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도 먹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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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녕
작품등록일 :
2024.01.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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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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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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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피의 성자(4)

DUMMY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쭉 폈다.


생각해보니 요근래 기절에 가까운 잠만 자는 통에 제대로 낮 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다. 물론 내 몸 상태로는 쉬는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얼른 돌아가긴 해야하는데.’


돌아가서 할 일이 꽤 있긴 했다.


가장 먼저 프리스테카의 퀘스트부터 해치워야 했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문제는···.’


약지에 끼워둔 반지를 바라봤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건 좋은데, 한번 쓸때마다 이 꼬라지가 나는 걸 봐서는 최소한 이곳에 묶여있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은 리코를 포함해 9명이니까.


‘으···. 일단 보신이나 해야지.’


지금도 12호가 따 놓은 혈생초를 소 여물 먹듯 씹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부족한 피를 만드는 데는 이거만한 게 없으니까.


“나도 나가보실까.”


아직 완전히 몸 상태가 돌아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다닐 정도는 회복되었다. 어쨌든 리코의 마법 과외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구하러 나갔다.


-아직 네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어딜 가는 거야?

“블루벨 좀 구하러.”

-그런 건 내게 시키면 되잖아.

“그럼 편하긴 한데, 그냥 움직이고 싶어서.”


약초 채집 따위는 크레피탄스를 시켜도 됐지만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터라 바깥 바람 좀 쐬며 기분을 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산책도 하며 채집도 했다.


블루벨의 위치는 크레피탄스의 도움을 받았다. 블루벨을 그냥 찾으려고 하면 하루종일 걸어도 못 찾는다. 나는 재활 겸 나오고 싶었던 거지 생고생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크레피탄스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양껏 블루벨을 캐서 돌아왔다.


리코를 통해 내 심부름을 전달받은 아리베시가 두툼한 종이뭉치와 홀쭉해진 주머니를 건넸다.


“여깄소.”

“아, 감사합니다.”

“할 얘기가 있는데, 잠시 볼 수 있겠소?”


종이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리베시가 나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나는 서둘러 짐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왔다.


“잠깐 좀 걷지.”


아리베시와 함께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인적이 드문 숲길에 도착해있었다.


“내 그대가 말할 때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소.”

“무엇을 말입니까?”


아리베시가 내 흙투성이 손을 가리켰다.


“그거, 거짓말 한 이유가 뭐요.”

“아. 혹시 반지···.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숨긴다고 거짓말했다간 더 안좋아지겠군.’


어차피 들킨거,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했다.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데 시치미 떼봤자 신뢰만 깎인다.


“어쨌든 이건 그 놈들이 준 거니까요.”

“난 그게 이해가 안 되네. 어쨰서 말하지 않았지?”

“음···.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진 않습니다.”

“잘 모르겠군.”

“제 팔다리를 살려줄 물건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 팔다리를 잘라간 놈들이 준거라고 하면···. 치료 받겠습니까?”

“그렇기에 더 말해야 해. 그건 치욕일세.”


아리베시의 사고방식을 이해한다.


호전성이 강한 호족 출신의 수인. 그들은 죽을지언정 적에게 자비를 구걸하지 않는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인족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데 그게 진짜로 팔다리보다 중요한가요?”

“뭐?”

“글쎄요···.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걸 안 그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잃어버린 걸 되찾았잖습니까. 물론 이 따위 물건으로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되돌으킬 수 있다면 되돌려야지요.”

“······.”

“리코양은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버지도 잃었지요. 리코양이 단순히 그들이 준 물건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리베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은 약자다.

하물며 어린 새끼가 장애라도 있다면 말 할 것도 없는 것.


“인족은 호족처럼 강인하지 못합니다. 그 점을 양해해주시길.”


그리고 나는 자리를 떴다. 아리베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혼자 걸어오면서 방금 전 아리베시에게 잘난 듯 말한 걸 생각해봤다.


‘음···. 조졌네.’


순간 괜히 혼자 욱하는 바람에 말을 좀 날 서게 한 것 같았다. 솔직히 이 마을 통틀어 최약체를 뽑으라고 하면 나를 지목하면 되고 최강자를 지목하라고 하면 아리베시를 말하면 된다.


안 그래도 아리베시랑 며칠 붙어있었다고 내가 그의 친구라도 된 줄 알았나 보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적어도 리코가 보는 앞에서 내 목을 꺾진 않을 테니, 며칠은 리코의 곁에 붙어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


아리베시는 그의 인족 친우가 한 말을 홀로 곱씹어보았다.


‘그게 정말 팔다리보다 중요한가요?’


명예가 팔다리보다 중요한가.

진실이 중요한가.


그가 부족 내에 있을 때라면 당연코 목숨보다 명예가 중요하며, 진실은 무조건 옳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명예가 지긋지긋해 쫓겨나듯 부족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꽤 오랫동안 인족의 나라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특히 용병생활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던 그는 인족 용병들과 고락을 자주 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든 ‘괜찮다’라고 했다.


수 많은 괜찮음 중에, 정말 괜찮았던 적이 있었을까?


아리베시는 고개를 숙였다.


***


홀로 돌아오자 리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리 오라버니와 함께 나가신 것 아니었어요?”

“아, 그게···.”


언제 쫓아온건지 아리베시가 별안간 나타나서 내 등짝을 퍽 소리 날 정도로 두드렸다.


“하하, 생각보다 이 친구 발걸음이 제법 날래더군.”

“아하···하···..”


괜히 뻘쭘해진 나는 화제를 변경했다.


“리코양 주방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주방을요?”

“예, 마나 그릇을 만들기 전 준비를 해야해서요.”


나와 리코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아리베시, 그리고 어느새 등장한 코린이 놀란 듯 말했다.


“마나 그릇?”

“마나? 누나 마법 배워?”


생각해보니 아침 일찍, 그것도 몇 분도 안되는 사이에 지나간 일이라 둘은 아직 모르는 듯 했다. 리코가 내 대신 그 둘에게 마법을 배우게 됐다며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요?”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니까요.”


적어도 리코가 가진 마나 그릇은 압도적일 거다.


“어···. 테오 아ㅈ···, 아니 선생님. 뭘 하면 될까요?”


어느샌가 호칭이 아저씨에서 선생님으로 바뀌었지만 뭔가 기분이 미묘했다. 아리베시는 오라버니인데 왜 난 아직 아저씨인 걸까.


내가 그렇게 삭았나? 마음의 상처가 조금 났다.


내 기분이야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아리베시씨 그 제 방에 가면 파란 꽃들이 있을 겁니다. 그거 좀 가지고 내려와 주세요.”

“아, 아까 전에 들고 올라가던 거 말이오? 알겠소.”


아직은 몸이 불편한 리코였기에 움직여야 하는 건 내가 했다. 창문 닫고, 버려도 될 것 같은 냄비를 찾고 아궁이엔 불을 지폈다.


아리베시는 내가 캐온 블루벨을 전부 가지고 내려왔다.


“이제 집중해야해서 잠시만 나가계십쇼. 금방 끝납니다.”


나는 아리베시와 코린을 내보냈다.

그리고 컴컴해진 주방 한 가운데 리코를 앉혔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일과 왜 하는 지, 그리고 리코는 무엇을 해야되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


“원래는 마나 포션을 끓이는 게 좋지만 지금은 없으니까요. 여깄는 블루벨을 대신 사용할 겁니다.”


블루벨은 청색 꽃망울을 지닌 은방울 꽃처럼 생긴 식물이다. 그리고 마나를 머금고 있는 대시에 자라난다.


혈생초와는 반대로 블루벨은 꽃의 색이 흐릿할수록 고품질이다. 그 이유는 블루벨은 꽃보다 뿌리에 더 많은 마나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다년생 식물인 블루벨은 어린 개체일수록 뿌리에 마나가 적고 꽃이 새파랗다. 반면 오래 산 블루벨은 그만큼 뿌리에 축적한 마나가 많고 꽃은 노화한 것처럼 색이 희어진다.


만약 흰색에 가까운 블루벨을 발견했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심봤다를 외치고 금지옥엽 싸들고 내려가면 된다.


내가 구해온 것은 적당히 푸른 꽃잎을 지닌 블루벨.

너무 어리지도 많지도 않은 그저 그런 녀석들이다.


그래도 많이 넣고 삶으면 문제 없다.


내가 원하는 건 환경을 조성하는 것.


블루벨을 대충 짓이겨 삶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주방에 푸른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나는 곧이어 리코의 등에 내 손바닥을 붙였다.


“이번엔 눈을 감지 않을 겁니다.”


푸른 연기들은 가시화된 마나들.


그리고 주변의 마나 농도를 미세하게 올리는 역할을 한다.


내가 하는 역할은 대기 중의 마나를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가시화된 마나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인다. 푸른 연기들이 일렁이며 리코의 손에 모여들도록 유도했다.


리코의 손바닥에 모여든 마나가 빙글빙글 소용친다. 본래라면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아야 하지만, 마나 감각이 민감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손바닥에 물방울이 맺히는 느낌이 들어요.”


마나의 감각을 느꼈다면 이제부터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야한다.


타인의 마나가 아니라 자신의 것이 된 마나를 느껴야 한다. 한번 성공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대기중의 마나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


“손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피부로 흡수한다고 상상해보세요.”


마법은 시전자의 생각과 상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물론 눈을 감고 백지서부터 그려나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인간이란 생물은 보이는 것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생물이다.


그래서 일부러 마나를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한 것도 이 이유다.


그리고 나는 이 연기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다. 상상의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마치 연기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들어왔어요. 팔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빨랐다.

리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빠르게 느끼고 깨달았다.


“가슴 한 가운데,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리코는 스스로의 마나 공허를 메웠다. 곧이어 마나 공허가 완전히 메꿔지고 그 자리에는 단단한 그릇이 자리잡았다.


“느낌은 어떠세요?”

“······. 이상해요.”

“익숙해질겁니다.”


리코의 대답에 나는 작게 웃었다.

처음 마나가 혈관을 타고 도는 그 느낌은 누구나 똑같나 보다.


***


마나 그릇까지 만들었으니 오늘 할 일은 끝난거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혼자서 할 수 있는 마나 수련법을 종이에 적었다. 겸사겸사 알아두면 좋은 약재들에 대해서도 적었다.


“형.”

“어, 코린.”

“나도 마법 배울 수 있어?”

“음···.”


이제 10살인 코린이 마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코린은 그저 멋있다는 이유로 배우고 싶어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을 왜 배우고 싶니?”

“누나도 배웠으니까.”

“그런 이유면 안 돼. 마법은 위험해.”


갑자기 코린이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어, 어, 왜, 왜?”

“나 이번에 아무것도 못했어. 나도 누나 지키고 싶은데, 나는 아직 어리고, 힘도 없고, 어른 될려면 한참이나 남았잖아.”

“아이고.”


꺽꺽거리면서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다. 다 잘 될거라는 말도,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말도.


그냥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토닥거렸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리코에게 데려다 주었다. 리코는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사과할 일도 아니기도 했고.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리코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선생님. 저,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릴게 있어요.”

“어···. 예. 말씀하세요.”


그리고 리코의 말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난 말이었다.


“선생님의 그 아티팩트.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선생님 대신 사용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g2******..
    작성일
    24.12.07 02:50
    No. 1

    그래 저러다 스승의 주문책과 아티팩트를 훔쳐 달아나야 진정한 마법사지.자기가 배운 지식과 힘이 잘난 자기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인줄 아는 넘들이 스승의 음식에 독을타고는 나를 부려먹은 니가 잘못이야 그렇게말하지..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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