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세는 힐링 게임
1장 대세는 힐링 게임
요즘 대세라고 한다면 역시 힐링 게임이다.
주로 한적한 시골 마을이나 무인도 같은 곳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게임인데.
농사나 낚시를 해서 식재료를 얻고.
직접 만든 음식을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하며 힐링 라이프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쓰러트려야 할 적도 없고, 거창한 사명도 없으며, 심심하면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경쟁 상대도 없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고 평화롭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 그만이다.
한창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에 빠져 살던 시절.
나는 힐링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나무 베서 집 짓고 밭에서 감자 키우고 하는 게 뭐가 재미있다는 거지?
게임이라면 역시 플라즈마 커터나 발칸 캐넌으로 괴물들을 마구 썰어줘야 짜릿한 손맛이 느껴지지 않겠냐고.
······그랬던 나도 정신을 차려보니 퇴근을 하면 자연스럽게 힐링 게임을 하게 되었다.
“뭐 현실이 힘들어 죽겠는데 게임이라도 느긋하게 즐겨야지 않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녹초가 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모니터에 떠오른 숫자를 확인해 보니 밤 10시가 살짝 넘은 시간.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온다.
“······이렇게 일찍 퇴근한 게 얼마만이냐.”
어쨌든 지금부터 서너 시간 정도는 무인도에서의 힐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으리라.
마우스를 움직여 모니터 구석에 모아놓은 아이콘 중에 하나를 클릭한다.
그러자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뛰놀고 있는 동영상과 함께 ‘판타스틱 아일랜드3’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작년에 새로 발매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귀여운 동물 주민들이 살고 있는 무인도로 이주하게 되는데.
거기서 집도 꾸미고 직접 기른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도 해 먹으며 느긋한 힐링 라이프를 보내는 것이다.
봐라.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삼등신 캐릭터들이 정말 귀엽지 않은가.
덕분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벌써 세 번째 시리즈까지 발매 중이었다.
타다닥, 타탁!
키보드를 두들기자 엄청난 미소년이 자신의 몸보다도 커다란 삽을 들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떠올랐다.
판타스틱 아일랜드3 안에서의 내 분신 라디쉬 시드였다.
보기만 해도 아빠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만든 캐릭터였다.
외모 수치 높인다고 태생까지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후예를 고른 보람이 느껴진다.
저질 체력이라 레벨이 높은 장비가 갖춰지기 전까지 꽤나 고생 했지만 말이다.
뭐 그래봐야 짜리몽땅한 3등신 캐릭터긴 한데.
하여간 지금 시드가 있는 곳은 무로 가득 차 있는 거대한 섬이었다.
섬 전체를 내 취향대로 꾸미려고 했더니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무인도 이주비용이랍시고 막대한 빚까지 졌다. 주는 거라곤 낡은 삽이랑 천막 하나인 주제에 완전 바가지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무 농사를 시작했고, 너무 열심히 한 결과 섬 전체가 농장이 되었다.
멋진 별장도 박물관을 만들 공간도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섬을 하나 더 만들었다.
시야를 이동시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드가 있는 섬보다 몇 배는 커다란 녀석이 하늘에 떠 있다.
이름 하여 판타스틱 천공섬.
수백만의 판타스틱 아일랜드 플레이어 모두가 동경하는 대상.
그렇지만 엄청난 노가다와 자금이 필요하기에 소유자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내 인생작이지.”
요즘 저거 꾸미는 재미에 잠을 못 자고 있다니까?
오늘은 천공섬까지 물건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물자 이동용 컨테이너를 만들 생각이다.
“우와······. 상상만 해도 완전 힐링이 되는 것 같은데?”
참고로 판타스틱 아일랜드에서 가장 호평 받은 부분은 충실하게 구현된 생활형 콘텐츠였다.
보통 다른 게임에서는 생략되기 마련인 먹고 자고 입고 싸는 부분까지 굉장히 세세하게 구현을 해 놨다.
참고로 농사뿐만이 아니라 낚시, 프라모델 조립, 보물찾기, 희귀한 곤충 채집, 박물관 건설, 테마파크 꾸미기 등등.
부가적으로 즐길 거리 또한 엄청나게 많다.
물론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면 장르가 힐링이 아니라 서바이벌이 된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힐링 게임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잔뜩 추가해 오지에서도 유유자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다.
바닷가로 이동해 Lv4 삽을 장비한 후, 스페이스바를 연타했다.
그러자 숟가락 하나 들기도 벅차 보이는 빼빼마른 우리의 무씨 군이 엄청난 속도로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푹, 푸푹, 푸푸푹!
그때마다 무슨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파낸 흙과 암석을 합쳐 컨테이너를 만드는 것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십 개의 박스도 며칠이면 완성되리라.
·········.
······.
···.
그렇게 신들린 듯이 움직이는 시드의 삽질을 보며 힐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일이 왔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알림에 의자 채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용사님! 부디 마왕에게 정복당한 세계를 구해주세요!]
[§§용사 대 마왕§§ 캐릭터 생성 시 전원 ☜☜ 아이템 풀 세트 100% 지급※ %마왕을 쓰러트릴 최고의 찬스 $$여신의 가호 무료 증정¥ 특정 조건 만족 시 귀환 가능 ★튜토리얼★ 원하는 대로 용사를 만드세요 @@@ 즉시 이동 http:]
“아, 씹······. 광고메일이었네. 샘플이라도 수정해 달라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그런데 요즘도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는 데가 있구나. 정말 클릭하기 싫게 만들어 놨네.
이런 유행은 한참 전에 지난 것 같은데 말이야.
“어? 그런데 잠깐만. 이거 용사 대 마왕 아니야?”
플레이어가 마왕에게 정복당한 세계에 용사로 소환된다는 내용의 하드코어 액션 RPG 게임.
한때 완전히 푹 빠져서 랭커가 될 정도로 열심히 한 적이 있었지.
특유의 고어하고 다크하면서 살벌한 분위기가 취향이었거든.
한동안 바빠서 접속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게 아직도 서비스를 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이런 정신 나간 광고는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이 정도면 담당자 잘라야 되는 거 아닌가.
시험 삼아 링크되어 있는 주소를 눌러보니 용사로 소환될 캐릭터를 만드는 창이 떴다.
주사위를 굴려 능력치를 고르는 전통적인 시스템이다.
지금 캐릭터를 생성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특전을 하나씩 준다고 한다.
“뭐, 그러 거 받는다고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게임이 아니지만 말이야.”
최종 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왕성에서만 대충 천 번쯤 죽었던가?
예전에는 그런 미친 난이도의 게임에 열광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질려 버렸다고.
미안하지만 세계를 구할 용사는 다른 데 가서 찾아봐.
나는 지금부터 천공섬에서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랑 힐링 라이프를 즐길 거니까.
후후······.
그렇게 한쪽 구석에 있는 X 표시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쿠루루루룽―――!!!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모니터가 위아래로 요동치는 것이 아닌가.
뭐야?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덕분에 닫으려던 용사님 생성 창이 옆에 치워둔 힐링 게임과 겹쳐졌다.
어? 방금 전까지 컨테이너를 만들고 있던 시드랑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아니,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지진이 일어난 거라면 당장 책상 밑에 숨어야 한다.
바깥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
거대한 섬광이 이 세상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지?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는데?
눈앞이 빙글 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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