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2)

방어군의 대부분은 거제지역 세력이 아닌 주변 세력이었다.
사천지역, 통영지역, 진주지역, 고성지역 등의 공동체들이 주력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개인 생존자들과 거제지역의 자발적인 지원병력이 더해졌다.
총인원 1,162명으로 시작한 방어군은 그 동안의 교전으로 737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 중에는 중상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전사자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었다.
무사히 요새로 퇴각한 방어군은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 전열을 정비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병력 충원을 받으려 했으나 거제지역에서는 요새 방어를 이유로 병력지원을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중상자 및 부상이 심한 자들을 제외한 701명만으로 다시 전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벌군은 요새를 포위한 뒤 간헐적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포위당한 초기에는 바짝 긴장한 채 서벌군의 공격에 대응했지만 이내 고블린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동안 확인한 바로는 약 칠천정도였다.
이순자 총사령관은 계속해서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작전을 수립한 그녀는 대표에게 보고하며 병력과 물자를 요청했다.
“대표님, 포위하고 있는 고블린의 병력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습니다. 선박을 이용해서 후방에서 친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어 보입니다. 병력과 물자를 지원해 주세요.”
“총사령관님. 요새병역은 차출할 수 없습니다. 이곳 요새의 방어가 결과가 확실치 않은 작전보다 우선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이 기회입니다. 만약에 저들의 병력이 충원되면..”
“그만하세요!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까? 이게 국밥 푸듯이 간단한 게 아니 예요! 적이 낯선 환경으로 어수선할 때 요행으로 거둔 몇 번의 승리 가지고 너무 나서지 마세요!”
대표의 말에 옆에 있던 부관이 칼집에 손을 얻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요새병력들이 둘을 제지하려 했다.
“이것들이 진짜! 총사령관님!”
“가만히 계세요.”
부관을 만류한 그녀는 대표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희 부관이 실례를 했네요.”
대표의 손짓에 따라 긴장감을 높이던 요새병력이 무기를 갈무리 했다.
“그럼 물자와 선박이라도 지원해 주세요. 저희만이라도 움직여 침략군의 수를 줄여 보겠습니다.”
“그건 지원해 드리죠. 하하. 역시 총사령관은 국밥만 팔았던 것에 비하면 대세를 볼 줄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접견실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들 보던 대표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저것들이 밖에 고블린들과 서로 상잔만 해준다면 일거에 이 지역 세력들이 정리되겠어. 하하.’
“아니 도대체 왜 참으셨어요. 그 놈이 대장을 무시하잖아요!”
“야. 김성칠이! 내가 감정 조절 좀 하랬지. 우리만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안 해!”
“그건 아니지만 울화통이 치밀어서.... 죄송합니다.”
“너 자꾸 그러면 다른 지휘관들도 흔들릴 수 있어. 자중해.”
“네~”
순한 양이 된 부관은 그녀에게 목숨을 빚진 후 자처해서 부관이 된 인물이었다.
나름 실력도 있어 방어군 내에서는 입지도 컸지만 그녀 앞에서는 항상 철없는 부하였다.
물자 보충을 마치고 병력을 이송할 선박 도 이관 받았다.
다행이 선박의 상태는 양호했고 해상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방어군은 어둠을 틈타 8척의 중소형 여객선에 몸을 싣고 바다위로 향했다.
그리고 일단 바다위에 앵커를 놓은 뒤 아침까지 기다렸다.
“총사령관님 상륙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지요?”
“이상하지 않아요?”
“네?”
“고블린들이 저희 중심을 그대로 추적해 왔었잖아요. 아마도 뭔가 저희는 찾는 수단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럼 그것 때문에 상륙을 고민하고 있으신 건가요?”
“상륙은 할 겁니다. 다만 밤이 더 위험해 보이고, 우리 냄새가 충분히 바다바람에 씻겨 나가길 기다렸어요. 제 생각이지만 민감하게 우릴 추적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 같아요.”
이순자 총사령관은 고블린들과의 몇 차례 공방을 통해 지옥견의 존재를 추측하고 있었다.
방어군은 고블린 후방 멀찍이 병력을 상륙시켰다.
“아마 제 추측이 맞다면 저희가 후방으로 접근해도 저들이 알아챌 가능성이 커요. 알아채도 대응 못하도록 속도가 관건입니다.”
방어군은 빠르게 이동하며 고블린 진영을 급습했다.
그들은 방어군을 기다리고 있는 일부 병력을 본 순간 총사령관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 규모는 제대로 확인이 안 됐나보네요. 빠르게 격파하며 전진합니다. 어차피 요새 쪽에 있는 고블린 병력을 반전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넵! 총사령관님. 도올격!”
이순자의 예측대로 후방의 고블린 병력은 소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옥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블린들은 지옥견을 귀하게 여기듯 따로 챙기고 있었다.
지옥견의 역할과 존재를 직감한 그녀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개 잡아요. 죽여도 좋아요.”
지옥견은 피부의 비늘 때문에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체의 전투력이 센 것은 아니었지만 방어력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죽이는 것을 포기한 방어군은 지옥견을 산채로 잡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워햄머를 무기로 쓰는 한 병사의 거대한 망치에 맞은 지옥견이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기절한 지옥견을 줄로 칭칭 묶은 뒤 따로 챙겼다.
그리고 방어군은 서벌군이 잡아 놓은 개인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방어군을 보자 그들은 살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지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고블린 병력이 반전하여 후방으로 돌아오고 있었기에 방어군은 포로들을 구출한 뒤, 빠르게 대기시켜 놓은 선박까지 도망쳤다.
선박은 작전에 맞추어 해안을 따라 가까이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올 때 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계류하고 있었다.
갑판을 비롯한 기관실까지 빈틈없이 빽빽하게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남겨둔 사람 없이 모두를 태워 요새로 복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구출한 사람들이 530명이나 되었다.
사람들까지 구해 요새로 복귀하자 대표와 요새병사들은 방어군의 활약에 모두 놀라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저들이 저 고블린들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마저 들었다.
하지만 대표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저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속에서 뭔가 꿈틀대는 감정이 느껴졌다.
방어군이 잡아온 지옥견은 또 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 보는 생명체이기도 했지만 사람을 귀신같이 추적하는 능력과 갑옷처럼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과 그 강도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호기심과 탐욕을 가지고 지옥견을 보게 되었다.
이 소식은 요새의 대표에게도 전해졌다.
하찮게 보던 국밥아줌마가 전공에 이어 귀해 보이는 것까지 손에 넣자 대표의 마음속 질투심은 더욱 달아올랐다.
결국 대표는 사람을 시켜 고블린의 전력을 분석한다는 핑계로 지옥견을 빼앗아 오게 했다.
이번에도 부관 김성칠 혼자 노발대발하였지만, 이순자는 그저 웃으며 지옥견을 넘겨주었다.
그녀는 부관을 달래며 아군에게까지 그럴 필요 없다고만 했다.
부관은 그 말이 더 짜증났지만 자신이 계속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어쨌든 그녀의 첫 번째 부관이었다.
방어군 병사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외부인 취급하며 요새 외부 작전에만 이용하는 거제지역에 감정은 좋지 않았다.
자신들의 동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지만 그들은 남부연합 또는 인간문명이라는 명분만 내세웠다.
게다가 자신들의 총사령관인 이순자를 함부로 대하고, 전공을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노획물까지 빼앗아가는 요새 대표의 모습에 마지막 감정마저 털어버리게 되었다.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요새가 포위당해 있는 상황에서 방어군은 마냥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이순자는 모든 병력을 공격으로 돌린다면 포위하고 있는 고블린 병력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대표는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혹시 모를 고블린 지원병력을 먼저 차단하기로 하고 신거제대교를 파괴하는 작전을 제안하였다.
대표는 방어군이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침략군과 상잔하기를 바랐지만 최초 작전에도 있던 대교 파괴까지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작전은 수용되었고, 필요한 물자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남부연합 거제지역 공동체에서 한창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는 동안, 서벌군 내에서 고착된 전황에 대한 돌파구를 찾으려는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사실 서벌군 내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서벌군이 패할 거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켁~!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벌써 서벌군의 반이 전사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케겍! 적에게 명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상륙할 때부터 지금까지 집요하게 피해를 누적시켜 왔습니다.”
“그 자를 제거 할 방법을 찾아라.”
“합! 차-카락!”
“차-카락,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뭔가? 나의 주술사 사-포포.” “그는 항상 전투에 선두에 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들이 다시 선박을 이용해 나갈 때 적의 요새를 공격하는 겁니다. 그가 없는 적은 저희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집을 잃은 명장도 마찬가지겠지요.”
“켁! 역시 나의 주술사다. 너의 방법을 쓸 것이다. 준비하라!”
서벌군은 소모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신거제대교에 주둔시킨 병력을 최소한만 남기도 소환하였다.
태양이 바다위에 핏빛 그림자를 만들어 낼 때, 주술사에 의해 개량된 소리새 한 마리가 대교를 향해 날아갔다.
방어군은 대교를 파괴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준비했다.
대교 쪽에 또 얼마나 많은 고블린들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교량 파괴를 위한 준비뿐만 아니고 전투를 위한 준비도 필요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지금까지 교전으로 인원이 줄었어야 하는 방어군의 숫자가 거의 원래 숫자로 회복되어 있었다.
지난 작전 때 구출된 개인 생존자들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구출된 생존자의 대부분이 합류하고 부상당했던 병사들도 다시 복귀하면서 방어군은 총 1,104명으로 늘어났다.
방어군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대표의 속마음은 탐탁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까지 통제하긴 힘들었다.
그들의 대부분이 이번 전투로 전사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부상이 아직 심한데 그냥 좀 더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게 어때요?”
“아닙니다. 사령관님, 저희 배라도 지키게 해 주십시오.”
“대장. 데려가시죠. 여기 놔둬봐야 눈칫밥만 먹는 거 같더라고요.”
이순자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막아 놓은 봉인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을 지키려면 참아야 했기에 얼굴색을 정리하고 부관에게 지시했다.
“다 나았으면 같이 가야죠. 부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데려와! 한 사람이 아쉬워!”
“넵! 대장.”
이전보다 더욱 많은 선박이 요새의 해안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른 선박에 비해 덩치가 몇 배는 큰 로로선도 한 척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선박에는 중장비가 실려 있었다.
방어군이 모두 빠져 나간 해안선 구석, 작은 배 한척이 바다로 움직였다.
그리곤 조용히 요새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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