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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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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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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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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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ill Death Do Us Part (7)

DUMMY

-


“이곳입니다.”


레비티스는 우리를 그 신전과도 같은 건물의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그때부터 오멜은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며 무언가를 살피는 것 같았다. 내가 비록 오멜과 같은 학자는 아니지만 오래 같이 다니다 보니 오멜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었다.

오멜이 열심히 보고 있던 것은 마치 심층의 공간에서 따온 듯한 건축 양식과 장식들이었다.

특히 심층의 그것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세워져 있는 기둥은, 확실히 심층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 공간은 심층처럼 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방 몇 개가 있는 정도의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우리는 레비티스의 안내를 따라 그 중 한 방에 들어섰다. 묘한 먼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저게··· 그 마법서인가요?”


레비티스가 자신의 마나를 살짝 불어넣자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마법석이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방은 툼스크림 퀸이 있던 공터의 동굴을 떠올리게 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제단과도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위로 튼튼한 표지를 가진 책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우리는 분명 이 책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바로 탐구자의 기억에서 레티시아가 탐구자를 떠나는 라이셀에게 건네 주었던 그 책이었다.

나는 이 표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천 년 전 라이셀이 받았던 그 모습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로웨나는 바로 이 책의 원본을 심층에서 찾아내어 읽은 후 파괴했다. 사본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로.

이제 로웨나가 본 것을 우리도 볼 차례다.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그것의 사본입니다. 사본이라 하더라도 내용만큼은 동일합니다.”


레비티스는 사양 말라는 듯 그 책을 향해 살짝 손을 펴 보였다. 오멜과 여전히 부축을 받는 나는 천천히 제단으로 다가가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은 상당히 두꺼웠다. 전체적인 내용은 마디나 베일리즈라는 마법사가 기초 마법 이론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었다.

그 책에 기록된 대부분의 이론은 현대 마법에도 이미 적용되어 있고 널리 알려진 것들이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당시 탐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젠탈리온 왕실에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권력자들은 탐구자를 증오하였지만 그 연구 결과만큼은 마법의 발전 등을 위해 어느 정도 유용하게 사용하였을 거다. 플로리스를 죽인 결정적인 무기로 사용했을 정도로 말이다.


오멜은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우리는 ‘마나 폭주 이론에 대해서’라고 쓰인 제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은 마나 정제를 통해 자연 마나를 마법에 사용한다. 하지만 정령은 그렇지 않다. 정령은 마나의 집합체이다. 마나로 이루어진 생명체에 가깝다. 정령은 마나 정제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깊은 곳에 있는 저장 마나를 소모하며 마법을 사용한다.


-고정되어 저장되는 마나는 그 주체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그 특성이라는 것은 고유한 떨림으로 나타난다. 저장 마나가 떨림을 가진다는 것은 곧 외부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마나로도 내부에 저장되는 마나에 간섭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마나는 공명한다.


-떨림은 복잡하다. 하지만 대상 정령의 마나 떨림에 대해서 알 수만 있다면 동일한 떨림을 사용하여 저장된 마나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이는 특히나 정령이 강할 때 더욱 유용하다. 저장된 마나가 많을수록, 그 마나의 떨림이 뚜렷할수록 이 방법은 효율적이다.


-이것을 나는 마나 폭주(Mana Overflow)라고 부른다.


이 다음 문장부터는 젠탈리온의 어느 동굴에서 나타난 고레벨의 정령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기록되어 있었다.


“......”


저장 마나는 고유의 떨림을 가진다. 그리고 동일한 떨림을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가함으로 저장 마나의 사슬을 끊는다. 이 현상은 저장된 마나가 많을수록 효율적으로 나타난다.


분명 이 내용은 명확하게 정령의 토벌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내용이 정령이 아닌 드래곤에 대한 내용으로 읽혔다.

그건 아마 천 년 전의 드래곤 나이트에게도, 원본을 찾은 로웨나에게도 같았을 거다.


“레비티스 경, 혹시··· 에본윙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실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렇게 보관하고 있을 정도면··· 아마도···”

“예상하시는 대로 저희는 이 마법서의 마나 폭주 이론이 플로리스님을 죽인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에본윙의 창시자인 라이셀님께서 평생을 연구하셨던 결과이기도 하지요.”


로웨나의 오버플로우 마법이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나 폭주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된다.

이 마법은 정령이나 드래곤과 같이 강한 저장 마나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게 효율적인 공격 수단이 된다. 다만 이것은 정확하게 공격 마법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마법은 마나 공명을 통해 저장 마나의 사슬을 끊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결국 폭주로 이어져서 일종의 마나 브레이크와 같은 내상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다.


“아, 맞아···!”


오멜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드래곤 토벌 작전에서 단장님이 가장 신경 썼던 것 중에 하나는 마법석 배치 부대였어.”

“마법석 배치?”

“응. 최상급 마법석을 세 개나 준비해서 드래곤과 싸울 장소의 근처로 배치했거든. 단순히 로웨나가 준비했다는 마법을 보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단순한 게 아니라 더 강한 마나의 떨림을 만들기 위함이었어.”


나는 오멜에게 물었다.


“왕성에서 로웨나가 나에게 오버플로우를 썼을 때는 어떻게 됐던 거야?”

“로웨나는 착각했어. 드래곤은 세 마리고, 너를 세 번째 드래곤인 올리비아라고 생각했었어. 아마도 로웨나는 그 드래곤의 마나 떨림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마법을 작성해 두었을 거야. 이 정도로 복잡한 마법이라면 우리를 훈련장에 부를 때부터 철저하게 계획되었겠지. 거기에 로웨나는 잘못된 데이터를 넣었어. 그래서 당시의 너에게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던 거야.”


생각해 보면 그때 로웨나와 사울로 단장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마리의 드래곤을 토벌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사에서 발견된 세 번째 드래곤인 올리비아의 마나 흔적을 바탕으로 오버플로우 마법을 작성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 마나 떨림은 나에게 큰 효과를 줄 수 없었다. 전혀 다른 떨림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법을 어떻게 방어해야··· 마나의 떨림을 이용한 거라면 단순히 배리어로는 막지 못할 거야.”

“...레비티스, 에본윙은 이 이론에 대해 연구를 하셨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방어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나요?”

“송구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건 마나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마나를 저장해 두는 이상 마땅한 방법은 없습니다. 오멜 경께서 말씀하신 대로 배리어로써는 마법은 막을지언정 마나 그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떨림을 이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마법으로 떨림을 바꾸거나 상쇄시키는 방법이 유일하게 제시된 방법입니다만 그마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레비티스의 말을 들은 오멜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저도 그 방법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문제가 있나요?”

“현실성의 문제지요. 말씀하셨던 대로 상대가 마법석을 동원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절대적인 마나량을 늘려 버리는 상황에서는 그 떨림을 상쇄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방법입니다.”


로웨나는 아마도 이것을 숨기고자 했다. 자신의 마법이 다른 누군가에게 파악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드래곤을 죽일 방법을 자신이 독점하고자 했다.

확실히 마법의 이론 자체는 복잡한 이론이 아니었다. 현실에 적용하기 까다롭다고는 했지만 파훼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 마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수확이었다. 로웨나와 싸우게 되었을 때의 계획은 지금부터 고민해 보면 된다.


“벌써 다 보셨습니까? 편하신 대로 더 보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고마워요. 마나 폭주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거든요. 덕분에 힌트를 얻었어요.”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레비티스는 부담스럽게 또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왔다.

사실 그다지 다른 도움을 요청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에본윙이라는 이 집단은 미묘하게 기괴한 분위기가 있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집단이라면 몬스터에 골렘의 것으로 보이는 결계를 새겨 넣지도, 몬스터의 알인지 무엇인지를 먹어 직접 몬스터가 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과거를 벗어난 탐구자들과 달리, 이들은 플로리스의 그림자에서 천 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무언가가 비틀려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음으로··· 이 표식에 대해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바로 가보시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어요. 사실 슬슬 견디기가 어려워져서···”


내 말대로 점점 몸이 버티지 못하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

분명 이전 왕성에서는 표식의 공격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시간도 짧았다. 펜하임님의 결계와 마법석 목걸이를 통해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벌써 며칠째다. 나이는 어리다고 해도 오멜의 마법 실력만큼은 오히려 펜하임님을 상회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최근 들어 내 몸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많이 입었던 게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올리비아와의 싸움에 바로 이어서 심층에서 블러드바인과의 싸움까지. 둘 다 쉬운 싸움은 아니어서 몸이 많이 지쳤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탓에 표식의 공격을 견딜 힘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레비티스는 말했다.


“끝날 때까지 오멜 경께서는 바깥에서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의심하시는 것인가요?”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루비님께서 함께하실 정도로 직접 의지하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런 분을 믿지 못하는 것은 곧 루비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레비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불필요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에본윙의 마법은 다른 평범한 마법과는 다릅니다. 탐구자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섬세하고 복잡한 마법이지요. 더군다나 생물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드래곤에게 전개되는 마법입니다. 같은 마법사로서 부디 이해해주시길.”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루비에게 어떤 마법을 쓰실 건지 설명이라도 해주세요. 저야말로 신뢰 없이는 루비를 혼자 둘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루비님에게 새겨진 플로리스님의 문양에 대한 마법입니다. 이 문양이 루비님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실 테지요. 이 문양이 해소되지 않아서 루비님께서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루비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군요.”

“그 말은 제가 루비를 방치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에본윙의 마을까지 들어와서 그 지도자를 만나 대화까지 했음에도 줄곧 오멜이 에본윙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오멜은 레비티스의 묘한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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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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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9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9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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