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14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
안부는 궁금하지도 않은듯이..
주말에 집에 좀 내려오라는 말만 하고 끊는 아빠.
가서 엄마, 아빠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나를 하도 안 찾으니까..
나라도 보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아저씨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고..
/집
집에 도착하니 날 반갑게 맞이한 건..
담벼락에 붙어있는 빨간 압류 딱지들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엄마와 아빠..
하하 이건 또 뭐야..
전 세계가 나를 상대로 몰래카메라 하냐..
역시.. 내게 한 번 등 돌린 세상이..
다시 내 편 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인가 보다..
그리고..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몇일 전에 꿈에서 나온 타로 보러 갔던 추억이
떠올라버린 건....
그 때 타로상담사가 했던 내 사주가 안 좋다는 말이
100프로 틀림 없는 사실이라는 거겠지..
................................
/집
현관을 세게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하이고~~ 이 여자앤 누구셔?
이 집 따님인가 봐? 응?
이쁘게도 생겼네!”
거실 구석에 있는 작은 협탁에
걸터앉아 있는 조폭이 빈정대고 있고,
“...뭐야...당신들..”
“아저씨 이제 살았네?? 응??
딸 년 장기 팔구 저기 앉아있는 건방진 놈
장기 팔면 어느정도 빚은 갚겠네 이 아저씨~~~”
손에 든 검은 파일철로 아빠의 머리를 툭툭 치는
풍채 좋은 남자들.
빚...?
집에 빚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채까지 썼어..?
절망적인 마음에..
턱 하니 내려앉아 버린 심장과 다리..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생각이 떠오르질 않고..
그 때, 내 어깨를 붙잡고 끌어당기는
조폭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원이가 다가와서 남자의 종아리를 물어버렸다.
“아악!!!!! 이 쪼만한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많이 아팠는지 괴성을 지르며 눈알을
부라리는 조폭.
조폭놈의 발길질에
멀리 떨어져나간 주원이.
기절한 것 같다.
“어우씨 쪼끄만게 개 빡치게 하네 진짜..
안되겠다. 어른한테 버릇없이 대들면
벌을 받아야지. 야!!! 광철아!!!
가서 쇠파이프 좀 가져와....”
광철인지 광칠인지 하는 놈이
부리나케 가져온 쇠파이프로..
피를 이미 많이 흘리고 있는 서주원의 머리를
가격하려고 한다.
조폭놈이 들고 있는 쇠파이프를 부여잡은 채
다급하게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
“잠..잠...잠시만요!!!!!!!!!!!!!!!!!
어.. 얼만데요.. 그 빚..”
쇠파이프를 소리나게 바닥으로 던지고,
뒤롤 돌아보는 조폭.
코웃음을 친다.
“하하하 얼만 줄 알면 뭐?
니가 부모 빚 갚아주시게~~? 엉?”
“그러니까.. 얼마냐고요.. 그 빚..”
“2억.”
.....
..억.. 2백도 아니고 2천도 아니고..
.....
2억..
“이쁜 애기야~ 못 갚아주잖어~~ 엉?
2억이 얼마나 큰 돈 인줄은 알어?”
내 턱을 들어 올리며 비아냥대는 조폭놈..
...............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하다..
눈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지만..
급한 불 먼저 꺼야한다...
“갚을게요.. 갚을 테니까.. 우리 엄마아빠,
그리고 동생 풀어줘요.”
내 당찬 행동과 말에 비웃기 시작하는 조폭들.
“진짜? 기한을 언제까지 해드려야 하나..
꼬마아가씨^^ 아니지, 새로운 꼬마고객님. ^^”
“언제까지 갚으면 되는 건데요.”
“다음달인데 내가 효심이 지극한 모습에
맘이 약해지거던??!! 특별히 꼬마 아가씨는
6개월로 늘려줄게.^^”
...
“알았으니까.. 이제 꺼져요..”
내 욕을 듣는 순간...
이성을 잃은 남자. 돌아버린 눈으로 방금
바닥으로 내던진 쇠파이프로
내 왼쪽 발목을 쳐버린다.
“이깟거.. 하나도 안 아프니까..
허세 그만 떨고 저 사람들 풀어주라고..
안 그러면 2억이고 뭐고 없으니까..
죽을 만들던 밥을 만들던 알아서 하시든가.”
내 말에..
지들도 어떤 걸 선택해야 이득인 걸 아는지..
“연락 기다릴게 용맹한 꼬마아가씨. ^^”
라는 말과 함께 내 볼을 툭툭 치며 사라진다.
/거실
“뭐야 이거.. 무슨 상황이야..”
거실에 둘러앉아 엄마아빠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데..
눈 앞이 뿌옇다..
그리고 파도처럼 쓸려오는 막막함에
가슴만 답답해져 오고..
몇 분간의 침묵 끝에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지원아.. 아빠가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이야기 보단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가 듣고 싶은데...
...... 왜..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은 미안하다 뿐인건데..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할 말이
미안하다는 말 밖엔 없는건데..
“니가.. 한번만 좀 도와줄 순 없겠니..?”
“......내가 어떻게 도와줘..
설마 내가 장기라도 팔아서 2억을 갚아주길
기대 하는거야..?..”
“궁에서.. 거기서 조금만.. 버텨주라..”
궁...
순간 자리에서 박차고 집을 나와버렸다.
그 말의 뜻이 뭔지를 이미 아저씨 입을 통해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래서..
내가 혹시나 도망갈까 봐 끝까지 숨기다가..
직전에 궁으로 날 들이민거구나...
..........
하..
근데 저 사람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그 동안 날 가족처럼 생각해주지도 않던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하다는 말로 퉁치는 것도 지겹지도 않나..
그리고.. 2억?
그럼 서지원은 결국엔 2억 짜리 였나..
2억에 팔려갈.. 인생이었나..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
“아악!!!!!!!!!!!!!!!!!!!!!!!!”
하고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보이는 전봇대마다 발로 차고..
이러지라도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
순간.. 무언갈 결심하고,
방금 시간만 확인하고 꺼 놓은 핸드폰을
다시 켰다.
예상대로..
부재중 전화 78통.
집착에 가까운 78통의 전화를 건 사람은
동일인물.
그 질긴 인간을 만나러 나는
다시 궁으로 무턱대고 가버렸다.
니가 이겼고, 내가 졌다는 걸 인정하기 위해.
2억짜리 딸이 되어주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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