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ip
3장 Tip
우선 간단하게 아다만타이트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그것은 용사 대 마왕의 상징과도 같은 광물이다.
일단 마왕이 입고 있는 것부터가 아다만타이트로 만들어진 갑옷이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참고로 아다만타이트는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 같은 초고열로만 제련이 가능한데.
그렇게 만들어진 장비는 물리적인 힘으로는 거의 파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거기에 마법이나 사이킥, 주술 등 초자연적인 힘을 차단하는 특성까지 있다.
괜히 마왕의 갑옷을 부수기 위해서 여신의 축복이 내려진 성검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런 귀하디귀한 광물로 만들어진 감옥.
사실상 파괴 불가 오브젝트나 마찬가지인 장소다.
그것을 이렇게 숟가락으로 푹푹 푸고 있으니 레온이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하는데 말이야.
“저, 저, 저, 저게 뭐야!? 지금 환상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아니, 무슨 아다만타이트 광석을 저런 식으로 박살 낼 수가 있어!?”
자식이 지금 탈출한다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있네.
워킹 아머가 명령받은 것만 수행하는 로봇 같은 놈이라지만 더 이상 떠들었다간 위험하다.
나는 최대한 냉혹한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고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녀석의 미간을 향해 Lv1 삽을 던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히, 히이익······!?”
거기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레온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마구 끄덕여댔다.
물론 내게는 숟가락을 암기처럼 투척하는 능력 따위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레온은 아다만타이트 벽을 박살 내는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이건 한 번은 무조건 통하는 블러프다.
무사히 레온을 닥치게 만든 후 본격적으로 감옥 벽을 파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한 감각이었다.
맨손으로 만져보면 분명 금속 느낌이 나는 돌벽이다.
그런데 lv1 삽을 가져다 대면 마치 찰흙이라도 된 것처럼 푹푹 떠진다.
그 느낌이 묘하게 기분 좋아서 처음에는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만에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었다.
“헉······. 허억······. 흐윽······.”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벽의 두께는 대충 50cm 정도.
거기에 내 몸이 통과할 만한 구멍을 뚫어야 한다. 앞으로 도대체 몇 번이나 숟가락을 움직여야 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 되었다.
다행히 건너편 감옥에 갇혀 있는 레온에게는 내 표정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 몸······. 그리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네.’
확실히 왕족답게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풍기는 기품이나 자연스럽게 표정 관리가 되는 부분은 좋았다.
그렇지만 체력.
특히나 지구력이 너무 없었다. 겨우 숟가락질 몇 번 했다고 팔이 아예 움직이지 않다니.
아무래도 잠시 쉬면서 체력 보충을 해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판타스틱 아일랜드 3에서도 이 문제로 초반에 엄청 고생을 했었지.
캐릭터를 만들 때 산적이나 선원으로 했으면 조금 나았으려나?
그렇지만 딱히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일단 외모 보정치가 있어서 잘생겼고, 방금 보여준 메소드 연기도 제법 괜찮았으니까.
체력 문제는 여기서 벗어난 후에 천천히 대책을 마련해 보도록 하자.
나는 워킹 아머가 남기고 간 스튜를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저거라도 먹어야겠지?’
다른 포로들이 먹고 무사한 것으로 봐서 독은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저 끔찍해 보이는 비주얼은 도무지 입에 넣기 싫게 생겼다.
그렇지만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식판에 들어 있는 스튜를 단숨에 들이켰다.
“우, 우웁······.”
아쉽게도 반전은 없었다.
스튜의 맛은 생긴 대로 끔찍했다.
그렇지만 전부 먹어치우자 다시 몸을 움직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Tip :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이웃에게 음식을 대접받았으면 감사의 뜻을 담아 편지를 써 보는 것이 어떨까요? 분명 좋아할 거예요!]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무시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도움이 되는 팁을 놓칠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맛없는 스튜로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하자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시 작업을 시작해 볼까!
어느 정도 숟가락질에 익숙해져서인지 요령이 생겼다.
먼저 숟가락의 동그란 부분이 밑으로 가도록 역수로 쥔다.
그것으로 벽면을 내리쳐 적당히 금이 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후에 조심스럽게 떠내면 한 번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아다만타이트를 파낼 수 있었다.
‘이거 재밌는데? 다음번엔 별 모양으로 파 봐야지.’
전신의 감각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예민하다.
어떤 방향으로 힘을 주면 어떤 방향으로 금이 가는지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손가락 끝에 자라도 달린 것처럼 벽면에 완벽한 직선을 그을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눈대중만으로 웬만한 치수는 다 맞출 수 있겠는데?
그렇게 내 몸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시험해 가며 숟가락질을 한 결과.
워킹 아머가 순찰을 하러 오기 전에 감옥의 한쪽 구석에 그럴듯한 탈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이거 제법 잘 만들어졌는데?”
아무것도 없던 벽면에 정확히 내가 통과할 만한 크기의 통로가 생겨있다.
단순히 구멍만 뚫은 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표면을 긁어내서 매끈하게 후처리까지 했다.
마치 기계로 판 것처럼 완벽한 원.
나는 이제는 한 몸처럼 느껴지는 숟가락을 챙겼다.
아무래도 한 번 도구로 등록한 물건은 취소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lv2나 lv3 삽을 구할 때까지는 이 숟가락으로 버텨야 되는 건가.’
모종삽 정도 되는 크기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마왕성까지 끌려갔다가는 문자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감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건너편에 갇혀 있는 레온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제발 나도 같이 데리고 가 주면 안 될까? 저기 마왕성 보이지? 여기는 용사 대 마왕의 마지막 스테이지인 카디아야. 하위 스테이지로 내려가려면 나 같이 믿을만하고 강한 동료가 필요할 거야. 응? 네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음······.
확실히 날아다니는 모기만 해도 레벨이 61이나 된다.
배드 엔딩에서 벗어난다 해도 이곳이 90레벨대 괴물로 가득한 10스테이지 카디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믿을만한 동료라는 전제부터 틀린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알고 있는 것을 전부······.”
“헬 메이드의 시선을 끌고 있는 사이에 블랙 나이트메어로 나까지 같이 죽이려고 했잖아. 그런 사람한테 등 뒤를 맡길 것 같아?”
“······.”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것인지 레온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공기를 타고 상대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이 몸은 도대체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 거야?
그렇지만 레온도 필사적이었다. 무릎까지 꿇고 호소를 해 왔다.
“그, 그건 네가 완전히 뉴비인줄 알아서 그런 거야! 아다만타이트 감옥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으면 훨씬 더 좋은 작전을······!”
더는 들을 필요 없는 내용이었기에 그대로 몸을 돌려 탈출구에 상반신을 집어넣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 줘! 이건 프런티어 중에도 진짜 몇 명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말이야. 용사 대 마왕 초창기 유저 중에 조디악이라고 있거든?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마왕을 잡는 공략을 올려서 제작사에서 패치로 막았을 정도래. 나한테 그 사람이 찾아낸 히든 피스를 얻는 법이 있어! 여기서 구해주면 그걸 전부······.”
조디악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용사 대 마왕을 플레이했을 때 사용한 이름이 조디악이었으니까.
워낙 게임을 하면 파고드는 것을 좋아했고.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녀서 숨겨진 아이템이나 퀘스트를 잔뜩 찾아내곤 했다.
그중 몇 개를 게시판에 공개했는데 그게 무슨 히든 피스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아쉽게도 조디악이 아니라 시드가 되어 이 세계에 떨어지긴 했지만.
내가 가진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조디악 시절 종횡무진 여러 스테이지를 누비던 기억이 남아 있다.
게다가 레온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는 밸런스 패치 전인 것 같고 말이야.
하여간 레온이 만약 내가 모르는 히든 피스를 알고 있더라도 같이 할 생각은 없었다.
0번 배드 엔딩.
그걸 튜토리얼이 아닌 장소에서 당했다는 것은.
녀석이 마왕군에게 협력하기로 약속한 배신자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애원하는 레온을 뒤로하고 감옥을 빠져나왔다.
이동형 감옥은 지하에 만들어진 수로를 타고 마왕성까지 이동하고 있다.
거기서 탈출한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수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묘하게 익숙하다 했더니 예전에 잠입 플레이로 10스테이지를 공략했을 때 이용했던 루트였다.
‘분명히 이 옆이 강으로 이어져 있었지?’
아무래도 내 기억력이 아직까지는 쓸 만한 모양이다.
몇 분 되지 않아 비 때문에 구정물이 흘러나오는 길고 긴 배수구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그곳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입고 있는 가죽옷을 벗어 수로에 흘려보냈다.
일부러 냄새를 묻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러면 내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흔적을 쫓더라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물에 빠져 죽은 줄 알면 더 좋고.’
그렇게 얼마나 배수구를 안을 기어갔을까.
“바, 밖이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지하를 빠져나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쏴아악-
마치 내 탈출을 축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못 참지.
입고 있는 셔츠를 단숨에 벗어던졌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탈출한 남자가 된 것처럼 양팔을 크게 벌리고 포효했다.
“―――프리더어어엄!”
물론 그 사람과는 다르게 겨우 반나절 정도 감옥에 갇혀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말풍선을 켜서 근처에 마왕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배드 엔딩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용사 대 마왕’의 최종 던전 마왕성이 있는 카디아였으니까.
설마 시작하자마자 온갖 괴물들로 가득한 지역에 오게 될 줄이야.
“······이러면 최대한 하위 스테이지까지 거슬러 내려가야 하나.”
소마나 옵스 정도까지 간다면 마왕군에게 쫓길 위험은 많이 줄어들겠지.
그렇지만 과연 이 세계에서 내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마왕군 뿐일까?
나는 힐링 게임 판타스틱 아일랜드 3의 캐릭터다.
레벨을 올려 강해진다는 RPG의 기본적인 공식에 따르지 않는다.
10스테이지 카디아에 서식하는 마룡이나 1스테이지에 출몰하는 고블린이나 똑같이 위협적이다.
오히려 잡몹의 출현이 거의 없는 상위 스테이지가 더 안전할 수 있다.
대도시에 간다면 호위를 부탁할 용병을 고용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도구만 있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까지 만들 수 있는 판타스틱 아일랜드 3의 캐릭터잖아? 잘 찾아보면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분명 있을 거야.”
그렇지만 용사 대 마왕에서는 마음대로 다른 스테이지에 갈 수 없도록 제약이 걸려 있다.
중간 보스를 쓰러트리거나 특정한 퀘스트를 수행해야 통행이 가능해진다.
거창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전형적인 플레이 타임 늘리려는 꼼수다.
물론 한 번 뚫어놓으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긴 하지만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나는 지금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1스테이지에서 바로 마왕성까지 날아와 버린 상태.
사실상 불가능한 전용 퀘스트 클리어나 중간 보스 토벌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
남은 것은 막대한 양의 기부금을 내고 통행증을 사는 것뿐이다.
물론 내게는 지금 흑빵 하나 살 돈도 없다.
······이래서야 기껏 배드 엔딩에서 벗어났는데 또 다른 배드 엔딩이 기다릴 뿐이잖아?
게다가 굶어 죽는 것은 목록에도 없다고.
끼야아아악-!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팁이 떴다.
[Tip : 집이 완성되면 텃밭에 무나 당근 같은 채소를 기를 수 있답니다.]
“아니 무슨 이 무시무시한 곳에 집을······. 어? 잠깐만······. 방금 농사라고 했지?”
그 순간 내 뇌리에 말도 안 되는 사실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용사 대 마왕의 최종막이 진행되는 10스테이지 카디아.
게임에서는 보통 후반으로 갈수록 물가가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것은 용사 대 마왕 역시 마찬가지인데.
마왕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기 덕분에 생산 활동이 힘들어서라는 설정이 붙어 있다.
그래서 카디아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마스터 레벨에 달한 농사 스킬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힐링 게임 캐릭터가 아닌가.
숟가락 하나로 아다만타이트 광석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구멍을 뚫었듯이.
내 손으로 뿌린 씨라면 이곳에서도 분명 훌륭하게 싹을 틔울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내 이름의 어원이 무씨잖아? 여기서 무를 키워서 팔면 진짜 무트코인이네?”
분명 엄청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으리라.
게다가 게임 속 가상의 화폐가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금화를 말이다.
어쩌면 마왕성 바로 옆에 떨어진 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봐야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환상의 섬에 이주한 주민이 가장 처음 해야 하는 것도 집을 지을 때 생긴 빚을 갚는 것이었다.
“그런데 게임 진행 팁이 조금이지만 도움이 되긴 했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읽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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