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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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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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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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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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나 폭주 (7)

DUMMY

그때,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나와 오멜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던 카일이 입을 열었다.


“루비랑 오멜이 하는 말이 뭔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여기에 있는 원본 말고 사본은 아직 남아 있는 거죠?”

“...맞아. 카일 말대로 기록고에 있는 원본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해도 라이셀이 가지고 간 사본은 있어. 로웨나가 이 탐구자의 기록을 본 것이 아닌 이상 사본의 존재는 모를 거야.”

“탐구자의 기록을 다른 너희가 아닌 누군가가 본 적은 없네. 열람 기록이 남게 되니까 확실하지.”


카일이 말한 대로 라이셀은 이곳에서 떠나면서 그 마법서의 사본을 챙겨 갔다. 즉··· 사본은 라이셀- 에본윙에게 있다.

물론 이미 천 년 전의 일이다. 그들이 사본을 여전히 잘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들은 다미안이 플로리스에게 보낸 편지도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었다. 직접 레티시아에게 부탁했을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마법서라면 여전히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국 낯선 사람인 우리에게 빼앗긴 셈이니 잘 보관하고 있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툼스크림 퀸으로 그것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 에본윙을 찾아서 그 행방을 알아야겠어.”

“아직 알아야 할 게 더 있으니까 말이야.”


옆에 카일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오멜은 충분히 이해한 듯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에본윙은 플로리스를 섬기는 집단으로 시작했다. 따라서 플로리스에 관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을 거다. 다미안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 플로리스에 대한 정보 중 하나였을 거고.

거기에 여전히 플로리스가 남겼다는 그 마법석에 대해서는 알아낸 것이 없었다. 심지어 탐구자의 기록에서도 마법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올리비아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마법석에 대한 것은 내 정체성에 대한 문제다. 이것 역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의 행방과 더불어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에본윙과 만나야만 한다.


-


“오멜, 이제 떠나도 되겠지? 더 필요한 거는 없어?”

“필요한 거라면··· 솔직히 말해서 저 기록고에 있는 모든 탐구자의 기록을 샅샅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기는 하지만.”

“너는 정말···”

“으흑··· 루비 너는 내 마음을 공감하지 못해··· 탐구자들과 같은 학자로서 이 정도의 훌륭한 자료들은 찾기 힘들다니까. 이렇게 높은 수준의 연구 자료들이 이 지하에 묻혀 있다니··· 거기에 기록고가 무너진 이상 렘난티스를 통하지 않고서야 이 기록들은 읽기도 쉽지 않겠지. 아마 다시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을지도 몰라.”

“뭐,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인류의 번성과 마법의 진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라··· 탐구자들은 그들이 남긴 것들이 세상에 퍼지기를 바랐을까?”


결계가 설치된 방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심층을 빠져나갈 마지막 채비를 했다.

여전히 눈에서 미련이 잔뜩 묻어나오는 오멜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마지못해 로웨나가 무너뜨린 탐구자들의 기록고를 지나쳤다.


“그것은 질문인가?”

“그런 질문의 답도 알고 있어?”

“물론일세. 나는 위대한 탐구자가 남긴 위대한 마법 지능체니까.”

“그렇다면 말해줘봐.”


렘난티스는 중얼거리는 나의 말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끼어들었다.

그다지 답을 기대한 혼잣말은 아니었으나 막상 렘난티스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답이 무엇일지 조금은 흥미가 동했다.


“답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일세.”

“...정말? 이런 엄청난 것들을 남기고도 이것들이 퍼지든 묻히든 상관이 없었다고?”

“탐구자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가 보존되고 후대에 전해지길 바랐어. 하지만 그걸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지. 만약 그들의 연구 결과가 잘못된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 개인의 사욕에 쓰인다면 오히려 그것이 발견되지 않기를 원할 걸세.”


탐구자가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했다는 것은 여러 번 들었다. 레티시아가 에본윙의 독립을 허락해 준 것도 그것이 라이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그들의 유산은 당분간은 발견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네. 이런 마법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솔직히 조금 오싹하다. 그곳에는 그다지 나은 미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멜?”


렘난티스와 이야기하던 중에 함께 이동하던 오멜의 불빛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멜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서 우리가 지나왔던 심층의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무슨 소리라니··· 무섭게 무슨 말이야.”

“저도 들려요.”


갑자기 오멜이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어 가볍게 넘기려는 순간, 카일도 귀를 기울이며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카일까지··· 뭐가 들린다는 거야?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제법 먼 곳인데··· 오고 있어요.”

“...오고 있다고?”


항상 장난기 많고 활발했던 카일의 웃음기 없는 표정을 보니, 그게 시답잖은 장난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숨을 죽이고 등 뒤의 깜깜한 어둠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심층 터널에는 미묘하게 웅웅거리며 울리는 배경 노이즈가 있었다. 오멜과 카일은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쏴아··· 쏴아···


그러나 얼마나 집중했을까, 나는 간신히 천같은 것이 바닥에 쓸리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건 마치 긴 망토를 걸친 사람이 절뚝이는 것처럼 났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카일의 말대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분명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챙겨 넣었던 마법석 단검을 조용히 품속에서 빼내어 들었다. 탐구자의 마법 단검은 카일이 들고 있었다. 카일도 작은 손으로 그 단검의 손잡이를 힘껏 쥐는 것이 보였다.


-쏴아아···


그것이 가까워지며, 나는 그 소리에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들은 적이 있었던 소리였다. 그걸 넘어서 조금 직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들었던 소리였다.


‘블러드바인···?’


그럴 리 없다. 블러드바인은 분명히 우리의 싸움에서 죽었다. 입이 관통당하고, 배가 찢긴 상태에서 움직임이 멈춘 것을 분명히 확인했을 터다.

···아니, 그건 죽은 게 확실했나? 그저 입이 꿰뚫리고 배 한쪽이 찢겼을 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쉬이익···”

“내 뒤로 와. 오멜도, 카일도.”


내 왼쪽 팔은 여전히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급한 불은 껐으니 지상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회복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멜에게 회복을 받고 움직일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어둠 사이로 새빨간 구슬 같은 눈동자가 불길한 안광을 내며 나타났다.

그건 우리와 거리를 꽤 둔 상태로 우리를 노려보듯 가만히 멈춰 있었다. 녀석이 호흡을 할 때마다 입에서 쉬익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처음에 우리를 덮쳤던 것과는 다르게 녀석은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참을 우리를 노려보듯 눈동자가 멈춰 있을 뿐이었다.


-우직


그때, 침묵 사이를 커다란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건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가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나는 그런 힘겨운 소리 같았다. 그 불안한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직, 우지직···


터널 전체를 울리는 그 커다란 소리에 오멜은 조심스럽게 빛의 구체를 녀석을 향해 천천히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서야 블러드바인의 그 기다란 몸뚱이가 심층 양쪽의 기둥에 얽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들었던 삐그덕거리던 그 소리는 얽힌 양쪽의 기둥에서 균열이 생기며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 모두 뛰어!”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오멜의 외침을 따라 우리는 정신없이 우리가 내려왔던 심층의 출구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자 마자 등 뒤에서 마치 폭발이라도 난 듯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파편과 흙먼지가 터널을 따라 튀어 올랐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밑동이 박살이 난 채로 쓰러진 두 개의 기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천장의 아래에서 끝까지 우리를 노려보는 블러드바인의 새빨간 두 개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보였다.

그것 역시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더미에 곧 깔려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이런 거대한 심층이라는 터널은 엄청난 무게를 두 줄로 줄지어 세워진 기둥들이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블러드바인이 부순 것이 그중 두 개의 기둥이라 할지라도 터지듯 부서진 거대한 기둥에서 시작된 균열은 순식간에 심층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 달리는 우리와 경쟁하듯 터널의 벽을 따라 균열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걸 본 나에게,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 잠깐. 이대로 심층이 무너지는 거야?”

“아무리 봐도 이건 못 견뎌. 이대로라면 터널 전체가 붕괴할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냐니?”

“게이트포트 남쪽에는 잊혀진 자들이 살고 있어. 특히 이 심층 바로 위에는···”


심층은 거대한 공동이다. 이 정도 규모의 지하 공동이 일순간에 내려앉으면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멀쩡할 리가 없다.


“그, 그런···”


카일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듯 그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미 균형이 무너진 채로 붕괴는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갈라진 균열은 더 이상 탐구자들의 지었던 마을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떠올려. 무슨 방법이라도 떠올려란 말이야. 드래곤이니 뭐니, 모두가 대단하다는 듯 말하지만 정작 이럴 때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건가.


“크흠.”


렘난티스는 우리와 같은 속도로 둥실둥실 뜬 채로 여전히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렘난티스는 줄곧 자신에게 직접적인 요청이 있거나 질문이 있을 때에만 움직이곤 했다. 나는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는 심정으로 렘난티스에게 소리쳤다.


“렘난티스! 무슨 방법이라도 없어?”

“그 질문에는 없지는 않다고 대답하지.”

“그게 뭔데?! 빨리 말해···! 시간이 없으니까!”

“지금이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나도 인지하고 있는 바이네.”


긴급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그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열 받을 정도로 차분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의 렘난티스는 목이라고 고르는 듯 헛기침을 다시 한번 한 후 말을 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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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7. 보름꽃 (4) 25.01.06 18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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