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8
“너 뭐야. 안 내려?”
옆에 탄 나를 홱하고 돌아보고 소리치는 은재.
“같이 좀 가자. 응? 기름 값 아깝게. 기사님 오라이!!!”
창문을 두드리며 기사님께 출발 사인을 보내는 나..-_-
다른 기사들은 이미 들어가버렸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무는 강은재.
하하 꼬시다 요놈아.
우릴 태운 검정 세단은 지금 내 기분마냥
아주 스무스하게 내가 다니고 있는 주하고등학교에
도착했고..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하는
한 기사님과 비서님..=_=
은재에게 차에서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뒤
학교로 급히 들어가버린다.
나도 얼른 학교로 들어가보자 하는 생각에 차에서 내려
교문으로 향하는데, 우르르 몰려오는 학교 학생들.
벌떼처럼 나를 향해 돌진하는 아이들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이미 집 앞에서 찍힌 내 인터뷰 영상과 뉴스를 보고
알만한 아이들은 다 아나보다.
어제 일어난 그 영화보다 영화 같은
믿기지 않을 이야기들이..
....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거야..
아저씨는 그냥 평범하게 원래 하던 대로
행동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때,
촤아악
....
양동이에서 흐르는 차가운 물이
교복을 다 적시기 시작했고..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 아이들.
오늘 서지원 스타네 스타..
"재수 없어."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양동이를 들고 서 있는 민설아.
날 비 맞은 생쥐 꼴을 만들고선 손가락질 하며
웃고 있다.
.......
이 아이는···나와 인연이자 악연.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1년 전 쯤부터 내 전화, 인사, 모두 싸그리 무시하더니..
갑자기 날 괴롭히기 시작한..
나랑 제일 친한 친구였던 아이.
그래서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멀어져버린 아이..
하..이게 웬 쪽이냐..
평소 같았음 배를 잡고 웃으며 민설아와 함께
나를 괴롭혀댔을 아이들이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진 내 상황 때문인걸까..
모든 행동을 조심스러워하는 아이들..
그리고..
탁
...
은재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서 내려
이 쪽으로 다가온다.
황홀하다는 듯 은재를 쳐다보며 입을 가린 채
꺅꺅 소리를 지르는 여자아이들.
역시.. 인정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집에서 같은 밥 먹는다고 챙겨준다 이건가??
라는 기대심을..
무참히 짓밟는 강은재..
.............
"괴롭힐거면 제대로 괴롭혀라. 물로 맞아서 아프겠냐?
이왕 괴롭히는 거 야구방망이나 손,발.. 많네.”
역시.. 천하의 빌어먹을 놈이었다.. 이 놈은...
강은재 포스는 저 위풍당당했던 민설아도
뒷걸음질 치게 했고..
"다음엔 얼음물로 부어버려. 정신 좀 차리게.
학교에서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 질테니까."
...
왜..
왜.. 이렇게까지 날 못 잡아먹어 안달 인거지 이 놈은..
...
오기가 생긴다.
마치 아빠한테 죽도록 맞았던 그 날처럼.
반성하게..
아니 복종하게 만들려는 아빠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더 큰 반항심과 독기가 생겨버린..
그때 그 날처럼.
.................................
“야 강은재!!!!!! 너 거기 멈춰봐.”
차로 돌아가려는 강은재를 불러세웠고
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차에 올라타버리는 놈.
질세라 옆자리에 턱하니 앉아버렸다.
“그래.. 니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바뀌네..”
“나가려고? 아쉽다. 더 괴롭혀줘야 하는데.”
“아니? 내가 너희 집에 들어간 이유 알 때까진
버텨보려고..”
오기로.. 반항으로.. 끈기로..
끝까지 있어보려고..
흐르는 서러움과 치욕의 눈물들이..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가려지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차 문을 세게 쾅 닫아버렸다.
쟤네 앞에서.. 아니 강은재 앞에서
울어버리면 진짜 쪽팔리잖아..
차가운 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치는 나를 보고
미간을 찡그리던 강은재 앞에서···
/학교
다행히도 반 아이들은 날 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직 뉴스나 기사나 생각했던 만큼
많이 퍼지진 않은 모양이다..
하긴.. 요즘 애들은 관심 있는 애들 아니고서는
뉴스 잘 안보니까..
나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억지로 내 이름을 검색해서 나온 기사 외엔 없으니까..
곧 소문은 퍼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소란스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턱 내려놓고
첫 수업 과목을 확인하는데..
오..럭키.. 음악시간이다..
나에게 음악시간이란.. => 자도 되는 시간.
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단 말이지..
어제 잠도 한숨 깊게 자지 못한 탓에
제대로 자보고자 손을 뻗어 자세를 잡고 누우려는데..
톡톡
"뭐..뭐야.."
한창 잠이 들려고 하는데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반장..
"담임이 교무실에서 좀 보자는데.."
담임이라 하면..
40살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머리털도 다 빠져서 몽땅 사라져버린..
대머리 노총각 아저씨.
갑자기 날 부를 이유가 없는데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며
교무실 문을 열었는데...
"지..지원아!!!!!!!"
내 두 손을 덥석 붙잡는 담임.
"어머! 왜 이러세요? 이 손 좀 놓고...."
"너 사실이냐?"
"네? 뭐가요?"
"네가 왕세자빈이 된다는게 사실이냐고!!!!"
옆 선생님들이 들을 세라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소곤소곤 거린다. 부담스럽게시리..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라 새어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딴청을 피웠다.
"하암...그걸 어떻게.."
"앞으로 예스 오어 노로만 대답한다."
단호한 어투로 내 말을 가로막는 담임.
"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저도 미치겠다고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심드렁 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 전화는 뭐냐? 응?
방금 교장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강회장님..아 아니지 이젠 왕이니까.."
"전화요?"
"그래!! 궁에서 전화가 왔어.. 너 잘 부탁한다고..
필요한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앞으로 이 학교 후원도 해주시겠다고
연락이 오셨어!!!!!"
"..그럼 진짜 꿈은 아닌갑네요.."
별 일 아니라는 듯..
나와는 전혀 관계 없다는 일인 듯 무심한 태도를 보이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호기심 천국에 캐스팅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심심한 노총각이 하루종일 날 괴롭힐게 뻔하다..ㅜ0ㅜ
..................
"너 그러지말고.. 오늘 수업 다 빼라 그냥.
불편하게 교실에 앉아있지 말고..
저기 선생님들 쉬는 쉼터에 가서 좀 쉬어.
다른 선생님들한텐 내가 잘 둘러댈테니.. "
오마이갓..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나보고 당신 이야기를 하루종일 듣는것도 모자라...
"그리고 내 앞에서 교장선생님이랑 폐하께
전화 하나만 드려주라.. ㅠㅠ 응?
내 이야기 좀 잘 좀 해줘라.. ㅠㅠ"
당신 대신 아부를 떨라는 말씀..?
그렇게 민머리 담임의 손에 들린
짤랑이는 키에 의해 열린
선생님들 쉼터...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덜 떨어진 생쥐가 된 기분이었다..
띠링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 알림 소리.
-지원아. 나 할 말 있는데..
얼굴 보면서 해야 할 거 같아서.
그게 예의인 거 같다.
압구정 5번출구 역에 있는 스타벅*에서 1시까지 보자.
선생님한테는 알아서 둘러대고 나와.
···
발신인은..
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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