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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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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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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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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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ill Death Do Us Part (6)

DUMMY

그가 일어서며 목에 걸린 목걸이가 살짝 흔들렸다. 그 목걸이에는 익숙한 문양이 달려 있었다.

얇은 마름모가 세 개, 양 옆과 위로 뻗어 있는 문양이자 내 팔에도 새겨져 있는 바로 그 문양- 나이트메어의 표식이었다.


“이것이 신경 쓰이십니까.”


내가 그 목걸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목걸이에 달린 문양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유감스럽게도 이건 장식입니다. 마법적 능력도, 드래곤과 연관된 능력도 지니지 않은 단순한 장식에 불과하죠.”


그리고는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의 팔에 새겨진 그것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야기는 이미 들으셨나 보네요.”


나는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세 명의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우리 뒤에 서서 마치 허튼짓이라도 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 같았다.

아마 먼저 이곳에 들어왔던 남자가 우리에 대해 어느 정도 보고한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그 핵심은 내 팔에 새겨진 나이트메어의 표식이었을 거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저로서는 이렇게 마주뵙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황송할 따름이니까요.”


무언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그의 말은 마치 나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뒤를 지키고 있는 세 남자를 내보냈다. 그들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을 하고는 있었지만 얌전히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며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넓은 공간을 타고 메아리치듯 울렸다. 그리고 적막이 찾아왔다.


“감히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루비라 불러 주세요.”

“옆에 계신 분은?”

“아, 안녕하세요. 저는 루비의··· 지인입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 마법사입니다.”


오멜은 상당히 이 자리가 어색한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식은땀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상당히 애매한 자기소개였음에도 그는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레비티스 에스티안(Levitis Estian)이라고 합니다. 흠이 없는 검정을 섬기며 자유를 추구하는 자, 에본윙의 일원이자 그 에본윙을 이끌고 있는 필멸자입니다. 부디 레비티스라 불러 주십시오.”

“...그래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에본윙의 남자들은 이 사람을 에스티안님이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아무래도 지도자니까.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있지는 않을 거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렇게 편하게 이름을 부르라는 것은···


“몸이 편하지 않아 보이시는군요. 먼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지요.”


레비티스는 우리를 편안한 소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제서야 나는 오멜의 부축에서 벗어나 쓰러지듯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대었다.

몸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만 같이 노곤해졌다.


“일단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신 것 같은데, 부디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요···”


나는 잠깐 고민했다.

실제로 에본윙의 수장인 이 남자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많았다. 심지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드래곤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디나 베일리즈에 대해서, 조금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마디나 베일리즈라.”


레비티스는 낮고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희 에본윙은 거의 천 년 동안 창시자인 라이셀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이어받고 있습니다. 저희의 역사도 빠짐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요. 따라서 위대한 마법사인 마디나 베일리즈의 이름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레비티스는 잠깐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신다는 것은··· 정말로 당신이 예언의 그 분이라는 것이군요.”

“...예언의 그 분?”

“아마 잘 아시겠지만 마디나 베일리즈는 탐구자의 일원이었습니다. 에본윙의 전신인 탐구자는 플로리스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자들이었습니다.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지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아무래도 그 예언은 젠탈리온의 예언석을 말하는 것일 거다. 라이셀은 플로리스가 젠탈리온의 예언석을 남겼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레비티스의 말대로 아직 시간은 많았다. 내가 ‘예언의 그 분’이라는 요상한 오해를 풀기 전 먼저 마디나 베일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저희는 마디나 베일리즈가 연구했던 마나 폭주에 대해 찾고 있어요. 심층··· 그러니까 탐구자들의 마을에서 탐구자의 기억을 보게 되었고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사본을 라이셀이 가지고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 마법서를 아직 에본윙이 가지고 있다면··· 괜찮으시다면 보고 싶어요.”

“물론입니다. 루비님께 그것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기쁠 따름입니다. 하지만 탐구자들의 기억을 열람하셨다면 그 기록고에 원본이 있었을 텐데 굳이 이곳까지 오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원본은··· 파괴됐어요.”

“...파괴되었다고요? 탐구자들의 모든 기록이 소실되었단 말씀이십니까?”

“전부는 아니에요. 기록고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잔해 아래에 기록이 남아는 있는 것 같기는 했어요. 하지만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원본은 확실하게 파괴되어 더 읽을 수 없는 상태예요.”

“누가 그런 짓을 했다는 말입니까?”


나는 잠깐 고민했다. 젠탈리온의 아크인 로웨나가 엘 메이아의 도시, 그것도 지하까지 들어와서 고대의 기록을 굳이 부수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에본윙은 탐구자의 혈통이다. 라이셀은 심층을 떠날 때 탐구자의 이름을 버리겠다고 공언하였었지만, 여전히 에본윙 모두에게 탐구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탐구자의 마을을 본, 그리고 그 기억을 본 나는 그것을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들의 아픔을 본 내가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레비티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상당히 긴 이야기였다. 드래곤 나이트가 나와 내 어머니를 토벌한 것부터 시작되는 길고 복잡한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를 전부 한 것은 아니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로웨나가 드래곤 토벌에 사용한 오버플로우 마법에 대해 나와 오멜이 찾고 있다는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


레비티스는 내 말을 한 번도 끊지 않고 끝까지 침묵 가운데에 경청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바닥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머리를 깊게 숙였다.


“왜, 왜, 왜 그러세요···!”

“저 레비티스 에스티안, 예언의 드래곤을 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저희 에본윙은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플로리스님의 복수를 기다려 왔습니다. 젠탈리온을 향한 그 분노는 천 년을 시간을 기다려 지금에 다다랐습니다. 예언의 성취를 목격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쁠 따름입니다.”


왠지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라이셀이 탐구자의 마을을 나설 때에도 그는 플로리스의 복수에 대해 말했었다. 그 복수를 이룰 다음 드래곤을 도와 플로리스의 예언을 이루겠다고.

에본윙은 줄곧 플로리스 다음에 나타날 드래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를 그것에 대입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예언석에 적힌 것처럼 젠탈리온을 모조리 멸망시킬 생각이 아니다. 드래곤 나이트, 그리고 드래곤에 대한 젠탈리온의 잘못된 허상을 부술 뿐이다.

내가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로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멸망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언이 성취되게 된다. 드래곤을 토벌하기 위해 힘썼던 그들이 옳게 된다. 나와 엄마를 포함한 모든 드래곤은 영원한 악역으로 남게 된다.

그건 죽음이 죽음을 낳는 끝없는 순환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부터 그 예언석은 당시 젠탈리온 왕실에서 드래곤을 악역으로 선동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전제부터 틀렸다는 거다.

하지만 에본윙은 그 예언석이 진짜 플로리스가 남긴 것이라고 믿고 있단 말이지··· 이래서는 아무리 내가 예언의 드래곤이 아니라고 해도 결코 먹히지 않을 거다.


···곤란하게 됐네.


“알겠으니까 일단 일어나세요··· 콜록, 콜록···”

“...줄곧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아··· 네. 뭐랄까, 이 표식 때문에요.”


레비티스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하다가 순간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매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니 피가 조금 묻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루비, 괜찮아?”

“...아직은···”


그걸 옆에서 지켜본 오멜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오멜도,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나 흐름을 둔하게 하는 오멜의 결계로 마나 공격을 막고 있음에도 이런 상태니까.

공격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약 없이 바랄 뿐이었다.


“흐음. 잠시 살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레비티스는 조심스럽게 내 표식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나를 흘려보내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도 같았다.

당연하지만 그 옆에서 오멜은 혹시나 이 남자가 허튼짓을 하지는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오멜은 여전히 레비티스를 포함한 에본윙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것을 이들에게서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했다. 결정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로리스님의 마법석을 사용하셨다고 하셨지요.”


한참을 내 오른팔을 살펴보던 레비티스가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저희에게 해결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말씀 주신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사본을 먼저 확인하신 후 저희에게 맡겨 주시지요.”

“이 표식이 루비를 공격하는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장담은 하지 못하겠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요. 저희는 줄곧 예언의 드래곤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 에본윙이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희는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조금 어두운 이 공간 안에서 드문드문 비치는 마법석 전등이 그의 핼쑥한 얼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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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7. 보름꽃 (2) 24.12.30 8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7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8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7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8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8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0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9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9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7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8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0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0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0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4 0 11쪽
88 #14. 조우 (2) 24.11.07 11 0 11쪽
87 #14. 조우 (1) 24.11.04 10 0 11쪽
86 #13. Till Death Do Us Part (12) 24.10.31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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