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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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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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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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ill Death Do Us Part (10)

DUMMY

나는 플로리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산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상하리만큼 힘이 넘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깨어나 플로리스를 만난 이후로 줄곧 컨디션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마나의 흐름이 좋았다.

심지어 조금 전에는 플로리스의 마법에 거의 피격당했다. 배리어를 펼치기는 했지만 일격에 부서진데다가 충격도 그대로 몸에 전달된 걸로 봐서 틀림없이 내상을 입었을 거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내 마나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마법적 컨디션은 넘칠 정도로 좋았다. 비록 물리적인 고통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야?”


아직 플로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공간을 타고 나에게 들리는 것 같았다.

또다시 날아오는 가공할 위력의 화염구 몇 개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워낙 위력이 강하다 보니 화염구의 폭발과 후폭풍만으로도 내 장기가 마구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피하기만 해서야 내 몸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가 분명히 온다. 플로리스는 조금도 봐줄 생각 따위는 없다. 전력으로 나를 죽이기 위해 마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플로리스의 말대로 도망만 쳐서야 내가 죽는 것은 확정되어 있다.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공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플로리스가 온전한 존재로서 마법까지 쓸 수 있고, 또 나를 죽여 내 존재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플레어!”


그러던 와중에 시야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를 지나치자마자, 나는 뒤를 돌아 화염구를 쏘아냈다.

그건 딱히 플로리스를 조준한 것이 아니었다. 나무의 밑둥에서 화염구가 폭발하며, 마치 높은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줄기가 쓰러졌다.


하지만 플로리스의 마법은 그 나무까지도 일격에 재로 만들 정도로 강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콰지직···!


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화염 너머 보이는 인영을 향해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내 손에 들린 마법석 조각이 딱딱한 무언가와 긁히듯 부딪치는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그건 플로리스의 손이었다.


‘보호 마법···!’


하지만 내 무기는 연약해 보이는 플로리스의 손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였다.

마치 그 피부가 너무나 단단한 갑옷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마법석 조각의 끝이 버티기 버겁다는 듯 긁혀나갔다.

플로리스의 육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웬만한 수준을 넘어선 강한 보호 마법이었다.


이미 서로의 팔이 맞닿을 정도의 초근접 거리였다.

플로리스는 가드가 열린 내 배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 충격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몇 초나 공중에 떴을 정도로 한참을 날아간 내 몸은 커다란 돌에 부딪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으극···”

“스스로의 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조금이나마 치열한 싸움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 같아지는구나.”

“스스로의··· 능력···?”

“이곳의 우리는 순수한 존재 그 자체야. 육체의 속박에도 얽매여 있지 않지. 플로리스와 루비라는 두 최상급 드래곤의 싸움이야. 육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장이 마구 뒤틀리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향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플로리스는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이런 것까지 내가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도 같으니까. 이대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드래곤의 모습으로라도 발악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흥··· 그러는 너야말로 진심으로 나를 죽인다는 것 치고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잖아. 봐주기라도 할 셈이야?”

“그건-”


그녀가 도발하는 듯한 내 말에 코웃음 치며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좌우로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리고 플로리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혼란스럽다는 듯 신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무척이나 불안정해 보이던 모습도 잠시,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안색을 다시 바꾸고 입을 열었다.


“...그건, 그럴 필요조차 없으니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오멜과 나누었던 대화 중에 플로리스가 끝까지 인간의 모습을 한 채 토벌됐던 게 않았을까 추측했던 것을 떠올렸다.

드래곤은 인간 형태로 변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이 드래곤의 본모습에 비해 상당히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플로리스는 토벌 당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젠탈리온 왕실에서는 악몽이라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악룡이었던 그녀의 사체를 남길 수 없었다.

왜였을까? 플로리스는 어째서 드래곤의 모습으로 젠탈리온과 싸우지 않았던 걸까?


“...플로리스. 너는··· 젠탈리온에 복수를 하고 싶은 거야?”

“복수?”


거리를 좁힌 플로리스의 마나가 또다시 주변을 휩쓸며 공간에 정렬되었다. 검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 손에 흑염의 창이 쥐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주저 없이 나에게 그것을 던졌다.

내 몸은 만신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하리만큼 마나가 넘쳐흘렀다. 그녀가 마법진을 전개함과 동시에 나도 마나를 쏟아 내며 붉은 화염을 그녀의 창을 막아 내듯 던졌다.


두 거대한 마나가 부딪치며 공간을 찌그러뜨린다. 소리도 빛도, 마치 한 점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듯 시공간에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폭발한다.

내 몸으로는 차마 받아 낼 수 없었을 위력의 폭발이었지만, 나는 넘쳐나는 마나를 흩뿌리며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복수··· 글쎄. 그 하찮고 약해빠진 인간들을 없애버리는 것에 복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될까? 그것들과 나는 수준이 다른 존재야. 그저 주제도 모르고 나에게 덤벼든 것들을 몰살 시키고 싶을 뿐이야. 복수라는 건 그것들과 내가 마치 대등하기라도 한 것 같으니까.”

“몰살이든 뭐든, 그걸 네가 무어라 부르는지는 관심 없어. 어쨌든 너는 젠탈리온에 적의가 있는 거지? 어째서야?”

“말했잖아. 그 인간들은 주제도 모르고 나에게 덤벼들었다고.”

“아냐. 그건 거짓말이야. 그들은 너를 먼저 공격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때 그들은 너라는 드래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야.”

“......”

“플로리스, 너는 무엇을 복수하고 싶은 거야?”


그녀는 마법석에 부활의 마법인 리저렉션을 새겼다. 그리고 동시에 ‘미련’이라고 스스로 칭했던 자신의 일부를 함께 넣어 두었다. 그건 단순히 자신이 부활하여 복수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플로리스의 말에는 커다란 위화감이 있었다. 그녀는 여러 말을 늘어놓았지만, 거기에는 탐구자이자 그녀에게 마법을 배웠던 다미안이라는 결정적인 이유가 빠져 있었다.

마치 그 존재를 잊은 것처럼, 그녀는 의도적으로 다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고 있었다.


“...네 녀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넌 영원 속에서 고통 받을 거야’ 라는 말, 바로 다미안이 너에게 했던 말이었지?”


그리고 줄곧 내 마음속에 걸렸던 것이 있었다.

폰더레이 영주와 싸웠을 때, 플로리스는 내 의식을 차지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그중에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넌 영원 속에서 고통 받을 거야’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건 내가 아닌 플로리스가 생전에 들었던 말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말을 플로리스에게 했을 만한 존재는···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그녀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 지냈던 다미안밖에 없다. 나는 그 말을 다미안이 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마치 플로리스가 마법석을 통해 되살아날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것이야말로 영원을 사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

올리비아도 플로리스가 영생에 집착했다고 했다. 그건 그녀가 만든 리저렉션 마법을 의미했다.


“그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었을 거야. 온전한 모습이 아닌 네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야. 영원 속에서 고통받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까지 다시 살아나고 싶은 이유가 그저 복수 때문이야? 다른 누구가 아닌 다미안이 직접 말렸음에도?”

“다미안···”


플로리스는 멍하니 다미안의 이름을 되뇌었다.


나는 줄곧 궁금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사랑했던 다미안이 영생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음에도 플로리스는 결국 영생을 선택했단 말인가? 그저 젠탈리온을 향한 복수심때문에?


“아아···”


플로리스는 어째서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줄곧 그녀를 보호하듯 주변을 휩쓸고 있던 마나의 폭풍도 사그라들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강하다. 나보다도 훨씬 더 강하다. 차마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강한 드래곤이다. 직접 힘을 맞대어본 지금에서야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가 아니고서야, 나는 그녀에게 틀림없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나에게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마법석 조각을 손에 쥐고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나를 방해하는 마나의 흐름은 없었다. 마나의 흐름을 넘어, 어떠한 보호 마법조차 전개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마치 마법을 쓰는 것을 잊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다만, 그녀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는 나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 모든 행동을 파악하려는 듯, 그녀의 눈동자는 깜빡이지도 않은 채 내 눈동자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자신이 남겼던 마법석의 파편을 손에 쥔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나를 뻔히 보고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색 마법석 조각은 그녀의 배를 단숨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조각에서 미묘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나와 똑같은 그녀의 육체가 기우뚱하고 뒤로 천천히 스러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작은 몸은 그대로 잡초가 우거진 산 중턱 위로 무너져 내렸다.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제서야 온몸의 근육이 갈가리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법석 조각에 찔린 채 피가 스며나오기 시작하는 플로리스의 옆으로, 나는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제 삼자의 시선으로 내 몸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건 정말로 묘한 기분이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부스럭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건 틀림없이 인간의 발소리였다. 이곳까지 인간이 오다니, 어떤 겁도 없는 녀석인가.


누군가가 내 쪽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존재에 대한 호기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을 보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니까.


“...아.”


비틀거리며 산을 오르던 그 남자의 시선이 내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의외의 모습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인간은 울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울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퉁퉁 부은 눈과 마구 일그러진 얼굴, 산발이 된 머리카락은 누가 보더라도 조금 전까지 그가 오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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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8. 맹세 (5) 25.02.06 7 0 11쪽
113 #18. 맹세 (4) 25.02.03 7 0 13쪽
112 #18. 맹세 (3) 25.01.30 7 0 12쪽
111 #18. 맹세 (2) 25.01.27 7 0 12쪽
110 #18. 맹세 (1) 25.01.23 9 0 12쪽
109 #17. 보름꽃 (8) 25.01.20 7 0 11쪽
108 #17. 보름꽃 (7) 25.01.16 10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7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7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7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8 0 11쪽
103 #17. 보름꽃 (2) 24.12.30 11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9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10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9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11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10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2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11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1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9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0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2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2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2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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