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ill Death Do Us Part (3)
“...펠리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지 못해서 정말로 유감이네. 펠리스는 아마 기뻐 날뛰었을 거야.”
“뭐, 아직까지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말이야. 다미안의 일기로 봐서 그가 플로리스에 대해 연심이 있었던 건 확실하지만 플로리스는 여전히 상상의 영역이야. 의외로 완전히 엉뚱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이후로 플로리스는 젠탈리온에게 토벌된 거지?”
“맞아. 드래곤 나이트는 나이트메어 토벌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어. 그리고 드래곤 나이트의 첫 번째 임무가 바로 나이트메어의 토벌이였어.”
“마나 폭주 이론을 사용해서 말이지. 로웨나는 그 이론을 바탕으로 오버플로우 마법을 개발한 거고.”
그리고 우리는 그 마나 폭주라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에본윙을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싣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말이다.
플로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천 년의 시간이라는 화살이 지금의 나까지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탐구자들은 게이트포트 남쪽의 지하에 그들의 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했어. 우리가 있었던 그 심층 말이야. 그리고 마을을 건설하던 중에 의견의 차이로 분파된 게 바로 에본윙이었어.”
“탐구자들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된 거야? 심층에서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던 걸까?”
“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카일이 탐구자의 혈통이라는 것을 보면 완전히 절멸한 것은 아니었을 거야. 시대가 흐르면서 게이트포트에서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고, 그렇게 지상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심층의 곳곳을 보면 상당히 오래 그곳에서 지냈던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적대감이 줄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 지금까지 그들은 남쪽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니까. 거의 천 년이 지났음에도 말이야. 만약 탐구자가 지상으로 올라갔다면 그 핍박을 참고 견딜 각오를 했던 것이었겠지.”
오멜은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슬픈 역사였다.
“뭐, 이 이야기에서 최소한 플로리스가 정말로 인간의 적인 악룡은 아닌 게 밝혀져서 조금 마음은 편해졌어. 같은 드래곤으로서 말이야.”
“내가 말했잖아.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결국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은 뭐였던 거야? 정확히 언제 만들어진 건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데.”
나는 멍하니 올리비아가 그 마법석에 대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자신의 일부를 봉인한 것이거나, 부활의 여지를 남겨 놓은 마법석이라···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자면 마법석이 만들어진 시점은 젠탈리온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기 직전이거나, 드래곤 나이트로부터 토벌되기 전후로 보인다.
“나이트메어는··· 그러니까 플로리스는 어떻게 토벌당한 거야? 즉사했어? 그 드래곤의 사체는 어떻게 됐고?”
“...으음. 글쎄···”
내 질문에 오멜은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젠탈리온의 역사는 나이트메어가 얼마나 영토와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혔는지, 그리고 그 드래곤이 토벌된 후 남겨 놓은 멸망을 노래하는 예언석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서술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게 자세한 서사까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그렇게까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그건 조금 이상해. 젠탈리온 왕실은 나와 엄마의 사체도 성대하게 퍼레이드를 펼치면서까지 왕성 안으로 들여 왔잖아? 예언석도 예언석이지만 그 공포스러운 드래곤의 사체를 예언석과 함께 보존했다면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을 텐데.”
게이트포트 근처의 잘 정비된 도로를 달리던 마차는 점점 덜컹거림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곧 게이트포트에서 꽤나 멀어졌음을 뜻하기도 했다.
엉덩이의 뼈가 딱딱한 바닥에 부딪혀서 아파 왔다.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눈치챈 듯 오멜이 자신의 짐가방을 뒤적여 담요를 하나 꺼내 주었다.
줄곧 도서관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던 학자 타입이라서 눈치라고는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센스가 꽤나 좋아졌잖아.
“음, 이거는 가설이지만 말이야.”
오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마도 플로리스는 인간의 형태였던 게 아니었을까?”
“...어째서? 줄곧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몸은 너무나 방어력이 낮단 말이지··· 심지어 올리비아도 우리와 싸웠을 때 드래곤의 뿔이나 날개 같은 게 나오기도 한 걸 봐서 드래곤의 모습이 더 힘을 쓰기는 좋은 거 아냐?”
“그걸 드래곤인 네가 나한테 묻는 거냐··· 나도 근거는 없어.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야. 하지만 생각해 봐, 젠탈리온 입장에서 플로리스를 토벌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모습이어서야 예언석부터 탐구자들을 없애기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공포심을 만들 수 있었겠어?”
나는 나의 드래곤으로서 모습을 알고 있다. 그건 이미 호흡이 멈춘 사체였지만,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몸집과 블러드바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단단한 비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생명체를 압도하는 그 모습까지.
창에 단 한 번만 꿰뚫려도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금의 육체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드래곤의 모습이 훨씬 더 싸움에 유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나도, 심지어 지금 드래곤 나이트의 단장인 사울로 단장님과 로웨나조차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 너를 직접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니까. 이건 의도적으로 숨겨졌다고 봐야겠지.”
“그래야만 나이트메어가 공포의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응. 인간은 미지의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니까. 그게 친숙한 인간 여성의 모습이어서야 천 년 동안 그런 공포심을 유지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플로리스의 사체를 남길 수 없었다···”
그건 가설치고는 꽤나 잘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다시금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오멜은 머리가 좋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다.
오멜은 근거 없는 가설이라고는 했지만 그 말대로라면 여러 이상한 부분이 해결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플로리스가 죽기 직전에 그 마법석을 남긴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거지?”
머릿속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플로리스가 토벌되는 것을 상상하고 있던 차에 그런 내 모습을 본 오멜이 물었다.
“응. 굳이 그런 부활의 마법석을 남겼다면 아무래도 죽기 전이지 않았을까.”
“보통은 그렇겠지. 거기에··· 너도 로웨나의 마법으로 치명상을 입었지만 도망을 갈 수는 있었잖아? 마나 폭주라는 게 드래곤에게 치명적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목숨을 결정적으로 끊지는 못한다고 생각해··· 너희 어머니도···”
“......”
그 말을 하는 오멜의 손가락 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구차한 말 없이 그저 그 손을 살짝 잡아 주었다.
그건 오멜에게도, 나에게도 비극이다. 우리 둘은 평생을 그 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무튼, 마나 폭주 마법을 맞은 플로리스가 치명상을 입고 도망쳐서··· 자신의 부활을 암시하는 마법석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었다는 게 되겠네.”
“으음··· 하지만 뭐랄까, 그 이야기는···”
“알아.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단 말이지. 무엇보다 그 순서대로라면 내가 그 마법석을 스스로에게 사용한 이유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거기에 내 육체는 플로리스의 육체지만 정신은 플로리스와 전혀 다르다. 이게 과연 플로리스가 마법석을 남기며 의도한 결과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마법은 철저하게 실패한 마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품속에 여전히 지니고 있는 마법석 조각을 옷 위로 살짝 쓰다듬었다. 플로리스는 이 마법석의 조각을 이렇게 거칠게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물론 나 역시도 플로리스가 무슨 의도로 이 마법석을 남겼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 에본윙을 만난다면 무슨 힌트라도 얻을 수 있으려나.
-덜컹
그때, 마차의 바퀴가 커다란 돌부리라도 밟은 듯 크게 휘청였다.
당연하게도 단단한 마차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그 진동은 그대로 엉덩이를 타고 정수리 끝까지 순식간에 치솟았다.
밟은 것이 제법 커다란 돌이었는지 순간적인 충격에 뇌가 휘청이는 것만 같았다. 강한 어지러움이 뒤따라왔다.
“어라···”
하지만 이 진동은 이상했다. 그 진동이 마차의 진동이 아닌 나에게만 느껴지는 어지러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옆으로 털썩 넘어진 후였다.
“루비?”
오멜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마치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서 듣는 소리처럼, 너무나 먹먹하게 들렸다.
오멜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줄곧 들리던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 역시 귀 근처에서 마구잡이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소리가 흐려진다. 소리가 서로 얽히며 알 수 없는 소리가 된다.
‘아프다···’
내 오른팔 위에 새겨졌던 나이트메어의 표식은 아까 전부터 옷에 스칠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을 주곤 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이 넘어진 지금,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칼로 팔 위를 긋는 것 같은 불쾌한 고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시야가 뒤집혀 있기는 했지만 눈은 분명 뜨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이 나선형으로 자꾸만 회전하고 있어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몸이 불 속으로 뛰어들기라도 한 듯 마구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칼날이 되어 나를 난도질한다. 뜨겁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슬프다.
“루비!”
그리고 그 휘몰아치는 감각과 감정들은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오멜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
“네 표식이야. 내가 마나를 둔하게 하는 결계를 쳤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아아, 그렇지. 지금과 똑같은 일이 이전에도 있었다.
젠탈리온 왕성에 있을 때에도 이 표식이 나를 공격해서··· 오멜이 급하게 나를 펜하임님께 데려갔었다. 그리고 마나의 흐름을 둔하게 한다는 마법석 목걸이를 받았었다.
펜하임님은 분명히 그걸 일종의 마나 공격이라고 하셨었다. 오멜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마나를 둔하게 하는 결계를 친 것 같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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