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5
위협적으로 생긴 경호원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으로 가는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지금 도망간다고 해도 저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잡히는 건
치타가 달팽이를 잡는 것 보다
쉬울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
"에잇 모르겠다.
어찌 됐든 학교도 안 가고 좋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마음에..
입고 왔던 교복 그 상태로 그 넓은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처음 온 집 침대에 덜컥 누웠다.-_-)
어제 한숨도 못자서 피곤했던 나는
눈을 감자 마자 잠이 들었고.
잠결에 들은 소리는..
"너 이놈! 오늘 아빠가
일찍 오라고 했어 안했어???!!!!
어??!!!! 형 아내 되실 분 오실거니까
다 같이 인사 하자고 했어 안했어??!!!"
라는 아저씨의 화가 난 목소리.
"내가 인사를 왜 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남자의
싸가지 쌈 싸 먹은 성격.
근데.. 형..? 그럼 강은겸 동생인건가....?
이 집 가족 구성원은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아저씨의 성난 고함이 2층까지 울리고,
터벅터벅
그 고함을 무시하는 발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그대로 도로 누워 잠든 척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어딜 가서
코빼기도 안 보여!!!!!!!!!!!!!
진즉 알아봤지만 내 인생에 요만큼도
도움 안 될 놈..
오면 귀를 잡아당겨 괴롭혀주마..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
꿈에서..
유호랑 나랑 행복했던 추억들이 나타나고···
초등학생 때 가장 친했던 민설아가 나오고
둘이... 손 잡고....... 가버린다 ....
멀리멀리.......
내가 가지 못하는.... 손 안 닿는 그 곳으로.....
잡을 기회 조차 안 주는 유호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탁, 내 손을 쳐버리는 유호.
"너 사랑한 적 없어.
난 단지 설아랑 가까워지고 싶어서
널 3년 동안 이용한거야."
라는 아픈 말로 날 속상하게 만드는 남자...
잘 안 우는 나를 울게 만드는....
유일한 남자 .....
방에 갇혀서 아빠한테 야구 방망이로
하루 종일 맞았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한 흘려서
귀신보다 독하다는 소리 듣고
자란 난데.. 그런 나를 울린 남자.
한참을 꿈에서 울다가 눈을 떴는데
뜨자마자 보이는 건
내 눈물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아까 본 그 예쁜 꼬맹이.
...........................
무슨 애기가 이렇게 생겼대..?
사과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렇게 생겼겠다 싶을 정도로
오밀조밀 생긴 인형 같은 얼굴에
입술은 빨개가지고..
세상에..
저 크고 반짝이는 눈에 속눈썹은 또
왜 이렇게 긴 거야..
빗질을 해도 되겄네 아주.
.....라는 질투를 7살 난 꼬맹이에게 하고 있는 나.
....................................
“본 적 있어...”
날 빤히 쳐다보던 그 아이 입에서 나온 첫 마디.
“...응?”
“... 본 적 있다고.. 티비에서 봤어..”
하하 참나. 내가 한 때 4인조 다국적 걸그룹 출신에
지금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수*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긴 했는데..
“티비라면.. 드라마? 음악 프로?”
“아니..”
“.....“
“아!!”
골똘히 생각하다가 드디어 생각났다는 듯
눈동자를 반짝이는 꼬마애.
“열려라 동물세상.”
“..아...거기 엠씨하는 여자..?”
그래.. 그 여자도 나쁘진 않지...
“아니..동물이야..”
..........=_=
“..동..물..?”
“응. 중국에서 온 팬더인데.. 이름이 뭐더라.. 푸...”
설마 내가 아는 그 동물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심에..
“...푸..바오...?”
“응! 맞아! 그거야! 그거랑 닮았어...가여워라...”
...=_=
손뼉을 소리나게 딱 치며 답답해서 찡그리던 미간을
피고 싱긋 웃는 꼬마.
아아.. 귀여워라...
방금 당한 치욕조차 잊게 만드는 꼬마애의 얼굴.
"아 참 그리고,”
...?
“미안하지만 은겸 오빠는 나랑 결혼할거야."
라는 한 마디를 내뱉고는 내가 받아칠 새도 안주고
저 멀리 사라진다......-_-
예쁜 꼬맹이의 습격으로 잠이 깨버린 난
침대에 앉아있는 중.
꼬르르륵..
와중에 눈치 없이 울리는 뱃속 시계.
가만.. 내가 밥을 언제.. 먹었더라..
어제 이 집에 끌려 온 뒤로 한 일이라곤
인사와 이 넓은 침대에 누워 잔 일..
밥을 먹어야 힘이 날테고..
힘이 나야 도망을 간다는 생각이 들어..
먹을 게 없나 싶어 급히 들고 온 가방을
뒤적이고 있는데,
'식사하세요~' 라는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이스 타이밍!!!!!!!!!!!
너무나도 반가운 소리에 이 집에 온 뒤로
제일 밝은 표정을 하고 날쌘 다람쥐마냥
나가려다가....
탁
"아, 씨,"
라는 두 글자로 날 얼어붙게 하는 아까 그 싹바가지.
입고 있는 교복을 보아하니
휘한고등학교 인 것 같고,
교복 자켓에 궁서체로 휘갈겨진 이름은
‘강은재’
그 옆에 새겨진 한문 이름은
'江隱才'
휘한고등학교는 자켓에 수 놓아진 색으로
학년을 구분한다고 들었다.
파란색이면.. 고2 였던가...?
그럼 나랑 동갑..?
강은겸도 나랑 동갑인데..
그럼 둘이 쌍둥이인건가..?
이런 저런 궁금증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뭘 봐.”
날 노려보는 남자애.
어라···
이 눈.. 왜 낯이 익지..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시건방진 말투와 표정으로 어깨를 탁탁 털며 말한다.
"아.. 미안..."
나랑 부딪힌 게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내 사과는 가볍게 무시한 채 1층으로 내려간다.
저!!저!!! 아오 서주원이였음
여기서 죽빵을 날리지!!!!!!-0-
그 때,
"강은재. 거기 서."
화가 난 눈썹과 걸음걸이로 그 싸가지 앞에 서더니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어버린 은겸이.
(내 편 들어준다고 어느새 은겸이가 되어버린
정신병자=_=)
..............
"왜. 한대 치게? 쳐.
어렸을 때 주먹보다 어디 더 세졌나
한번 보게."
그렇게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
대치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아.. 안되겠다..
더 큰 싸움이 나기 전에 내가 나서야지.
용기를 내서..
......
"싸움은 안 돼요 싸움은 나빠요!!!!!!!"
라는... -_-
쫄아 있지만 용감했던 그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니가 뭔데 끼어들어' 라는
건방진 초록색 눈동자로 말하는 싸가지..
은겸이와 비슷한..
정확히 말하자면,
초록색과 회색이 섞인 아주 오묘한 눈동자를 가졌다.
그 닮은 듯 안 닮은 형제의 싸움을 기어이 막아낸 나는..
(정말 막아낸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서있다간 배고파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자 제 소개가 늦었어용^-^
저는 이 집에 새로 들어오게 된 서지원이라고 해요^-^
곧 사라질 예정이지만?
이 얘긴 됐고!!!! 반가운 식사를 하러 가 보실까요옹 -0-"
이라는 주책 백바가지 같은 모습으로
그 둘을 질질 끌어
1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내 말은 가뿐히 무시하는 동생놈과,
지금은 밥 생각이 없다는 형놈.
그럼 내가 저 큰 식당과 테이블에서 뻘쭘 하게
너희 부모님과 도란도란 앉아서 밥 먹으란 소리냐?
내가 아무리 염치없는 컨셉이라고 해도
너무하지 않니.. ㅠ0ㅠ
/저녁 시간
곧이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와.. 상다리 부러지겠네 진짜.
없는게 없다 없는게.
이집은 저녁을 뷔페로 먹나?
점심도 안 먹고 잔 탓에 배고팠던 나는
방금 찾던 염치고 나발이고는 생각지도 않은 채
군침 돌게 잘 차려진 푸짐한 음식들이 가득 놓여진
테이블을 보고 10일간 굶주린 하이에나마냥
전투 준비태세를 했다.
이 맛있는 밥도 거르고
뒤에 서서 물을 마시던 강은겸은..
"아이 우리 색시 잘 먹는다!!! -0-
애도 잘 낳겄어!!! -0- "
라는 말과 함께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거실로 간다...-_-
그 말을 듣고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는데..
"하하하하하하"
너털 웃음을 지으시는 아저씨..=_=
"호호호호호"
우아한 웃음을 지으시는 아줌마...=_=
'켁켁'
그리고 사래가 들려
재빨리 물을 집어 삼키려는 나...
.................................
"아 씨.. 음식에 침 다 튀기게."
씻고 내려온건지..
젖은 머리 위에 수건을 덮고
파자마 위에 가운을 걸친 채
의자에 앉는 동생놈.
거실에서 대형 레고세트를 꺼내던 은겸이는,
“강은재.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이
너의 기념일이 될 거다. "
라는 말을 내뱉어버렸다.
그러자 은겸이 옆에서 같이 레고를 조립하던
예쁜 꼬맹이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선
묻는다.
"기념일? 무슨 기념일?"
"으응, 제삿날. ^_^* "
...
.........................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강은재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버렸고..
강은겸이 만들고 있던 레고를
발로 있는 힘껏 차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_=
괜히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나는
들었던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에이씨... 배고픈데...ㅜ0ㅜ
"세자빈아 그럴 필요 없다.
저 녀석이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평소에는 아주 스윗하고 다정한 아이란다. ^^"
라는..
거짓말을 하시는 아저씨....=_=
"아...네.."
아저씨의 호의적인 태도에
내려놓은 밥숟가락을 냉큼 들어버렸고,
"밥 먹고 다 같이 차나 한 잔 하자.
은겸이 너도 하던 거 그만 두고 이리 와 앉거라."
은겸이를 다정하게 타이르는 아저씨.
"나는 오늘 약속이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돼.
최대한 빨리 날아올게. -0- 하하. "
라는 말로 산통을 깨는 이 아이.
(방금 날 도와줬으니 정신병자라고는
앞으로 부르지 않겠다.)
"무슨 약속? 너 설마 네..."
"친구들 좀 만나고 오려고."
아저씨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하는 은겸이.
.....
"학교 친구들 말이냐? 학교 친구들이랑은
이제 거리를 뒀으면 한다.
너도 알다시피 그 아이들과 너는..."
"그럼 재밌게 놀다 오겠슴다!!! -0-"
무슨 말을 할 지 잘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레고를 거실 구석으로 차버린다.
그것도 있는 힘껏.. 온 감정을 모아서..
그러고선 밖으로 횅 나가버리는 강은겸.
야야....-_-
그럼 이 숨막히는 집에 나 혼자 있으라고.....?
그나마 이 가족들 중 가장 가깝다고(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너인데...?
그리고 이 집 분위기는 또 왜 이 모양인걸까..
....................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마시는 중.
"우리 세자가 세자빈을 찾은 이후로
많이 밝아진 모습에 저도 기쁘고 신기하네요.
어쩜 저렇게 사람이 순식간에
변해 버릴수가 있는지.."
캐모마일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말을 하시는 아줌마.
"허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고맙구려."
...생각해줘...?
엄마면 아들이 밝아진 게 기쁜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
...해야할 일..?
엄마가 자식이 행복한 걸 바라는 게
이 집에선 ‘일' 이라고 표현 하냐..-_-
그 때 번뜩 스치는 생각..
....그렇다면 이 아줌마는
은겸이의 친엄마가 아닌가?........
그럼 강은겸이랑 강은재는 쌍둥이가 아니라
배다른 형제?...
그래서 나이가 같을 수 있는 건가..?
어떻게든,
이 집에 대해 뭐라도 알아내야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대략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잘 돌아가지 않는
뇌에 기름칠 좀 하고 머리를 굴리려는 찰나,
........
"그래, 지원이는 궁 생활은 어떠냐?
아직 첫 날이라서 많이 어색하지?"
"네^0^"
"..=_=.."
"^0^"
내 밝다 못해 아주 눈이 부시게 해맑은
(생각 없는) 단답에 할말을 잃으신 아저씨는
드시던 차와 다과를 물리시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셨고..
시계를 보니 시침은 숫자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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