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ill Death Do Us Part (11)

귀찮은 인간이었다. 나는 그저 조금 겁을 줄 생각으로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드래곤의 거대한 몸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작을 뿐이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인간은 금세 겁을 먹는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내 얼굴은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입만 열면 그를 한입에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마도 공포에 질렸을 거다. 온몸을 지배하는 공포는,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비합리적이며, 연약하고, 약해 빠졌다.
-그리고 나는 약한 것을 혐오한다.
“...네가···”
그 남자는 네 콧김이 닿을 정도로 지근거리에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살려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려는 걸까?
“...네가 드래곤이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어?”
하지만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영 엉뚱한 말이었다. 그 인간은 오히려 드래곤인 나를 당황케 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나약한 인간이여,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죽음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이지. 그것은 마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내 말을 들은 그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는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
“거짓말이야··· 네가 그렇게 강력한 드래곤이라면, 그런 힘도 있을 거 아냐. 그런 힘이 없다면 드래곤은 뭐야? 위대한 마법 생명체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드래곤은 왜 존재하는 거야?”
-그르릉···
나는 그를 위협하듯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인간 주제에 예의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자연에서 가장 강한 마나를 품은 생물인 드래곤은, 그 목소리에도 마나를 섞어 낼 수 있다. 따라서 나약한 생명체라면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 숨이 끊어질 정도로 강한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하리만큼 강한 의지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지?”
“...다미안. 다미안 마나필드. 내 이름은 왜 묻는 거야?”
“다미안 마나필드라. 흥미로워.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처음이구나. 네 녀석은 어째서 망자를 되살리기를 원하지?”
“...내 형이 죽었어.”
“형이라는 건 네 녀석의 혈육 말인가? 그게 어쨌단 말이냐? 인간은 누구나 죽지. 인간뿐만이 아니라 드래곤인 나조차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미 그것이 예정되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거냐?”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지만··· 그 죽음이 이렇게나 일찍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
“몇 년이나 살았느냐?”
“...26년.”
“흥, 인간의 생명이란 허무할 따름이군.”
26년이라.
드래곤은 천 년을 사는 생물이다. 나조차 벌써 200년 가까이 살아왔을 정도니까 그에 비하면 26년이라는 수명은 정말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감흥조차 없었다.
다미안이라는 그 인간은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지만, 또다시 울기라도 하려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나에게서 숨길 수는 없었다.
26년을 살다가 죽었다는 그 남자에 대한 감정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차마 추스르기 힘들어하는 이 하찮은 인간을 보고 있는 것은 꽤나 묘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건 호기심일 거다. 산을 오르던 이 남자가 쉬고 있는 내 눈에 우연히 띄었을 때의 그 호기심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거다.
“다미안이라고 하였나.”
나는 입을 열었다.
“나를 즐겁게 해 준 대가를 치르겠다.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대가···?”
“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너와 같은 인간은 처음 보았다. 모처럼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그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 인간이 슬퍼하든, 오열하든, 이 인간의 혈육이 죽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만족했던 것은 이 인간이 가진 의외성이었다. 그것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나를 모처럼 즐겁게 했다.
“......”
그는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나도 침묵 속에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 인간은 무엇을 원할까? 강력한 마법 장구나 높은 레벨의 마법석 정도라면 인간들에게는 큰 보물이 될 터이다.
간악한 인간들은 그들 스스로가 나약함에도 거기에서도 더 약한 인간을 나누고자 한다. 따라서 나에게 그런 것을 받는다면, 틀림없이 인간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백 년이다. 찰나와도 같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다.
“나는··· 내 가문은 마법사 가문이야.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꽤나 유능한 마법사들을 여럿 배출했어.”
“...호오. 그래서?”
“드래곤의 마나 레벨은 인간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높다고 들었어. 아무리 낮아도 11레벨이라고··· 그렇게 마나 레벨이 높다면 마법을 보는 무언가 특별한 시야가 있겠지. 그러니까···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줘.”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내가 네 녀석에게?”
“응.”
“내가 줄 수 있는 더 귀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 금은보화나 귀중한 보석을 원한다면 줄 수도 있지. 마법 장구를 원하거나 드래곤의 마나가 담긴 마법석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 건가?”
“...응.”
이 인간은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인가.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일종의 위협이었다. 내 시선은 그 존재를 압도한다. 허튼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위압감을 차마 견딜 수 없을 터다.
그는 내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그 위압감을 순간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 다리가,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내 눈을- 드래곤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이를 악물고 내 시선을 받고 있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 보니, 문득 너무나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웃었다. 큰 소리로, 모처럼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즐겼다.
“어째서지? 마법을 배워서 더 큰 힘이라도 얻고 싶은 게냐?”
“...솔직하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야. 내 마법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더 큰 힘을 바라겠어.”
“이유 중 하나라면 다른 이유도 있단 말인가?”
“나는 죽음을 극복해 보이겠어.”
그 작은 인간은 말했다.
“죽음조차 극복하는 마법을 나는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어.”
“죽음을 극복하겠다고? 주제를 모르는구나. 인간 주제에 드래곤조차 찾지 못한 마법을 찾아 내겠다는 말이냐? 죽음을 극복해서 뭘 이룰 수 있지? 스스로 영생이라도 누릴 생각이냐? 아니면 네 죽은 혈육을 되살리기라도 할 작정이냐?”
“...가능하다면 먼저 형을 되살릴 거야.”
“쯧, 하찮기는.”
“그게 안 된다 하더라도··· 죽음만 극복한다면 인간은 새로운 차원에 다다를 수 있어. 분명 인간으로서 가지는 한계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의 눈에 강한 의지가 서려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모처럼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인간이었으니까. 괜히 그 의욕을 부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잔뜩 발버둥 쳐 보거라. 그리고 내가 알려주는 마법을 배워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깨닫도록 하거라.
“좋아. 네 녀석의 헛된 꿈에 어울려 주마. 내가 마법을 알려 준다 하더라도 인간 주제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을 원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불확실한 것을 원한다면 바라는 대로 네게 그것을 주마.”
분명 그가 특이한 인간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인간.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약한 생물이다.
나는 약한 것을 싫어한다. 그것이 내가 인간을 싫어했던 이유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약하기 때문에, 약한 주제에 악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나는 인간을 싫어한다.
그런 인간에게 내가 마법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다 마법의 깊은 곳을 바라보다 좌절하고, 절망하겠지.
“나에게 마법을 배우는 네 녀석에게 내 이름을 알려 주지.”
이 녀석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얼마 간의 유희거리는 될 수 있을 거다.
“케라링그리드 혈족의 불꽃을 따라 걷는 플로리스. 플로리스 케라링그리드다. 좋을 대로 불러라.”
-
“-리스.”
“......”
“...플로리스? 괜찮아?”
“...으응?”
어라. 여기는 어디지.
깊은 꿈을 꾸다가 깨어나기라도 한 듯 정신이 몽롱했다.
아마 꽤나 칠칠맞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나를 다미안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햇빛은 따뜻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아 오는 다미안의 손은 더 따뜻했다.
“...잠깐 졸았던 거야? 이 제자는 열심히 스승님께서 가르쳐 준 걸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러지 않았어.”
“거짓말. 내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눈을 감고 있었잖아.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잠은 자지 않았다- 이런 어린 애 같은 변명이라도 할 셈이야?”
“흥, 감히 나에게 어린 애라니. 고작 백 년밖에 살지 못하는-”
“백 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 주제에, 말이지?”
“...흥.”
내 말을 가로채며 다미안은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다미안이 싫었다. 특히 그런 표정을 할 때면 싫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나를 향해 그런 얼굴을 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난감한 감정이 마음 한 켠에서 불쑥 올라오곤 했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싫다.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나를 보며 눈가가 부드럽게 쳐지는 것이, 상냥한 표정을 하는 것이-
-싫었다.
“아, 화났다.”
“화나지 않았어. 이쪽은 기껏 시간을 내서 네 녀석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데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만 할 거면 냉큼 마을로 돌아가.”
“미안, 미안··· 조금 기분이 들떴나봐. 그도 그럴 것이 11레벨이라니까? 아마도 끝없는 마법의 여정에서 이곳에 다다른 사람은 내가 처음일 거야. 첫 번째 발자국을 내가 찍은 거야. 이번 주는 이 기분을 조금은 즐기게 해줘.”
“고작 11레벨으로 유난이라니···”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내가 상당히 냉담한 반응을 했음에도 다미안은 여전히 들뜬 채로 손에 쥔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11레벨의 마법사가 되며 무언가 본 거라도 있어? 새로운 차원에 도달이라도 했을까?”
“아하하··· 아쉽게도 말이지···”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느냐. 11레벨에도, 12레벨에도 네 녀석이 기대하는 그런 건 없다고. 네 혈육을 되살리려는 건 포기했어?”
“...응, 그건 포기했어. 플로리스, 네가 말한 대로였어. 죽음은 비가역적이야. 되돌릴 수 없어.”
다미안은 그 말을 하며 조용히 내가 앉아 있던 풀밭의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탁 트인 하늘에서 불어온 바람이 내 양 볼을 간지럽혔다.
내가 사는 이 산은 줄곧 삭막한 숲이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뻗어 있어서 햇빛이 가리어진 지면은 축축하고 삭막했고, 그다지 예쁜 풀이나 꽃이 피어나지도 않았다. 이끼와 버섯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미안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산 중턱에는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무들이 쓰러지며 강한 햇빛이 지면에 닿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날려 온 잡초들의 씨앗은 그 땅에 자리를 잡았다. 이전까지 이 산에서 볼 수 없었던 나지막한 높이의 그 풀들이 공터를 빠르게 뒤덮었다.
거기에 다미안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마을에서 여러 종류의 꽃들의 씨앗을 가져와 그곳에 뿌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이런 한적한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곳은 나와 다미안이 항상 마법을 공부하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둘만의 장소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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