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그리고 전운

여정의 최초 계획에는 수도권 전진기지에 들려 귀환 하는 것이었지만, 마나시티에서 랩시티와 무선통신 후 경로를 변경하기로 하였다.
수도권 지역의 혼란 때문이었다.
지금 수도권은 고블리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었다.
때문에 워터시티에서는 수도권 전진기지에 2개의 오십인대를 파견하고 있었고 추가 파견을 검토하고 있었다.
랩시티 정찰대는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랩시티로 귀환하기로 했다.
고속도로 일부 구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이 경로가 강릉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길보다 안전하다고 판단됐다.
인간이 만들어 냈던 문명의 유산들은 대부분이 건재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도로망은 고블린 출현 초기에는 생존자들에게 유리하게 사용되곤 했다.
고블린의 경우 도로라는 개념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지리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도로망을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블린들도 인간이 만든 도로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고블린들도 인간이 만든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들을 조금씩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간만의 잇 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이 자동차 사용법을 스스로 터득했는지 아니면 인간 노예를 통해 익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 도로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상주지역을 통과하는 영덕당진고속도로 위로 자동차 한 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차선을 무시하고 불안하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던 자동차는 결국 다른 차선에 방치된 차량에 부딪혀 여러 바퀴 빙그르 돌다 중앙분리대에 부딪혔다.
랩시티 정찰대는 멀리서 보닛(bonnet)에서 연기를 뿜으며 중앙분리대와 충돌한 채 멈춰 있는 차량을 발견하였다.
“랩장. 전방에 교통사고가 난 거 같아요.”
“교통사고?”
“일단 사람부터 확인할게요.”
외작조원 강혁준과 김필호가 사고가 난 차량으로 다가갔다.
“이건 뭐야?”
다가가던 그들은 근처에 멈춘 채 칼을 꺼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을 향해 외작6조장 박수혁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예요?”
“조장. 이리 와 봐요. 사람이 아니 예요.”
박수혁의 차에서 내려 박수연을 쳐다보자 수연이 눈짓을 보냈다.
확인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수혁이 사고 차량으로 천천히 뛰어 갔다.
“미친! 고블린이잖아. 누나~! 고블린이 운전한 거 같아.”
운전석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의 모습에 당황한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수연을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이 운전대를 잡은 놀라운 상황에 누구도 그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야! 작전 중에는 누나라고 하지 말랬지.”
“미안. 너무 놀라서 실수했어.”
앞 선 랩시티 차량들의 소란에 뒤따르던 마나시티 병력들도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고블린들이 인간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 마디로 ‘원시적인’ 이었다.
그런 시각을 가지는 이유는 마나 활용에 대한 부분 때문이었다.
고블린들이 보기에 마나를 사용할 줄 모르는 인간의 문명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가진 잡기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잡기술 일지라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물건들과 문명은 쉽게 볼 건 아니었기 때문에 고블린들은 인간에 대해 알아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우선순위에 있어 인간문명은 절대 먼저가 아니었다.
라 왕국의 기술자 혼 냐르는 고블린 사회 안에서도 인간의 문명에 푹 빠진 별난 개체였다.
라 왕국이 작은 부족마을 일 때도 인간의 물건에 관심이 많았는데, 부족이 성장하며 왕국이 되어 기억의 전승이 더해지자 혼 냐르는 본격적으로 인간문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혼 냐르는 부족 내에서 왕따와 같은 존재였다.
고블린의 시각에서 그의 별난 관심사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씩 혼 냐르가 만들어 내는 물건들은 고블린의 기준으로도 대단한 물건들이어서 왕국 내에서는 그를 마냥 무시하진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 한 사건으로 혼 냐르는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무기제작소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신소재가 있었는데, 샘플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이 소재는 ‘딥그레이 메탈’로 ‘변환의 손’ 이라고 불리는 금속이었다.
원래의 고블린 문명이 만들어 내었던 변환의 손은 지금의 라 왕국이 만들어낸 결과물과 같은 성능은 없었다.
하지만 혼 냐르가 만들어 낸 변환의 손은 달랐다.
변환의 손은 말 그대로 물속에 이 금속을 담그면 그 물을 랜덤으로 다른 물질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질을 마나를 통해 원소 단위부터 개질시켜 버리는 원리였다.
하지만 금속 표면에 닿은 물질만 변환시킬 수 있어 출력되는 양이 적었고, 랜덤으로 변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물보다 가치 없는 물질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만지면 위험한 물질이었다.
한 마디로 원래의 변환의 손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이렇게 쓸모없었던 마나의 손을 획기적인 신소재로 변모시킨 고블린 기술자가 바로 혼 냐르였다.
혼 냐르는 딥그레이 메탈을 다공성으로 제작하고, 원할 때 작동하고 원하는 물질로 변환시킬 수 있는 제어기를 개발하여 결합했다.
아직 시제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라 왕국 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의 모든 부정적인 시각이 극복되는 순간이었다.
혼 냐르가 처음으로 만든 작품은 자동차 연료유 생산 장치였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혼 냐르는 인간들에게 먹을 것을 안겨주고 자동차에 대해 배웠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주변 고블린들에게 미움을 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연료유가 없으면 자동차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혼 냐르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결국 변환의 손을 이용하여 연료유 생산 장치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가 만든 제어기가 달린 변환의 손은 물통에 담그고 작동시키자 다공성 재료에 있던 다수의 작은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며 높은 효율로 변환이 시작되었다.
혼 냐르가 몇 차례 물통을 흔들자 변환이 마쳐진 물통에서는 연료유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맘껏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마나의 손 샘플이 사라진 날 그를 향한 인정은 ‘그럼 그렇지!’ 하는 시선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 냐르는 남들의 시선 따위엔 전혀 관심 없었다.
그는 그저 오늘도 도로를 질주할 뿐이었다.
도로를 질주하던 혼 냐르를 향해 호위로 붙은 두 고블린이 말했다.
“켁! 혼 냐르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합니다.”
“크엑! 여기까지 와 본 건 우리가 처음이잖아. 뭔가 새로운 게 있을지 모르는데, 좀 더 가보자. 뭐 그리 겁이 많아.”
하지만 자동차 안의 고블린들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타이어는 소모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혼 냐르가 운수업자 몇 배 이상으로 타고 다닌 자동차의 타이어는 이미 터지기 직전까지 마모되어 있었다.
그런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으니 사고가 안 날 리가 없었다.
‘핑’하는 소음과 함께 차체 제어가 어려워졌다.
고블린들이 탄 자동차는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 방치된 차에 부딪친 뒤 빙그르 돌더니 중앙분리대를 박으며 멈춰 섰다.
그리고 충격에 고블린들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인간들이 내는 소리였다.
옆자리와 뒷자리의 호위 고블린들은 아직까지 기절해 있고, 인간들 몇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운전하는 고블린이라니, 이제 고블린이 운전까지 하고 다니는 군. 이 녀석들은 데려가서 심문해 보는 게 좋겠어.”
‘랩장. 이 고블린은 낯이 익다. 라 왕국에서 봤던 녀석 같아.’
순찰견-된장의 말에 다시 유심히 살펴보니 운전대를 잡은 고블린은 된장이 공유해준 영상에 있던 개체였다.
‘기술자로군.’
랩장은 밖으로 끌어낸 고블린들 가운데 기술자로 보이는 개체의 입에 마나메모리를 하나 집어넣었다.
기절한 척하고 있던 고블린은 뭔가를 입에 집어넣자 격렬히 반항했다.
하지만 힘으로 고블린이 인간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혼 냐르는 위기감에 입안으로 들어간 무언가를 뱉어내려했지만 그 물질은 이내 체내에서 반응하며 정착해 버렸다.
그리곤 인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기술자인가?’
‘어? 이건 뭐지? 넌 누구지?’
‘내가 먼저 물었는데. 겁이 없군.’
‘인간 따위가.’
랩장의 눈짓에 옆에 있던 외작조원이 나서 혼 냐르를 패기 시작했다.
마침 깨어난 호위 고블린들이 반항했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혼 냐르는 고블린어로 외쳤다.
“크에엑! 그만! 기술자 맞아. 그만 때려.”
하지만 그 말을 모두 알아들었음에도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더 때리며 고블린들의 차량을 수색한 후 다시 기절해 너부러진 고블린들은 버스 천장 위로 옮겨 묶었다.
그리곤 다시 랩시티를 향해 출발했다.
다행이 이후의 귀로에서는 불편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랩시티 정찰대가 임무를 마치고 시티연합의 영역에 들어서자 도로부터가 달라졌다.
시티연합의 영역 내 도로들에서는 이제 방치된 차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두워진 도로 너머로 랩시티의 불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야~! 드디어 집이네.”
소희의 외침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송규희와 한주희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몇 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랩시티 정찰대가 복귀하자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왔다.
입구에서 수색이 마쳐지자 드디어 사람들과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박차장! 고생했어. 어머니는?”
“응. 다행이 괜찮으시더라. 김차장 너도 고생 많았어. 이쪽 상황은 어때?”
“긴장감이 높아졌어. 따로 얘기가 있겠지만 용철이형이 하는 얘기론 수도권 위쪽에서 압박이 있는 거 같다고 하네. 더 위에서 누르니 어지간한 세력들은 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거지.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수도권 인근에 너무 많아졌어.”
“이번 랩테이블에서는 할 얘기가 많을거 같아.”
“그나저나 저 사람들이야?”
“맞아. 마나시티 사람들이야.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최초의 마나초를 가져온 곳이지.”
“생각하지 못한 인연이긴 하네.”
긴 여정의 끝이었지만 쉴 틈은 없었다.
수도권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장에 병력을 투입하기에도 애매했다.
시티연합은 그동안처럼 당분간 워터시티에 수도권 전진기지 방어를 일임하고 시티연합군을 언제든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블루시티의 정예화가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됨에 따라 그들을 새로운 시티연합의 일원으로 인정하였다.
지금은 시티연합의 세력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었다.
시티연합군은 겨울 동안 내실을 다진 레드시티와 블루시티의 병력을 충원하여 오십인대를 기존의 4개에서 6개로 확대하였다.
추가된 2개의 오십인대 가운데 여섯 번째 오십인대는 레드시티와 블루시티의 혼성 부대로 구성되었다.
랩시티에 도착한 송규희는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부터 세계수라고 불리는 거대한 나무까지 마치 동화 속에 들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외로 랩시티의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정상적으로 아이들이 많은 인구구조로 성인의 대부분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친구도 한 명 사귀었다.
그 친구는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단체의 수장이었다.
양초이! 그녀와의 만남으로 인해 송규희는 인생의 전환점과 새로운 목표를 맞이하게 되었다.
얼마 뒤 송규희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블루시티로 복귀하여 교섭팀을 구성하고 레인저 지대의 지원을 받아 남부연합으로 방문하는 임무였다.
‘라 왕국의 정보를 남부연합에 전달하고,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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