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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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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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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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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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ill Death Do Us Part (9)

DUMMY

“드래곤인 플로리스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녀는 조금의 감정의 요동도 없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플로리스의 파편일 뿐이야. 파편이라고 해야 할까, 미련이지. 작은 결점도 없었던 완벽한 드래곤이 마지막에 남긴 유일한 오점이자 추함이 바로 지금의 나야.”

“......”

“그렇지만 여기서는 나를 플로리스라고 소개해볼까. 그렇지 않고서야 헷갈리잖아. 안 그래, 루비?”

“나를 루비라고 불러 주는구나.”

“물론이지. 너는 루비가 맞아. 조금 망가지기는 했지만.”

“망가졌다니···?”

“너, 죽었잖아.”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드래곤으로서 네 생명은 이미 끝났어. 네 마지막 숨결은 어두운 동굴 속으로 허무하게 내뱉어졌어. 그리고 네 사체는 그 동굴 밑바닥에서 건져올려져서 인간들의 성까지 옮겨졌지. 그리고 그 인간들은 지금까지 네 사체를 욕보이고 있는 거야.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했잖아?”

“그러면, 그러면 지금의 나는 뭐야···? 그 말대로라면 루비라는 드래곤은 죽은 거잖아. 나는··· 그 기억에 기생하는 다른 무언가라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조금 망가졌다고.”


그녀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조금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분노가 아니었다. 그저 여태껏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증이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급함이었다.


“내가 사용했던 검은 마법석에 대해 말해줘.”

“...흐응.”

“부탁할게. 너라면 알고 있잖아! 그건 네가 남긴 마법석이잖아.”


나는 누구인가.

올리비아는 루비는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루비의 기억을 훔친 플로리스라고 했다.

하지만 거꾸로 플로리스는 나를 루비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루비는 이미 죽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존재하는, 오멜의 도서관에서 눈을 떠서 지금까지 말하고 생각하고 숨 쉬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루비도, 플로리스도 아니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조금은 기대했어.”


플로리스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내 마법석을 해석하는 누군가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 말을 듣자 문득 올리비아도 마법석의 해석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올리비아는 내가 사용했던 그 마법석이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이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이아는 마법석의 해석에 실패했다고 했다. 따라서 올리비아는 끝까지 그 마법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마법석을 드래곤이었던 나는 해석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사용했다는 건가? 해석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약해 빠진 녀석을 가장 싫어해. 그리고 넌 약해 빠졌어. 너무나 실망스러워. 내 마법석이 너 같은 애송이 드래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통탄스러워.”

“...나한테 무슨 기대를 했는데? 뭘 원했던 거야?”

“나는 네가 지금까지 무엇을 겪었는지 알고 있어. 그렇다면 너도 내가 남긴 미련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테지.”

“천 년 전 드래곤의 미련따위 알 게 뭐야. 네 입으로 나를 루비라고 했었잖아. 플로리스도 아닌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마법석에 대해 물었었지.”


그녀의 말투에 조금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조금 쏘아붙였지만 플로리스는 그런 내 말투에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시했다.


“그 마법석에 내가 새긴 마법은 리저렉션.”

“리저렉션···?”

“이 마법은 정말로 묘한 마법이야. 해석이 모두 다르지. 이 마법을 듣는 모두는 스스로 이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장담컨데 어느 누구도 이 마법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나를 포함해서.”

“너는 이 마법을 직접 사용했잖아.”

“그랬지. 리저렉션은 내가 만든 마법이니까.”

“그렇다면···”

“그럼에도 나는 내가 이 마법에 대해 이해한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그 마법을 만든 것이 그녀라면, 누구보다 그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한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 너무나 모순적인 말이었다.


“리저렉션은 생명을 되돌리는 마법이야.”


플로리스는 마치 나에게 설명이라도 하는 듯, 느릿한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존재의 부활과는 달라. 그저 그 생명을 되돌릴 뿐이지.”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

“죽음은 비가역적이야. 그건 결코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 없어. 리저렉션은 죽음에 관여하는 것이 아닌 그저 생명을 되돌릴 뿐이야. 예를 들어 볼까. 너는 이 마법석을 스스로에게 사용하였지.”

“...응.”

“리저렉션을 통해 네 생명은 되돌아왔어. 하지만 루비라는 존재는 그 순간 이미 죽은 거야. 지금의 너는 엄밀하게 루비와는 다른 존재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그 말은, 내가 루비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앞둔 나는 동굴 아래로 내려가 스스로에게 마법석을 사용한다. 그리고 생명은 되돌아왔으나, 루비라는 드래곤은 죽었다.


결국 올리비아의 말이 옳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는 나와는 다른 의견이었어. 리저렉션을 통해 살아난 생명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직전의 나를 잇게 되지.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존재로 보아야 된다고 한 거야.”

“그?”


플로리스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곧 차갑고 매서웠던 그녀의 눈동자가, 그 말을 할 때는 무언가를 추억이라도 하는 듯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말했잖아. 나조차 이 마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유감이지만 어느 것이 정답인지 궁금해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마법은 생명을 되돌리는 마법이다. 즉, 부활의 마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되살아난 생명이 이전과 동일한 존재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플로리스의 관점에서 되살아난 생명은 이전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녀와 반대의 관점에서는 되살아난 생명은 이전의 존재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같은 존재가 된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마법을 만든 플로리스 본인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 즉,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영영 풀리지 않는다.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플로리스는, 비웃기라도 하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볼 만한 표정이네.”

“......”

“뭐,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 너는 최소한 플로리스는 아니니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너도 이 마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잖아? 거기에 이 몸··· 너를 보고 더 확신할 수 있어. 이건 네 몸이야. 루비의 몸이 아니라.”

“아~ 그거 말이지.”


플로리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건 리저렉션의 본질과는 상관없어. 그저 내가 마법을 새길 때 내 일부를 섞어 넣었기 때문이야. 평범하게 마법을 작성했더라면 네 몸은 루비의 몸이었겠지. 온전하지는 않더라도.”

“네 일부를···? 왜···?”

“루비, 어리석은 드래곤이여.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는가.”


그 말을 하며 플로리스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건 붉은 눈동자였다. 고혹적이고 깊은 붉은색이었다.

그건 내가 항상 거울에서 봐오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 몸의 진짜 주인인 플로리스의 눈동자였다.


“-나는 미련이라고.”


후욱.

주변으로 마치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내 피부를 사납게 휩쓸고 지나갔다.

플로리스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그것은, 순식간에 공간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새까만 마법진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복잡한 구조의 마법진이었다.


“내가 리저렉션을 마법석에 새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캬하핫··· 아니야. 나는 그렇게 착한 드래곤이 아니었어. 나는 기회를 노렸던 거야. 누군가가 그 마법석을 사용한다면 내가 남긴 존재의 파편은 그 원래 존재와 부딪치게 돼. 그리고 내가 그 존재를 압도한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해?”

“...나를, 내 몸을 차지하겠다는 거야?”

“흐응, 조금 달라. 몸을 차지하는 게 아닌 존재의 문제야. 이미 네가 마법석을 사용한 후부터 나는 너와 겹쳐져 있었어. 그렇게 큰 비율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네 기억은 내 기억이야. 그것을 정당히 가져오겠어.”


나는 그제서야 레비티스가 마지막에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플로리스의 현현이니 뭐니 그런 말을 했었다.

내 표식을 보고 나에게 플로리스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나를 통해 플로리스를 부활시키려 했던 거다.


“싫다면 발버둥 쳐봐. 나를 죽일 각오로 덤벼야 할 거야.”


나도 그럴 테니까.


플로리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건 나를 향한 그녀의 마지막 대화였다.


공간이 찌그러진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마법진에서 뭉쳐지는 수많은 화염덩어리들은 그 정도로 강한 마나의 집합체였다.

화염은 붉지 않았다. 그 마법진의 색깔과도 같이 기묘하게도 새까만 화염이었다. 그것들이 일시에 나를 조준하고 날아오기 시작했다.


-콰과광!


분명 배리어를 펼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공중으로 튀어 올라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도 하기 전에 세 번째, 네 번째 화염이 곧장 나를 향해 날아왔다.


“배리어···!”


화염이 내 얼굴에 직격하기 직전, 나는 아슬아슬하게 배리어를 또다시 펼쳤다. 배리어를 펼칠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거의 내 피부에 맞닿듯 펼쳐진 배리어가 마법에 맞닿자마자 순식간에 조각조각 찢어졌다.

동시에 그 폭발의 충격으로 나는 공중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커흑···”


등에서 시작되는 격통에 숨이 멎는다. 배를 움켜쥐고 억지로 호흡을 고르니,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다만 입안은 소름 끼치는 쇠 비린내로 가득했다.


바닥에 내리꽂히고 나서야 나는 풍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처음부터 플로리스와 마주 보고 있을 때까지는 줄곧 새하얀 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늘도, 땅도 어떠한 경계가 보이지 않는 그저 새하얗고 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비틀거리는 상체를 추스르며 바닥을 딛는 손에는 뚜렷하게 흙의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높게 솟은 나무의 푸르른 이파리 사이로 비쳐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다.


마치, 깊은 산속 같았다.


“젠, 장···!”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니라는 듯, 나를 향해 또다시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마나의 흐름이 밀어 닥쳤다.

바닥을 구르며 몸을 간신히 비틀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로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내리꽂혔다.


“......”


창이 꽂히는 지점에서부터 땅이 원형으로 폭발하듯 뒤집어진다. 그리고 그 충격을 뒤따라서 검은색의 불꽃이 주변을 넓게 휩쓸었다. 그 열기에 산에 가득하던 풀과 커다란 나무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화염 사이로 그 창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플로리스의 새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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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20. 드래곤과 인간, 인간과 드래곤 (2) 25.03.13 9 0 13쪽
123 #20. 드래곤과 인간, 인간과 드래곤 (1) 25.03.10 11 0 12쪽
122 #19. 매듭을 풀다 (6) 25.03.06 10 0 12쪽
121 #19. 매듭을 풀다 (5) 25.03.03 14 0 13쪽
120 #19. 매듭을 풀다 (4) 25.02.27 12 0 11쪽
119 #19. 매듭을 풀다 (3) 25.02.24 12 0 14쪽
118 #19. 매듭을 풀다 (2) 25.02.20 10 0 17쪽
117 #19. 매듭을 풀다 (1) 25.02.17 15 0 14쪽
116 #18. 맹세 (7) 25.02.13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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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20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21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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