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오크동맹(3)

랩시티에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던 레인저 지대의 골프대 대장 차준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외작팀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덜 잔인했다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오크동맹 작전부대 병사들은 랩시티 외작팀의 전투를 처음으로 접해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저렇게 싸울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행님. 그냥 괴물들인데요. 보고서에는....”
“괜찮아. 오히려 너무 멋지잖아.”
“....”
막 현장 정리를 마친 것을 확인한 수연은 모두에게 말했다.
“혹시 다친 사람 있나요?”
“경상자 두 명 있습니다.”
“움직이는 건요?”
“문제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오늘은 첫날이니 이 정도만 하고, 근처에 쉴만한 곳을 찾아보죠.”
순찰견-데이가 찾은 쉼터는 골짜기를 낀 주변으로부터 은폐된 공터였다.
지형은 냄새나 흔적이 잘 감춰지도록 은폐되어 있었다.
‘데이, 좋은 장소를 찾았구나. 공간도 충분하고 물도 구하기 쉬워 보여. 여기라면 간의 화장실과 샤워실도 설치할 수 있겠어.’
‘괜찮다니 다행이다. 그럼 나는 쉬면서 주변을 감시하겠다.’
수연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주변에 전달하세요. 당분간 이곳을 쉼터로 활용하도록 할게요. 잘 아시겠지만 불사용은 금지예요.”
사람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개인별로 텐트를 쳤다.
불을 피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식사도 각자 챙겨온 건조 식량이나 간편식으로 대신했다.
타공동체 출신들은 외작조원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도 각자 휴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시키는데 전념했다.
그들이 보기에 외작조원들은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휴식까지도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에고를 통한 네트워크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음날도 이른 점심까지 챙겨 먹은 작전부대는 순찰견-데이를 앞세우고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전날처럼 이동하는 텐 하나를 추적하여 조용히 전멸시켰다.
“크룩~! 도대체 몇 개의 텐이 사라진 것이야?”
“크르륵! 9개의 텐들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
“텐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일 때 당한 거라 파악이 늦었습니다.”
“누구의 짓인지 확인됐나?”
“그게 아직....”
“크룩! 놈들은 아직 근처에 있을 것이다. 샅샅이 뒤져 찾아내라.”
“크르륵! 텐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우텐.”
평소와 다른 오크들의 움직임이 확인되자 작전부대는 망설임 없이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전력유지를 위해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고, 지리산에 있는 모든 오크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칫 포위라도 됐다가는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고 이는 게릴라전의 종료를 의미했다.
“죄송합니다. 우텐. 놈들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단지 6십 정도의 머문 흔적은 발견했습니다.”
“크룩! 미리 피했군. 역시 인간이 가장 성가신 존재였어. 보복을 준비하라. 방어가 약한 인간 군락지를 친다.”
“크르륵! 피의 보복을!”
오크들은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종족이 아니었다.
무기만 챙겨 나오면 병사가 되는 오크의 특성 상 병력의 소집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임시캠프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순찰견-데이와 외작조원들은 계속해서 주변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크들의 움직임이 산 안에서 끝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리산 자락의 어느 산기슭, 정찰 중이던 외작6조가 오크 전위 부대를 감지했다.
부대의 규모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에 수혁은 오크의 탐지 범위에서 약간 벗어난 채 감시를 유지하기로 했다.
오크 전위부대가 지나가자 곧이도 주력부대가 나타났다.
주력부대는 별도의 측면 정찰 병력을 따로 운용하고 있어 외작조는 탐지되지 않도록 좀 더 멀리 물러나야 했다.
주력부대 이후에는 후위부대가 지나갔다.
후위부대는 후방 기습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그런지 병력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수혁은 조원들과 함께 오크 부대를 좀 더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의 행선지까지 추적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방향 정도는 확인하는 게 좋았다.
‘혁준이형, 아무래도 라 왕국 쪽은 아닌 것 같지 않아요?’
‘응.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자유무역지대도 아닌 것 같고, 혹시 이곳이 아닐까?’
강혁준이 지도에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구례지역이었다.
마나 도래 전 구례지역은 인구소멸위기 지역으로 불러질 만큼 사람이 적게 사는 지역이었지만, 마나화 과정에서 도시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지금은 오히려 대표적인 생존자 지역이 된 곳이었다.
그리고 구례지역은 남부연합의 속한 지역으로서 자유무역지대와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구례지역은 지리적으로 자유무역지대와 가까웠기 때문에 여수지역에서 연료유를 독점했던 시기에는 조금씩이지만 대추마을과 교류도 했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그리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따라가 보죠. 만약에 오크들이 이곳에서 서쪽으로 경로를 튼다면, 이건 구례지역이 목표라고 봐야 될 듯 하네요.’
‘지켜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오크들이 싸움에 미쳤다고 해도 하동지역은 라 왕국을 대비해서 어느 정도 병력은 안배되어 있을 텐데, 그곳을 공격하지는 않을 거 같아.’
‘제 생각도 같아요.’
외작6조는 오크 병력의 목적지를 알아내기 위해 생각한 지점까지 따라 붙었다.
결국 오크는 서쪽으로 경로를 틀었다.
‘구례지역에 알려줘야겠어요. 데이는 빠른 길로 가서 누나에게 상황을 알려줘. 부탁할게.’
‘알았다.’
순찰견-데이가 오크에게 발각되지 않을 정도로 오크부대 대열과 옆으로 거리를 유지한 채 산자락으로 먼저 뛰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외작조원들도 데이가 간 길을 따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시 산길을 이용했다가는 오크들 보다 먼저 구례지역 공동체에 도착하기 어려웠기에 오크 부대를 앞지른 뒤 섬진강 줄기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오크들 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지만, 오크 무리가 도착하기 전에 준비할 시간을 얼마나 벌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오크가 몰려와요! 다들 피하세요.”
검은 옷의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경고해서인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오크만큼이나 사람도 위험한 세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 지역 공동체에 알리세요. 지리산에서 활동 중인 오크 무리가 섬진강 라인을 타고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고요. 병력은 약 5천으로 추정되니 빨리 움직이세요.”
“네?”
“뭐하세요! 모두 오크에게 당하고 싶으세요.”
“뉘신지....? 누구신지부터 알려주세요.”
“그게 중요한가요? 저희 반오크동맹의 대 오크 작전부대원들입니다. 빨리 알리러 가세요.”
“네. 알긴 알겠는데. 그 쪽들은 어떻게 믿고....”
“이런....”
‘수혁아 시간 없어 다른 쪽으로 가보자.’
‘네. 형. 여긴 안 되겠네요.’
외작조원들은 구례지역 공동체의 중심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 번 더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 뒤 드디어 그들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에~~~앵~~! 에~~~앵~~!”
구례지역 공동체가 사용하는 사이렌 소리가 대지 위를 퍼져 나갔다.
수혁은 구례지역 공동체의 외곽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오크의 침입을 알리게 위해 낭비한 시간들이 아쉬워졌다.
그때 옆에서 강혁준과 김필호가 말해 왔다.
‘조장은 할 만큼 했어. 나머진 저들 몫인 거고.’
‘그렇지만 좀 안타깝네요.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서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피신하기는 어려워 보이던데.’
‘.... 그만 가자. 본대에 합류해야지.’
외작조원들은 다시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차량 같은 것을 빌리기 힘들어 보였고 도로 사정도 자동차가 달리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마나로 강화된 신체를 믿는 게 더 나았다.
“아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해 온 소식에 사이렌까지 울리면 어떻게 하는가!”
“대표님, 그들은 반오크동맹 소속이라고 정체를 밝혀 왔습니다. 그리고 설사 거짓이라고 해도 훈련 한 번 한 셈 치면 되잖습니까.”
“그리 쉽게 말할 내용이 아니지 않는가. 생업에 종사하다 이곳까지 뛰어올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거리도 가깝지 않은데....”
그 때 대표의 걱정 섞인 말을 끊어내는 보고가 들어왔다.
“헉헉. 대표님. 헉. 오크가. 오크가.”
“아니 왜 그러나? 숨 좀 제대로 쉬고 말하게.”
“그게 감시타워에서 오크를 식별했습니다. 5천 가량의 오크 부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남부연합 구례지역 사람들은 오크 무리가 도착하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방어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외곽에서 작업 중이던 일부는 제때 중심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여기저기 피난처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도착하자마자 군세를 몰아치려고 했던 오크들은 인간들이 예상보다 빨리 방어태세를 갖추는 바람에 적절한 공격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덕분에 구례지역 외곽에 진지를 구축하며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룩~!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빨리 대응하다니 역시 인간들은 다르군.”
“크르륵! 우텐. 모든 텐들의 집결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성채는 고블린들과 많이 다르군. 바로 시가전이 될 것 같으니 텐들을 순차 투입하라.”
“크르륵! 알겠습니다. 우텐!”
구례지역의 공동체 중심지는 다른 인간 공동체들과 비슷하게 듬성듬성 위치한 건물들을 이용해 방어지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일종에 시가전을 유도하여 적의 피해를 누적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공동체의 중심지가 전장이 될 수는 있었지만 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거나 개별 전투력이 더 강하지 않는 한 효과적으로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도 했다.
망설임이 적은 오크들은 바로 텐들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건물 곳곳에 숨어 있던 구례지역 방어군이 먼저 투입된 전위 텐을 습격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후위 텐들이 매복공격을 하던 인간들을 공격했다.
전위 텐들의 역할은 일종의 미끼였다.
시가전으로 인간과 오크 모두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은 구례지역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자유무역지대에서는 갑작스럽게 병력의 소집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크들이 구례지역만 공격하고 말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도 했고, 필요하다며 구례지역을 지원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별개로 반오크동맹의 작전부대는 이미 전장에 진출해 있었다.
그들은 전선의 한쪽에 자리를 잡으며 오크들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우텐은 전선 바깥쪽에 버젓이 자리 잡은 인간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2개의 텐을 투입하였다.
거슬리게 하는 인간들의 숫자가 얼마 안 돼 보였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구례지역에 대한 침략을 한창 진행 중이던 오크들은 의외의 곳에서 이변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전선의 바깥쪽으로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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