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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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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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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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우 (2)

DUMMY

“...뭐, 마법석에 대한 궁금증은 완전히 풀려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를 끝낸 후, 흐르는 침묵 사이로 분위기를 환기할 겸 조금 가벼운 어투로 말을 꺼냈다.

오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랄까··· 응. 그러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꽤나 답답한 표정인걸.”

“그냥 조금··· 감정이 쉽게 가시지 않아서··· 루비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그런 일을 직접 본 거잖아.”


다미안과의 모든 일을 겪은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다. 나는 관찰자가 아니었다. 바로 내가 플로리스였다. 목숨이 끊어지기 전, 리저렉션을 새긴 그 마법석을 던지는 그 순간까지 나는 그녀의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였기 때문에.


“...복잡한 심경이지. 왜냐하면 나도 플로리스라는 드래곤을 그저 나쁜 녀석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든. 다미안을 사랑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단순히 이뤄지지 않은 복수심에 불타서 그 마법석을 남겼던 거라고 생각했어. 어떤 생각으로 리저렉션을 남긴 것인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어.”

“오히려 그 마법을 생각했던 건 다미안이었고, 플로리스는 그걸 말렸다는 거지···”

“응. 플로리스는 그게 저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난 알고 있어. 그 마법을 남길 때, 플로리스는 정말로 두려워했어.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에··· 작은 기대를 걸고 자신의 파편을 리저렉션에 남겼던 거야.”

“원래라면 마법석에 새겨진 리저렉션은 그 마법석 사용자의 생명을 되돌리는 마법이었겠지? 너는 마법석에 새겨진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드래곤이었던 네가 치명상을 입은 후에 동굴로 내려가서 그걸 썼던 거고.”

“그랬겠지. 다만 플로리스가 그 마법석에 자신의 일부를 섞어 넣었다는 건 몰랐을 거야. 그런 장난을 쳐 두었을 줄이야.”

“하지만, 결국에 다미안은 말이지···”


오멜은 그 말을 꺼내기를 주저했다. 얼버무린 그 말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플로리스는 다미안이 그 마법을 썼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영원의 고통을 감내했지만, 다미안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플로리스가 그 마법을 쓰는 것을 말렸기 때문에, 아마 다미안은 리저렉션을 자신에게 사용하지 않았을 거다.


두 사람은 엇갈렸다.

다미안은 그 마법을 쓰고자 했지만 플로리스 때문에 그러지 않았으며, 플로리스는 그 마법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다미안 때문에 썼다.

슬픈 이야기였다.


“오멜,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애초에 왜 다미안은 그런 마법을 고민했던 걸까? 자신의 형을 살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잖아? 정말로 탐구자로서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을 극복하고 싶었던 걸까? 탐구자들에게 그런 욕심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난 이해할 수 있어.”

“정말?”

“아마 그가 인간이었기 때문이겠지.”

“...무슨 말이야?”


오멜은 영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네가 다미안이라고 생각해 봐. 자신은 인간이야. 길어봐야 백 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야. 그런데 천 년을 사는 드래곤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둘의 사이를 가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하지 않았겠어? 심지어 그는 11레벨의 초월자가 되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나는 오멜의 말을 곱씹었다.

다미안이라면, 플로리스에게 향하던 그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린다면, 정말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미안은 플로리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구나.”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미안이 플로리스를 사랑했던 것만큼, 플로리스도 다미안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죽은 다미안의 복수를 위해 날뛰었을 만큼 내심 자신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다면 다미안이 플로리스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했더라면, 그러면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았을까. 그 한마디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하지만 오멜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미안이 어째서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플로리스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비로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플로리스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고작 백 년을 살고 죽은 후에도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던 거였어.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플로리스의 남은 시간에 자신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싶지 않았던 거였어.”


바보 같은 남자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플로리스를 배려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그녀를 배려했기 때문에 플로리스라는 존재는 산산조각 나서 영원을 떠돌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다미안을 만난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뭔데?”

“다미안의 풀네임은 분명··· 다미안 마나필드라고 했었지.”


오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다미안 마나필드. 그건 오멜과 같은 성이었다.


“그러면 오멜에게도 탐구자의 피가 흐르고 있겠네. 다미안도 자신의 가문이 마법사 가문이라고 하기도 했었으니까 너에게 그 재능이 이어졌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기분이 이상하네. 이런 식으로 내 핏줄의 역사를 듣게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뭐, 그 기분은 동감이야. 플로리스 케라링그리드··· 우연인지 아니면 플로리스가 계획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마법석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용하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는 그녀가 케라링그리드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올리비아는 플로리스를 향해 노골적인 증오를 내비치면서 어리석은 여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를 끝없는 고통으로 밀어 넣었다는 원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건 아마 그녀가 젠탈리온에게 패배한 후 이어진 드래곤 토벌을 말하는 것일 거다. 플로리스가 젠탈리온을 똑바로 멸망시켰다면 후손이 고통받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었을 거다.

개인적으로 그건 너무 결과론적인 억지라고 생각하지만.


“루비, 그래서 플로리스는··· 어떻게 된 거야? 플로리스를 네가 찔렀다고 했지?”

“응, 그랬어. 그렇지만 그걸로 플로리스를 죽였는지는 잘 모르겠어. 뭐랄까··· 그렇게 강력했던 것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쓰러지기도 했고 그 직후에는 내가 플로리스가 되어서 그녀의 과거를 겪었단 말이지. 거기에 지금의 내 눈에 그녀의 문양이 새겨진 것도 이상하고···”


그 말을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거울에 가까이 다가갔다.

몇 번 눈을 비볐지만 여전히 내 눈동자에 그려진 낯선 문양은 없어지지 않았다. 마치 눈 깊은 곳에서 떠오른 것처럼, 이질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플로리스를 찔렀다는 마법석 조각에는 처음에 플로리스의 피가 섞였다고 했지?”

“마법석의 색깔 자체는 플로리스의 마나의 영향을 받은 거고, 리저렉션을 새길 때 그녀의 피를 썼어.”

“그게 무슨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결국 그 마법석은 리저렉션이 새겨진 것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플로리스라는 존재의 파편을 봉인해 둔 것이기도 하잖아?”

“플로리스는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거지?”

“내 추측일 뿐이지만. 드래곤 마법의 원리까지 내가 알 수는 없으니까.”


영원 속에서 고통 받을 거야, 라고 했던가.

만약 오멜의 추측이 맞다면 여전히 플로리스는 영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된다. 그녀는 오히려 진정한 죽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를 엿본 나로서는, 더 이상 그녀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측은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그녀와 싸워서 이겼으니까. 표식이 나를 공격하는 것도 없어졌고. 당분간은 괜찮지 않을까.”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이제 어떡할 거야? 다시 올리비아를 찾아갈 거야?”

“으음···”


마법석과 나의 존재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많은 사실들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올리비아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내가 플로리스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다만 말뿐인 증거로 과연 올리비아가 납득하여 줄 것인가.


오멜은 내가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뚜렷한 계획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듯, 이어서 말했다.


“한 가지 말해 줄 것이 있어. 네가 의식을 잃은 삼 일 동안에 여기서 젠탈리온의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거든.”

“...젠탈리온의 가사단이라면 드래곤 나이트 말이야?”

“아냐. 이번에는 왕실 기사단이었어.”

“왕실 기사단이 왜? 가뜩이나 전쟁도 바쁠 텐데 그쪽도 우리를 신경 쓰는 거야?”


오멜의 말에 드래곤 나이트에게 쫓기던 때가 떠올라,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 대한 건 아니야. 요 며칠 동안 그쪽에서 에본윙을 공격하기 시작했나 봐.”

“에본윙을? 왜?”


그건 꽤나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에본윙의 목적이 젠탈리온 멸망에 대한 예언 성취를 돕는다는, 젠탈리온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분명한 적대적 세력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그다지 엘 메이아의 편을 든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네 말대로 에본윙은 다른 나라와 연합하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에본윙은 이번 전쟁을 예언 성취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흥, 애초에 그 예언은 플로리스가 남긴 것도 아니야. 이제는 확실해. 그 예언석을 플로리스가 남겼다고 믿고 있는 에본윙은 근본부터 틀렸던 거야. 탐구자들이 옳았어.”

“그렇지만··· 내가 여러모로 조사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로는 그건 이들에게 일종의 믿음과도 같은 거야. 우리가 뭐라고 한들 깨뜨릴 수는 없어. 아마 에본윙이 처음 탐구자로부터 독립할 때에는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몇백 년의 시간을 폐쇄적으로 지내다보니 아무래도 그 신념이 변질된 거겠지.”

“레비티스 그 망할 녀석만 보더라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나는 다시금 레비티스가 나를 속였을 때가 떠올라 소름이 돋아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를 마법으로 결박한 후 희번득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그 불쾌한 모습을 나는 아마도 절대 잊지 못할 거다. 마치 기분 나쁜 악몽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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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8. 맹세 (4) 25.02.03 7 0 13쪽
112 #18. 맹세 (3) 25.01.30 7 0 12쪽
111 #18. 맹세 (2) 25.01.27 7 0 12쪽
110 #18. 맹세 (1) 25.01.23 9 0 12쪽
109 #17. 보름꽃 (8) 25.01.20 7 0 11쪽
108 #17. 보름꽃 (7) 25.01.16 10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7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7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7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8 0 11쪽
103 #17. 보름꽃 (2) 24.12.30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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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11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10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2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11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1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10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0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2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2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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