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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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5.03.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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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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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나 폭주 (2)

DUMMY

“으극···!”


하지만 녀석은 즉사하지 않고 발버둥을 쳤다.

공중으로 도약해서 녀석의 턱 방향으로 칼을 꽂아 넣었지만 그사이에 내 몸통은 무방비하게 열리게 되었다. 긴 꼬리가 나를 옆에서 후려치는 둔탁한 통증이 먼저 밀려왔고, 그 다음으로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듯 내동댕이쳐지며 등과 왼팔이 비명을 질렀다.


‘젠장, 팔이···’


단순히 아픈 것뿐이라면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왼팔의 통증은 심상치가 않았다. 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쉬이익!”

“루비! 녀석이 도망간다!”

“놓칠 수는···!”


나를 바닥으로 던지자마자 녀석은 얼굴에 단검이 관통된 채로 거대한 몸을 이끌고 빠른 속도로 오멜이 지키고 있는 방의 입구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단검을 조금 더 머리 안쪽으로 꽂았어야 됐는데, 아쉽게도 단 한 번에 완벽히 제압하는 것은 실패한 듯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곤란하다.

내 마법 단검은 이미 녀석의 머리에 꽂혀 있다. 그것은 블러드바인에게 치명상인 것은 분명했으나 결국 즉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나는 유일한 마법 무기를 잃어버렸다.

오멜은 대부분의 마나를 천장의 마법석에 쏟아붓고 있었다. 일부 마나를 녀석을 막아서는 데에 쓰다가 마법석 전등이 꺼져서 어둠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녀석은 그 어둠을 통해 또다시 심층의 터널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녀석이 방을 빠져나가게 둘 수도 없다. 마법석 전등이 비추고 있는 것은 이 방의 안쪽이다. 심층으로 나가는 순간 녀석은 어둠을 타고 움직인다.


‘내가 마법을···!’


여전히 내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억지로라도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카일은 이대로···


“키익··· 키, 키익···”


다급한 마음에 억지로 마나를 움직이려는 그 순간, 갑자기 빠르게 기어가던 블러드바인의 몸뚱이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통스럽다는 듯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소리가 완전히 멈춘 그 순간이었다.


-푸아악!


“카일···?”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블러드바인에게 끌려간 카일의 손에는 녀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인 내 마법석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카일은 골목에서 금방이라도 자신의 동료들을 공격할 것 같은 나에게 몇 번이고 단검을 쥐고 달려들었을 정도로 용기가 있는 소년이었다.


블러드바인의 몸통 한 곳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녀석의 한쪽 몸통을 찢어낸 틈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반쯤 탈진한 카일이 기어나왔다.


“카일!”


블러드바인이 쓰러졌고 카일도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마나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오멜도 서둘러 내 쪽으로 뛰어왔다.


“오멜, 결계를 부탁해.”

“알겠어··· 루비 너는 괜찮아?”

“나는··· 팔이 부러진 것 같지만 당장 급하지는 않아. 카일부터 부탁할게.”


조금 전의 빛이 마치 꿈이었다는 듯 또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심층의 바닥 위로 오멜의 결계가 그려지고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계 안에서 내 품에 안겨 있던 카일의 숨이 서서히 안정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누나, 몬스터는요?”

“죽었어. 다 끝났어. 뱃속에서 어떻게 그런 걸 할 생각을 한 거야?”

“사실 거의 포기했었거든요. 발버둥 치다가 힘도 다 빠졌었구요. 그런데 밖에서 루비랑 오멜 목소리가 들렸어요. 나를 구하러 와줬으니까 저도 힘을 내야하잖아요?”


여전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지친 상태임에도 카일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제서야 나와 오멜도 조금 마음이 놓여서 겨우 웃어 보일 수 있었다.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처음에 몬스터의 이빨에 찔린 것 같기는 한데··· 이거 독은 없는걸까요?”

“그건 혹시 질문인 겐가?”


불쑥 등 뒤에서 경박스러운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렘난티스였다.

여전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말투였지만 이제는 더 화는 나지 않았다. 거기에 카일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렘난티스의 지식 없이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대답해줘.”

“블러드바인은 그다지 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 다른 쪽으로 능력을 발달시킨 몬스터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건 안심해도 좋네. 셀레네 아스토르의 저서를 참조하였네.”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


혹시나 카일이 중독이라도 되었을까봐 노심초사했지만 그건 아니라서 한숨 돌렸다. 오멜의 결계로 조금 기력을 회복하면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겠지.


“이제 빨리 돌아가자. 이곳은 이제 질렸어.”

“하지만 루비랑 오멜은 무슨 기록고에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었지만··· 다들 상태가 이래서야···”

“저는 괜찮아요. 오멜 형의 마법 덕분에 꽤나 회복이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여기에서 다른 게 더 있지는 않겠죠?”

“...어때, 렘난티스? 너라면 알 수 있지?”


렘난티스는 심층에 설치된 전도체를 통해 대부분의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렘난티스라면 이곳에 블러드바인 외에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지 알고 있을 거다.


“걱정 말게. 이곳에는 저 마물 외에 다른 몬스터는 없으니.”

“그렇다면 가요.”


나는 카일과 오멜을 둘러보았다.

오멜의 결계로 빠르게 회복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카일은 여전히 지친 상태였다. 거기에 오멜도 대부분의 마나를 쏟아서 마법석 전등을 작동시켰기 때문에 상당히 여유가 없을 거다. 나 역시 한쪽 팔을 제대로 쓰기도 어렵고 몸도 지쳤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벼운 성격의 렘난티스지만 여태껏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몬스터가 없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 빠르게 보고 올라가자.”

“좋아요.”


카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가 기록고라고?”

“이런, 이런. 곤란하구만.”


그렇게 렘난티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거기에는 기록도,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도 없었다. 그저 천장에서 통째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크흠··· 내가 깨어난 것이 두 번째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는가?”

“그랬었지. 언제였는지 시간은 모르지만 어떤 여자였다고.”

“나는 그 여자에게 직접 기록고를 안내해주지는 않았네. 너희들처럼 그런 요청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마도 그 여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기록고를 찾았겠지. 그래서 그녀가 이후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네.”

“그 여자가 여기를 무너뜨렸다는 말이야?”


나는 허탈한 마음에 돌무더기만을 노려보았다. 조금 치우는 정도로 들어갈 수는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무너져 있었다.

아마도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방을 통째로 박살 낸 것 같았다.


“다른 방들처럼 입구만 막아 놓았을 가능성은 없어?”

“자연적으로 무너졌다기보다는 인위적인 마법을 쓴 흔적이 있어.”


무너진 곳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오멜이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여자네···”

“아마도 여기에 있는 어떤 기록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겠지. 자기만 알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다던가.”


그렇다면 그 여자는 이 기록을 노리고 이곳에 왔다는 말이 된다. 특정한 무언가를 노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기록을 자신이 확보한 후에는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록고를 완전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마법의 흔적을 보면 이걸 무너뜨린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 렘난티스, 그 여자가 언제 널 깨운지는 알 수 없어?”

“그건 알 수 없네. 나는 결계가 작동할 때에만 사고할 수 있으니까. 그 사이에 있는 일이나 시간의 흐름은 인지하지 못하지.”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정보를 말해줘. 뭐라도 좋으니까.”

“흐음,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나이는 20대 정도로 보였네. 황금색의 마법석이 쓰인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탐구자가 아님에도 마나를 밀어 넣어 내 결계를 강제로 가동시켰으니 아마도 마법사였을 테지. 거기에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을 가지고 있었네.”


20대 정도의 긴 금발을 가진 마법사 여성.

나는 렘난티스의 말에서 무심코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오멜도 비슷했던 것 같았다. 오멜은 렘난티스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여자가 어느 나라에서 온 지 알고 있어?”

“그건 모르네. 그런 정보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추론해보자면 젠탈리온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네.”

“무슨 근거로?”

“그녀는 탐구자를 잊혀진 이들이라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정확하게 탐구자라고 불렀네. 잊혀진 이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서도 알겠지만 그 이름은 젠탈리온이 그들을 잊었다는 뜻이라서 말이야. 젠탈리온의 누군가라면 자신들이 그들을 잊었다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겠지. 어디까지나 확실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말이야.”


그건 렘난티스의 추론과 가능성일 뿐이었지만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젠탈리온 출신 중 그런 외모를 가진 여성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로웨나.”


왕실 기사단과 드래곤 나이트의 수석 마법사였고 현재는 부단장이며, 젠탈리온에서 제일가는 아크 중 하나인 로웨나 레온우드.

나와 오멜은 이미 젠탈리온에서 떠났다. 드래곤 나이트의 추적을 완전히 따돌렸을 정도로 멀리 왔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마주치다니.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자 분노섞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몸 가운데에서 목구멍으로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자는 여기서 뭘 찾고 있었던 거야?”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녀는 이미 탐구자에 대해 알고 있었어. 아마도 어느 정도 조사를 했겠지. 그녀는 탐구자들의 다른 유산보다 오직 탐구자들의 기록만을 보기를 원했네. 특별히 플로리스와 관련된 기록을 찾고 있었어. 굉장히 신념이 강한 여자였지. 자신의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여자였어. 흐음, 그렇지. 마치 너와 비슷한 느낌의 여자였네.”

“나와-”


렘난티스의 말에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랑 그 여자는 전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친 후 순간 아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문을 모른 채 깜짝 놀란 카일과 마찬가지로 표정은 없지만 멍하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렘난티스를 눈치채고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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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4) 24.12.05 20 0 11쪽
95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3) 24.12.02 16 0 11쪽
94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2) 24.11.28 16 0 12쪽
93 #15.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 (1) 24.11.25 19 0 11쪽
92 #14. 조우 (6) 24.11.21 20 0 11쪽
91 #14. 조우 (5) 24.11.18 17 0 12쪽
90 #14. 조우 (4) 24.11.14 18 0 11쪽
89 #14. 조우 (3) 24.11.11 23 0 11쪽
88 #14. 조우 (2) 24.11.07 23 0 11쪽
87 #14. 조우 (1) 24.11.04 22 0 11쪽
86 #13. Till Death Do Us Part (12) 24.10.31 19 0 13쪽
85 #13. Till Death Do Us Part (11) 24.10.28 26 0 13쪽
84 #13. Till Death Do Us Part (10) 24.10.24 23 0 12쪽
83 #13. Till Death Do Us Part (9) 24.10.21 22 0 12쪽
82 #13. Till Death Do Us Part (8) 24.10.17 20 0 11쪽
81 #13. Till Death Do Us Part (7) 24.10.14 28 0 12쪽
80 #13. Till Death Do Us Part (6) 24.10.10 29 0 11쪽
79 #13. Till Death Do Us Part (5) 24.10.07 30 0 11쪽
78 #13. Till Death Do Us Part (4) 24.10.03 30 0 12쪽
77 #13. Till Death Do Us Part (3) 24.09.30 26 0 11쪽
76 #13. Till Death Do Us Part (2) 24.09.26 35 0 11쪽
75 #13. Till Death Do Us Part (1) 24.09.23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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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12. 마나 폭주 (7) 24.09.16 33 0 11쪽
72 #12. 마나 폭주 (6) 24.09.12 32 0 11쪽
71 #12. 마나 폭주 (5) 24.09.09 35 0 11쪽
70 #12. 마나 폭주 (4) 24.09.05 33 0 11쪽
69 #12. 마나 폭주 (3) 24.09.02 30 0 11쪽
» #12. 마나 폭주 (2) 24.08.29 3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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