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왕국(1)

“안 되겠어. 중간에 매복해서 한차례 수를 줄여야겠어!”
“저 다리 어때요? 저기 틀어막고 방어하면 고블린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포위될 거 같지는 않아요.”
“괜찮은 작전이네. 위치도 좋고.”
진주시에서 창원시까지 넘어온 랩시티 정찰대는 창원 시내에서 오백이 넘는 고블린 무리와 마주쳤다.
순찰견-된장을 통해 고블린들의 존재를 미리 알아챌 수 있었기에 정찰대는 고블린들은 유인하여 수를 쪼개며 하나씩 각개 격파했다.
오백이라는 고블린을 전멸시켰을 때, 된장은 또 다른 고블린들을 감지했다.
그런데 그 수가 멀리서는 정확히 감지가 안 될 정도로 많았다.
된장의 말로는 이런 상황이면 최소 천 단위는 넘는다고 했다. 교전은 위험하다는 판단에 빠르게 회피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고블린들은 달랐다.
마치 랩시티 정찰대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추적해 왔다.
지금까지와 뭔가가 달랐다.
그렇게 도망치다 보니 해안가까지 이르렀다.
오히려 해안선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며 해안로를 따라 동쪽인 부산시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고블린들도 계속해서 정찰대를 따라오고 있었다.
서낙동강 하류의 다리 동쪽에서 고블린들을 기다렸다.
다리는 꽤 넓었지만 반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함정을 설치했다.
이제 좁아진 다리로 달려드는 놈들만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역시나 고블린들은 랩시티 정찰대의 뒤를 그대로 따라 왔다.
그 모습에 정찰대원들은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계속 따라오는 거지?”
“그러게. 이제는 소름 돋는 거 보다 그게 더 궁금해.”
이 녀석들을 만나기 전에 처리한 오백의 고블린들도 지금껏 만나온 고블린들 보다 좀 더 강했다.
드러나는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이건 중대규모 이상되는 고블린 세력의 출현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다리를 새까맣게 뒤덮고 건너오는 고블린의 수는 일천 정도가 아니었다.
못되어도 이천은 되어 보였다.
“좀 많긴 하네요.”
“그래도 다행이야 이천 정도 밖에 안 되어서, 다리위에 모두 가둘 수 있겠어.”
“그러게요. 계속 쫓겨 다니는 것도 짜증나는데 가둬두고 조금씩 모두 처리하시죠.”
웬만해서는 잘 나서지 않는 외작6조장 박수혁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박수혁은 외작5조장 박수연의 남동생이다.
누나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좀 더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이었는데, 어제부터 추적을 당하다 보니 그 침착한 성격에 스크래치가 난 듯했다.
고블린들이 다리위로 모두 올라선 게 확인되자 다리 난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하루가 다리의 반대편으로 화살 한 발을 쏘았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어쨌든 하루는 랩시티 최고의 명사수였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하루의 마나기술은 화살을 원하는 장소까지 옮겨 놓았다.
화살에 명중 당한 폭약의 뇌관은 짧은 폭발음을 내며 주변에 방치된 차량들을 향해 파편과 불꽃을 뿌렸다.
절묘한 차량의 배치와 차량들 속에 놓아져 있던 연료유 그리고 각종 잡다한 가연성 물질들이 환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고블린들이 들어왔던 길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퇴로가 끊긴 고블린들은 당황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전진해 왔다.
그리고 잠시 뒤 반대편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하지만 치솟은 불길은 도로의 반만 집어 삼켰다.
고블린 부대의 지휘관은 이게 함정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서 불길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저 인간들에게 달려들지 선택해야 했다.
고민은 짧았다.
굳이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인간들이 도망친다 하더라도 저 인간들에게 묻은 고블린의 피는 결국 저들의 위치를 알게 해 줄 것이었다.
고블린 지휘관은 옆에서 으르렁 거리는 괴이한 생명체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블린과 함께 있던 이 생명체의 생김새에는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비늘이 가득 차 있었다.
귀와 꼬리는 퇴화되어 작은 흔적만 남았고, 머리 중앙에는 날카로운 뿔이 보였다.
그리고 입 옆으로 이빨이 삐져나와 금방이라도 달려와 물어뜯을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하루야 사진 다 찍었어.’
‘네. 그리고 이거도 보세요.’
하루가 마나네트워크로 보내온 이미지에는 처음 보는 생명체가 한 마리 있었다.
‘우릴 계속 추적한 게 이놈일까?’
‘저놈이 의심스럽네요. 날려버릴까요?’
‘꽤 튼튼한 갑옷을 입은 거 같은데, 가능하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루는 마나가 잔뜩 채워진 화살 한 방을 그 괴이한 생명체에게 날렸다.
그 생명체는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힐끔거리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다만 갑옷처럼 보이는 피부가 좀 더 반질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팅~!”
“어라!”
하루는 화살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랩장, 저놈 이상해요. 마나를 완충한 제 화살을 튕겨냈어요.’
‘그래?!’
하루의 화살은 웬만한 마나쉴드로는 막아내지 못한다.
순수한 마나로 만들어진 쉴드라도 흠집을 만들어 내는데 그게 튕겨져 나간 것이다.
“케엑! 멍청한 인간들이군. 지옥견에게 화살이라니. 큭큭.”
고블린 지휘관은 저 인간들을 가능한 생포하고 싶었다.
창원 시내에서 생존자 사냥을 하던 고블린 부대 하나를 없애버린 저 인간들을 잡아가면 분명 자신의 용맹을 인정받기 좋을 것이었다.
“고블린들이 움직일 생각이 없나봐. 연기 좀 더 만들어 보자고.”
랩시티 정찰대는 고블린들이 어떻게든 나오게 하려고 화염병을 만들어 고블린들에게 계속 던졌다.
계속 던져지는 화염병들은 고블린 진영에 설자리를 조금씩 없애고 있었다.
그리고 불길과 연기들도 점차 커지고 있었다.
화염병에서 생긴 매캐한 연기가 다리 양쪽에서 불어오는 연기에 합쳐지자 바람이 충분히 부는 다리 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온통 연기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제 고블린들도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고블린 지휘관은 상황이 의도와 달라진 것에 분노가 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세가 변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고블린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그리곤 드디어 다리 한쪽에 진을 친 랩시티 정찰대와 돌격해 오는 고블린들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
고블린들은 몇 명 되지 않는 인간들이 곧 쓰러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돌격했던 고블린 병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됐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인간들이 계속 버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오히려 인간들은 연기 속을 돌진해 왔다.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어려운 연기 속에서 인간과 고블린의 전투가 진행되었다.
이런 전투에서는 강자인 인간들이 훨씬 더 유리했다.
전투음이 점차 사그라지자 고블린 지휘관의 눈에 연기 속으로 희미하게 비취는 실루엣들이 보였다.
잠시 실루엣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사이에 뭔가가 날아들어 지옥견과 고블린 지휘관을 두들겨 팼다.
고블린 지휘관과 지옥견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맞다가 기절했다.
고블린 지휘관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리고 지옥견은 이미 세상을 하직했는지 축 늘어진 채였다.
인간들은 지옥견을 강제로 마나화시키고 신기하다는 듯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고블린 지휘관은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마나화 시켰는데 마나결정 외에 다른 걸 남기는 경우는 처음이네요. 이거 정말 신기한데요.”
“그러게. 마나화살도 버티고 마나화에도 버티는 물질이라니.”
“이건 랩시티로 가져가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어라 이 고블린 깼는데요. 심문해 볼까요?”
“아니, 이거부터 먹이고.”
고블린 지휘관은 강제로 뭔가를 먹게 됐는데, 이후로 정신이 몽롱해 졌다.
고블린 지휘관이 먹은 것은 마나메모리와 마약의 한 종류였다.
만약 근처에 세계수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세계수가 없는 여기서 심문하기 위해서는 고블린의 정신을 약화시켜야 했다.
고블린 지휘관은 머릿속으로 울리는 인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면 인간이 먹인 약물의 효과로 환청을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름이 뭐지? 뭐라고 부르면 돼?’
‘난 ....’
고블린 지휘관은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집요하게 물어오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새어 나오는 대답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은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고블린 지훠관에 대한 심문이 끝나자 미련없이 마나화시켜 버렸다.
더는 이용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관리도 문제였다.
이들의 고블린 왕국은 ‘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위치는 밀양과 창원, 양산을 경계로 하고 있었는데 이미 주변 지역들이 모두 라 왕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 있었다.
“랩장, 이거 심각한데요. 어떻게 하죠?”
“저. 지옥견이라는 녀석 때문에 정찰도 힘들 거 같은데. 좋은 생각 없을까?”
외작5조장 박수연이 나섰다.
“일단 임시 캠프부터 확보하고 정찰을 시도해 보시죠.”
“그래. 그거 밖에 방법이 없어 보이긴 하네.”
랩시티 정찰대는 계획에 없던 부산시내로 이동하여 도심 속으로 숨어들었다.
쫓기는 것으로 많은 체력을 소진시켰기에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발견한 고블린 세력은 대규모인 왕국 단위였다.
처음 만나는 대규모 고블린 왕국의 덩치는 어마어마 했다.
확인된 개체수만 해도 삼만이 넘었다.
“지옥견이라는 저 괴생명체만 조심하면 정찰은 가능할 거 같은데, 어때?”
“정찰은 필요할 거 같아요. 왕국급이면 저 놈들 조만간 어느 쪽으로든 공격해 들어올 게 분명해요.”
랩시티 정찰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정찰을 하며 대규모 고블린 세력에 대해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는 고블린의 감시가 약한 곳을 골라 도망치듯 울산지역으로 바로 이동했다.
다행이 울산지역부터는 라 왕국의 영향권이 아니었다.
그 시기 라 왕국에서는 외부 정벌을 위한 준비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라 왕국은 영토를 더욱 늘릴 계획이었다.
“케엑! 인간사냥을 떠난 병력들이 복귀하지 못했다고?”
“칸차시여. 아직 확인된 바는 없지만 지옥견까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 적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케~엑! 라의 전사들이 그렇게 약했던가!”
“죄송합니다. 칸차시여.”
“봄이 돌아오면 주변에 인간들부터 정리하겠다. 만전을 기하라.”
“합! 칸차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천오백이나 되나 병력이 증발했지만 라 왕국의 칸차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인간들의 수준을 상향 조정하며 더욱 강한 기세로 밀어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봄이 되면 라 왕국은 더욱 영토를 넓힐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영토를 확장하여 고블린이 지배하는 제국으로 성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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