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이브(Eve)

“엄마?”
“..........”
“엄마, 왜 그래요?”
“..........”
“엄마!”
“!.....아, 응. 미안, 우리 아들. 엄마가 잠깐 딴생각을 했네.”
멍하니 서 있던 설은 옆에서 들려오는 어린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 얼굴보다도 큰 노란 별을 야무지게 움켜쥔 아이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발견한 설은 서둘러 표정을 정돈하고 아이를 안아 올렸다.
엄마의 품에 안겨 눈높이가 높아진 아이는 작은 손을 뻗어 트리 꼭대기에 노란 별을 얹었다.
드디어 완성된 크리스마스 트리에 신이 난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다 됐다!”
“그러네. 그럼, 우리 이제 불을 켜 볼까?”
“어? 안 돼요.”
“음?”
조그만 아이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설을 멈춰 세웠다.
저를 꼭 빼닮은 그 태도에 설은 도리 없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이 더글라스를 향했다.
“아빠 오시면 같이 해요. 가족이 다 같이 해야 해요.”
“........그렇구나. 그래. 그러자.”
“응!”
아이는 신이 났는지 씩씩하게 외쳤다.
고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기세가 흘러나오는지.
제 속으로 낳은 아이였으나, 설은 이 작은 생명이 늘 경이로웠다.
달칵-
“아빠!”
“아들!”
이안이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더글라스가 쾌활하게 외쳤다.
반가움에 바동거리는 아이를 내려주었더니, 더글라스는 얼른 뛰어가 제 아비의 품에 안겼다.
제 품에 답싹 안긴 아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금 전 설의 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빠, 이거 봐요! 엄마랑 내가 다 만들었어!”
“와-! 멋진데?!”
“그쵸! 이제 불 켜봐요. 다 같이!”
“그래. 그러자.”
아이는 신이 나 전등 스위치를 향해 달려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든 트리는 그다지 화려하지 못하였고, 그나마도 전기를 양껏 쓸 수 없는 처지라 고작 몇 분밖에 켤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는 그것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는지.
뛰어가는 뒷모습에 설렘이 가득하였다.
“...........”
“...........”
그와 반대로, 아이의 뒤에서 눈이 마주친 부부의 사이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늘 사랑이 넘치던 두 사람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엄마! 여기, 여기요.”
“응, 그래. 얼른 켜보자.”
“예쁘겠는 걸~!”
그러나 아이가 스위치를 손에 들고 신이 나 달려올 적에는 두 사람 모두 세상 더없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도 이안도, 어른들의 일로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신이 난 아이에게 마주 웃어주며 설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설이 시작하고, 이안이 이어간 카운트가, 아이의 맑은 목소리로 끝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앙상한 나무에 얼기설기 얽혀 있는 꼬마 전구에 알록달록한 불이 들어왔다.
“와아-!”
“하하.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도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도!”
“그래.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가 짧은 팔을 힘껏 뻗어 엄마와 아빠의 다리를 한 쪽씩 꽉 끌어안았다.
그 귀여운 행동에 설과 이안도 푸스스 웃으며 서로를 안아주었다.
하나로 뭉친 세 사람의 뒤에서 낡은 알 전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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