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ill Death Do Us Part (2)
“저기, 루비, 오멜···”
그건 렘난티스가 이미 탐구자의 유산으로서 의미를 잃었다는 뜻이었다. 이전의 렘난티스는 죽었다는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 단검··· 혹시 특별히 가져가려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안 그래도 내가 하고 싶던 말이었네. 나로서도 이 소년과 그쪽의 회색 머리 마법사가 나를 탐낸다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으니까 말이야.”
“내가? 내가 굳이 너를 탐낼 리가 없잖아··· 그다지 단검을 쓸 일이 없는 마법사니까. 내가 가져가 봐야 짐밖에 더 되겠어.”
렘난티스의 말에 오멜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건 그렇고 나도 카일이 가져가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했어. 카일은 탐구자의 혈통이라고 그랬었잖아? 이 단검도 그렇고 렘난티스도 그렇고 탐구자의 유산이니까 같은 탐구자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루비는 어때?”
“나도 동감이야. 하지만 카일, 하나만 약속해 줘.”
마법 단검과 마법 지능체인 렘난티스는 탐구자의 유산이다. 그들의 기억과 역사까지 엿본 우리는 거기에 담긴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애초부터 그걸 우리가 가져간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나와 오멜은 네가 탐구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져갔으면 하는 거야. 너는 단지 잊혀진 이가 아니야. 이걸 네가 가져가는 이상, 앞으로 잊혀진 이로 살아서는 안 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겠어?”
그건 나와 카일이 이미 나누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일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모험가를 정말로 할 수도 있고, 의외로 다른 무언가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나쁜 짓을 하며 목숨을 연명하는 ‘잊혀진 이들’의 삶을 살지는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나는 카일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받고 싶었다.
카일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이의 아직 앳된 소년 치고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용감하게 말했다.
그건 탈진한 채로 피범벅이 되어 블러드바인의 배를 찢고 나온 카일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맹세할게요. 저는 모험가가 되어서, 잊혀진 이들이 사실 탐구자라는 대단한 집단의 후손인 것을 알려서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할 거예요. 반드시요.”
“...응.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카일의 기특한 말에 덥수룩한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카일은 여전히 민망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렘난티스.”
“왜 부르는가? 무언가 질문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질문은 이제 됐어. 다만··· 여기의 카일은 탐구자의 후손으로서 네 결계를 소유하게 되는 거야. 네 역할은 아직 유효할 수 있어. 카일이 앞으로 올바르게 탐구자의 유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어. 가능해?”
“흐음, 그렇군. 자네의 말대로 그렇게 해석한다면 여전히 내 역할은 유효할지도 모르겠구만. 알겠네. 확실하게 학습하였어.”
렘난티스가 굳이 학습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의 대화를 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뭐, 그 정도 기억력이라면 확실히 골렘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네.
나는 웃었다.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심층에서의 여러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부러진 내 팔도 오멜의 결계로 상당히 회복하였고, 카일은 자신이 소유하게 된 탐구자의 유산 두 가지를 소중하게 허리춤에 챙겼다. 거기에 오멜의 모험가 등록증도 확보하였다.
폐건물을 빠져나오며, 나와 오멜을 뒤따라오던 카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랑 형은 앞으로도 계속 모험가를 하실 거죠?”
“...글쎄. 계속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은 그렇겠지.”
당분간, 즉 드래곤 나이트와 그 너머에 있는 젠탈리온의 이념을 완전히 부수기 전까지 우리가 이 생활을 지속할 것임은 틀림없었다.
카일은 조금은 애매모호한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모험가가 되어서, 이름을 알리고 다시 루비랑 오멜을 찾아 갈게요. 그때도 이번처럼 같은 파티로 받아 주세요. 지금 보다 훨씬 더 실력을 갖출 테니까요. 민폐도 끼치지 않을 정도로요.”
깜빡.
나는 카일의 그 이야기를 어린아이의 장난 섞인 투정이나 그저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오멜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는 카일의 그 눈빛은, 그것이 결코 생각 없이 하는 말이거나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카일의 눈이 마주쳤다.
“좋아. 언제든지 준비가 되면 찾아와.”
“너무 늦지 않게 오라구, 꼬맹아.”
카일은 나와 오멜의 말을 듣고 만족한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크게 손을 흔든 후 잊혀진 이들의 마을로 달려갔다.
카일은 뒤에서 배웅하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만 바라볼 뿐이었다.
-
“아얏···”
“왜 그래?”
“아··· 아니야. 오른쪽 팔이··· 표식 쪽이 조금 아팠던 것 같아서.”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조금 화끈거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야. 너무 걱정 마. 혹시라도 더 아프게 되면 말할 테니까. 이건 됐으니까 계속 말해봐.”
덜컹거리는 마차의 맞은편에 앉은 오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괜찮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옷에 스치며 갑자기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 탓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따끔거릴 뿐이었다.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젠탈리온 왕성에서 나온 이후로도 굳이 오멜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표식은 가끔씩 따끔거리는 불쾌한 기분을 주곤 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들어왔던 북문을 통해 게이트포트를 다시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명확하다. 바로 에본윙이 있는 드래고니아 산맥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따라서 먼저 에본윙의 남자를 만났던 툼스크림 퀸의 그 공터에서 시작해서 흔적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게일포트로 향하고 있었다. 게이트포트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올리비아를 만나서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북문을 빠져나오며 코끝에 스치는 익숙한 먼지 냄새에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해 보자는 거야. 그러면 네가 사용한 그 마법석의 정체에 대해서 유추할 수도 있으니까.”
“탐구자들의 이야기와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이 그다지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이렇게 말하다 보면 사소한 힌트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13레벨의 드래곤의 생각을 천 년이 지난 우리가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13레벨의 드래곤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생각해? 다미안은 결국 11레벨이 되었다고 했지? 인간인데도 11레벨을 달성할 수 있는 거야?”
“나도 그 부분에서 조금 놀랐어. 역사에서도 인간 마법사가 11레벨이 되었다는 기록은 분명히 본 적 없어. 전설적인 정령이 11레벨로 확인된 적은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거기서부터는 명백한 드래곤의 영역이야. 11레벨의 마법사를 초월자라고 부를 정도니까.”
“인간을 초월했다는 뜻일까.”
“그렇겠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미안은 정말로 11레벨을 달성했던 것일까. 오멜의 말대로라면 그건 불가능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11레벨의 마법사가 되었다면 다미안이 죽었다는 것도 조금은 납득이 돼.”
“어째서? 11레벨과 그의 죽음이 관계가 있는 거야?”
“무섭지 않아?”
“무섭다고?”
“응.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11레벨이라는 영역에 도달했다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같은 마법사로서 무섭다는 감정이 먼저 들어. 그건 아마 나뿐만이 아니었겠지.”
처음에 탐구자들이 젠탈리온 왕실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다미안과 그의 아버지도 왕실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고, 무엇보다 마디나 베일리즈는 마나 폭주에 대한 그녀의 연구 결과를 젠탈리온 왕실에 제공하기도 했다.
‘더 나은 미래··· 말인가.’
아마도 탐구자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젠탈리온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마법을 연구하고 왕실에 그 연구 결과를 모두 제공하였다. 왕실이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하며.
하지만 그들은 너무 순진했다. 그들이 차원이 다른 연구 결과를 보낼수록 왕실은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벨모어의 말대로 왕실은 그것을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11레벨 마법사의 등장.
“맞아. 네 말대로 당시 왕실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결국 초월자에 도달한 마법사인 다미안을 속여 왕성으로 데려온 후···”
“죽였다는 거지.”
“응.”
정말로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1레벨에 도달한 인간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탐구자들은 젠탈리온에 충성스러웠다. 그들의 연구와 초월자의 존재까지, 탐구자들은 정말로 젠탈리온의 미래를 더 나은 미래로 바꿀만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젠탈리온이, 정확하게는 왕실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다미안을 죽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탐구자들을 악룡 나이트메어와 교류하는 악한 집단으로 선동했다.
벨모어는 젠탈리온 왕실의 꾀를 정확하게 읽었다. 왕실은 탐구자들이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사라지기를 원했다. 그 정도로 그들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아마 다미안을 죽인 것까지는 그들의 계획대로 였을 거야. 하지만 그 직후 플로리스가 날뛰기 시작한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겠지.”
“오멜, 플로리스는··· 플로리스가 분노한 이유는 다미안 때문이겠지?”
“...다미안 때문이겠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플로리스도 다미안을 사랑했던 거야.”
사실 여전히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인간 따위는 하찮은 벌레 정도로만 볼 것 같은 13레벨의 최상급 드래곤이 인간 마법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게 정말로 가능한 건가?
그다지 소녀 감성을 가지고 둘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탐구자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보면 그들도 어느 정도 다미안과 플로리스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탐구자들의 마을로 내려와서 그들과 대화까지 했다고 했다. 처음에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거부했던 플로리스가 고작 인간들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연 이유는··· 아마도···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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