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
/궁
대문에서 집까지 최소 차로
2분은 걸리는 곳.
문을 열어주는 한 아저씨를 뒤로하고
새까만 남정네들의 호위를 받으며
궁에 들어섰다.
아니, 사람만 도대체 몇 명이야....
곳곳에 서 있는
일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어제 본 새로운 왕으로
취임됐다는 아저씨와,
그 옆에 서 계신 우아한 아주머니.
뒤로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 앉아 있는,
티비에서 엄마의 질투를 한 몸에 받던 여자.
그 옆에서 손장난을 하고 있는
짧은 숏컷의 무표정한
7-8살 쯤 난 꼬마애.
마지막으로..
대리석 기둥 옆에 팔짱을 끼고 선 채,
우리 옆집 강아지 밥그릇보다
얼굴이 작은..
연예인 뺨은 기본으로 삼석대씩 쳐버리는
얼굴을 가진 내 또래 쯤 되어 보이는 여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건방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세상에..
같은 여자 맞아?
여지껏 본 적 없는 여자사람 얼굴에 홀려,
그 여자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너 같은 건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여자.
불쾌하다는 듯,
그 조각처럼 빚은 얼굴을
고대로 물려받은 꼬마에게
자신의 곁으로 오라는 듯 손짓하고..
그 꼬마는 너같이 신기하게 생긴
말하는 생물체는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_-
그렇게···
나는 아쿠아리움 바다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세상 제일가는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중이다.
그때,
"야 니네 뭘 봐!!!!!!! 닳어!!!
보지마 내 아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검정 슬랙스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고
오픈 주방에 있는 냉장고에 기댄 채로
바나나를 우걱우걱 먹으며
고함을 내지르는 싸이코.
"강은겸, 그거 그만 먹고 이리로 와.
자 인사하자.
여기는 우리 왕세자, 은겸이의 처가 될 분이다.
이름은 서지원. 나이는 18살,
은겸이랑 은재랑 동갑이다.
학교는 주하고등학교."
옳다구나! 강씨인게야 강씨!!!!
정보를 하나 알아냈다는 사실에..
이 알 수 없는 요지경 세상에 대한
나이쓰를 외쳤고,
"반가워요.^_^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하고 축하해요.
앞으로 힘든 일도 많을 테지만
좋은 일도 많을 거에요.
“...”
“아, 사실 힘든 일만 있을 수 있는 데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는
그쪽 하는 데 달려있어요.^_^"
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우리 엄마 말을 빌리자면..
백설공주를 질투한 마녀!!!!!!!!
이 악수를 받아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며 얼떨떨하게 서 있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나를 보며 씽긋 웃는 이 여자.
무표정일땐 정말 무서웠는데
웃는 모습은 엄청 아름답고 세련됐다.
같이 있기만 해도
사람 숨통을 조이는 재주를
골고루 갖추신 가족들 사이에서
뻘쭘히 서 있는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아저씨.
"자, 그럼 세자빈아 환영한다.
네가 쓸 방 보여줄테니 올라가자꾸나."
"저기요 아저씨..
저는 이 집에서 지내려고
온 게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어서
온 거에요."
"난 말 길게 하는 거 싫어한단다."
"그럼 짧게라도 해주시죠."
계단으로 올라가던 발걸음을
갑자기 뚝 멈추시더니
뒤 돌아서 단호히 말하는 아저씨.
"두 달"
"..네?"
"두 달 안에 알려주마.
그 전까진..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아 줄 수 있니?
부탁하마.."
아저씨의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부탁.
그러나 감히 거절 할 수 없는 어투다.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게
나에게 득일지 실일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서고..
.............
"정말.. 그 약속 지키시는 거에요..?
두 달.."
"난 신용으로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이야."
.....
/방
문을 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고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방.
방이 아니라 집 한채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침대가 우리 집 모든 침대를
다 합친 것보다 크다.
그 초대형 사이즈의 침대를
한없이 작게 보이게 만들만큼
거대한 방.
그 넓은 방은
화이트 톤과 우드 톤, 남색이
적절히 섞여서
따뜻하지만 세련된 인상을 준다.
방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는데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강은겸.
"쳇. 한 낱 가구들 주제따위가 ..."
절대 기죽지 말자 라는 다짐을 기억하며
저런 망언을 해버리고..
"가구들 주제따위를
왜 그렇게 욕심쟁이 얼굴로 쳐다봐.-0-
그리고 여기 우리 방인데."
내 방이 아닌 우리 방...?
그렇다면 이 방이 너와 나의 방....?
..................
"싫어!!!!!!!!!!!!!!!!!!!!!!
절 대 싫 어 !!!!!!!!!!!!!!!!!!!!!!!!!!!!!"
"싫어도 어쩔 수 없어....0_0
그리고 여기서 그렇게 큰 소리 내면
아빠가 싫어한다요..-0-"
슬쩍 아저씨를 쳐다보니
미소를 짓고 서 계신다.
“허허.. 아직 둘이 어리니
합방은 무리라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보다시피 방이 넓어서
그리 불편하진 않을게야.”
내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눈치를 채신 아저씨는
더 이상 나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으셨는지..
잽싸게 1층으로 내려가 버리시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두 달이고 자시고간에 도망 가야겠어.
하지만 너무 싫은 티 내면
내가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저 찰거머리가 눈치챌거야.
그리고 날 잡으러 오겠지.
그래.
딱 일주일만 이 곳 눈치를 보다가
탈출하자.
(라고 일주일이나 살 생각을 하며
은근슬쩍 이 좋은 집을
욕심내는 나)
"그래 좋아. 그럼 같이 쓰자.
침대도 같이 쓰는거지? ^-^
그럼 먼저 씻어~
아 내가 먼저 씻을까?"
이쯤되면 이판사판이다..
같이 정신병자가 되어보는거야..
내 되도 않는 애교로
강은겸을 쫓아낼 심산으로
흐느적 거리는 몸짓으로
유혹아닌 유혹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정색을 하며
당황하는 이 자식.
그렇다고..
그렇게 맹수에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인
산토끼 같은 표정을 하고
뒷걸음질 칠 필요는 없잖냐 이놈아..=_=
"왜애~?????~
내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무서우셔어~~?"
은겸이가 한 걸음 뒷걸음 질 치면
두 걸음 다가서는 (무서운) 나.
내게 전염성 바이러스라도 옮길 까
두려운 듯..
내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3층으로 올라가버리는 강은겸.
하하 메롱이다 이 좌식아~~~~~~~
"유호한테만 부리는 애굔데
특별히 너한테 보여줬다!!!
영광인줄 알어라 짜샤!!!!"
..........................
놈이 올라간 계단을 향해
냅다 소리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데..
내 눈과 마음을 홀려버린 건,
거실로 이어지는 뒷마당 유리문에서 보이는..
너무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어차피 여기 살아야한다면..
그런 운명이라면..
두 달만 참아볼까..
그때 이유 듣고 아니다 싶음
나가면 되잖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원.
그래서 죽도록 후회했다.
그 정원을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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