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냥 죽지 않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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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rainso93
작품등록일 :
2024.02.29 20:41
최근연재일 :
2024.07.12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538
추천수 :
176
글자수 :
81,582

작성
24.04.16 06:20
조회
16
추천
5
글자
7쪽

#.13 미남(謎婪, 탐나는 수수께끼)

DUMMY

“...........”


붉게 변한 대야 속 물을 버리고 깨끗한 새 물을 채우려던 설은 인상을 팍 구겼다.


“당신이 요신인가.”

“...........”


그리고 이어진 다음 말에는 더욱더 인상을 구겼다.

깨끗한 계곡물이 찰랑이는 대야를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게?”

“..........”


목에 겨누어진 시퍼런 검 날을 잠시 내려다본 설은 다시 눈을 들어 제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들고 있는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 남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반응을 본 설은 제 눈앞에 있는 남자의 성격이 대강 예상이 되었다.


‘와...씨.....잘 생겼는데 고지식해. 진짜 환장할 조합이다.’


“치명상은 아니어도 이렇게 막 돌아다니면 안 돼.”

“...........”

“고집 부리지 말고 다시 불가로 가.”

“...........”


창백한 얼굴이 딱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남자는 고집스럽게 검을 내민 채로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답답한 태도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설은 물 대야를 들지 않은 손으로 남자의 옆구리를 꾸욱- 눌러 버렸다.


“으윽-!”


겨우 지혈해 놓은 상처가 터지고 격통이 올라오자, 남자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꼴을 잠시 내려다본 설은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먼저 불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듣지. 애도 아니고. 꼭 험한 꼴을 보고 싶어 해, 왜.”

“.........”


다시 붕대를 감아주며 설이 잔소리를 했다.

성난 눈을 치켜떴으나, 자신의 상처를 돌봐 주고 있는 사람에게 반항할 수는 없어서.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설을 노려보기만 했다.


“.........”

“윽....당신.....!”


열심히 치료해 주는데 환자가 자신을 원수 보듯 보고 있으니, 설도 심통이 났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환자를 봐온 의사의 손길은 평소와 달리 퍽 거칠었다.


“아흑.......”

“거 자꾸 요상한 소리 좀 내지 맙시다. 그렇지 않아도 본의 아니게 수백 년을 수절 중인데. 사람 곤란하게 시리.”

“뭐....?”

“흥.”


설이 부러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의 상처를 감싸는 붕대는 탄탄하기만 했으니.

프로 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러니라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면......”

“응?”

“사람이면, 그대도 인간인가.”

“...........”


설은 남자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는 인간이긴 했다.

사고방식도 정체성도, 확실히 요괴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불노불사인 자신을 인간으로 분류해도 되는 걸까.

존재론적인 고뇌가 태생부터 이과였던 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괴냐고 묻는 거면. 요괴는 아니야. 난 동물 형태로 변하거나 하진 않아.”

“..........”

“그렇다고 인간인지는......나도 모르겠네.”

“..........”


이해하기 힘든 대답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여자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기분이라.

남자는 결국 입을 다물길 택했다.

대신 그는 제 반도 안 될 것 같은 여자를 가만히 관찰했다.

성실히도 자신의 상처를 돌봐 준 눈앞의 여자는 수백 년을 운운하는 이치고 아주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흑안만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의 눈을 하고 있어서.

이상하게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

“...........”


얼마나 그리 앉아 있었을까.

그쳤던 눈이 어느새 다시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조용한 숲 속에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만 잔잔히 들려왔다.

그게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워, 남자도 설도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데서 치료해 줘야 해서 유감이야.”

“?”


결국 어색함을 이기지 못한 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도록 그녀를 향해 있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저런 표정 할 때도 잘생겼네.'


설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동시에 묘하게 낯이 익은 기분이 들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을 마주한 적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는 안으로 들여서 치료해 주는데, 지금 안에는 치료 중인 요괴들이 많아서.”

“.........”

“만나면 서로 불편할 거 아냐.”

“..........”


어색한 기분에 아무 말이나 했던 것인데, 저리 뚫어질 듯 바라보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더 어색해진 것 같아, 설은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왜 나를 치료했지.”

“응?”

“요신이. 인간인 날, 왜 치료해 준 건가.”

“..........”


남자의 질문에 설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설은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을 치르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의 일을, 그것도 다른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오늘 처음 만난 이 고지식해 보이는 남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애매했다.

그가 이해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도움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뭐.....?”

“나는 의사....아니, 그러니까 당신들 표현으로 의원이야. 그런 내가 다친 이를 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게 요괴든 인간이든.”

“!..........”


잘생긴 눈썹이 꿈틀했다.


'어휴. 어떻게 눈썹도 잘 생길 수가 있지.'


설은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이상한 사람이군.”

“뭐? 이봐!”

“..........”


욕을 툭 뱉어 놓고 쿨하게 등을 돌리고 누워버리는 남자를 보며, 설은 아주 어이가 없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설은 그러나, 곧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자,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아픈 사람이 지쳐 잠드는 것 같은 모양새라 뭐라 더 따지기가 힘들었다.


“나 참. 그쪽은 잘생겨서 다행인 줄 알아. 그 얼굴만 아니었어도.....”

“..........”


작게 꿍얼거린 설은 결국 포기하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초 겨울의 찬 바닥에서 냉한 기운이 올라오긴 하였으나, 설이 피워 놓은 모닥불 덕분에 춥진 않았다.

다만, 그 붉게 일렁이는 불빛 때문에 설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 돌아누운 남자의 귓불이 묘하게 붉어졌음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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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위로(衛虜, 붙들고 보듬다) 24.07.12 3 1 5쪽
36 #.35 마지막 크리스마스 24.07.09 7 1 5쪽
35 #.34 최후의 전투 2 24.07.05 11 4 5쪽
34 #.33 최후의 전투 1 24.07.02 11 4 5쪽
33 #.32 이브(Eve) 24.06.28 8 4 4쪽
32 #.31 걷잡을 수 없는 3 24.06.25 11 4 6쪽
31 #.30 걷잡을 수 없는 2 24.06.21 13 4 5쪽
30 #.29 걷잡을 수 없는 1 24.06.18 11 4 5쪽
29 #.28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24.06.14 12 4 4쪽
28 #.27 진실(Truth) 24.06.11 12 4 6쪽
27 #.26 트리거(Trigger) 24.06.07 12 4 6쪽
26 #.25 크리스마스 2 24.06.04 11 4 6쪽
25 #.24 크리스마스 1 24.05.24 14 4 4쪽
24 #.23 설(雪, 눈) 24.05.21 16 5 6쪽
23 #.22 요리(饒摛, 넉넉함이 번지다) 24.05.17 15 5 4쪽
22 #.21 청안(靑眼, 푸른 눈동자) 24.05.14 17 5 3쪽
21 #.20 요호(妖戶, 요괴들의 집) 24.05.10 19 5 4쪽
20 #.19 요양(療養, 휴식을 취하다) 24.05.06 14 5 4쪽
19 #.18 뒤통수 2 24.05.03 16 5 7쪽
18 #.17 뒤통수 1 24.04.30 14 5 4쪽
17 #.16 위엄(㥜掩, 엄습하는 불안) 24.04.26 13 5 5쪽
16 #.15 환궁(還宮) 24.04.23 14 5 5쪽
15 #.14 황궁(惶窮, 몹시 걱정하다) 24.04.19 14 5 7쪽
» #.13 미남(謎婪, 탐나는 수수께끼) 24.04.16 17 5 7쪽
13 #.12 구신(覯新, 새로운 만남) 24.04.12 16 5 6쪽
12 #.11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2 24.04.09 17 5 5쪽
11 #.10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1 24.04.05 15 5 7쪽
10 #.9 설원(雪原, 눈밭) 24.04.02 14 6 5쪽
9 #.8 요신(妖神) 24.03.29 14 6 5쪽
8 #.7 안온(安穩, 고요하고 편안한) 24.03.26 17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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