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공간(異空間, 같지만 다른 곳)

콕-
“.......으음.......”
무언가 얼굴에 닿는 느낌에 설이 손을 휘저었다.
며칠을 밤낮없이 어린 짐승을 치료하고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탓에, 그녀는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했다.
콕- 콕-
“아으.......”
촉촉하고 말랑한 무언가가 계속 얼굴에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접촉에 결국 설은 더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
힘겹게 뜬 눈앞에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코가 있었다.
멍한 얼굴로 눈을 꿈뻑이며 그 말랑한 코를 바라보던 설은 그게 자신이 치료하느라 애를 썼던 늑대라는 사실을 조금 느리게 깨달았다.
“깨어났구나!”
끼잉- 끼잉-
“........?”
더없이 기쁜 얼굴로 외치는데, 늑대가 설의 엉망인 가운 자락을 물더니 당겨 댔다.
왜 이러지. 가운을 입고 싶은가.
그런 생각이나 하며 맹하게 앉아있으니, 늑대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
늑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멀리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성난 목소리로 웅성대는 그들은 그녀가 단박에 쓰러트렸던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그녀와 그녀 앞에서 몸을 떨고 있는 이 늑대를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저기 있다!”
“!”
설이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무리 중 하나가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크르릉-!
“...........”
놀란 설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기만 하자, 작은 늑대가 황급히 그녀의 앞에 섰다.
그 모습이 딱 그녀를 지키려는 모양새였다.
상처투성이인 작은 아이가 자신을 지키려 드는 것을 본 설은, 당황스러운 동시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이 더러운 요괴! 죽어라!”
“!”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이 그 작은 아이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을 본 순간,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아이를 몸으로 감쌌다.
다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만은 살리고 싶었다.
어차피 삶에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설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온 힘을 다해 아이를 품에 안고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으나, 그 뿐이었다.
설도, 설의 품에 안긴 아이도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의아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보니 성난 무리들은 여전히 그녀의 앞에 있었다.
그러나 치켜든 몽둥이를 다시 들어 올리고도, 그들은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뭐야, 어디 갔어?”
“?”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설은 주저앉은 채로 계속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사내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리며 정신 없이 사방을 둘러보기만 했다.
꼭 코앞에 있는 자신과 어린 짐승이 전혀 보이지 않기라도 하듯이.
설이 어리둥절하여 바라만 보는데, 갑자기 무리 중 하나가 그녀를 향해 발을 들어 올렸다.
“.........!”
속으로 으악 소리를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는 그녀를 통과해 가버린 지 오래였다.
“.........4차원 공간.....?”
이과 뇌가 또 멋대로 생각을 뱉어냈다.
그러나 4차원이든 5차원이든.
어쨌든 같은 장소인데 다른 공간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허......”
설이 헛숨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