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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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5.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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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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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DUMMY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젠탈리온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에본윙이 젠탈리온 북부의 작은 마을인 리벤델을 거점으로 삼은 지 벌써 한 주가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에본윙의 정찰 결과로 몇 번이나 공격 계획을 검토해 보았지만, 이대로 내륙으로 이동한 젠탈리온의 방어선을 우리끼리 파고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동안 기세 좋게 밀어붙이던 엘 메이아의 남쪽의 전장도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에본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 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하자니 이번에는 거꾸로 우리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저들이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할지 모르는 입장에서 그건 너무나 큰 위험성이 있었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북쪽을 밀고 내려가는 것과 같이 엘 메이아의 전선이 점점 동쪽을 따라서 올라오고 있어. 여차하면 젠탈리온이 우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주겠다는 움직임이 아닐까.”

“흐응. 엘 메이아가 그렇게 착한 녀석들일까···”


조금 전에 들어온 정보원으로부터의 소식을 들은 오멜은,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고 바쁘게 펜의 뒤편을 움직였다.

거기에 비해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나는 조금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가락 끝으로 마법석 단검을 빙글빙글, 나른하게 흔들 뿐이었다.


마법석 단검. 아니, 마법석 조각.

이 마법석은 플로리스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피를 담아 만든 마법석의 일부였다. 그리고 플로리스의 존재는 그 마법석에 새겨진 마법을 따라 내 존재와 겹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바로 지난 주, 그녀의 바람을 따라 이 마을에 있는 다미안 마나필드의 무명석 앞에서, 그녀는 온전한 안식에 들어갔다.

그녀가 내 꿈에 나타나 말을 거는 일도, 내 몸을 차지하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그녀는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볼일도 없을 거다.


그녀가 안식에 들며, 내 오른팔에 새겨져 있던 표식은 신기하게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내 눈동자에 희미하게 떠올라 있던 표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아마도 이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싫은 기분은 아니다. 아마도 이게 나에게 남아 있는 이상,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플로리스를 떠올리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

“...왜, 왜···?”

“...그냥, 뭐랄까.”


갑자기 자신을 째려보는 내 눈빛에 오멜은 조금 당황한 듯 움찔하며 곁눈질로 내 눈치를 본다.


뭐어, 딱히 화난 건 아니야. 화난 건 아니지만 조금 열 받는단 말이지.

그날 이후로 오멜은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그걸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걸까. 열 받아.

그리고 더 열 받는 건··· 그거에 대해서 이상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그건 내 의지도 아니었고. 플로리스 녀석이 멋대로 해버린 거고. 그러니까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전혀 없는데.

그런데도.


“아야! 왜, 왜 그래? 아프다니까···”

“됐어, 됐다고! 멍청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오멜에게 다가가 그 등을 주먹으로 마구 때려주었다.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흥, 됐어.


“그래서 계속 말해봐. 엘 메이아가 우리와 협력할 생각이 있다는 의미일까? 엘 메이아는 어떤 나라야?”

“뚜렷한 성향이 있는 나라라기보다는 젠탈리온과 기본적으로 비슷하기는 해. 다만 젠탈리온에게 국경 지대에서 오랫동안 마찰이 있었다 보니 전반적으로 젠탈리온에 대해 적개심은 있을 거야. 역사적으로 그렇게 강대국으로 불리는 나라는 아니었다 보니 오히려 보수적인 분위기는 좀 강한 편이지.”

“그렇다면 에본윙과 손을 잡을 일은···”

“내 생각이지만 거의 없지 않을까. 다만 에본윙이 그런 것처럼 그쪽도 에본윙을 좋은 도구 정도로 생각은 하고 있을 거야. 북쪽에서 젠탈리온을 함께 압박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도 있잖아?”

“협력할 생각은 없지만 당장은 두고 볼 정도라는 거구나.”


그 말대로라면 당장 엘 메이아의 전선이 동쪽을 타고 우리에게 뻗어 오는 것 자체는 크게 염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엘 메이아의 입장에서는 젠탈리온이 방어선을 내륙으로 꽤나 물렸으니 기회를 타고 마치 포위하듯 여러 방향으로 난전을 펼치고 싶을 거다.

잘만 한다면 젠탈리온은 그대로 파멸의 길을 걸을 걷게 된다. 그만큼 전황은 그들에게 불리해 보였다.


“다만 알다시피 남쪽의 전선이 상당히 정체되고 있어.”

“그건 왜일까? 올리비아는 아마도 남쪽에 있겠지?”

“그렇겠지. 남쪽은 양쪽 나라 모두에게 중요해. 아무래도 산맥으로 가로막히지 않은 입구와도 같은 곳이니까 서로 최대의 전력을 쏟아내고 있겠지.”

“최대의 전력이라면···”


젠탈리온이 자랑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하면 최정예로 이루어진 드래곤 나이트다.

그 기사단에는 무려 아크라고 불리우는 10레벨의 마법사가 세 명이나 소속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 명은 이탈해서 지금 내 앞에서 지도에 몰두해 있지만.


“사울로, 로웨나, 바나··· 이 녀석들이 남쪽에서 올리비아를 막아 내고 있다는 거지?”

“사울로··· 단장님은 그곳에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로웨나는 틀림없이 최전방에 있을 거야. 아크 중에서도 그녀는 완전히 전투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로웨나.

그 이름을 듣자 나도 모르게 손가락 끝이 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간신히 심호흡을 해서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다시 오멜에게 물었다.


“바나는? 이전에 싸웠을 때 보니까 상당히 특이한 마법을 쓰는 것 같던데···”

“바나는 대인 제압 마법의 전문가야. 아군은 보호하고, 적들은 제압하지. 그래서 젊었을 적에는 움직이는 요새라고 모험가 사이에서 불렸다고 들었어.”

“모험가?”

“응. 바나는 모험가 출신이거든. 꽤 옛날이야기기는 하지만.”


나는 마법을 사용하는 바나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확실히 마법을 쓰는 방식이나 타이밍에서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마법 연구에 몰두하는 스타일의 마법사인 오멜과는 전혀 다른 관록과 여유로움이 느껴졌었다.

모험가 출신이라고 하니 꽤나 이해가 되었다.

움직이는 요새란 말이지. 그녀도 상당히 조심해야 할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올리비아와 로웨나가 충돌할까?”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올리비아는 드래곤의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전선이 쉽게 돌파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점점 힘을 드러낼 거야. 그렇다면 올리비아를 막을 수 있는 건 결국···”

“잠깐만.”


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다급히 오멜의 말을 끊었다.


“로웨나가 올리비아의 마나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고 했지?”


왕성에서 로웨나는 나를 향해 오버플로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웨나는 나를 세 번째 드래곤인 올리비아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마나 정보를 바탕으로 미리 마법을 작성해 두었다.


“올리비아를 로웨나와 만나게 해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로웨나가 올리비아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내가 왕성에 있을 때에 올리비아를 찾고 있던 것을 로웨나는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실제로 조리장님과 올리비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에 로웨나가 등장했었다.

그녀는 엿듣는 취미는 없다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때의 대화를 어느 정도 들었거나,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내가 도망친 이후로 드래곤 나이트는 철저하게 내 행적에 대해 조사했겠지.

심지어 로웨나는 틀림없이 오버플로우가 나에게 듣지 않았던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그녀는 영악하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드래곤의 존재에 대해 분명히 의심했을 거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올리비아라는 이름의 엘 메이아의 기사를 보았을 때, 로웨나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다.

더군다나 전쟁의 선두에서 발휘하는 그녀의 무력은 로웨나의 추측을 더더욱 확신으로 바꿔 주었을 거고.


내 말을 들은 오멜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다시 한참 동안 지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젠탈리온 입장에서 드래곤 나이트로 상대를 밀어붙인다면 충분히 산맥의 바깥까지 전선을 몰아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고전할 정도로 북쪽에서 우리의 공세가 강했던 걸까 했거든. 거기에 젠탈리온은 지금 전선을 내륙으로 당긴 후에 걸어 잠그다시피 하고 있잖아.”


오멜은 펜 뒤쪽으로 지도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게이트포트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을 정도로 산맥으로 가로막히지 않은 남쪽의 국경지대는 넓지 않았다. 젠탈리온이 전선을 내륙으로 당기게 되며, 엘 메이아는 그 입구를 통해 젠탈리온 영토의 동쪽으로 파고들 수 있게 됐다.

엘 메이아 입장에서는 젠탈리온을 몰아 넣는 그림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전황이 유리하다고 충분히 판단했을 거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거꾸로 젠탈리온의 입장에서 그건 마치 남쪽에 집중되어 있던 엘 메이아의 전선을 의도적으로 동쪽으로 넓게 펼치게 하려고 유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 그 목적이 엘 메이아의 정규군에 섞여 있는 드래곤인 올리비아라면-


“너도 그 마법을 봐서 잘 알겠지만··· 로웨나는 드래곤과 대규모 난전이 아닌 일대일로 맞붙고 싶어 할 거야. 다른 방해 없이 오버플로우로 정확하게 타겟을 노려야 할 테니까.”

“거기에 마법석도 설치해야 하잖아.”

“맞아. 그러니까··· 올리비아를 원하는 곳으로 유도하려 하겠지. 그건 어렵지 않을 거야. 올리비아의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정체된 상황을 풀고 싶어할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핵심적인 전력을 제거해야 하니까.”


플로리스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기본적으로 드래곤은 인간보다 더 강하다는 자신감이 있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전제로 움직인다.

그건 거만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 마나 레벨의 한계로 불리는 10레벨을 드래곤은 뛰어넘는다. 실제로 드래곤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젠탈리온에게는 오버플로우가 있다. 천 년 전에 플로리스가 당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그 마법이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올리비아였다.


-똑똑똑


“플로리스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때 문 밖에서 에본윙 정찰대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남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엘 메이아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나와 레비티스에게 보고하곤 했다.

들어오라는 내 말에 조심스럽게 들어온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취급을 받을 때마다 닭살이 돋는다.


“젠탈리온 쪽에서 핵심 전력 일부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아마도 엘 메이아에서 동쪽을 따라 북쪽으로 펼치는 전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북쪽으로?”

“네. 젠탈리온 병력이 당장 저희 쪽으로 오는 움직임은 아니지만, 거리가 가까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플로리스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저들의 움직임이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정확히 어떤 핵심 전력이 움직이는지 파악됐을까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움직임이긴 했다.

이것이 저들이 영토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내륙으로 방어선을 당긴 이유다. 병력을 운용하기에는 훨씬 더 유리하게 된다.


“네. 드래곤 나이트라 불리우는 특수 기사단의 전력과 그 기사단의 마법사-”


내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로웨나 레온우드입니다.”


작가의말

16번 타이틀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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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7. 보름꽃 (7) 25.01.16 4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5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5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5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6 0 11쪽
103 #17. 보름꽃 (2) 24.12.30 8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7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8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7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8 0 11쪽
»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8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0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9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9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7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8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0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0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9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4 0 11쪽
88 #14. 조우 (2) 24.11.07 10 0 11쪽
87 #14. 조우 (1) 24.11.04 10 0 11쪽
86 #13. Till Death Do Us Part (12) 24.10.31 11 0 13쪽
85 #13. Till Death Do Us Part (11) 24.10.28 11 0 13쪽
84 #13. Till Death Do Us Part (10) 24.10.24 11 0 12쪽
83 #13. Till Death Do Us Part (9) 24.10.21 12 0 12쪽
82 #13. Till Death Do Us Part (8) 24.10.17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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