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조폭의 제주도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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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세미
작품등록일 :
2024.03.0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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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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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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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DUMMY

농사!


나의 로망이다. 피 묻은 손에 흙을, 연장 대신 호미를! 뚝뚝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 해가 지면 저절로 눈이 감기는 기분 좋은 피곤함.


하느님 부처님 덕분인지 내 로망은 이렇게 멋들어지게 현실판이 됐는데.


역시 농사라는 게 만만치 않다. 차대풍이 벌여놓은 일, 수 천 평의 브로콜리와 콜라비와 비트 재배, 그만큼의 비닐하우스를 통한 한라봉과 레드향 재배였다. 그야말로 입에서 단내가 났다. 하루는 밭에서 하루는 비닐하우스에서.


삐링- 문자 알림이 왔다.


대구청과, 브로콜리 1박스당 3만 2천 원! 어제 출하한 양은 모두 20kg짜리 70박스! 하루에 이백만 원을 번 셈이다. 이러다 재벌이 될 수도.


피식 웃었다.


건달 시절 같으면 하루 술값도 안 되는 돈! 돈이라고 똑같은 돈이 아니다. 건달 시절, 나에게 돈은 돈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1억쯤 현찰로 댕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돈을 물 쓰듯 썼다. 카드값만 한 달에 몇천만 원이 나오던 시절!


말 그대로 일장춘몽!


꿈 같은 현실이었고 아스라한 기억이었다.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한데.


-카아, 역시 우리 차이장님 손을 대면 뭐가 달라도 뭔가 다르다 카이. 우예 브로콜리들을 하나같이 이리 초롱초롱 싱싱하게 키웠는교? 내가 마 차이장님 땜에 요즘 어깨에 팍팍 힘을 준다 안 카요? 한라봉도 싱싱한 놈들로 후딱후딱 보내줄 수 있겠지예?


하지만 나의 꿈을 깨우는 안승백 사장의 일갈!


-너도 나도 연화 삼촌표 한라봉 내놓으라고 지금 대구는 난리라예, 난리! 부탁하입시다. 되는대로 물건 후딱후딱 포장해서 빨리 보내주이소. 내가 마 기다리다 목이 빠짐겠심다.


시원시원하게 안승백 사장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다시 도착한 나의 일터! 이번에는 과수원이었다. 비닐하우스로 겹겹이 쌓인 천 평 넓이의 과수원!


하우스 문을 열자 후끈 열기가 달아올랐다. 좌우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한라봉 나무들! 주먹만 한 크기의 주황색 한라봉들이 초록색 가지가지마다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어쩔까 싶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따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구석 선반에 놓여있던 서랍을 열어 정정 가위를 꺼냈다. 가운데 통로를 따라 컨테이너를 하나씩 차례로 내려놓고는 정정 가위로 째깍, 째깍 한라봉을 따기 시작했다.


싱싱한 한라봉의 조건!


주름이 적고 꼭지가 싱싱해야 한다. 진한 주황색에 껍질은 얇고 부드러워야 했고.


퉁,퉁 이내 컨테이너에 한라봉이 쌓이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내가 봐도 거의 예술인 나의 가위 솜씨! 한두 번 가위질에 댕강 한라봉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갔다.


헐, 내가 이렇게 가위질을 잘했었나.


“아이구 나 이럴 줄 알았주게. 정말 독불 장군이 따로 어서.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 야단이라게. 같이 해주랜 연락 한 통 없고게.”


송골 이마에 제법 땀이 맺혔다. 덜컥 하우스 문을 열며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


부녀회장 장 씨 아줌마! 퉤- 손에 침을 뱉으며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어, 부녀회장님께서 여긴 웬일로요?”


“웬일은 무슨 웬일이라는 게. 동철이 녀석이 삼촌들 제발 같이 강 며칠만이라도 우리 차이장 도와주랜 난리가 아닌디. 몸도 아직 성치 않은데 다시 병 도진다고.”


두툼한 덩치답게 껄껄 웃으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맞아게. 차 이장님다시 병원에 드러누믄 우리 연화리 완전 초전박살인 거 몰람서? 우리가 누구땜에 먹고 사는디게.”


장씨 못지않게 걸걸한 목소리! 장씨의 짝꿍, 진석이 녀석 어머니이자 동네 감귤 농사에 관한한 최고 베테랑 동이 삼촌!


“경허난 우리가 잘 모셔야 하는 거라. 차 이장이 누구라게, 연화리 금수저라, 연화리 금수저! 얼굴 좋아 성격 좋아 농사일까지 척척 척척, 연화리 복덩이주게. 아니라게?”


다시 말을 받는 동그런 얼굴에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 장씨와 동이 삼촌과 더불어 연화리 마을 부녀회를 이끄는 자칭 연화리 부녀회 삼총사인 덕이 삼촌!


세 명이 성큼 안으로 들어서자 하우스 안이 꽉 찬 느낌이다.


“에구 영 안 와도 되는데마씸. 나 혼자서도 할 수 이신디.”


어, 나도 모르게 술술 터져 나오는 제주 사투리!


“거, 쓸데없는 소리 마라는 게. 혼자서는 무슨 혼자서라게. 백짓장도 맞들면 낫덴 허는 옛말도 몰람서? 경헌디 이 일은 백짓장이 아니라 생노가다 아니라게, 생노가다! 맞드는게 아니라 죽자 살자 도와줘도 모자라는 거라게. 당연히 우리 삼총사가 도와야주게. 무사, 모두 내 말이 틀련?”


장씨가 소리를 높였고.


“당연히 백번 옳은 말이주게. 차이장이 살아야 우리가 사는거라. 이제부터 팍팍 우리 부력먹어게. 알암서?”


깔깔깔 동이 삼촌과 덕이 삼촌이 소리 내 웃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이것이 제주에만 있다는 ‘괸당 문화’라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괸당! 제주말로 친척이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자기 일처럼 서로 위로하고 돕는 제주 고유의 공동체 문화!


그런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 * *


꼬박 네 시간! 땡- 12시가 지나자 트럭에 금세 한라봉 컨테어너가 가득했다. 4줄씩 모두 64컨테이너! 하지만 수확 후 최소 일주일간은 숙성이 필요했다. 갓 수확한 한라봉은 단맛보다 시큼한 맛이 오히려 강했다. 신맛을 없애는 데 필요한 시간이 최소 일주일!


일단 저온 저장고에 일주일 정도 보관해야 했다.


순이 삼촌 전용 저장고는 리사무소 옆 이백 평 규모의 단층 슬래브 건물!


원래 비료 저장 창고로 쓰고 있었지만 3년 전, 내가 순이 삼촌을 만들면서 임대해 저온 저장고로 만들었다. 5도 수준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상태.


“헐, 대박! 오전 시간에 이 많은 것을 다 땄단 말예요? 겨우 네 분이서?”


창고 주차장에 들어서자 사무장인 이채연이 동그래진 눈으로 소리를 높였다.


“이 지지빠이(여자애) 말하는 거 좀 보라게. 겨우 넷이라니? 그럼 선수들 넷이 작심을 하고 덤볐는데 이 정도도 못 했을까 봐. 껄껄 무사? 경 걱정되믄 채연이, 너도 왕 도와주지게.”


텅- 트럭에서 따라 내리며 동이 삼촌이 껄껄 소리를 높였다.


“사, 삼촌 정말!”


확 얼굴이 붉어지는 이채연.


“이거 무사 남의 딸한테 농은 하고 지랄이라게. 무사, 우리 딸년하고 차 이장하고 중매라도 서보젠 허는 소리라?”


입담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채연의 엄마인 장씨 아줌마다.


“무사? 내가 중매 서믄 안 되어? 경만 되믄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라게. 우리 차이장은 홀아비 신세 면해서 장땡이고 채연이, 얘는 세상 일등 신랑 만나 장땡이고. 무사 내 말이 틀련?”


“하핫 맞아게. 이 참에 둘이 아예 국수를 먹주게. 어때 우리 차이장, 올해 어떵 우리가 국수 먹을 수 이스크라(있겠습니까)?”


“삼초오오오온-!”


이채연이 얼굴이 붉어진 채 버럭 소리를 높였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 소리.


하지만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소리! 국수라니? 이채연을 향한 순애보의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 * *


“네, 어디시라구요? 네, 넷. 한라봉 10박스와 브로콜리 30박스요. 네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요? 이르면 내일 받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오늘 택배가 들어가니까요.”


엄마인 장씨 아줌마와 부녀회 삼총사를 능가하는 이채연의 싹싹함.


대충 한라봉을 저장고에 옮기고 리사무소 안으로 들어왔다.


전화기에 불이 나고 있었다. 감귤 시즌에 브로콜리 시즌까지 겹쳐 이채연이 혼자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일에 관한 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일을 처리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왜, 또 주문이야?”


“당근이죠. 후훗 이장님, 이러다 우리 연화리 금방 대박 나겠어요. 우리 이장님 땅 사고 빌딩 올리는 거 아니에요?”


“쓸데없는 소리! 이제 시작이야. 잘 될수록 더욱 고객들한테 사람들한테 잘해야 하고.”


“에그 또 그 소리! 걱정하지 마세요, 간드러지게 잘하고 있으니까요. 고객니이이임- 하면서요.”


이채연이 장난스레 길게 콧소리를 냈다.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얼굴! 하얀 피부에 유난히 주근깨가 가득했다. 하지만 엄마인 장씨 아줌마를 닮아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뒤끝이 없었다.


“후훗 그래 모두 사무장 덕분이야. 일이 정리되면 내가 제대로 한 턱 쏠게. 대구 안승백 사장한테는 다음 주중 한라봉 택배로 발송한다고 전해주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연락드렸어요. 후훗 일주일씩이나 기다려야 하냐고 안 사장님이 노발대발하시던데요.”


“노발대발이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지. 대신 브로콜리를 오늘 보낸다고 전해줘.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옛써, 이장님!”


이채연이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했다.


피식- 웃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전에 제법 힘을 쓴 탓인지 목이 말랐다. 음료수를 꺼내려는데 냉장고 안에 뭔가 두툼한 비닐 포장이 보였다.


이게 뭔가 싶어 이채연을 봤다.


“하, 하지 말래도 동철이 오빠가 매일 쓸데없는 짓을 해요. 어제 도축했다고 안심과 등심을 챙겨왔다나.”


살짝 얼굴이 붉어지며 이채연이 말끝을 흐렸다.


“동철이가?”


“어휴 제발 그 동철 오빠한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그래요. 일도 바빠 죽겠는데 괜히 사람 무안하게 하지 말고.”


“후훗 그래서 싫어?”


흠칫 이채연을 나를 봤다.


“동철이 괜찮은 녀석이라는 것은 사무장이 더 잘 알 거야. 내가 보증하고. 그러니까 너무 밀어내지 않았음 좋겠어. 사람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 됐네요, 저는! 좋기만 하면 뭐해요, 무식하게 힘만 세고 평생 소밖에 아는 게 없는 사람인데. 누가 마누라가 될지 안 봐도 앞길이 뻔하네요. 뭐.”


삐쭉-입을 내민 채 이채연이 짐짓 골난 표정을 지었다.


후후, 그 앞길을 같이 할 반쪽이 이채연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우직하게 한길만 가는 일.....쉬운 일이 아니야. 흔들리지 않고 자신 믿고 가는 길이니까. 동철이 녀석, 사랑도 그렇게 할 녀석이야. 한눈팔지 않고 제 여자만 바라보는.”


슬쩍 미끼를 던졌다. 후훗 이러다 내가 중매쟁이가 될 판.


“한눈팔지 않고 제 여자만 바라봤던 것은 동철 오빠가 아니고 바로 이장님이셨죠. 연지 언니한테 그렇게 사랑을.......!”


하다가 흡, 이채연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안절부절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연지......!


말만 들어도 울컥해지는 나의 여인이자 나의 하나뿐이었던 사랑!


지금은 집 앞 팽나무와 함께 바람이 되어 살랑 솔비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그런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련해지는 마음과 달리 나로서는 생면부지인 얼굴! 회귀라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차 대풍과 나의 기억이 뒤죽박죽인 상태! 뭐, 그래도 상관없었다. 차 대풍, 이 사내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니까.


“혹시......이장님 계신지요?”


순간 삐꺽-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명의 사내! 40대 후반, 한눈에 봐도 농부였다. 제법 차려입었지만 두툼하고 굵은 손.


“누, 누구신지?”


이채연이 놀란 표정으로 사내 둘을 봤다.


“매실리에서 감귤 농사를 하는 백찬봉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저랑 같이 일을 돕는 강호석이라 하구요.”


백찬봉.....? 강호석......? 기억에 없는 이름들.


“제가 이장입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무슨 일인가 싶어 그 둘을 쳐다봤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마을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신다구요.”


백찬봉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좋은 일은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들이겠죠.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신지.”


백찬봉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주저주저했다.


“아이구 이 친구하곤. 뭘 그렇게 망설여,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다는 듯 옆에 있던 강호석이 한 발짝 내 앞으로 다가섰다.


“빙 말 돌리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연화 삼촌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싶습니다. 이장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흠칫 백찬봉과 강호석을 봤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연화 삼촌 조합원이라고? 나에게 던져진 또 하나의 퍼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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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 혼자가 아니다 24.04.23 33 2 14쪽
29 백종훈 24.04.19 42 1 20쪽
28 위로 24.04.16 58 1 11쪽
27 함정 4 24.04.14 60 1 13쪽
26 함정 3 24.04.11 63 1 11쪽
25 함정 2 24.04.07 63 1 14쪽
24 함정 1 24.04.04 81 1 13쪽
23 실타래 24.04.03 90 1 16쪽
22 바늘과 실 24.03.30 90 1 14쪽
21 새끼 손가락의 약속 24.03.29 91 2 13쪽
20 양아치의 법칙 24.03.28 103 1 12쪽
19 판을 벌이다 24.03.27 104 1 14쪽
18 묘책 +2 24.03.26 128 1 12쪽
17 나는 아빠다! 24.03.23 138 1 13쪽
16 악연 +2 24.03.22 137 1 14쪽
15 그 녀와의 데이트 24.03.21 139 1 11쪽
14 양주먹 놔두고 말싸움이나 하라고 24.03.21 133 1 14쪽
» 조합원 +2 24.03.19 149 2 13쪽
12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24.03.17 145 2 12쪽
11 백경덕 24.03.16 160 2 13쪽
10 나의 절친은 읍장님 24.03.14 176 2 13쪽
9 아내 24.03.13 195 2 13쪽
8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4.03.12 185 2 14쪽
7 포제당 24.03.11 196 2 10쪽
6 참교육 24.03.10 201 3 13쪽
5 이렇게 따스한 밥이라니! 24.03.09 210 2 12쪽
4 어머니 24.03.08 242 2 14쪽
3 토끼같은 딸 24.03.07 266 2 11쪽
2 연화리장 차대풍 +2 24.03.06 29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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