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조폭의 제주도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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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작품등록일 :
2024.03.06 00:20
최근연재일 :
2024.04.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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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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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토끼같은 딸

DUMMY

서동철!


아무리 봐도 마동석이다. 부리부리한 눈에 터질 듯한 근육, 까칠한 수염마저도 그대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피붙이는 아니지만 자칭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점.


장장 삼십 분 이상을 토해내는 열변.


손짓 발짓에 허공에 침까지 튀었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토해내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말들이.


“그러니까 정리하면.....”


커피잔을 툭- 쓰레기통에 던지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차대풍, 올해 서른 일곱. 현재 연화리 마을 이장이고. 홀어머니에 애가 한 명 있다?”


“애가 아니라 솔비마씸, 차솔비! 형님의 영원한 껌딱지, 외동딸 차솔비요.”


녀석이 큼- 헛기침을 하며 말을 보탰다.


잠시 솔비가 사라졌던 문 쪽을 봤다. 분명 그렁 눈물이 그렁해진 상태였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 그런데 나를 보는 애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혹시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병원에 오게 된 것은 돼지를 옮기다 눈길에 미끄러진 것이고?”


“아이구 정말 기억 안 남쑤광(나십니까)? 포제 지낸다고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이서신디 무사 경 형님만 용을 씁디까? 눈길에 그 무거운 것을 혼자 어깨에 짊어져 오르다 보니 이런 사단이 났주 마씸.”


다다다, 따발총이 따로 없었다. 제주도 사투리! 오다가다 드라마에서나 봤지 설마 이렇게 눈앞에서 팔딱팔딱 뛰는 사투리를 라이브로 들을 줄이야.


결론은, 내가 돼지를 옮기다 눈길에 미끄러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장만 걷어낸 80kg의 통돼지!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돼지가 문제였다. 미끈하며 그대로 바닥으로 머리가 쾅! 말 그대로 수직 낙하였다. 물론 어느 것 하나 기억에 없었지만.


“.....며칠이나 있었어, 병원에?”


“이틀 마씸. 오늘도 못 일어라면 어쩌나 싶었는데 하늘이 도왔쑤다.”

이틀! 병원에 내가 있던 시간. 분명 강필이 놈한테 칼침을 여섯 방이나 맞고 거리에서 숨을 거뒀는데 병원에서 이틀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혹시 폰 빌릴 수 있을까?”


“폰마씸?”


“응,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일단 날짜를 확인하고 싶었다. 분명 지금은 겨울. 눈앞으로 한라산이 반쯤 눈에 덮여 있었다. 내 마지막 기억은 2023년 12월 24일! 이틀이 지났다면 길어봐야 26일이나 27일 정도일 터.


“아이구 빌리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쑤광. 그냥 형님 폰 쓰면 되지.”


서동철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갈색 커버에 담긴 폰이었다. 당연히 내가 쓰던 최신형 폰은 아니었다. 그냥 통화만 할 수 있을 정도의 한참 구모델!


폰을 받아 천천히 전원을 켰다. 이내 눈에 들어오는 누군가의 사진! 솔비였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나의 하나뿐인 딸!


“일단 어머니한테 빨리 전화 드립써.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하셤쑤다. 무릎 수술만 안 해시믄 당장 달려올 어른인디.”


힐끗 서동철을 봤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모르긴 몰라도 형님 어머니 이번에 죽다 살아나실꺼우다. 형수까지 그렇게 가신디 형님마저 잘못됐더라면.......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허우다 정말.”


녀석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곰 같은 덩치를 부르르 떨었다.


일단 폰의 화면을 봤다.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믿을 수가 없었다. 강필이 녀석에게 칼침을 당한 후 벌써 한 달 반이 지난 시간.


“형수?”


“정말 기억이 안 남쑤강? 내일모레면 벌써 형수의 여섯 번째 기일인디.”


당연히 기억이 있을 턱이 없었다. 애초 결혼이란 것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뜬금없는 형수라니.



찬바람이 스윽 볼을 스쳤다. 제주라서 겨울도 제법 견딜 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내가 겪었던 어떤 추위보다 강한 칼바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추위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나는 죽었다. 그런데 이렇게 차대풍이란 사내로 다시 환생! 그리고 내가 죽은 후 벌써 한 달 반이 지난 시간.


겨울 허허벌판에 나 혼자 뚝 떨어진 느낌! 마지막 죽기 전 소원을 빌었다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멋있게 맞짱 뜨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눈길에 미끄러져 그야말로 헛발질! 게다가 홀어머니와 딸아이라! 허- 웃음밖에 안 왔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회귀? 회귀치고는 정말 기가 막혔다. 조선 제일의 주먹, 나 강대한이 졸지에 홀어머니에 애가 딸린 홀아비 신세라.


분명 꿈일 것이다. 아니면 지옥에서 꾸는 지독한 악몽이거나.


* * *


하지만 꿈도 아니었고 내가 있는 곳 역시 지옥은 더더욱 아니었다.


삐리리- 동철이 녀석의 폰이 계속해서 울렸고 녀석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혀, 형님 일단 나 먼저 가보쿠다. 와이픈데 지금 송아지가 나오젠 햄신디 역산(逆産)이렌 햄쑤다. 빨리 가서 손보지 않으면 양수에 세상 빛도 보기 전에 꼴까닥할 것 같아서 마씸.”


송아지? 역산? 다시 녀석의 스무고개를 던졌다. 하지만 따져 묻기에는 녀석의 표정이 제법 어두웠다. 빠르게 다시 나를 병실로 옮긴 후 금방 오겠다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사라졌다.


간호사가 이러저리 나를 살피다가 아무 문제 없다고 혹시 찾을 일 있으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하긴, 내가 봐도 너무 멀쩡한 상태.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가만히 선반 위에 놓인 손거울을 봤다.


역시 적응이 안 되는 얼굴! 연예인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모델 뺨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사각 턱에 시커먼 구레나룻의 전형적인 시골 촌뜨기.


하- 게다가 동네 이장이라. 이름이 연화리라고 했던가.


완전히 회귀해서 전원일기를 찍을 판이었다.


일단 다시 폰을 들었다. 통화목록 버튼을 눌렀다.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표시됐다. 하나같이 내가 모르는 이름들.


그중 반은 어머니였다.


오늘도 벌써 세 번째 부재중 전화!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이내 멈췄다. 먼저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어머니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정확히 십 오 년째다. 잊을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는 15년 전의 그 악몽!


물끄러미 폰을 보다가 꾹꾹- 버튼을 눌렀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지금 있는 곳이 꿈 속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살아오면서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배신해도 이들만큼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확신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오른팔인 강동재와 왼팔인 민혁기! 원래는 오대감파와 척을 진 상대편 조직원들이었다. 하지만 나와바리 싸움 중에 혈투를 벌이게 됐고 서로의 싸움 실력에 반해 툭 터놓고 술 한잔을 하게 됐다.


거친 외모와 출중한 싸움 실력과는 다르게 놀랄 만큼 순수했다. 씨름을 하다가 어찌어찌해 뒷골목에 발을 디디게 된 사연도 나와 비슷했고.


나와는 겨우 두 살 차! 하지만 금세 형 아우가 됐고 오대감파가 녀석의 조직을 흡수한 후 본격적으로 나의 양팔이 됐다. 내가 전화 번호를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두 사람이었고.


삐이- 길게 신호가 갔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동재와 혁기, 거짓말처럼 두 사람이 전화를 안 받았다. 게다가 없는 번호라. 언뜻 불안감이 스쳤다. 둘 중 하나였다. 사정이 있어 폰 번호를 바꿨거나 나의 양팔이란 이유로 오강필 패거리에게 이미 작업을 당한 경우.


재빨리 검색창을 켰다. 지금이 실제 상황이라면 일 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 하지만 내가 죽었다면 분명 한 즐기사 정도는 떴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서울을 주름잡던 오대감파의 행동 대장이었으니까.


내 이름 석 자, 강대한을 입력했다. 기업인 강대한, 교수 강대한, 시인 강대한......! 동명이인들의 얼굴들이 금세 스쳐 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정치인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 줄 이상의 기사는 주르르 떴다. 연예계에, 공사판에 대부업체까지 한참 세를 넓히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디에도 없었다. 강대한이란 내 이름 석 자!


안 봐도 뻔했다. 작업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오강필 녀석이 내 시체를 흔적도 없게 손을 본 것이다.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졌거나 공사판 구덩이에 쳐넣고 시멘트를 쏟아부어 버리는. 경찰에서 손을 쓴다 한들 누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영영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건들.


혹시!


보스인 오정기 이름을 입력했다. 뒷골목의 냄새 나는 짓은 내가 다 도맡아 했다. 당연히 겉으로 드러나는 오정기의 모습은 건실한 사업체의 대표! 오정 건설, 오정 캐피탈, 오정 리조트.......!


헉!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미 죽은 지 일 년이 지난 시점! 교통사고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정확히는 2020년 12월 25일, 귀가 중 음주 트럭에 의한 믿기지 않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즉사였다.


구름같이 몰려든 검은 정장의 덩치들,


오정기의 대형 영정 사진을 배경으로 짐짓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오강필과 그 패거리들.......!


당연히 자리를 같이해야 할 동재와 혁기의 모습이 없었다.


꾹 입술을 깨물었다. 그림이 그려졌다. 가장 예상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 오강필의 짓이 틀림없었다. 음주 운전에 의한 사고는 껍데기, 분명 찌고 찬 고스톱일 것이다. 동재와 혁기 역시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제거 됐을 테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미안해 짜증내서.”


순간 누군가 들려오는 목소리. 흠칫 앞을 봤다. 솔비였다. 빨갛게 볼이 상기된 채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겁났단 말야. 아빠가 어떻게 됐을 까봐.”


이내 그렁해지는 솔비의 눈가.


“그러게 왜 맨날 마을 모든 일을 아빠만 혼자 도맡아 해? 마을 이장이 무슨 벼슬인가 뭐. 맨날 이 삼촌도 아빠, 저 삼촌도 아빠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솔비가 스윽 소매를 눈가를 닦아냈다.


“......솔비야.”


솔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이리와, 밖에 많이 추웠지?”


양팔을 벌려 솔비를 향했다.


“피이, 춥긴 뭐가 추워.”


“와, 얼른. 아빠 팔 부러지겠다.”


솔비가 가만히 나를 보는가 싶더니 우왕- 눈물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겼다.


“미워, 아빠 정말 미워! 아빠 정말 밉단 말야!”


솔비가 연신 내 품에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천천히 손을 들어 가만히 솔비의 등을 토닥거렸다. 한 마리 어린 양, 후 바람을 불면 그냥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작은 몸이었다.


“우와아앙-!”


솔비가 내 옷깃을 세게 잡고 서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높여 울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 모른 척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였다. 싫든 좋든 솔비 앞에서 지금의 나는!


하지만 아빠 역할은 나로서도 처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안아 주는 것! 내 품의 어린양을 힘껏 안아 주는 것, 오직 그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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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 혼자가 아니다 24.04.23 33 2 14쪽
29 백종훈 24.04.19 44 1 20쪽
28 위로 24.04.16 58 1 11쪽
27 함정 4 24.04.14 61 1 13쪽
26 함정 3 24.04.11 64 1 11쪽
25 함정 2 24.04.07 65 1 14쪽
24 함정 1 24.04.04 82 1 13쪽
23 실타래 24.04.03 91 1 16쪽
22 바늘과 실 24.03.30 90 1 14쪽
21 새끼 손가락의 약속 24.03.29 91 2 13쪽
20 양아치의 법칙 24.03.28 105 1 12쪽
19 판을 벌이다 24.03.27 105 1 14쪽
18 묘책 +2 24.03.26 130 1 12쪽
17 나는 아빠다! 24.03.23 138 1 13쪽
16 악연 +2 24.03.22 138 1 14쪽
15 그 녀와의 데이트 24.03.21 139 1 11쪽
14 양주먹 놔두고 말싸움이나 하라고 24.03.21 133 1 14쪽
13 조합원 +2 24.03.19 149 2 13쪽
12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24.03.17 147 2 12쪽
11 백경덕 24.03.16 162 2 13쪽
10 나의 절친은 읍장님 24.03.14 176 2 13쪽
9 아내 24.03.13 195 2 13쪽
8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4.03.12 185 2 14쪽
7 포제당 24.03.11 197 2 10쪽
6 참교육 24.03.10 203 3 13쪽
5 이렇게 따스한 밥이라니! 24.03.09 212 2 12쪽
4 어머니 24.03.08 243 2 14쪽
» 토끼같은 딸 24.03.07 267 2 11쪽
2 연화리장 차대풍 +2 24.03.06 29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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