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19
/서재
“너 저깟 여자애 하나 널 좋아하게 만드는게
어려운게냐..? 저 평범한 여자애 하나 꽉 잡는게
어려워..?"
"...."
“박 실장. 우리 은겸이 학교에서 인기 많다며.
내 눈에만 잘 생겼나?
저 정도면 빠지지 않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인게야?“
“아유.. 등교 할 때마다 교문에서 소리 지르고
기다리는 여학생들 때문에 학교에 항의 전화
하셨었던거 기억 안 나세유..”
박 실장님 목소리는 처음 듣는데..
충청도 분이셨나..=_=
“그래..그랬지.. 나 학교 다닐 때 생각났지..
그 이야기 듣고..”
...=_=
“그리고 왕세자님 정도면 당장 데뷔하셔도
요즘 티비에서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
기도 못 펼거에유.. 암유..”
“그렇지? 박 실장이랑 나랑 생각이 같군.
얘 은겸아. 너 누가 뭐래도 내 아들이다.
미스코리아다, 발레리나다 하는 내 친구들
딸내미들도 너랑 은재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데.. 왜 저런 평범한 여자애는
쥐고 흔들어 놓지 못 하는거냐...”
···.거 가스총 좀 빌려주쇼..
저 아저씨 입에다가 쏴버리게..
“내 아들이면..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아니.. 그러니까.. 기필코.”
......
“널 좋아하게 만들어서 결혼해라.”
/다음 날
저녁을 먹고 은겸이와 방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낯설게 보이는 방.
방에 있던 소파들.. 다 어디로 간 거야..
“이모님!!! 여기 소파랑 다 어디 갔어요??”
“아.. 그거 폐하께서 치우라고 명령하셔서..”
“네...?”
소파가 없으면..
둘 중 한명이 바닥에 자야 하는데..
“그럼 매트리스 같은 거 없어요?!?!”
“네.. 궁에 매트리스는 따로 준비되어 있는게..”
없을 리가 없다..
“그럼 기사님들께 부탁해서..”
“죄송해요 세자빈님.. 폐하 명령이어서요..”
하...
이 아저씨 진짜..
아저씨가 일부러 방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게 분명하다.
무슨 속셈인 지 모를 아저씨의 계획으로..
강은겸이랑 침대를 같이 써야 하는
상황인데..
...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그래서 지금 침대에 앉아 수건을 돌돌 말아서
길게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은겸이는..
“그걸로 뭐하게? 나랑 같이 침대 쓰는 게
그렇게 싫어?0_0”
라고 빤히 바라보며 묻고..
“당연하지!!!!!!!! 유호가 알아봐!!!!
얼마나 배신감 들겠어!!!”
“그놈의 유호.. 걔가 왜 그렇게 좋아?”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왜 좋지..
그러게..
나한테 자상하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고..
밀어내기만 하고 배신 한 유호가.. 왜 좋고..
잊기가 이렇게 힘들지..
“그..그야!!!!!”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듯 침대에 걸터 앉아
내 눈을 빤히 보는 강은겸.
“사..사랑하니까..?”
“걜 왜 사랑하는데?”
그러게.. 한 번도 생각 못 해봤는데..
왜 걜 사랑했더라..
“..음.. 원래 사랑하면 이유 같은 게 없대.
그냥 사랑 하는거래..하하.”
어색하게 웃어 넘기고,
길게 둘둘 말아 올린 수건을
침대 중간에 놓았다.
“이제 너와 나는 남한과 북한이다.
알겠나 제군."
그렇게 한 침대에 누워 멀찍이 떨어진 채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잠이 들려고 하는데..
왜 이놈은 잘만 자는데 나는 잠이 안 오는거냐!!!
근데 얜 왜 잠 버릇도 없냐..
일어나서 자는 놈을 빤히 쳐다보는데
두 손을 꼭 모으고 죽은 듯이 자는 은겸이.
긴 속눈썹.. 흰 피부..
잘생기긴 했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은겸이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볼을 쓰다듬어 버렸다.
왜.. 그런 미친짓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은겸이만 보면
모성애 같은게 올라온다.
그때.. 손에 묻는.. 눈물 방울..
어두워서 몰랐는데.. 얘 울고 있나...
/다음날 아침
어제 눈물 닦아주고..
옆에서 잠 든건 기억이 나는데..
가운데 놓은 삼팔선 수건도 그대로고..
모든게 그대론데..
왜.. 얘랑 손 잡고 자고 있는거냐..
그리고 왜 얘한테 안겨있는거고..
“아아아아악!!!!!!!!!!!!!!!!!!!!!!!!!!!!!!!”
내 고함소리에 놀라서 눈을 뜬 은겸이.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한 표정이다.
“음.. 무슨 일이야...”
“너..너.. 이새끼 내가 넘어오면 죽인다고 했지..
미사일 쏜다고 했지 내가!!!!!”
“...니가 넘어왔는데..”
“뭐..뭐?”
“어제 자는데.."
.....
이게 어디서 말을 지어내..
근데 지어낸 거 같지가 않은게..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 말이지.. =_=
그리고 저 놈이 말하는 내 모습이..
내 잠버릇과 좀 흡사하단 말이지.. =_=
/아침 식사 시간
“허허 그래. 밤에 잘 들 잤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아저씨.
그래..
좋으시겠죠..
좋아보이시네요..
재수없게 웃고 계신 걸 보니..
은겸이 눈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어가신다.
그리고선 식탁에 앉아 졸고 있는
강은재에게는 은겸이를 보던 눈과는
정반대의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말씀하신다.
“강은재 네 이놈. 학교 성적표 왜 안들고 와!!!
공부 안하고 음악만 할거면 스튜디오 가서
살던지!!!!”
“아, 그거 학교 화단에 버렸어. 왜? 필요해?
이면지로 쓰게? 그리고 아예 짐 싹 다 옮길까
생각중이긴 한데 잘 됐다. 허락해주는거지?”
타격감 1도 없어 보이는 강은재.
수저를 든 아저씨의 손이 부들거렸지만..
정말 저 놈이 나가 버릴까봐 참는 듯 해 보였다.
“후.. 그래.. 은겸이는 아주 잘 잔 모양이구나.
그 좋던 피부가 더 좋아보이고.
내 딸 주연이랑 주아도 좋은 꿈 꿨니?”
주연이..주아..
저 예쁜 여자애 이름이 주연이고,
예쁜 꼬마애가 주아인가 보네..
얼굴만 봐도 둘은 많이 닮아서 엄마가 같은
자매인 건 알겠고..
“세자빈은 잠자리 평안했느냐?”
이 아저씨.. 눈을 희번덕 거리며 묻는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도 인건지 눈에 훤하다.
“아뇨. 잘 못 잤어요. 애석하게도요.
원래대로라면 제자리에 있어야 할
소파가 없어서 바닥에서 잤거든요.”
“..아이구..바닥에서요..?
허리 아프시겠어요..”
남편인 아저씨께 물이 든 컵을 건네주시던
아줌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아뇨. 저 말고 이 집 장남이요.^^”
은겸이 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구겨지는 아저씨의 표정.
“저랑 은겸이 같은 방 써도
같은 침대 안 쓰는 건 모두 다 아실테고.
소파가 없길래 그냥 바닥에서 재웠으니까,
앞길 창창한 아드님 허리 걱정되시면
앞으로 그런 불필요한 수고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아직 결혼도 안 했고 고등학생이잖아요.”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곧 있을
모의고사로 야자를 할 생각이니
늦게 궁에 들어올 것 같아요.
저녁은 학교에서 주니까
알아서 먹고 오겠습니다.
그 전까지 방은 원위치 시켜주세요.
아니면 제 방을 따로 만들어주세요.
안 그러면 저 결혼한다는 약속 안 지켜요.
이런 걸 아저씨가 좋아하시는
‘거래’ 라고 하죠?”
단호한 내 말에 당황한 아저씨와 아줌마.
궁에서 폐하와 왕비를 저리도 너덜너덜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나와 강은재 뿐이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려 웃는 강은재.
아저씨는.. 나랑 은재놈 덕에
저혈압 걱정은 없으시겠지.. =_=
/다음날 저녁
어제 야자를 하느라 늦을거라는 말씀을
드렸건만..
유감스럽게도..
아저씨, 아줌마, 기사님들은
믿지 않는 눈치다..=_=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늘따라 가파라보이는
오르막길을 걸어가는데 보이는
교복 입은 키 큰 사내.
나야 혼자 오는게 편해서 일부러 부탁을
안 드렸지만.. 저 놈은 왜 기사님 안부르고
걸어 가는건지..
“어머 은재씨~~”
장난섞인 내 부름에 뒤를 돌아보고
날 미친 사람 보듯 훑더니
혼자 쏠랑 들어가버리려는 은재.
“야아! 같이가!!”
은재의 긴 다리를 따라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걸음을 맞춰서
같이 걷는 중.
“..아이코오 힘들다..”
...
10여분간 말이 없다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길가에 보이는
애꿎은 돌멩이들만 뻥뻥 걷어 차던
은재가 뱉은 말.
...
“내일 궁에 기자들 온다며...
형이랑 진짜 결혼 할거냐..?”
“뜬금없이 그건 왜 묻냐?"
“형이 갑자기 좋아진거냐,
아님 그렇게 내쫓으려고 괴롭히고
구박 해도 안 나가는 다른 이유가 있는거냐.”
“....후자라고 하면.. 도와줄래?”
“이유 뭔데..”
“말 못해.”
그리고 들려오는 은재의 혼잣말.
'말을 해야 도와주던 방해 하던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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