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
듣기만 해도 토 나오는 호칭은 뭐고
저 느끼한 표정들은 또 뭐람.
이 으리으리한 집을 쳐다보기에도 황송한
누추한 걸인의 형상을 하고
나에게 닥친 이 어이없는 상황을 파악해보고자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한 눈에 봐도 고풍스럽고 값이 꽤 나가 보이는
현대식 한복을 입은 두 분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생각보다 더 잘 커줬구나."
"그러게요. 사진보다 훨씬 더 예쁘시네."
라고...
잠깐..
.... 날 봤어? 사진에서?
더욱 더 소름이 끼치려고 하는 나는
재빨리 집에 돌아가기 위해
어떤 말이라도 꺼내야 했다.
근데.. 이 아저씨..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아.. 저는 제 발로 이 곳에 온 게 아니라, 이 곳에 끌려........."
"세자빈이 당황했나봐요!! 아하하!!!-0-
자세한 이야긴 내일 하는걸로..."
등을 소리나게 찰싹찰싹 때리며
내 입을 막아버리는 정신병자.
......................
"잠깐 들어오거라."
이상하게..
왠지 거역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는 그렇다 치고
왜 우리 집 거실의 딱 10배가 되는 거실에 앉아서
어리 벙벙한 표정으로
오늘 처음 본 낯선 아저씨에게 붙들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선다.
"그래, 그 동안 너를 찾아다니느라
우리 아들이랑 내가 고생 좀 했지. 허허허."
굉장히 강한 포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는 이 집 주인.
...날 찾았다고..?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입궁식을 하고.."
"켁켁"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입궁’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에 사레가 들려버렸다.
입궁이라면.. 여기가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인 궁궐..?
그럼 이 포스가 철철 넘쳐 흐르는 아저씨가..
작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설아가 시계탑 티비에서 보던 뉴스에서
선포문 읽던 그 아저씨?
읽다가 짜증내면서 얼굴에 맞은 꽃다발을
시민들한테 던져버린..
그···. 성격 파탄 난 우리나라 왕이라는 사람????
"괜찮니?"
"아~~~뇨????? 전혀요!!!!!!! 입궁이요????
제가요??? 제가 왜요??????"
포스 넘치는 사람들뿐인 이 곳에서
용감 무쌍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내게
감히 존경 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주변 사람들.
그래..
꿈이니까..
이 아저씨한테 소리 질러도 죽진 않겠지.. ㅠ0ㅠ
그리고 무엄하도다!!!!!!!!!!!!!!
라고 당장이라도 소리쳐야 할 것 같은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하시는 아저씨.
"허허허. 그래. 갑작스레 놀랐지?
일단 들어와서 생활하다 보면 그리 불편하진 않을게다.
내 아들 은겸이가 생활하는데 어렵지 않게
도와줄게야."
그럼 이 정신병자가 ..
이 왕이라는 사람의 아들..?
아 그래 그건 좋다 좋아..
나랑 아무런 관련 없는 사실이니까..
근데.. 입궁이라니···?
내가 이 으리으리한 궁이라는 곳에서 ..
그것도 이 정신병자랑 같이 산다고....?
예전 유행하던 만화책 궁에서 보던, 아니,
어렸을 적 동화에서나 보던
왕자와 공주가 사는 궁전도..
이 궁에 비하면 개미 코딱지처럼 보일
이 곳에서...????????
그나저나 이 집은 왜 이리 쓸데없이 넓은거야??
앞치마 입은 사람들, 정장 입은 사람들만
도대체 몇 명 인거냐.
심지어 정장입은 남자들은 무전기까지 끼고 있어서
더 삼엄하게 보이는 집.
한 치의 오차도, 움직임도 없이
일렬로 정중하게 서 있는 직원들의 눈빛을 애써 피하며..
그렇게 말 한마디 안 꺼내고 (못 꺼내고)
그 참을 수 없는 위화감에 기가 죽어 도망치듯 달려서
들어온 현관 문을 잡았다.
"배웅은 내 아들 은겸이가 해줄 거야. 그렇지 강은겸?"
여름날의 함박눈처럼 ..
사막의 장마처럼...
뜬금없는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건지...
/차 안
쉴 새 없이 옆에서 조잘대는 정신병자.
"왜 말이 없어~?응응? 피곤해? 응? "
"너 이름이 은겸...이랬냐?"
"응응!!^0^"
"참 그 푼수떼기 같은 성격에 갖다 대긴 미안한
예쁜 이름을 가졌구나.."
"-0-"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놈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달리고 달려 어느덧 까만 차는
우리 집 골목으로 향하고 있고..
오늘 처음 본 나의 방을 구경 해보고 싶다는
이 미친 아이를 겨우겨우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
우리 집 현관을 열면...
쳇, 방금 본 그 궁과 너무 다른 거 아니야?
우리 집 마당은 10평도 채 안 되는데..
그 집은 마당에 건물만 5채에 아주 그냥
축구장이랑 스케이트장을
동시에 만들어도 되겠더만....
왠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에 서러워
힘없이 현관을 열자 보이는 건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엄마아빠.
/거실
"흠.. 난 저 후궁이라는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
꼭 백설공주에 나온 백설공주를 질투한 마녀 같잖아."
"내가 보기엔 당신이 저 마녀를 질투하는 것 같은데..?"
"뭐야?????????? 내가 저 쭉 찢어진 눈을 가진 여자를
질투한다고??"
엄마 아빠의 눈을 좇아 도착한 내 눈에서 보이는
티비 화면에는..
방금 궁에서 본 아저씨와, 아줌마가 보이고..
아니.. 좋아.. 그래.. 이것도 꿈의 한 일부분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서지원 꿈 한번 파란만장하네..
그리고 보이는.. 굉장히 도시적으로 생긴 한 여자..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마녀···.
저 여잔 방금 그 궁에서 본 적이 없는데..
꿈 속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내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피어나는 호기심.
그리고..
티비 안에서 날 향해 웃으며 브이를 하고 있는
정신병자가 보인다......=_=
.................
"그나저나 이 놈 지지배는 왜 안 들어와?"
"아 기다려봐요, 금방 들어온댔으니까."
"그래 그 금방이 도대체 얼마나 걸리느냐고!!!!!!!!"
흠..흠..
멋쩍은 헛기침···
뒤 돌아서 나를 보는 엄마, 아빠, 서주원.
...................
"나 왔어."
"...."
"방에... 들어가면 되지?"
원래 하던 대로..
말 한마디 안 섞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날 잡는
아빠의 낮게 깔린 목소리.
..........................
"...지원아. 우리랑 얘기 좀 하자."
얘기..? 무슨... 얘기..
우리가 언제부터 다정한 가족이었다고..
아니, 내가 이 가족 대화에 끼어 들수나 있었나.
아빠의 말에 거실에 삥 둘러앉아
그 흔한 소파조차 없는 탓에
맨 바닥에 앉아서 아빠의 첫 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
“지원아. 아빠가 하는 말 놀라지 말고 들어.”
“.....”
“넌 이제 궁 사람이다. 왕세자와 결혼해서
왕세자빈이 되는거야.”
저런 말을 하는 데 놀라지 말고 들으라니..
누가 들어도 뒤로 넘어갈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빠.
"궁에 들어가도 집에 자주 올 수 있을 테니 걱정 말아라."
"....."
"방금 티비에 나온 사람들이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이자
왕인 강영조 회장의 가족들이다.
왕이 된 건 1년 전 쯤이었지 아마.“
"..하하.. 이런 장난 재미없어. 알지?"
........................
"네가 그 가족 중 한 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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