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냥 죽지 않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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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rainso93
작품등록일 :
2024.02.29 20:41
최근연재일 :
2024.07.12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539
추천수 :
176
글자수 :
81,582

작성
24.04.12 06:20
조회
16
추천
5
글자
6쪽

#.12 구신(覯新, 새로운 만남)

DUMMY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든 세월은 가기 마련이라.

뱀 모자가 떠난 후로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와.......!”

“...........”


텃밭에서 생강을 캐던 설은 갑자기 볼에 차가운 것이 닿으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그녀를 돕던 묵랑도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쁘네......”

“............”


설의 목소리에 묘하게 설레는 기색이 있었다.

사실, 설은 눈을 아주 좋아했다.

정확히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이전 생의 탓이 컸다.

설이 만들어 낸 설의 공간이었으나, 날씨만큼은 바깥과 다르지 않게 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차근차근 변해가는 계절을 보는 게 좋아서.


“첫눈이지?”

“크륵-”

“하하.”


홀린 듯 하늘을 바라보던 설이 고개를 돌려 묻자, 콧잔등에 눈을 잔뜩 묻힌 묵랑이 신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설만큼이나 눈을 좋아하는 아이라 검은 늑대의 풍성한 꼬리가 휙휙 움직여 대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크게 웃은 설은 다정한 손길로 아이의 머리에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한 눈을 털어 주었다.


“그만 캐자. 생강은 이만하면 충분해. 꼬맹이 감기 다 나을 때까지 먹일 수 있을 거야.”

“푸르-”


이번 만큼은 설도 묵랑의 콧방귀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두꺼비 요괴가 감기라니. 솔직히 웃기긴 한 일이었다.


“가자. 어차피 말려야 하니 가져다 놓고, 눈 구경이나 하러 나오자.”

“컹-!”

“하하.”


집채만 한 늑대가 신이 나니 강아지처럼 짖었다.

그게 너무 우스워 설이 아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스킨십이었으나, 눈을 보고 잔뜩 신이 난 묵랑은 퍽 관대하여, 기꺼이 그녀의 옆구리에 붙어 있어 주었다.


파직-


“!”

“!”


즐거운 마음에 뒤엉켜 걸음을 옮기던 둘은 갑자기 하늘을 가로지르는 푸른 전기에 놀란 얼굴을 했다.

이 추운 겨울에 누가 또 경계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가보자.”

“크륵-”


설과 묵랑의 눈이 마주쳤다.

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묵랑은 이미 몸을 낮춘 상태였다.

수백 년을 함께 지냈더니 손발이 척척 맞았다.

소복이 쌓이기 시작한 눈밭 위로, 설을 등에 태운 묵랑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설은 조금 난감했다.

황급히 달려온 결계 입구에는 상처 입은 이가 둘이나 되었다.

거기까지는 수백 년 동안 요신이라 불려 온 그녀에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상처 입고 쓰러진 이들 중 하나가 인간이었다는 거였다.


“묵랑아.”

“크륵-”

“이 여우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가.”

“크르-”


설이 처치를 마친 요괴를 가리키며 말하자, 묵랑이 애매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지쳐 쓰러진 여우의 목덜미를 물어 들어 올렸다.

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묵랑이 반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요리는 예외였지만.


“...........”


묵랑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설은 손을 휘저었다.

결계의 입구가 사라지고 어느새 눈이 멈춘 숲의 모습이 나타났다.

수백 년 동안 자신의 공간에서만 지내던 설이 밖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사냥은 왜 해.......”


쓰러져 있는 남자의 곁에 앉으며 설은 작게 꿍얼거렸다.

요괴든 인간이든. 그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왜 꼭 싸우려 드는 걸까.

설은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고. 제대로 물렸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옷을 젖혀 보니 옆구리 살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필사적이었던 여우 요괴가 있는 힘껏 물어 뜯었던 모양이었다.


딱-!


설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두 사람 근처에 적당한 크기의 모닥불이 뿅-하고 나타났다.

이 추운 겨울에 윗옷을 홀랑 벗겼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 그랬다.


“으으.......”


살얼음이 언 계곡물을 퍼다 데운 설은 조심조심 피를 닦아 내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깊긴 했는지.

남자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녀의 손이 옆구리 주변을 스칠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으으.......으흐.......”

“..........”


설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탄탄한 몸을 주물럭대고 있자니 신경 쓰여 죽겠는데, 자꾸 요상한 소리를 내니.

신이라 불리긴 하였으나, 한낱 인간일 뿐인 설은 어쩔 도리 없이 신경이 쓰이고 말았다.


“정신 차려라, 한 설. 이 남자는 환자고 너는 의사다.”

“으음......”

“........하아.......돌겠네.”


겨우 처치를 마치긴 하였으나, 여전히 드는 이상한 기분에 설은 자신의 뺨을 챱챱 때렸다.

하지만 설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잘 짜여 진 균형 잡힌 몸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좋아지는 기분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


그래서였을까.

설은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남자가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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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위로(衛虜, 붙들고 보듬다) 24.07.12 3 1 5쪽
36 #.35 마지막 크리스마스 24.07.09 7 1 5쪽
35 #.34 최후의 전투 2 24.07.05 11 4 5쪽
34 #.33 최후의 전투 1 24.07.02 11 4 5쪽
33 #.32 이브(Eve) 24.06.28 8 4 4쪽
32 #.31 걷잡을 수 없는 3 24.06.25 11 4 6쪽
31 #.30 걷잡을 수 없는 2 24.06.21 13 4 5쪽
30 #.29 걷잡을 수 없는 1 24.06.18 11 4 5쪽
29 #.28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24.06.14 12 4 4쪽
28 #.27 진실(Truth) 24.06.11 12 4 6쪽
27 #.26 트리거(Trigger) 24.06.07 12 4 6쪽
26 #.25 크리스마스 2 24.06.04 11 4 6쪽
25 #.24 크리스마스 1 24.05.24 14 4 4쪽
24 #.23 설(雪, 눈) 24.05.21 16 5 6쪽
23 #.22 요리(饒摛, 넉넉함이 번지다) 24.05.17 15 5 4쪽
22 #.21 청안(靑眼, 푸른 눈동자) 24.05.14 17 5 3쪽
21 #.20 요호(妖戶, 요괴들의 집) 24.05.10 19 5 4쪽
20 #.19 요양(療養, 휴식을 취하다) 24.05.06 14 5 4쪽
19 #.18 뒤통수 2 24.05.03 16 5 7쪽
18 #.17 뒤통수 1 24.04.30 14 5 4쪽
17 #.16 위엄(㥜掩, 엄습하는 불안) 24.04.26 13 5 5쪽
16 #.15 환궁(還宮) 24.04.23 14 5 5쪽
15 #.14 황궁(惶窮, 몹시 걱정하다) 24.04.19 14 5 7쪽
14 #.13 미남(謎婪, 탐나는 수수께끼) 24.04.16 17 5 7쪽
» #.12 구신(覯新, 새로운 만남) 24.04.12 16 5 6쪽
12 #.11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2 24.04.09 17 5 5쪽
11 #.10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1 24.04.05 15 5 7쪽
10 #.9 설원(雪原, 눈밭) 24.04.02 14 6 5쪽
9 #.8 요신(妖神) 24.03.29 14 6 5쪽
8 #.7 안온(安穩, 고요하고 편안한) 24.03.26 17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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