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엔진

드워프와 호빗들은 계룡산과 그 주변에 빠르게 정착해 나갔다.
랩시티의 지원이 있었고 주변에 적대적인 세력이 없었다지만 이들은 새로운 곳에 그들의 문명을 건설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호빗들은 정착지에 도착하자 텐트를 치고 주변에 농경지부터 조성했다.
이들에게 정착 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농경지였다.
그리고 농경지에는 랩시티로부터 지원 받은 각종 작물들이 심어졌다.
이 작은 종족은 농사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호빗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작물과의 소통이었다.
단순한 내용만 소통이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훌륭한 농사꾼이 될 수 있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았지만, 호기심과 흥도 많아 작물과 소통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작물에 얼마만큼의 물과 빛이 필요한지, 양분은 어떠한지 호빗들은 마치 놀이처럼 알아내고 조치했다.
그 결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곤 했다.
고대의 호빗들은 이런 능력 때문에 주요 약탈 대상이 되었었다.
인간들은 호빗들을 잡아와 농노로 부렸고, 오크들은 수확물들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호빗들은 항상 숨어 다녔으며 그래서 더욱 더 만나기 힘든 종족이었다.
랩시티에 합류한 호빗들은 전승된 기억의 일부를 참고하여, 자신들이 농노로 다뤄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자신들이 살 집을 하나씩 짓기 시작했다.
호빗이 가장 선호하는 집은 언덕이나 산 중턱에 굴을 파고 안을 꾸민 형태였다.
하지만 그런 지형을 찾기 힘들면 먼저 집을 짓고 지붕 위를 흙으로 덮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의 지붕에는 색색의 꽃들이 심어졌는데, 호빗들은 이 꽃들을 보고 그곳 아래에 집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호빗들이 정착한 곳보다 더 높은 계룡산의 한 자락에는 드워프들이 자리 잡았다.
드워프들은 먼저 자신들이 살 집부터 짓기 시작했다.
랩시티에서 지원 받은 자재들로 집을 지었다지만 작업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괜히 제작의 종족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 집에는 거주 공간과 함께 커다란 작업실도 같이 있었다.
작업실은 거주 공간 보다 훨씬 넓었는데, 아직 작업실에 갖춰져 있는 연장이나 시설은 거의 없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살 집에 대한 공사가 얼추 마무리 되자 드워프들은 랩시티에서 지원받은 연장들을 들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 곳곳에서 드워프들의 곡괭이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워프들은 물질을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물질변환능력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광물에 한해서 적용 가능하고 샘플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현재 모든 드워프들이 샘플이 될 광물을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마나 도래 후 인류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변이가 생명체에게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 중에도 마나의 개입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 드워프들이 찾고 있는 금속은 아만티움 이라는 이름의 재료였다.
아만티움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광물이었지만 무엇보다 드워프에게 꼭 필요한 재료였다.
바로 드워프의 망치와 모루를 만드는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이 광물은 비중량이 알려진 어떤 금속보다 높았으며 기계적 특성 또한 우수해 드워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료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마나를 차폐하는 기능이 있어 마나를 사용하는 기물을 만들 때도 꼭 필요한 물질이었다.
“찾았다~! 찾았어.”
한 드워프가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이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이곳에 아만티움이 있었어. 다른 것들도 있겠는데. 어서 찾아보자고.”
드워프들은 표정이 밝아지며 다시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아만티움을 발견한 드워프는 곧장 그들의 족장에게로 작은 아만티움 조각을 가져갔다.
광물 씨앗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재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같이 광물을 모아야 했다.
최초 씨앗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어떻게 충분한 양의 아만티움 파편들을 모은다 해도 랩시티에서 팩토리시티에 부탁하여 만들어온 망치와 모루로는 가능할지도 알 수 없었다.
세계수-마더로부터 선물 받은 ‘화염의 돌’로 온도는 충분히 올릴 수 있었지만, 작업하는 동안 망치와 모루가 얼마나 견뎌줄지 알 수 없었다.
화염의 돌은 양방향에서 서로 마나를 가속해서 쏘아 마나충돌로 온도를 서서히 올리는 장치였다.
마더는 드워프족이 자리 잡는데 꼭 필요 할 거라며, 연료로 사용할 가공된 마나결정과 화염의 돌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선물했었다.
족장 냐룬은 용광로 양쪽에 화염의 돌을 설치하고, 화염에 돌 뒤편 즉 용광로 바깥부분으로 연료용 마나결정을 장착했다.
시간이 지나자 화염의 돌들 사이 중간 공간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온도를 올려야겠지만 아마 아만티움들을 찾게 될 때쯤이면 온도는 충분히 올라가 있을 것이었다.
신수의 불꽃 부족 모두가 달려들어 며칠 만에 겨우 아만티움 씨앗 하나를 만들 양을 모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아만티움 씨앗 제작을 위한 재료는 족장이 직접 다루었다.
족장은 며칠에 걸쳐 아만티움 파편들을 녹이고 모르에 올린 채 때려 불순물들을 제거해 나갔다.
드워프들이 말하는 씨앗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순도를 최대한 높여야 했다.
결국 지원받은 모루와 망치의 반가량을 망가뜨린 후에야 겨우 첫 번째 씨앗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드워프들은 이 첫 번째 아만티움 씨앗을 광물이 자라기 좋은 곳에 심은 뒤 그들의 망치를 통해 자신들의 마나를 흘려보냈다.
마나를 씌운 망치질로 대지는 점점 바위처럼 변해갔다.
이 작업은 하루에 한 두 번씩 계속 진행되었다.
이제 이 아만티움 씨앗은 주변의 물질들을 아만티움으로 바꿔가며 땅속으로 또는 암벽 안으로 점점 자라날 것이었다.
첫 번째 아만티움이 심어진 이후에도 다른 광물들이 계속해서 심어지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땅속에 광물을 캐내는 일도 하지만 광물을 길러내는 일도 하는 종족이었다.
호빗과 드워프의 랩시티 합류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랩시티의 각종 마나 관련 연구와 작업들을 가속화 시켰다.
대표적으로 마나 도래 후 새롭게 등장한 식물종에 대한 연구와 마나를 이용한 이전 시대의 기술 재현에 관한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식물에 관한 것들은 호빗이 해결해 주었다.
호빗들은 마나 관련 식물들을 잘 알았다.
특히 새로운 식물 종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호빗들이 공유해준 내용에는 식량, 향신료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들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과 새롭게 알게 된 식물들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식생팀과 의료팀은 호빗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그동안 막혀있던 각 작업들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호빗들도 인간들이 주로 재배하는 작물에 대해 정보를 얻어갔다.
어찌되었든 현재는 고대 호빗들이 살아가던 환경과 다른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호빗들이 랩시티에 올 때마다 항상 챙기는 대상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하이엔트들이었다.
하이엔트들은 농업의 종족인 호빗족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또한 하이엔트들도 호빗들에게 본능적으로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하이엔트들은 호빗들이 방문할 때마다 그들에게 항상 장난질로 보답하고 있었다.
랩시티 내에서 말썽꾸러기로 소문난 하이엔트들의 장난을 잘 받아주는 호빗들은 사람들에게도 신기한 존재였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한마디로 수준 높은 기술자들이었다.
인간문명이 마나 도래로 멸종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함께 위축되어 가던 각종 가공, 제작 기술들도 드워프들은 쉽게 재현해 냈다.
그동안 부속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던 장비들이나 자동차 부속들도 드워프들에게 의뢰하면 뚝딱 만들어 왔다.
조금 어렵다 싶은 것들도 관련 자료나 비슷한 도면들을 보여주면 결국에는 만들어 내었다.
드워프들의 제작 능력은 사람들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그 중에 무엇보다 드워프들을 통해 탄력을 받은 분야는 마나공학 이었다.
랩시티에서는 마나결정을 비롯한 마나 관련 산물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조사를 진행해 왔다.
그렇게 확보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마나공학으로 인류가 이제껏 구현한 공학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에도 모터 하나 조차 마나공학으로 구현해 내지 못했다.
마나는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나를 이용한 회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인간의 상식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벽에 부딪혀 있던 마나공학이 드워프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타고난 제작자답게 드워프들은 인간문명의 여러 결과물에 바로 흥미를 가졌다.
인간의 기술들은 드워프들이 보기에도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만 유효했다.
그리고 인간의 기술은 사용할수록 환경을 파괴하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 형태를 고갈시켰다.
문제점을 파악한 드워프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들과 인간의 기술들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냐룬 족장, 이번에 굉장한 걸 작업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가능할 거 같아?’
‘왕이시여. 요즘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어? 그거 있잖아. 마나엔진.’
‘아! 인간들이 사용하던 모터를 마나로 돌릴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씀하셨군요.’
‘그래. 맞아. 어떻게 성과는 좀 있어?’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사실 몇 가지 다른 원리들로 제작할 수 있어서, 무엇으로 할지 고민 중이긴 합니다만 조만간 결과물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대단하네. 역시 드워프 족이야. 우리도 장기간 고민했어도 답을 못 찾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게 설명을 해 드려도 이해를 못하실 것 같습니다만....’
‘.... 그럴까? 하긴 그걸 들어서 이해한다면 진즉에 만들었겠지.’
‘흠흠. 지금 제작중인 프로토타입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자면, 고정자와 회전자를 서로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게 마나로 극성들을 교차로 부여하고, 회전자에 설치된 극성을 일정 시간마다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전자 극성제어에 마나가 사용되는데, 현재는 그 극성제어용 마나가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 그렇구나.’
드워프들은 최초의 마나엔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동력원인 마나를 저장할 마나배터리를 완성하지 못해 실용화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마나배터리는 말 그대로 마나를 충전해서 마나엔진과 같이 마나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기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마나 저장장치였다.
마나배터리에 저장된 마나가 마나엔진 안으로 공급되어 극성 유지를 위한 마나를 보충하고 극성제어까지 진행했다.
그리고 남은 양은 다시 마나배터리로 회수되며 하나의 순환회로를 만들어 냈다.
이 같은 마나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금속인 미스릴과 마나가 새지 않게 막아주는 아만티움이 함께 쓰여야 했는데 아직까지 두 재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제작이 지연되고 있었다.
아마도 두 재료가 준비될 때까지는 일회성이긴 하나 마나결정을 사용하는 방법을 적용해야 될 듯 했다.
얼마 뒤 랩시티에서는 프로토타입 마나엔진의 시운전이 열렸다.
마나엔진은 제너레이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시운전을 시작하자는 신호가 주어지자 드워프 한 명이 마나결정이 장착된 제어기를 잡고 자신의 각인마나를 불어넣어 마나엔진을 구동했다.
엔진은 소음 없이 조용히 일정 속도로 회전하며 제너레이터를 돌렸다.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은 성공이었다.
족장 냐룬의 말대로라면 아만티움과 미스릴만 충분히 확보되면 훨씬 고성능이고 효율적인 마나엔진을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마나엔진은 회전력이 사용되는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어 실용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이런 마나공학을 이용한 기기들이 늘어갈수록 랩시티를 포함한 인간문명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려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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