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5.02.17 19:0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2,055
추천수 :
3
글자수 :
636,963

작성
24.12.30 19:00
조회
10
추천
0
글자
12쪽

#17. 보름꽃 (2)

DUMMY

왕도로 들어가는 통로.

나는 옆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오멜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루시는 어떤 사람이었어?”

“루시 왕녀··· 이제는 여왕 폐하지만. 사실 그녀에게 친오빠가 있었다는 거 알고 있어? 선대 국왕 폐하의 아들 말이야.”

“어라, 그래? 루시가 왕위 계승 순위가 높은 거 아니었어? 그래서 엘 메이아에서도 암살을 하려 했던 거고···”

“맞아. 왜냐하면 그는 병으로 죽었거든.”


루시에게는 친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왕위는 그녀의 오빠가 계승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병으로 죽으며 두 번째 계승 서열인 루시가 왕위를 잇게 되었다.


“그게 왜?”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나도 이제 와서 생각난 것이지만 당시에 왕자의 죽음의 원인이 드래곤의 저주라는 이야기가 퍼졌었거든. 그건 길바닥에서 떠돌던 소문이라기에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아마도 왕실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틀림없어. 그 말은 루시 왕녀에게도 똑같은 이야기가 들어갔다는 거고.”

“잠깐만. 그건 조금 이상해.”


오멜의 이야기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루시의 친오빠가 죽은 것을 선대 국왕- 그녀의 아버지는 드래곤의 저주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거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가? 아버지로서 아들이 병으로 죽어 가는 것을 똑똑히 보고 나서도 그것이 드래곤의 저주라고 결론지었다는 건가?

그건 너무나 막무가내인 이야기여서, 도저히 믿기가 쉽지 않았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선대 국왕 폐하께서 정말로 그렇게 믿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그게 아니라면···”

“그것보다는 그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맞지 않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애초부터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드래곤이라는 허상을 만들어서 우리 엘 메이아를 몇백 년을 괴롭혀 오던 젠탈리온의 왕실에게는 그건 좋은 도구였을 뿐이에요. 왕실이 진심으로 드래곤이 위협이라고 생각했다니, 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걸요.”

“나도 동감이야. 드래곤에게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드래곤이 좋은 녀석인지 나쁜 녀석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어. 몇백 년의 시간 동안 젠탈리온 왕실이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을 정도로 멍청한 녀석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


시엘라가 옆에서 거들었다.


“올리비아는 조금 차갑기는 했어요. 저도 쌀쌀맞은 여자라거나, 재수 없고 무서운 여자라고 분명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함께 지내보니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전부 오해였다구요.”

“흐음, 누구보다 네 녀석이 올리비아에 대해 그런 말을 하니 신뢰감이 생기는 걸.”

“그러니까 그 말은 그만하라니까! 도대체 입이 왜 이렇게 가벼운 거야!”


선대 국왕은 드래곤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만약 그게 맞다고 가정한다면, 그 진실이라는 것은 왕실에 대대로 내려왔을 것이 틀림없었다. 천 년 전, 플로리스의 죽음부터, 아니, 다미안을 속여서 불러내어 죽였을 때부터 시작된 거짓말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자연스럽기도 하다.

모든 젠탈리온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 망할 예언석부터 온갖 드래곤에 대한 선동적인 이야기들은 한 세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백 년 후에는? 오백 년 후, 천 년 후에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단지 거짓말로 실체가 없는 허상을 천 년이나 유지할 수 있는 건가?

결국 누군가는 그 허상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자연스럽게 젠탈리온의 왕실의 의무가 되었을 것이었다.


왕실의 피를 타고 대대로 내려오는 거짓의 의무.

루시도 그 의무를 따르고 있다는 건가? 드래곤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했던 그 루시가?


“아니. 루시는 그걸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그게 자신의 아버지가 오빠의 죽음에 대해 드래곤의 저주라고 설명해야 했던 이유일 거야. 루시는 그 진실을 아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속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알 수 없어.”

“맞아.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직접 루시와 이야기해 봐야겠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엄마도, 여동생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오멜의 도서관에서 깨어난 짧은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그중 하나는 오멜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신뢰다.

이 세상에는 거짓만이 가득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신뢰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 가치를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루비, 그런 말도 안 되는··· 젠탈리온 왕도로 들어가기라도 하겠단 말이야?”

“응. 바로 그거야. 정확하게는 왕성까지 들어갈 거야. 혼자 들어가서 루시를 만나야겠어.”

“그녀는 여왕이야. 더 이상 이전 왕녀 때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젠탈리온은 너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런 행동은 무모해.”

“하지만 이대로 가더라도 바뀌는 건 없어. 시엘라, 어떻게 생각해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듯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던 시엘라가 말했다.


“뭐··· 말했던 대로야. 당장 지금은 저쪽에서 우리를 걸어 잠그고 있는 상태고, 다른 나라와 함께 공격이 시작되면 솔직하게 우리로서는 막기는 힘들겠지. 단장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말야.”

“예상되는 공격 시점이 있을까요?”

“우리도 정보원으로 여러 나라의 분위기를 살피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소식은 없어.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늦지 않게 알 수는 있을 테지만 그 정도지.”


이대로라면 가만히 앉아서 예정된 패배를 기다리는 꼴이다.

그리고 특별한 대책도 없다. 내 계획을 빼고는.


“......”


오멜은 고민하는 듯 한참 동안 깊게 침묵했다.


“방법이 없어. 오멜.”

“......”

“나는 이미 엄마도, 동생도 잃었어. 더 이상 넋 놓고 내 것을 빼앗길 수는 없어. 살아서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어서 지키겠어.”

“...죽는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마.”

“말은 이렇게 했지만 죽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 정도로 각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나는 오멜과 눈을 마주쳤다. 그 시선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나도 같이 갈까?”

“아냐, 괜히 둘이서 움직이면 더 위험해질 뿐이야. 거기에··· 만약 예상보다 빠르게 저쪽에서 움직인다면 저지해 줄 역할이 필요하니까.”

“다른 마법사도 아니고 아크가 우리에게 남아준다면 정말로 큰 힘이 되지. 칼리안은 좀처럼 9레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

“쳇, 미안하게 됐네요.”


오멜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오멜의 손을 끌어당겼다.


“돌아올게.”

“...약속할 수는 없지?”

“응. 약속할 수는 없어. 하지만 상황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면 절대로 무리하지 않을게. 그건 약속할 수 있어.”


조금 주저하던 오멜의 손은, 내가 재촉하듯 그 손을 살짝 흔드니 이윽고 내 손을 강하게 붙잡아 왔다.


“고마워.”


그제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안심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오멜.


-


내가 젠탈리온으로 잠입한다는 작전은 극비로 엘 메이아의 국왕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이전의 루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가정하에, 나는 같은 루트인 폰더레이를 거쳐 왕도 비밀통로를 통해 젠탈리온 왕도로 진입하기로 했다.


“약속했던 물품은 가져온 거야?”

“내일 출발하는 거지?”

“조심하라구.”

“이봐! 술 한 잔 더 부탁해!”

“취하지 않게 마시라니까. 내일부터 당장 움직일 건데 괜찮겠어?”

“괜찮아, 괜찮아. 나를 뭘로 보고.”


왁자지껄.


‘내가 여기에 또 오게 되다니.’


죽음의 경계를 보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폰더레이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풍경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는 분명 이렇게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모험가들은 없었던 꽤 한적한 마을이었다.


아무리 암암리에 젠탈리온과 엘 메이아의 모험가들이 오가는 폰더레이라고는 해도, 이런 전쟁의 시기에 홀로 그곳을 가는 것은 눈에 띄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엘 메이아의 국왕은 모험가 협회를 통해 의뢰를 하나 내걸었다. 바로 드래고니아 산맥의 몬스터 토벌 의뢰. 그리고 그 의뢰는 이상하리만큼 많은 보수가 걸려 있었다.

영 맥락이 없는 의뢰는 아니었다. 전쟁으로 쉽사리 정규군을 움직일 수 없는 시기에, 산맥의 몬스터들이 엘 메이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수많은 모험가들이 그 의뢰를 따라 드래고니아 산맥으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그 산맥에서 거점의 역할을 하는 마을인 폰더레이로 모험가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툭


“...죄송합니다.”


적당히 숙소를 잡으러 움직이던 차에, 길거리에서 잔뜩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한 명과 부딪혔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었다. 심지어 부딪혔다기보다는 그 남자가 몸을 가누지 못한 탓에 나에게 부딪혀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기분 나쁠 일도 아니고 나에게는 아무래도 사소한 일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한 후 갈 길을 가려던 그때였다.


“에엥? 이봐, 이봐··· 뭐 하는 거야? 지금 싸움이라도 걸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부딪힌 건 죄송했어요.”

“허, 참. 그것참··· 이리 와. 이리 와보라고.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 어?”


곤란했다.

시비가 걸린 것 자체는 곤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극도로 눈에 띄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몸의 대부분도 긴 외투로 감싸고 있고, 얼굴은 커다란 스카프를 눈 아래까지 깊게 둘렀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내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험상궂게 생긴 저 남자가 자꾸만 소리를 치는 탓에, 주변의 이목이 나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로 곤란했다.


일단 조용한 골목에라도 데리고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뭐 하는 행패야?”


거칠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술 때문에 정신도 못 차리는 망할 자식이군.”

“레니, 괜히 싸움만 크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있어. 저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실까요?”


거대한 덩치의 마치 곰 같은 남자가 험한 말을 마구 뱉기 시작하자, 금발의 여성이 그를 말리듯 뒤따라 나왔다.

그리고 그 얼굴은 분명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이, 이 꼬맹이 녀석이 길을 가다가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너한테 시비를 거는 건 나다. 한 번 붙어볼 테냐? 자신 있어?”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아니라 이 꼬맹이가.”

“뭐?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따라와. 얻어 터질 각오는 해라.”

“그게,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요.”


나에게 시비를 건 남자는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쳐도, 이 곰 같은 남자는 정신도 멀쩡한데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취해서 몽롱한 정신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남자의 말투가 점점 공손하게 바뀌며 쩔쩔매기 시작했다.


“레니!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니까. 그래서 더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두고 보자. 네 녀석들 얼굴은 똑똑히 기억했···”

“나야말로 네 녀석의 얼굴을 잘 기억했다. 다음에 봤을 때는 살아서 못 갈 줄 알고 있으라고.”

“기억했···”


레니라고 불린 남자가 금방이라도 휘두를 듯 대포알 같은 주먹을 들어 올리자, 깜짝 놀라서 등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저기, 괜찮으세요? 놀라셨죠?”


남자가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본 후에 금발의 여성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0화 기념 인사 드립니다 24.12.19 9 0 -
117 #19. 매듭을 풀다 (1) NEW 12시간 전 1 0 14쪽
116 #18. 맹세 (7) 25.02.13 3 0 13쪽
115 #18. 맹세 (6) 25.02.10 6 0 12쪽
114 #18. 맹세 (5) 25.02.06 7 0 11쪽
113 #18. 맹세 (4) 25.02.03 7 0 13쪽
112 #18. 맹세 (3) 25.01.30 7 0 12쪽
111 #18. 맹세 (2) 25.01.27 7 0 12쪽
110 #18. 맹세 (1) 25.01.23 9 0 12쪽
109 #17. 보름꽃 (8) 25.01.20 7 0 11쪽
108 #17. 보름꽃 (7) 25.01.16 10 0 13쪽
107 #17. 보름꽃 (6) 25.01.13 7 0 13쪽
106 #17. 보름꽃 (5) 25.01.09 7 0 11쪽
105 #17. 보름꽃 (4) 25.01.06 7 0 12쪽
104 #17. 보름꽃 (3) 25.01.02 8 0 11쪽
» #17. 보름꽃 (2) 24.12.30 11 0 12쪽
102 #17. 보름꽃 (1) 24.12.26 9 0 11쪽
101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4) 24.12.23 10 0 14쪽
100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3) 24.12.19 9 0 16쪽
99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2) 24.12.16 10 0 11쪽
98 #16.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에 (1) 24.12.12 10 0 12쪽
97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5) 24.12.09 12 0 16쪽
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11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1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9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0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12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2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2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16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