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5.02.17 19:0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2,056
추천수 :
3
글자수 :
636,963

작성
24.12.16 19:00
조회
10
추천
0
글자
11쪽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DUMMY

잠시 나와 오멜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언젠가 올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시점에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루비, 당장 움직여야 돼. 올리비아는 분명히 로웨나를 따라 올 거야. 이런 노골적인 함정을···”


토할 것 같아. 토할 것 같아···

그녀는 나에게서 엄마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여동생까지.

나에게서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빼앗아야 만족할 셈인가.


위가 마구 비틀리는 기분에 나를 재촉하는 오멜의 말에도 한참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입을 여는 순간 요동치는 불쾌함을 이기지 못하고 토할 것만 같았다.


“......”


손끝에 피가 돌지 않는 것 같이 차가워졌다. 아니, 차가워졌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거기에 붙은 것이 내 손가락이 아닌 것 같았다.


···나, 또 떨고 있는 거야? 무서워서? 내가 이길 수 없는 강한 적 때문에?

아니면 또 가족을 잃을까봐? 그 슬픔과 고통을 또다시 느끼게 될까봐?


“...미안, 괜찮아. 가자. 오멜.”

“...루비.”


두렵다. 두렵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피하면 안 된다.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살점을 도려내고, 뼈까지 깎아내는 알데론의 대검의 두려움도 이겨 냈잖아. 내 손으로, 나는 그 두려움을 부술 수 있다.


‘로웨나.’


네 녀석은 나에게서 더 이상 앗아갈 수 없어. 다른 누구에게 의지하는 게 아닌 바로 내가 직접 막아 보이겠어. 더 이상 멋대로 하게 두지 않아.


-


“이미 교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줄곧 산맥 안에서 비밀스럽게 살아왔던 에본윙에게는 충분한 숫자의 말이 없었다. 간신히 열 필 정도의 말을 모을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대규모의 병력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오멜은 에본윙의 전투원들 일고여덟 명과 함께 급하게 말을 몰아 산맥을 따라 로웨나가 이동했다는 남쪽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달린 우리가 다다른 곳은, 베이르(Veyr)라고 불리우는 협곡의 입구였다.

젠탈리온의 지형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오멜이 이동하는 동안 나름대로 설명해 주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 풍경은 그야말로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 협곡에서요?”


나는 그 말에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말을 재촉하여 쉬지도 않고 급하게 움직였지만, 적국 주요 병력의 수상한 움직임을 뒤쫓았을 엘 메이아와 젠탈리온의 교전은 이미 시작된 후였다.

아니, 그렇게 짐작할 뿐이었다. 오직 깊은 협곡 안에서부터 들리는 전장의 폭음소리와 사방으로 반사되는 날카로운 쇳소리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협곡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혼란스러웠다.

날카롭게 솟은 바위들은 마치 사나운 가시밭과 같은 모양으로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늘어서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넓지 않은 협곡의 바닥은, 그 뒤에 매복한 적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압박감을 주었다.


거기에 협곡 전체에는 불쾌한 분위기의 안개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오멜이 이 협곡의 지형이나 위치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협곡의 안쪽에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협곡을 따라 전장의 소리가 메아리쳤고, 폭발인지 마법인지 모를 섬광이 안개를 따라 반사되며 기분 나쁘게 번쩍였다.


‘로웨나···’


틀림없었다. 로웨나 그 여자는 의도적으로 이곳을 선택한 거다.

이런 좁고 깊은 험지에는 설치된 마법석을 숨기기에도 좋다. 올리비아와 일대일로 맞붙을 기회는 더더욱 많다.

올리비아 역시 로웨나를 죽일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을 거다. 제 발로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로웨나에게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비장의 수가 있다는 것만 뺀다면.


그녀에 대한 분노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플로리스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는 흠이 없는 검정을 섬기며 자유를 추구하는 자, 플로리스님의 뜻이라면 죽음도 불사하겠습니다.”

“...천천히 진입할게요.”


협곡은 말을 타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이런 지형에서 말을 타는 것은 오히려 발이 묶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협곡의 입구에서 말에서 내린 후 진형을 유지한 채 협곡을 따라 천천히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입구에서부터 꽤나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펼쳐져 있었다.

희미한 피비린내와 무언가가 불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는 부서진 돌무더기와 박살 난 무기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루비, 어떡할 셈이야?”

“이런데에서 싸우고 있다면 들키지 않고 조용히 로웨나와 올리비아를 찾는 건 불가능해. 다소 소란이 있더라도 저들 사이를 뚫어 낼 거야. 거기에 괜히 시끄러워져서 로웨나가 계획을 포기한다면 더더욱 좋고.”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올리비아는 둘째치더라도 저쪽에 로웨나가 있다는 것이 너에게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로웨나의 계획은 명확히 올리비아를 타겟으로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공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녀가 드래곤에게 맞추어 마법을 작성하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로웨나를 만난다는 것은 나 역시 공격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알아. 알지만··· 그래도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까. 무섭다고 도망치면 분명히 후회할 거니까.”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마나 폭주는 플로리스도, 엄마도, 심지어 드래곤이었던 나까지 죽였을 정도로 드래곤에게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무섭다고 물러설 수는 없다. 그렇게 결심했다. 나는 죽을지언정 또다시 후회하지 않는다.


오멜은 상당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콰과광!


협곡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멀리서 무언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골짜기를 따라서 순식간에 폭풍이 밀어닥쳤다.

오멜이 배리어를 펼치기는 했으나 워낙 급작스러워서 전부를 감쌀 수는 없었다. 배리어 바깥의 몇몇이 뒤로 나뒹굴었다.


그건 엘 메이아와 젠탈리온이 격전을 벌이는 전장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로웨나가 올리비아와 맞붙기 전까지 그녀를 찾아내야 했다.


“저와 오멜은 따로 움직여서 젠탈리온의 핵심 전력을 찾아낼 거예요. 쉬운 상대는 아니니 정면으로 맞붙지는 말고 최대한 저들 사이에 혼란을 만들어 주세요. 당장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주세요.”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에본윙의 추가 전력이 오고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이 온다 하더라도 상황이 바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젠탈리온의 드래곤 나이트다. 정예 중에서도 최정예의 병력이다.


나와 오멜은 에본윙을 뒤로하고 지형 사이사이에 몸을 숨기며 협곡 깊은 곳으로 빠르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어지럽게 메아리치는 전장의 소리가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느낀 그 순간, 날카로운 마나의 흐름이 우리를 향했다.


“오멜 네 녀석은 기어코 조국을 배신하는 길을 선택하였구나. 엘 메이아에게 부귀영화라도 약속받은 거냐?”


우리를 향해 날아온 것은 하나의 화살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는 치명적일 정도로 강한 마나가 담겨 있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줄곧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오멜의 배리어를 뚫지는 못한 채 마나를 그대로 소모하고 힘없이 땅 위로 떨어졌다.


협곡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그 여자는, 두 번째 화살을 활시위에 올린 채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 어깨에는 붉은색의 견장이 달려 있었다. 이제는 눈에 익은 그것은, 그녀가 드래곤 나이트 소속임을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저격수다. 전장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전장의 입구 쪽을 견제하고 있었을 거다. 그것이 상대의 지원이든, 패배하여 도망치는 잔당이든.


“난 그런 목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그러면? 그게 아니라면 네 녀석 옆의 드래곤에게 홀려서? 드래곤에게 짓밟힐 젠탈리온인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드래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전부 오해하고 있다고!”

“잘도 말하는구나.”


오멜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네 녀석이 드래곤과 사랑에 빠졌든, 드래곤의 달콤한 말에 속았든, 그건 나와 일절 관계없는 일이다. 내 사명은 명확해. ‘우리는 드래곤의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아마도 너는 잊은 것 같지만.”


그녀는 마치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번째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배리어를 대기한 채로 움직였던 이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대처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오멜을 그 자리에서 세게 밀친 후 땅 위를 굴렀다.

화살에 담긴 마나가 폭발하고, 땅으로 구르는 내 몸 위를 강한 압력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녀는 궁수로서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심지어 그녀의 화살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었다. 첫 번째에도 느꼈지만 거기에는 강한 마나가 담겨 있었다.

적어도 6레벨. 아니, 어쩌면 7레벨. 마법사가 아닌 궁수가 그 정도의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실력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베라디엘!”


우리가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그다음 화살을 쏘아냈다. 하지만 그 타겟은 우리가 아니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주문을 따라 허공에서 마법진으로 바뀌었다. 전개의 과정도 없이 순식간에 펼쳐진 마법진을 따라 그 아래에 있는 우리에게 수많은 화살들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배리어···!”


내가 안전 반경으로 뛰어든 직후 오멜은 간신히 배리어를 펼칠 수 있었다.

반구의 돔으로 우리를 둘러싼 배리어 위에 마나의 화살이 충돌하며 피부가 얼얼할 정도의 진동이 밀어닥쳤다.


하지만 그때, 나는 폭발이 휩쓰는 배리어 바깥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인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여전히 오멜의 배리어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들을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해제할 수 없었다.


“젠장-”


폭발의 틈새에서 배리어 바로 코앞으로 진입한 그녀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활은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져 있었다.

의도는 뚜렷했다. 코앞에서 활을 쏘아 배리어를 부술 생각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0화 기념 인사 드립니다 24.12.19 9 0 -
117 #19. 매듭을 풀다 (1) NEW 13시간 전 1 0 14쪽
116 #18. 맹세 (7) 25.02.13 3 0 13쪽
115 #18. 맹세 (6) 25.02.10 6 0 12쪽
114 #18. 맹세 (5) 25.02.06 7 0 11쪽
113 #18. 맹세 (4) 25.02.03 7 0 13쪽
112 #18. 맹세 (3) 25.01.30 7 0 12쪽
111 #18. 맹세 (2) 25.01.27 7 0 12쪽
110 #18. 맹세 (1) 25.01.23 9 0 12쪽
109 #17. 보름꽃 (8) 25.01.20 7 0 11쪽
108 #17. 보름꽃 (7) 25.01.16 10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7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7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7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8 0 11쪽
103 #17. 보름꽃 (2) 24.12.30 11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9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10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9 0 16쪽
»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11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10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2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11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1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9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0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2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2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2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6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