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99 話

‘하~!’
기어이,
아연이 범표의 입술을 탐하려 들자!
‘꿀꺽!’
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범표는, 가까스로 침을 삼키며,
그 손목을 턱 잡고, 말리고야 말았다.
“아, 안돼!!”
“흐음?!”
거부당한 아연이 눈을 길게 뜨며,
범표를 곱게 흘기듯 보았다.
“안 싫은 거, 다 알아!!”
“그, 그래도!!”
“지, 지금은 안 돼!!”
“왜 안 돼?!”
“어?!”
아연의 입술이, 순간의 틈을 타,
짧게 범표의 입술을 스쳤다.
“헙!”
“네가 뭔데?!”
“왜? 내 것을 못 보게 해?”
“뭐?! 그, 그야, 내 것?! 응?!”
“그 네 것이, 내 것이니까?!”
듣고 보면, 바른 말이었지만,
말이 꼬여버린 범표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아무튼! 오늘은 얌전히 계시죠!”
“부인?!”
하며, 다소 부끄러운 말을 내뱉고는,
잽싸게 몸을 틀어, 문을 나가자!
“허! 감히, 꽁무니를 빼면서?!”
“얻다 대고 부인이야?!”
“에잇!!”
“나, 이 혼인 안 해!!”
골이 난 아연이!
결국은, 정도 겸이 그리 우려하였었던,
협박성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못내, 배신감으로 온몸에 전율이 돋은 범표가,
얼굴을 굳히고 돌아보았다.
“뭐?!”
입 밖에 낸 말엔, 저마다의 무게가 있는 법!
그 스스로는, 마음에 없는 말을,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고 믿는 편이었기에!
범표는, 여인의 실없이 가벼운 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하여, 자신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하~아!!”
옆 선실에서, 항로를 보고 있던 정도 겸이,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딴에는 조심한다고, 소곤대었어도!
마치, 개미가 소리치듯이 웅얼웅얼,
귀에 들려와 박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작된 것이로구나!’
말의 번복! 마음의 변심!
사람에게 화를 돋우는,
그의 여식, 아연의 투정이!
하여, 그는 ‘벌컥!’ 선실 문을 열었다.
“자네!”
“잠깐, 나 좀 보게!”
느닷없이 열린 문에,
범표와 아연, 둘 다 놀라, 순간 얼어버렸다가!
“예!?”
“아, 예, 어르신!”
이내, 정신을 차린 범표가,
공손히 답을 하고는!
그와 반대쪽에 서 있는 아연에게로 성큼성큼!
굳은 얼굴로 다가갔다.
물론, 다른 이를 볼 때의 매서움을,
몇 할 담지도 않은!
그로서는, 나름 부드러운 표정이었으나!
‘흐억!’
범표의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겁 없이 간이 부어있는 아연을,
움찔하게 할 정도의 위압은 되었다.
하여, 아연이 저도 모르게,
기에 눌려 뒷걸음질을 치자!
범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연의 목과 허리를 힘껏 틀어 안고는!
그녀가 감히 숨도 토해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자극으로, 그 입을 막기 시작하였다.
이제껏, 안으면 부서질까!
힘주면 아플까!
노심초사에!
그녀를 안을 때면,
언제나 부드럽게 대하려 노력하였었던?!
기존의 상냥한 범표와는 또 다른!
반항할 수 없는, 박력 있는 모습에,
기가 빨린 아연은, 금세 다리가 풀려버렸다.
‘흐읏!’
그런 그녀를 더욱 힘주어 안아,
벽에 붙여 세우고는!
범표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직이 입을 떼었다.
“다시는, 용서 안 해!”
“그런 말 하는, 나쁜 입술은!”
그리곤!
어안이 벙벙해, 놀라 있는 아연의 입술과 턱을,
엄지로 살짝 눌렀다.
“대답!!”
“응?”
“으응!!”
범표가 온몸에 두르고 있는 탄탄한 근육마저도!
품에 폭 안겨있는 그녀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옥죄는 듯하였고!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거역할 수 없는 자극을 주는 범표에!
아연은 그저, 다소곳이 얼굴을 붉히고는,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연의 고개가 대답과 함께 살짝 끄덕여지자!
범표는 마지막으로!
아연의 귀와 목덜미의 중간을,
이빨로 세게 물어버렸다.
“흐읏!!”
온몸에 짜릿하게 흐르는 전율로,
아연의 입에서, 조그맣게 탄식이 새어 나오자!
범표는 재빨리, 그 입술에 또다시,
그의 입술을 대었다.
이번에는, 아연이 안달 날만큼,
천천히, 부드러운 달콤함을 선사하였다.
그녀가 범표와,
무아지경에 빠지기 직전의 전조와도 같은,
야릇하고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범표는, 자신이 자극을 주면 주는 대로,
애정을 주면 주는 대로!
숨김없이 투영되어 나오는,
아연의 솔직한 감정 표현들이 좋았다.
‘훗! 귀여워 가지고!’
홍조 띤 볼!
감기 직전의 놀란 토끼 눈!
그리고,
온전히 품에 안겨, 감각에 떨리는 작은 몸!
당장이라도 안고 뒹굴고 싶은,
불처럼 타오르는 정염을 겨우 가라앉히고서!
범표는, 꽤나 중요한 약속이라도 하듯이,
엄숙할 정도로 속삭였다.
“혼인하면?!”
“혼인만 하면, 매일 보게 해 줄게!”
“오래도록!!”
“하루종일!!”
그리고, 극도의 자제력을 보이며,
아연을 선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쾅!’
“미, 미쳤나 봐!!”
“옆에 아버지 계시다면서!!”
아연은, 그제야!
뒤늦게, 얼마 안 되는 이성을 되찾고는!
뜨겁게 익어가고 있는 그녀의 양 볼에,
두 손을 얹고서!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짜릿한 전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왜인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부끄러운 감정에,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뭐야! 난데없이 저돌적이야!!’
‘심장 떨리게!!’
그래, 맨 처음,
둘이 애정 관계를 시작할 때의 그 모습이었다.
그녀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온몸으로 휘감고,
정신도 못 차리게 굴었던 때의!
하지만, 그녀가 그의 꼬리와 귀를 본 이후로는,
상황이 역전되었었다.
먼저 다가가, 유혹한 쪽도 그녀였었고!
그 어떤, 반항이나 힘도 못 쓰고,
아연에게 휘둘린 쪽은 범표였었다.
그랬던 그가!
다시, 반격을 해 온 것이었다.
그녀가 꼼짝도 할 수 없도록!
둘의 약속을 감히, 거역할 수 없도록!
‘하! 많이 컸네, 우리 망남이!’
아마도, 섬에서 둘만 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에 그랬을 것이었다.
옆 선실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계셨고,
정식으로 혼인 결정이 난 후라!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게감에 눌린 어깨가,
살짝은 버거웠기 때문이었을까?
‘그나저나? 혼인이라?!’
‘내가?!’
***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정도 겸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직하게 들어와 선 범표를 흘끗 보았다.
심장과 맥의 박동은, 요동치듯 부산스러운데!
무려, 태연한 얼굴로,
얼굴색까지 싹 정리하고 서 있는!
자신의 사위가, 썩 대견하달까?!
‘흠! 녀석!’
‘쪼로록!’
숨이라도 돌리라고,
정도 겸은, 차 한잔을 따라주었다.
“가능할 것 같은가?!”
“예?”
“무엇이?!”
범표가, 타들어 가던 목을 차로 식히며,
예의를 갖춰 바라보았다.
“혼인의 조건!”
“아!?”
범표는, 그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정도 겸이, 어찌하여!?
그런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을,
이상하게, 혼인의 조건으로 내걸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개미의 작디작은 속삭임이,
여지없이 들렸던 탓에!
굳이, 대답을 듣지 않고서도,
자신의 사위가, 자신의 딸을!
지금 방금!
어찌 굴복시켰는지, 익히 알 수 있었으나!
그는 짓궂게도 굳이, 물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 딸과!?”
“결국, 혼인할 수 있겠는가?!”
“훗!”
“물론입니다!”
“자신만만하군!?”
정도 겸의 말에는,
아직 자신의 딸을 다 알지는 못하고 있다는,
내재 된 우려가 있었으나!
“다!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니!”
“심려 놓으시지요!”
범표에겐, 아연이 결코,
그를 놓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세상에 귀가 돋고, 꼬리가 나는,
복스러운 털을 가진 흑표인이 널려있지 않는 한!
아연을 그 누구에게라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만! 한 놈이 더 있었잖아!?’
하지만, 그 순간!
범표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몹시도 불길한 면상 하나가 있었으니!
그날, 아연을,
헤치려 했었는지, 살리려 했었는지!?
무척이나, 모호한 짓을 행하고 달아난,
범설의 얼굴이었다.
하여, 범표는 방금 결심하였다.
만일, 그와 다시 만날 일이 생긴다면,
그 숨부터 끊어놓으리라고!
“듣고 있나?”
“아, 예!”
정도 겸이, 이번 여정에서,
생각지도 않은 아연과 조우한 일은,
무척이나 반가운 이변이었다.
그가 남방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북방으로 온 까닭은!
전쟁을 막아, 민생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의 목숨은,
희생되어 마땅하다는 결론을 짓고,
떠난 여정이었기에!
그에겐,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내일 북방에 당도하면?”
“그 즉시 혼례를 올리고!”
“다시, 연이를 데리고 남방으로 떠나주게!”
사시사철 걱정인 딸을,
이렇듯, 듬직한 사위에게 맡기고 갈 수 있어!
그로서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북방에 당도해보면 알겠지만!
아마도, 아들인 운은,
이미 오로국의 궁에 당도해 있으리라!
그의 앞마당에 서 있었다는,
흑표인의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정도 겸은, 이미 예상하였었다.
흑표인은 어떻게 해서든!
흑치의 피인, 운을 손에 넣어,
얼음궁으로 향할 것이고!
아무리 날고 기는 비호단이라 할지라도,
그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정도 겸은, 적현을 통해,
한의 안위를 걱정하였던 것이었고!
늦지 않은 시기에 북방에 도착해,
아들을 도우려!
그렇게, 부랴부랴,
남방을 떠나온 것이었다.
따뜻한 흑치의 피가 필요한 만큼,
아들에겐, 당장 생명의 위협은 없을 테니!
걱정인 것은,
돌아갈 곳 없는 딸의 신세였었는데!
그러한 고민도 모두 털어버릴 수 있어,
지금은, 어쩌면, 홀가분한 상태였다.
“허면? 어르신께서는?”
“난, 얼음궁으로 가, 할 일이 있네!”
“아!!”
정도 겸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물끄러미 범표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날 그리 부를 텐가?”
“예?!”
“내 딸을 부인이라 부르고?!”
“날 어르신이라 한다?!”
“대관절, 어느 나라의 법도인지!!”
“쯧쯧쯧!”
정도 겸은,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한 티를 내었다.
“앞으로는!”
“법도 상, 예도 상의 호칭으로 정정하게!”
“아! 예!”
“헌데, 제가, 감히 그리 불러도?!”
범표는, 좀 전에, 자신이 장난삼아,
아연을 부인이라 불렀던 것을 듣고 저러나?
싶은 생각에!
살짝, 낯이 뜨거워졌다.
그가 생각해도,
그 말은, 아직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아연이 자신을 ‘쥔장’, ‘망남이’ 대신,
‘서방님’이라 부른다고 해도!
아마도, 닭살이 돋아날 지경일 것이었다.
“해보게!!”
“아? 버님?!”
“음!!”
정도 겸은, 만족감에,
입꼬리가 살짝 상승하였다.
“내 죽기 전에!”
“사위한테 그 소리 한번은 듣고 죽어야지!”
정도 겸의 장난스러운 빈말 같은 문장 속에,
분명 뼈를 갈아 넣은 진심이 들어있었기에!
범표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무슨 각오를 하신 것입니까?”
“대체?!”
범표가, 정도 겸과의 첫 만남에서,
전쟁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의 눈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도 겸의 대답이,
그때와 변함없이!
그에겐,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부인이 될 아연과,
그녀의 가족의 안위가!
이젠!
그에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신경 쓸 것 없네!”
“자네는, 오직, 내 딸아이에게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르신!”
범표는, 다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어,
호칭을 정정하고서 말을 이어갔다.
“아니!!”
“아버님의 집안일이!”
“이젠, 곧 저의 일이니까요!”
“아버님의 안위 또한!”
“제가 손 놓을 수 없는 일이지요!”
범표의 뜻밖의 단호함에!
살짝 얼굴이 굳은 정도 겸의 입가에,
이내, 미소가 피어올랐다.
“흠~!”
“역시, 내가!”
“딸 복보다는 사위 복이 있었나 보군!’
그리고, 이내, 흐뭇한 듯!
봐도 봐도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사위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날 위해 할 일은!”
“내 딸을 책임져 주는 일일세!”
“그 밖에, 더 할 일은 없어!”
“허니, 배가 육지에 닿거든!”
“나의 당부를 명심하게!!”
“혼례를 치르는 즉시!”
“내 딸과 남방으로 떠나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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