그가 잠이 든 틈을 이용해!
비류의 지휘 아래,
모두가 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들을 하였음에도!
조아국의 통감, 정도 겸의 부재로 인해,
조정에는 한바탕 혼란이 일었다.
하여, 그 사실 규명을 위하여!
깨어나지 않고 있는 왕을 알현하겠다,
이리, 고집들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는데!
‘탁~!’
잠잠하던 침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팔짱 낀 사이로 검을 보이며, 비류가 나와 섰다.
“어, 비, 비류 대장!”
영의 대감이 몸을 뒤로 빼며,
가장 먼저, 비류를 알아보았다.
그에게 당한 적이 많아!
그 얼굴만 보아도, 각인된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영의 대감과 마찬가지로,
대신 들이 하나둘, 뒷걸음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의 명성이 보통이래야 말이다.
이제껏, 비류는,
왕이 부여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또는, 다 쓸어버릴 것 같아서였기도 하였고!
하여, 중차대한 일을 전하거나, 고하는 일은,
모두 대전 내관인 왕솔이 전담하였었다.
하지만, 한이 생사를 오가며,
누워있는 시기인 만큼!
하찮은 잡음을 단박에 잠재우기 위하여!
그리고, 정신이 드문드문 들었던 때에,
정도 겸을 역적으로 몰지 말라는!
한이 한 간곡한 당부의 말을 전하려,
그가 전면에, 기꺼이 나선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정빈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었다.
“북방의 침입이 있었소!”
비류가 입을 열자,
좌중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어버렸다.
말을 하며, 뜬 그의 눈빛은!
마치, 누구든! 입만 달싹해도,
죽이겠다는 살의로 가득했으며!
말을 하는, 그 입술은!
마치, 누구든! 거역하면 베어버릴 것처럼,
칼날을 물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여!”
“전하께서, 상처를 입으셨고!”
“통감 대감이 납치를 당하셨소!”
“허~?! 저런!”
대신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지자!
“쉿!”
비류의 위협적인 짧고 낮은 단음에,
모두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그가 안 가냐는 듯한 눈짓으로,
‘스윽’ 훑으니!
눈치 빠른 영의 대감부터,
허겁지겁, 발을 빼기 시작하였다.
“그, 그, 그럼!”
“전하께서, 쾌차하신 후에!!”
“그, 그럽시다!”
“이, 일단은, 퇴청들 하십시다!”
그렇게, 하나둘 서둘러 자리를 파하자,
비류는 침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탕약을 들고 걸어오고 있는 홍 의관과,
홍 대제학의 의문스러운 눈빛을 간파하였는데!
‘탁!’
비류가 부러, 문을 세게 닫고 들어가자,
홍 대제학이 홍 의관을 불러 세웠다.
“이번에, 아주 큰 공을 세웠더구나!”
“하?! 이거, 이거?!”
“지체 높으신, 대제학께서!”
“어찌, 이 궁 안에서?”
“미천한 의관인 제게, 아는 체를 다 하시고?”
그가 뜻을 거슬러, 의관이 된 이후로는,
집안에서조차 아는 체를 하지 않던 아버지가!
보는 눈이 많고, 듣는 이 많은,
이 궁 안에서, 아는 체를 다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쯧!”
“비꼬는 것이냐?!”
“어찌, 제가?!”
홍 의관은, 한껏 대놓고 비꼬는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 홍 국군을 바라보았다.
“전하의 목숨을 살린 대가로!”
“네가, 어쩌면?!”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가 있겠더구나!?”
“하!”
“가문?!”
이제야, 자신이, 가문을 위해,
이용 가치가 생겼다, 그리 말씀하시는 것인가?!
“전하께서, 마땅히 네게 상을 내리실 것이니!”
“마침, 네가 전하께 청해야 할 일이 있다!”
“허니,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오너라!”
홍 국군이 주위를 살피며, 자리를 뜨자,
홍 의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상?!”
***
궁에 들어서자마자,
적염은 적윤부터 찾았다.
“괜찮아?!”
“부장!!”
적윤은, 여전히 침상에 몸이 묶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스삭!’
하여, 보자마자,
적염이 단칼로 끊어냈다.
듣자 하니, 자신을 찾겠다고,
안정하지 못해, 묶어 놓았다 하였으니!
자신을 본 이상,
더 이상 무리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예,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부장은?”
“나도! 나도 괜찮다!”
‘하~아!’
둘은, 서로의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며,
안심하다가!
“셋째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날, 포구에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혜민서에는?!”
혜민서에는,
그때 죽어 나간 적염단원의 시체들이!
아직, 장례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적현의 소식을 알아보라 하였으나!
아직, 그 누구도,
그녀의 소식을 가져온 이는 없었다 말하였다.
“설마?!”
바다에 빠져?
생을 달리한 것인가?
“아니야!!”
적염은 반짝 불길한 생각을 떠올리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흥! 그럴 리 없지!”
“네, 그럴 리 없을 겁니다!”
적윤 또한!
절대, 그럴 리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적염의 말에 맹목적으로 동의하였다.
“일단, 하늘에 적매를 띄워보자!”
“예! 부장!”
“참!”
“그전에, 손봐 줄 이가 있다!”
***
‘턱!’
적염이 바지를 걷어,
의자 위에 걸치며, 맨살을 내놓았다.
“허! 오늘은 어인일로!”
“이리, 순순히?!”
홍 의관은, 찾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내의원을 찾은 적염이,
제법 달가운 듯!
신나서 침통을 챙기며,
적염의 앞에 가까이 앉았다.
“그럼! 시침을 시작하겠소!”
“잠깐!”
홍 의관이, 침을 들자!
‘챙!’
천장에서 낙엽처럼 사뿐히 내려와 선 적윤이,
검을 뽑아 들고, 홍 의관의 목을 겨누었다.
“자! 이제 시작해!”
적염이, 짐짓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홍 의관을 노려보며, 속삭였다.
“엄한 곳에, 놓았다가는!?”
“이번에야말로, 너의 사지는 분리되는 거야!”
“아, 알겠소!”
“이, 일단, 검을 내 목에서 치우라 하시오!”
홍 의관은, 짐짓 겁먹은 얼굴로,
날 선 검에 닿아있는 자신의 목을 추슬렀다.
“이, 이래선!?”
“손이 떨려?!”
“내 어쩔 수 없이?!”
“엄한 곳에, 침을 놓고야 말겠소!”
‘휘~이~익!’
“어딜!!”
현란한, 검 바람 소리를 내며,
적윤은, 홍 의관의 목을 저미듯이 얇게 긋고는!
그 등에 검을 겨눈 채, 한 발짝 물러났다.
“아윽!!”
피가 흘러나오지도 않고,
그저 피부에 붉게 머금은 듯, 배어있었다.
이 얼마나, 살 떨리는 솜씨인가 말이다.
하여, 홍 의관은,
말없이 고분고분, 침을 놓기 시작하였다.
그는 적염을,
결코, 쉬운 여인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얻을지,
비로소, 생각이 섰다.
아버지, 홍 국군의 조언으로 말이다.
‘흣!’
얻기 힘든 것일수록,
얻은 후의 희열은 배가 되는 법!
적염은, 그가 무슨 꿍꿍이를 감추고,
웃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입가에 핀,
기분 나쁘고도 불길한 웃음꽃을 발견하고는!
입술을 잘게 물었다.
‘안 되겠네!’
‘살려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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