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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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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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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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우 (6)

DUMMY

“바나 델 리오(Vana Del Lio). 오멜의 전 동료라고 소개하면 될까.”

“...소개를 해서 어쩔 셈이야? 나와 친구라도 되려고?”

“왜냐하면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드래곤을 보는 건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거라서 말이야. 꽤나 호기심이 생기거든. 나는 로웨나 녀석만큼 마물에 대해 탐구심이 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아크로서 어느 정도의 마법적 호기심은 항상 있으니까.”


젠탈리온의 세 아크. 로웨나와 오멜, 그리고 바나.

나는 비로소 왕성에 있을 때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은 적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 여자가 젠탈리온이 자랑하는 세 번째 아크란 말이지.


이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다.

당장 알데론만을 상대하기도 솔직하게 벅차던 참이었다. 회복한 오멜이 합류하여 조금은 몰아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차에 타이밍도 나쁘게 10레벨의 마법사라니.


“쏴라! 물러서지 마!”

“으아악···!”


거기에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에본윙은 젠탈리온의 토벌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나와 오멜이 알데론과 바나를 상대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하하하··· 꽤나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당연하지. 나를 죽일 작정이잖아?”

“흐음, 그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야. 젠탈리온 왕실의 의견은 다르겠지만 나는 반드시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나에게는 그것이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야.”

“그렇다면?”

“천 년 전부터 우리 젠탈리온은 드래곤과 끝없는 사투를 벌여 왔어. 실제로 역사 속에서 여러 드래곤들을 토벌했지. 하지만 드래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그 드래곤을 절멸시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 드래곤의 핏줄은 어딘가에서 살아남아서 지금의 너에게까지 이어졌지.”


바나는 표정은 줄곧 부드러웠다.


“나는 드래곤의 씨를 말리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고 봐. 그들이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그 말은 나도 사라져서 눈에 띄지 말라?”

“맞아. 젠탈리온 밖으로 사라져서 자취를 감춘다. 물론 한동안 우리도 너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래도 너도 성의를 보여달라는 거야. 우리의 눈 밖으로 완전히 숨어 지낼 성의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도 결국 포기할 테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드래곤을 막대한 비용을 써서 언제까지나 찾아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녀는 끝까지 그것이 정말로 나를 위한 길이라는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상냥한, 마치 어머니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 내용은 결국 나보고 영원히 사라지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영원히 눈에 띄지 말고 숨어 지내라는 것이었다.


“거절하겠어. 난 그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거든.”

“그건 유감이야. 그렇다면 내가 할 일도 하나밖에 없지.”


자신의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경계하며 천천히 오멜의 옆으로 움직였다.

바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같은 기사단 생활을 했던, 같은 아크로 지냈던 오멜이다. 오멜도 자신의 지팡이를 조용히 들어 올려 그녀를 겨누었다.


그리고 그때, 바나와 알데론이 서있던 바로 앞의 땅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뒤집어졌다.

그건 오멜의 마법이 아니었다. 에본윙의 마법도 아니었다. 땅에서 나타난 것은 몬스터였다.

불쾌한 보라색 빛을 띄는 피부에 몸통을 따라 돋아난 여러 개의 촉수. 그다지 닮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우리가 툼스크림의 공터에서 보았던 에본윙의 남자가 몬스터로 변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우지직!


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그 끔찍한 외형의 몬스터는 순식간에 알데론과 바나를 향해 그 입을 벌렸다. 그건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두 명은 그대로 몬스터의 입속으로 사라졌을 것이었다.


“이거, 이거··· 정말로 기괴한 짓을 하는구만. 무슨 마법이지?”


하지만 크게 벌린 몬스터의 입은, 닫히지 않은 채 그대로 절반으로 갈라졌다.

마치 알데론의 대검의 두 배는 더 거대한 얼음의 검이 공간을 휩쓸어 낸 것처럼, 바나의 마법은 몬스터를 깔끔하게 반 토막 내었다.

몬스터의 피인지 체액인지 모를 불쾌한 액체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것까지도 마법의 장벽에 막혀 그들의 옷깃조차 적실 수 없었다.


“젠장···! 저 마법사를 먼저 노려라!”


그 몬스터는 틀림없이 에본윙의 일원이었을 거다. 우리도 에본윙의 남자가 몬스터로 변하는 장면을 직접 보아서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동료가 일격에 죽은 것을 본 그들은 그 마법사를 우선하여 처리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에본윙의 모두는 일제히 바나를 노리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할 뿐이었다. 바나 앞을 가로막은 알데론의 대검에 잠깐의 시간이 끌리자 곧장 바나의 마법이 지면 위로 펼쳐졌다.


“거기서 떨어지세요!”


오멜은 그 마법에 대해 눈치채고는 곧장 방어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나의 마법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다. 많은 수의 전투원들은 끝끝내 오멜의 마법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우지직···!


오멜의 배리어 안에 있음에도 얼굴 위로 눈동자가 시릴 정도의 냉기가 몰아 닥쳤다.

바나의 마법은 지면 위에 있는 에본윙들의 다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들의 신발이 점점 바닥에 달라붙는가 싶더니, 바닥에서 다리를 타고 오르는 냉기로 결국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반신이 얼어붙은 채 당황해하는 그들을 마무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젠탈리온의 움직이는 요새···”


오멜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바닥을 순식간에 얼릴 정도로 강력한 냉기탓에, 깊은 산속인 이곳에는 마치 새파란 연기가 피어오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바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그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립구만. 젊었을 적에 누군가가 그런 별명으로 나를 불렀지. 요즘도 나를 그렇게 부르는가? 근래에는 왕성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잘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오멜의 배리어 안에 모여 있는 우리를 향해 다시 지팡이를 겨누었다.

이미 에본윙의 대다수는 죽었다. 남아 있는 인원은 나와 오멜, 그리고 에본윙의 수장인 레비티스를 포함한 이 배리어 안의 고작 열 명 남짓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토벌대를 이끄는 기사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정보였다. 하지만 거기에 아크가 합류하다니.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사고였다.


바나가 우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또다시 마법을 외우는 것을 신호 삼아, 알데론이 우릴 향해 뛰어들었다.

여기서 그나마 알데론과 검을 맞댈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데론을 상대하게 되면 나는 마법을 쓸 수 없다. 바나의 마법에 대응하는 것은 온전히 오멜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바나도 마법을 전개하기 때문에 알데론은 포효를 사용하지는 않을 거다. 온전히 오멜의 손에 우리의 생사가 달리게 된다.


“마물 주제에 끝까지 인간 행세를 할 셈인가!”

“그래! 끝까지 할 거야! 그게 거짓이라면, 내가 여기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상 완벽한 거짓으로 살아주겠어!”


알데론의 검을 간신히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점점 나는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힘이 부족하다. 그의 검을 막아서는 것이 너무나 힘겹다.

손에 들린 내 검조차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더 이상 검이 아니라 그저 무거운 쇳덩어리로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호승심이나, 나를 죽이려는 상대에 대한 분노같은 것이 아니었다. 우습게도 두려움이었다.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그 두려움이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을 뿐인 건가. 엄마의 복수니 뭐니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고 나니 이런 꼴인 건가.


“한 번 네 최선을 보여보거라!”

“바나!”


등 뒤에서 오멜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사방을 휩쓰는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건 두 종류의 다른 마나였다. 내 앞에서 펼쳐진 바나의 마법진과 내 등 뒤에서 펼쳐진 오멜의 마법진이었다.


오멜은 두렵지 않은 걸까.

자신의 마법이 실패라도 한다면, 바나에게 밀리기라도 한다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대로 몰살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넘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오멜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가.


-콰직!


알데론의 대검이 내 몸을 향해 강하게 휘둘러졌다. 나는 검을 세워 그것을 받아 내었지만 충격을 차마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했다.

일순간 균형이 흐트러진 탓에 발을 헛디뎠다. 비틀거리는 내 몸통을 향해 또다시 대검이 찌르듯 파고들었다.


“공허로 돌아가거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급하긴 해도 여전히 배리어를 전개할 약간의 틈은 있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기회였다. 검을 맞대며 알 수 있었다. 알데론은 분명 강한 기사이지만 여전히 무적은 아니다. 분명히 빈틈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빈틈은,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검을 반동을 따라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품에 지니고 있던 단검을 꺼낸 후, 나를 찔러오는 그 움직임을 따라 동시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우지직, 하고 그 대검이 내 뱃가죽을 찢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하지만 내 단검 끝도 무언가를 찢어내는 강한 저항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잉···


두 마나의 흐름이 강하게 부딪혔다.

빛이 눈을 가린다. 굉음은 귀를 가린다.


확신할 수 없었다. 내 단검은 끝끝내 알데론에게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 해냈다는 이상한 고양감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해내지 못했을지언정,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


하얗게 공간을 메우는 빛 사이로 나는 겁쟁이 드래곤이었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어찌할 수 없는 겁쟁이이자 비겁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 나이트가 몰려와 나와 엄마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어서 그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악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죽고, 나도 죽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만약 그때, 내가 엄마의 뒤로 숨지 않고 엄마와 함께 적들과 맞서 싸웠더라면. 그러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까.

엄마도 두려웠겠지. 그럼에도 철들지 않은 어리숙한 딸을 위해, 기꺼이 적들 앞에 나섰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작가의말

14번 타이틀의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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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9. 매듭을 풀다 (1) NEW 20시간 전 1 0 14쪽
116 #18. 맹세 (7) 25.02.13 3 0 13쪽
115 #18. 맹세 (6) 25.02.10 6 0 12쪽
114 #18. 맹세 (5) 25.02.06 7 0 11쪽
113 #18. 맹세 (4) 25.02.03 7 0 13쪽
112 #18. 맹세 (3) 25.01.30 7 0 12쪽
111 #18. 맹세 (2) 25.01.27 7 0 12쪽
110 #18. 맹세 (1) 25.01.23 9 0 12쪽
109 #17. 보름꽃 (8) 25.01.20 7 0 11쪽
108 #17. 보름꽃 (7) 25.01.16 10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7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8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7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8 0 11쪽
103 #17. 보름꽃 (2) 24.12.30 11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10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11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10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11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10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2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11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1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10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0 0 11쪽
» #14. 조우 (6) 24.11.21 13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2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2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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