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1)

“대표님! 큰일났습니다. 고블린들에게 신거제대교를 뺏겼다고 합니다.”
“뭐라고! 애매하면 폭파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다리 건너편이 아닌 섬 쪽에서 공격당하는 바람에 폭파시킬 기회를 놓쳤다고 합니다.”
“다른 두 곳은? 전황은?”
“다행이 다른 두 곳은 모두 폭파에 성공했다고 하고, 지금 방어선 안으로 들어온 고블린들을 각개 격파하기 위해 방어군 병력을 크게 둘로 편성 했다고 마지막으로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남부연합 거제지역 방어군은 섬 자체를 성처럼 활용해 방어전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분산 상륙이라는 방법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성벽을 넘어 버렸다.
그나마 라 왕국 서벌군이 침략하기 전에 인근 생존자들을 최대한 모아 꽤 많은 병력을 준비해 두었기에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방어군은 두 개의 부대로 재구성하여 소수로 상륙한 서벌 2군을 타격하였다.
두 개의 부대로 나눈 방어군은 따로 행동하지 않고 서로 백업하며 고블린들을 공격했다.
한 부대가 고블린을 타격하면 나머지 부대는 주변 지원을 차단했다.
그리고 타격 부대가 열세로 후퇴하면 매복하고 있다가 고블린 부대를 뒤에서 공격하였다.
“대장. 이런 식이면 꽤 많은 고블린 전력을 제거할 수 있겠어요.”
“아직 일러 해안뿐만 아니라 대교로도 침입하고 있어서 적이 뭉치기 시작하면 이 방법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거야.”
“....”
“너무 실망하지 마. 끝이 어떨지는 가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그 보다 우리 쪽 피해는 어때?”
“그게 방금 전 전투에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쳐서 후방으로 이송 중이에요.”
“이렇게 계속 피해가 누적되는 건 반갑지 않은데 걱정이군.”
피해를 가늠하고 있던 대장에게 통신을 담당하는 병사가 다가왔다.
“대장님, 좌군에서 적을 발견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위치 확인하고 백업하겠다고 알려줘.”
서벌 2군은 주로 통영방향에서 출발하여 상륙을 시도하였다.
대교가 서벌 1군에게 장악된 후에는 더 이상 해상으로 넘어오진 않았지만, 이미 상륙에 성공한 고블린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통영지역과 연결된 대교 쪽으로 이동했다.
방어군은 상륙하여 이동하는 소규모의 고블린들을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때문에 서벌 2군의 피해는 갈수록 누적되고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점점 뭉쳐 규모를 늘려가자 좌군과 우군의 피해도 조금씩 커져갔다.
좌군과 우군은 며칠 동안이나 이어진 게릴라전의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다.
멀리 보이는 대교의 거제지역 쪽에는 이미 수많은 고블린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꽤 많은 숫자를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고블린 병력을 보자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대장, 우리가 저것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해야지. 해내지 못하면 이곳에 인간들은 모두 저 놈들의 먹이가 될 거야.”
“꿀꺽.”
긴장한 병사는 자신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좌군에 연락해. 게릴라전은 여기까지야. 중앙군과 합류한다.”
“넵!”
병사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곳을 벗어난다는 지시가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병사는 곧 라 왕국 서벌군 전체와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벌군은 거제지역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2군에서 이천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아직 전체 병력은 일만 삼천이나 남아 있었다.
서벌군 사령관은 거가대교 방향으로 갔던 병력까지 모두 합류하자, 삼천의 병력을 대교 방어로 남긴 후 일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섬 내부로 진격하였다.
인간의 도시에서 입수한 지도를 통해 이미 이 섬의 구조는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도 보다 더욱 믿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지옥견’!
북벌군과 서벌군에 각각 두 마리씩 밖에 지급되지 않은 귀한 전략 수단이었다.
지옥견들은 훈련된 강아지처럼 고블린들과 간단한 소통만이 가능했지만, 인간의 냄새를 추적하기에는 충분했다.
서벌군의 진군 경로에는 개인 생존자들이 자신들만의 쉘터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여러 곳에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그 집단에 속하기 꺼려하는 생존자들은 끝까지 공동체에 합류하지 않았다.
개인 생존자들은 전쟁 중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고블린들에게 사냥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옥견은 귀신 같이 개인 생존자들을 찾아냈다.
그 감각을 피할 수 있었던 개인 생존자는 극소수였다.
계속해서 진군하던 서벌군은 지옥견의 격렬한 반응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개인 생존자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욱 거세게 짖는 것은 더 많은 인간을 발견했다는 의미였다.
“케에엑! 전방에 인간 군대가 있다. 전열을 갖춰라.”
“하압!”
서벌군의 전위부대가 급속 전진하며 인간부대에 맞섰다.
전위부대 보다 조금 뒤쳐진 양쪽에는 좌익 그리고 우익부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전위부대가 인간부대와 교전을 시작하면 양쪽에서 포위해 들어갈 계획이었다.
전위부대의 역할은 제압만이 아니라 포위망이 형성될 때까지 인간부대를 잡아 두는 것이었다.
전위부대와 인간부대가 충돌하였다.
인간부대는 좌우익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포위되지 않기 위해 부대를 뒤로 물리려 하였다.
하지만 서벌군의 전위부대는 인간부대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달려들며 인간부대가 등을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곧이어 좌우익에 의해 인간부대는 포위되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고블린들에게 인간병사가 한 명씩 당하기 시작하자 인간부대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인간부대 방향에서 제2의 인간부대가 달려왔다.
고블린 지휘관은 포위를 풀고 1자진 형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뒤로 추가의 고블린 부대가 접근했다.
새로 증원된 인간 부대까지 포위하여 덮어버리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인간부대까지 가까워지자 증원된 전위부대가 다시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인간부대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앞쪽으로 뭔가 던지며 뒤로 물러섰다.
돌격하던 전위부대는 무언가를 밟고 그대로 넘어졌다.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입체 쇠못이 던져져 있었다.
입체 쇠못은 4방향으로 못이 나와 있어 바닥에 던져 놓으면 한 방향은 하늘로 향해 밟기 좋게 만들어져 있었다.
전위부대의 선두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인간부대는 빠르게 뒤로 후퇴하였다.
하지만 서벌군은 전위부대를 돌격시켜 계속해서 인간부대를 압박하려 하였다.
하지만 전위부대가 돌격하며 좌우익과 분리된 순간 갑자기 불길이 치솟으며 각 부대들을 분리해 버렸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이 후퇴하던 인간부대가 다시 반전하며 전위부대를 강타했다.
좌우익이 접근하려 했지만 불길로 인해 불길 바깥쪽으로 우회해야 했다.
그사이 전위부대는 전멸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다시 좌우익과 인간부대가 부딪혔다.
잠시 뒤, 좌우익까지 격파한 인간부대는 전열을 점검하며 서벌군과 대치했다.
이 한 번의 전투로 서벌군 이천이 증발해 버렸다.
분노한 서벌군 지휘관은 부대를 재차 돌격시켰다.
다시 2파의 전위부대와 좌우익이 돌격해 왔다.
방어군 지휘관은 첫 번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사상자가 고블린 만큼은 아니라도 병력차를 생각하면 인간 쪽이 먼저 축차 소모에 당할 것이 뻔했다.
“피해는?”
“64명 사망에 21명이 중상입니다.”
“총사령관님. 고블린들이 다시 몰려옵니다.”
“트랩 설치는 마쳤나요?”
“아직 모두 설치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죠. 부대를 다음 방어선까지 후퇴 시킵니다. 후퇴하면서 설치된 트랩을 폭파하도록 하세요.”
방어군은 뒤로 물러서며 고블린들이 그들이 있던 자리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방어군이 위치했던 곳까지 들어오자 설치했던 트랩을 일제히 터트려 추적을 막았다.
방어군 지휘관은 트랩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며 마저 설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트랩으로 고블린에게 큰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적의 진격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방어군은 고블린들의 추격이 지연된 틈을 타 다음 방어선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방어군이 설정한 다음 방어선은 터널이었다.
터널 내부에 장애물을 쌓아 통행을 방해하는 식으로 한 번에 건너올 수 있는 병력을 제한했다.
뭣도 모르고 접근한 고블린들은 터널 출구에서 압도적인 병력의 공격을 받고 쓰러져갔다.
한참 뒤에야 터널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서벌군 지휘관은 터널은 견제만 하고 산을 넘어 병력을 진군시켰다.
“총사령관님, 터널을 이용한 작전으로 적 병력을 크게 줄이지 못했습니다. 오백 정도 사살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한방이 부족했네요. 터널에 불을 지르세요.”
“넵!”
방어군은 터널에 불을 지른 후 방어선을 더욱 뒤로 물러 산을 타고 내려오는 고블린들을 타격할 준비를 했다.
터널 안에서 바깥을 견제하고 있던 고블린들은 입구로부터 퍼져오는 불길과 매캐한 연기에 기겁하며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일백에 가까운 고블린들이 연기에 질식하거나 밟혀 죽었다.
방어군은 터널을 차단한 후 잠시의 휴식을 가지며 전면전을 준비했다.
이제는 당장에 이용할 지형이나 전술도구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산을 통과하며 지친 고블린에게 제대로 피해를 주고 해안 쪽에 있는 요새로 이동하여야 했다.
요새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농성하며 또 다른 작전들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산을 통과한 고블린들이 집결하는 게 보였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방어군은 어수선한 서벌군을 들이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작전이었다.
군기가 세워지지 않은 부대를 공격하는 것은 병법에 기초 중에 기초였다.
전장의 분위기는 방어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합류하는 고블린으로 인해 서서히 전력이 역전되고 있었다.
서벌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지만 방어군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더욱 피해가 가중되는 것도 있었다.
“이제 그만 철수합니다. 작전대로 백업부대를 전진시켜 압박하고 각 분대별로 일순간 부상자들을 챙겨 물러나도록 하세요!”
명령이 하달되자 상대적으로 후위에 있던 백업부대가 일시에 몰아치며 고블린들을 뒤로 밀어 냈다.
그 틈에 교전하던 부대가 뒤로 물러섰고, 다시 백업부대 2진이 교차타격을 하며 틈새를 만들면 1진이 물러서며 순차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후퇴작전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서벌군은 이번 터널 앞 전투로 2,700의 병력을 소모하였다.
방어군 또한 32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번 전투는 전면전인데다 그만큼 치열했다.
방어군에서는 그동안의 작전에서 모두 425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서벌군이 거의 7,400의 손실을 본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생존자의 숫자를 생각하며 암울한 상황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완벽에 가깝게 대규모 침략군을 막아내고 있는 지휘관은 전장에 있는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순자였다.
총사령관 이순자는 마나 도래 전 삼천포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며 평소에 각종 전략물을 좋아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나의 도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지휘관으로서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삼천포, 사천지역의 생존자들을 규합하여 공동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라 왕국의 침략이 확실시 되고 방어군을 구성할 때 그녀의 등장은 거제지역 대표에게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를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중임을 맡기면 사천지역 공동체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녀가 전쟁에서 적의 힘을 빼 놓으면 나중에 어부지리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사심 가득한 고심 끝에 그녀를 방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순자의 전설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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